[20250227] 남양주 사찰탐방 - 운길산 수종사(운길산역-일주문-불이문-해탈문-삼정헌-산령각-대웅보전-범종각-은행나무 보호수-이덕형별서터-송촌리-연세중학교)
02월 27일(목)
남양주 사찰탐방 - 운길산 수종사(운길산역-일주문-불이문-해탈문-삼정헌-산령각-대웅보전-범종각-은행나무 보호수-이덕형별서터-송촌리-연세중학교)을 다녀와서...
'운길산 수종사(운길산역-일주문-불이문-해탈문-삼정헌-산령각-대웅보전-범종각-은행나무 보호수-이덕형별서터-송촌리-연세중학교)' 코스
운길산역 2번 출구→굴다리→정무네장어집→진중교→수종사 가는 길→팔각정 아래→수종사 일주문→미륵불→불이문→해탈문→삼정헌(三鼎軒)→약사전→응진전→산령각(산신각)→삼정헌→선불장→사리탑→팔각오층석탑→대웅보전→舊범종각(명상하는곳)→경학원→범종각→은행나무(보호수)→수종사사적기비→하산길(송촌리 방향)→잣나무 숲 쉼터→한음 이덕형선생 별서터마을 가는 길→읍수정(揖秀亭)→이덕형선생 별서터→명재상이 심은 은행나무→황동마와 하마석→박소재→진중2리마을회관→연세중학교 앞 정류장
오늘은
남양주 사찰탐방 - 운길산 수종사(운길산역-일주문-불이문-해탈문-삼정헌-산령각-대웅보전-범종각-은행나무 보호수-이덕형별서터-송촌리-연세중학교)을 위해 길을 나선다.
▼ 운길산역에서...
운길산 수종사 水鐘寺
요약
수종사는 1459년(세조 5) 조선 전기에 제7대 세조의 명으로 중창된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운길산(雲吉山)에 있는 사찰이다. 수종사 팔각 오층석탑에서 출토된 총30구의 불상군은 조선 전기와 후기의 왕실 불교 신앙과 불상 양식 변화를 보여주어 그 중요성이 크다.
#변천
금강산에 다녀오던 길에 왕은 이수두(현, 양수리)에서 1박을 하였는데, 한밤중에 종소리가 들려와 날이 밝자마자 산으로 올라갔다. 한 바위에 뚫린 굴속에서 16나한(羅漢)을 발견한 왕은 굴속에서 물 떨어지는 소리가 암벽을 울려 마치 종소리처럼 들려온 것임을 알고, 여기에 절을 짓게 하고 수종사라 하였다. 이 때 5층의 돌계단을 쌓아 터를 닦고 절을 지어 16나한을 봉안하고 5층 석탑을 세우도록 하였다.
형태와 특징
수종사 팔각 오층석탑은 1957년 초층 탑신석과 초층 옥개석이 벌어지면서 안에 봉안된 유물이 모습을 드러내었고, 이를 수습하기 위해 탑을 해체하였다. 당시 상륜부와 5층 탑신을 들어올린 후 2~4층의 탑신을 한 번에 들어올려 1층 옥개석을 열었다고 한다. 이 때문에 이때는 2층과 3층 옥개석에 봉안된 불상을 발견하지 못하다가, 1970년에 탑을 사찰 경내로 이동하기 위해 다시 해체하면서 2~3층의 금동 불상군까지 모두 수습되었다. 탑 안에 불상이나 사리를 봉안하는 전통은 고대부터 있어 왔지만, 수종사 탑처럼 시대를 달리하는 다량의 금동 불상군이 한 번에 봉안되는 예는 거의 발견된 바 없다. 출토 불상들에서는 명문과 발원문이 함께 나오면서 발원자와 조성 연대를 알 수 있게 되었다. 불상군은 각각 15세기와 1628년(인조 6)에 봉안한 것으로 밝혀졌다. 1493년(성종 24)에는 태종의 후궁이었던 명빈 김씨와 성종의 후궁이었던 숙용 홍씨(淑容洪氏), 숙용 정씨, 숙원 김씨(淑媛金氏) 등이 함께 발원하여 5층의 석탑 안에 석가여래와 관음보살을 비롯한 6존의 불상군을 조성하여 봉안하였다.
1628년(인조 6)에는 선조의 계비였던 인목대비(仁穆大妃, 1584~1632)가 친정아버지 김제남(金悌南)과 아들 영창대군(永昌大君, 1606~1614)의 극락왕생을 위해 23존에 달하는 불보살상을 조성하고 성종대에 세워졌던 석탑을 130년 만에 다시 열어 그 안에 봉안하였다. 그 뒤 퇴락한 절을 1890년(고종 27)에 혜일(慧一)이 고종에게 8,000냥을 하사받아 중창하였다. 다음해 다시 4,000냥과 금백홍사(金帛紅絲: 황금과 비단 및 홍실 등의 재물)를 시주받아 사존불(四尊佛)을 개금(改金)하였는데, 이 때 방광(放光)이 있었다고 한다. 1936년과 1939년에 태욱(泰旭)이 중수하였는데 한국전쟁 때 석조물을 제외한 모두가 불타버렸다. 1974년 주지 장혜광(張慧光)이 대웅보전(大雄寶殿) 등을 복원하고 1981년 대응이 산신각 · 종각 등을 중건하여 오늘에 이른다.
의의와 평가
현존하는 당우로는 대웅보전을 중심으로 응진전(應眞殿) · 약사전(藥師殿) · 산신각 · 종각 · 경학원(經學院) · 요사 등이 있다. 중요문화유산으로는 1963년 수종사 부도 내 유물이 보물로 지정된 것을 시작으로 2012년에 남양주 수종사 팔각 오층석탑 출토 유물 일괄이, 2013년 남양주 수종사 팔각 오층석탑이, 2019년 남양주 수종사 사리탑이 보물로 지정되었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수종사 일주문
일주문(一柱門)은 수종사로 들어서는 산문 중 첫 번째 문으로 현판은 좌에서 우로 운길산수종사(雲吉山水鍾寺)로 적혀있다. 일주문이라는 명칭은 기둥이 한 줄로 서 있다는 데서 유래한다. 이 첫 관문을 독특하게 세운 것은 일심(一心)을 상징하는 것으로, 신성한 가람에 들어서기 전에 세속의 번뇌를 불법의 청량수로 말끔히 씻고 일심으로 진리의 세계로 향하라는 의미가 있다.
수종사 미륵불
미륵불(彌勒佛)은 석가모니 부처님이 열반하신 후 56억 7천만년 후에 이 세상에 강림하시어 모든 중생을 빠짐없이 성불시키신다는 부처님으로, 일주문에서 불이문으로 이어지는 명상의 길 중간에 모셔져 있다. 불상의 손 모양은 수인이라고 하여, 부처님의 성격을 알려주는 것으로, 미륵불은 시무외인(施無畏印)과 여원인(與願印)이다. 시무외인은 오른손을 위로 올려 손바닥을 밖으로 향하는 모습을 하고 있는 것으로 두려워하지 말라는 뜻을 지니고 있고, 여원인은 왼손을 밑으로 하여 소원을 받아들인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수종사 해탈문
해탈은 산스크리트어 ‘목샤(mokṣa)’를 번역한 말로, 결박이나 장애로부터 벗어난 해방 또는 자유를 의미한다. 불교에서는 중생이 겪는 모든 고통의 원인을 번뇌에서 찾는데, 모든 번뇌에서 벗어나 수행의 궁극적인 경지에 이른 상태를 해탈, 열반, 깨달음 등으로 표현한다. 따라서 해탈문을 지나면 해탈의 경지 즉 번뇌가 없는 영원한 자유의 세계에 이르게 된다. 해탈문 안으로 들어가면 부처의 세계인 불국토가 되고, 해탈문 밖으로 나오면 중생의 세계인 속세가 되는 것이다.
수종사 삼정헌
삼정헌은 1999년 삼척산 육송을 정성껏 다듬어 전통 양식으로 지은 전망 좋은 찻집이다.
“절은 ‘쉰다’는 뜻이라는 은사 스님의 말씀을 되새기며, 정말로 절은 중생의 쉼터여야 하지 않겠는가?
산속 옹달샘 같은, 그래서 누구든 수종사에 오면 경치 감상하며 쉬어가라고 만들었다”는 금해 동산 스님의 마음을 담아 20년이 넘는 세월 한결 같이 무료로 운영하고 있다.
수종사 약사전
약사전은(藥師殿)은 중생의 재난과 질병을 없애고 고난에서 구해주시는 약사여래부처님을 모신 전각으로, 다른 전각과 달리 전각 없이 약사여래불만 모시고 있다.
수종사 응진전
응진전(應眞殿)은 현판은 우에서 좌로 응진전(應眞殿)으로 되어 있으며, 수종사의 신도들 사이에서는 나한전(羅漢殿)으로 통용된다. 나한은 산스크리트어 ‘아라하트’를 음역한 것으로, 중생의 공양에 응할만한 수행이 있다고 해서 응공(應供), 진리에 응하여 남을 깨우친다는 뜻에서 응진(應眞)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우므로 나한을 모신 전각을 응진전이라 한다.
※주련(柱聯)
四向四果早圓成 (사향사과조원성) 사향과 사과를 일찍이 원만히 이루시고
三明六通悉具足 (삼명육통실구족) 삼명과 육신통을 모두 갖추셨네
密承我佛丁寧囑 (밀승아불정녕촉) 은밀히 우리 부처님의 고구정녕하신 부촉을 받으시어
住世恒爲眞福田 (주세항위진복전) 세상에 머무르시며 항상 참된 복전이 되시네
수종사 산령각(산신각)
산령각(山靈閣)의 현판은 우에서 좌로 산령각(山靈閣)으로 되어 있으며, 신도들에게는 산신각(山神閣)으로 통용된다. 산신은 가람수호신으로서의 기능과 함께 산속 생활의 평온을 비는 외호신(外護神)으로서도 받들어진다. 하지만, 이것이 불교 본연의 것이 아니라 하여 전(殿)이라 하지 않고, 반드시 각(閣)이라는 명칭을 붙이고 있다. 현재 이 산신각에서는 사업과 재물을 기원하는 산신 기도가 많이 행하여지고 있다.
수종사 선불장
선불장은
“시방에서 대중들이 함께 모여, 저마다 무위의 법을 배우네.
이곳은 부처를 뽑는 선불장, 마음이 공(空)해 급제하여 돌아가네
(十方同聚會 箇箇學無爲 此是選佛場 心空及第歸).”에서 유래한 명칭의 건물로,
이름과 같이 부처를 선발하는 도량이라는 뜻을 가진 스님들의 거처이자 수행공간으로서의 역할을 하는 당우이다.
현재는 스님의 거처 및 수행공간의 역할에 더해, 수종사의 종무를 담당하는 종무소로 활용되고 있다.
※주련(柱聯)
寺下淸江江上烟 (사하청강강상연) 절 아래로는 맑은 강물, 강 위로는 자욱한 물안개
峰巒如畵揷蒼天 (봉만여화삽창천) 우뚝한 봉우리는 그림처럼 푸른 하늘로 솟구쳤네
有力雷公藏不得 (유력뇌공장부득) 어떤 거센 천둥도 부득이 감추지 못하고
百花香動鷓鴣啼 (백화향동자고제) 백화 향기가 진동하고 자고새 우니나니
玄冥榻在殿中間 (현명탑재전중간) 심오하고 그윽한 자리는 전각등 사이에 있는 지고
남양주 수종사 사리탑
南楊州 水鍾寺 舍利塔
요약
경기도 남양주시 와부읍 운길산(雲吉山) 수종사에 있는 조선전기 왕실의 발원으로 건립된 팔각원당형 사리탑. 부도.
내용
높이 2.38m. 2019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현재 수종사 오층석탑과 함께 대웅전 오른쪽 뜰에 자리하고 있는 이 부도는 팔각원당형(八角圓堂形)의 기본 구도를 이루고 있다. 수종사 오층석탑은 경기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가, 2013년 보물로 승격 지정되었다.
4매의 네모난 판석으로 이루어진 지대석(地臺石) 위에 2층의 기단부(基壇部)와 원통형 탑신, 팔각지붕 모양의 옥개석(屋蓋石)과 상륜부(相輪部)까지 모두 갖추고 있어 완전한 모습이다.
지대석 각 면석에는 도드라진 구름무늬가 장식되어 있고, 기단부 중 하층기단은 각 측면 위와 아래 부분에 앙련(仰蓮)과 복련(覆蓮)을 돌리고 모서리마다 세 개의 연주문(連珠文)이 이어진 듯한 모양의 모서리기둥[隅柱]을 배치한 다음 각 면에 무늬를 새겨 놓아 매우 장식적이나 무늬는 마멸이 심하여 잘 식별되지 않는다.
하층기단에 비하여 다소 단순화된 상층 기단은 각 면을 상하 2단으로 나누어 네모꼴의 구획을 짓고, 그 안쪽에 구름무늬를 가득 새겨 꾸미고 있다. 위와 아래쪽을 약간 둥글게 다듬고 배부분을 조금 부르게 한 긴 원통형의 탑신석 표면에도 한 마리의 용과 함께 구름무늬를 도드라지게 가득 새겨넣어 기단부와 더불어 강한 꾸밈의도를 엿보여 준다.
추녀 끝이 곡선을 이루며 낙수면(落水面)의 경사가 완만하여 다소 둔중해 보이는 옥개석은, 추녀 끝부분에 15㎝ 정도의 넓은 경사면을 마련하고 지붕에 내림마루만을 나타내었을 뿐 아무런 꾸밈도 없이 단순하게 처리하였다. 부도 꼭대기의 상륜부는 단순하게 처리한 노반(露盤) 위에 타원형의 복발(覆鉢)과 앙 · 복련의 연꽃 장식을 한 보륜(寶輪) · 보주(寶珠)가 올려져 있다.
이 부도는 마모가 심한 편이어서 판독이 어렵기는 하지만 옥개석 추녀 끝면에 새겨져 있는 글의 내용(太宗太后貞□翁主舍利塔施主□□柳氏錦城大君正統己未十月日立 태종태후정□옹주사리탑시주□□유씨금성대군정통기미10월일입)으로 보아 1439년(세종 21)에 태종 태후가 발원하고 유씨와 금성대군(세종의 여섯째아들)이 시주자가 되어 조성한 ‘정□옹주’의 사리탑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이를 1930년대에 판독하여 기록해 놓은 「봉선사본말사지(奉先寺本末寺誌)」의 기록(貞□翁主乃貞懿翁主 翁主早信佛敎 有舍利故 太宗太后爲翁主建浮屠而柳氏及錦城大君爲施主則寧有建浮屠於無寺空山之理哉)으로 보아 이 부도의 주인은 정□옹주, 즉 정의옹주로 추정된다.
1939년 중수할 당시 고려시대의 청자항아리 · 금동9층소탑 · 은제도금6각감이 발견되기도 했던 이 부도는 그 형태 및 세부의 장식 등이 인근 지역의 회암사지(檜巖寺址) 전무학대사부도(傳無學大師浮屠)와 유사점을 보여 주고 있어 조선 전기 석조미술의 양식적 특징을 파악하는 데 중요한 작품임을 알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조성 연대와 왕실 발원이라는 내용의 글까지 남아 있어서 조선 전기의 부도 연구에 귀중한 자료임에 틀림없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남양주 수종사 팔각 오층석탑
南陽州 水鐘寺 八角 五層石塔
요약
경기도 남양주시 와부읍 수종사에 있는 조선시대 에 조성된 8각의 5층 석조 불탑.
내용
2013년 보물로 지정되었다(1972년 경기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에서 2013년 9월 4일 보물로 승격 지정됨).
팔각형의 옥개석(屋蓋石)을 갖춘 8각의 오층석탑으로 팔각지대석(八角地臺石) 각 면마다에 안상(眼象)이 조식되어 있고 기단의 하대석(下臺石)과 상대석에는 단판(單瓣)의 복련(覆蓮) · 앙련(仰蓮)과 안상이 조식되어 있다.
탑신(塔身)은 위로 올라가면서 체감률이 심하며 낙수면(落水面)과 전각(轉角)이 반전되었고, 옥개 내부는 수평을 이루고 있다. 옥석받침은 3단으로 되었으며, 옥개석의 전각 끝에는 풍경이 달려 있다.
팔각오층석탑에서는 1957년 해체수리 당시 1층 탑신과 옥개석 및 기단 중대석에서 19구의 불상이 발견되었으며, 1970년 이전 시에는 2~3층 옥개석에서 12구의 불상이 발견되었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수종사 대웅보전
대웅보전(大雄寶殿)은 청정법신(淸淨法身)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 원만보신(圓滿報身) 노사나불(盧舍那佛), 천백억화신(千百億化身) 석가모니불(釋迦牟尼佛)의 삼신불(三身佛)을 모신 수종사의 중심전각으로, 현재의 전각은 6.25전쟁 시 소실되었던 것을 1974년 혜광 화상이 중건한 것이다.
※주련(柱聯)
佛身充滿於法界 (불신충만어법계) 부처님 몸은 법계에 가득하시어
普現一切衆生前 (보현일체중생전) 드넓게 일체 중생에 나타나시니
隨緣赴感靡不同 (수연부감미부동) 인연에 따라 감음이 달리하시며
而恒處此菩提座 (이항처차보리좌) 언제나 보리 좌대에 자리하시네
수종사 경학원
경학원은 경전을 배우고 익히는 곳이라는 의미를 가지진 당우로, 현재는 스님의 거처로 활용되고 있다.
수종사 범종각
범종각(梵鐘閣)의 현판은 우에서 좌로 범종각(梵鐘閣)으로 되어 있다. 범종각에는 불전사물 중 법고를 제외한 범종(梵鐘), 목어(木魚), 운판(雲版) 등이 있다. 범종은 소리를 통해 중생이 번뇌를 끊고 깨달음을 얻도록 이끌어준다고 하며, 종소리를 듣는 순간, 번뇌로부터 벗어날 수 있으며, 종소리를 듣고 법문을 듣는 자는 생사의 고해를 넘어 깨달음의 경지에 다다를 수 있다고 한다.
※사물(四物)
범종(梵鐘) 소리를 통해 중생이 번뇌를 끊고 깨달음을 얻도록 이끌어 준다.
법고(法鼓) 짐승 세계의 중생을 깨우고, 정법(正法)의 북을 쳐서 시방세계를 깨우친다
목어(木魚) 환생한 물고기로 자신의 몸을 두드려 속죄함으로써 다른 생명의 고통을 덜어준다는 수행적 의미가 있으며, 수행자도 물고기처럼 깨어있어 항상 부지런히 도를 닦으라는 뜻이 들어 있다.
운판(雲版) 허공에 떠돌아다니는 모든 것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울린다
수종사 사적기
북한강과 남한강이 만나는 이곳 운길산 수종사는 멀리 신라시대부터 내려오는 옛 가람이다. 고려 태조 왕건의 상서로운 기운을 쫓아 이곳에 이르러 구리종을 얻음으로써 부처님의 혜광을 통해 고려를 건국했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곳이기도 하다. 1439년(세종 21)에 이르러 세종의 여섯째 아들 금성대군이 정의옹주의 부도를 세우고 금제 9층탑 수정사리함(사리 14과)을 청자 항아리에 담아 부도 안에 모셨다. 1458년(세조 4) 세조가 두물머리에서 머물다 새벽에 들려오는 종소리를 따라 올라와보니 그 종소리는 다름 아닌 바위굴 속에서 물이 떨어지는 소리였다. 세조는 바위굴 속에서 18나한을 발견하고 5층 돌계단을 쌓았으며 팔도 방백에 중창을 명하였다. 도량은 이런 연유에 의해 수종사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 이때 은행나무 두 그루를 심고 다음 해인 1459년 수종사 탑을 건립하였다. 1493년(성종 24) 후궁 명빈 김 씨가 목제불감과 설법도가 그려진 금동불감에 금동불보살상 등 14좌를 봉안하고 후궁들의 발원문도 함께 넣어 탑안에 모셨다. 1628년(인조 6)에 정의대왕대비가 금동비로자나불좌상을 시주하였으며 1890년 주지 풍계 혜일은 고종황제로부터 두 차례 시주를 받아 수종사를 중창하였다. 이때 불상이 빛이 발하였다. 1939년 일조태욱화상이 중수하였으나 6,25 전쟁 때 불이 탄 것을 1974년 혜광 화상이 대웅보전을 1981년 규원당 대웅화상이 약사전과 종각을 지었다. 1999년부터 금해당동산은 응진전 선불장 삼정헌 경학원 미륵불 일주문 등을 세워 사격을 완성하며 서거정이 천하제일의 명당이라 찬탄했던 절의 풍광을 다시 복원하였다.
수종사는 조선후기 초의선사, 다산, 추사를 비롯한 다선 묵객들이 당색과 신분을 따지치 않고 함께 모여 담론을 했던 사회변혁의 꿈이 깃든 곳이다. 후인을 위해 수종사와 함께 했던 선인의 발자취를 따라 사적기를 적는다.
☞ 이것으로 '남양주 사찰탐방 - 운길산 수종사(운길산역-일주문-불이문-해탈문-삼정헌-산령각-대웅보전-범종각-은행나무 보호수-이덕형별서터-송촌리-연세중학교)' 이야기를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