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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떠나는 여행] ①인천/소래포구 -그 소래 포구엔 지금, 젓갈 사려는 사람들로 북새통

by 맥가이버 Macgyver 2012. 9. 20.

멀리서 바닷물의 자락이 긴 잠옷처럼 갯벌에 끌리고… (소설 ‘협궤열차’ 中)

그 소래 포구엔 지금, 젓갈 사려는 사람들로 북새통

  • 입력 : 2012.09.20 04:00

[책 속으로 떠나는 여행] ①인천

문학에는 어떤 형태로든 작가가 경험한 시공간이 담긴다. 이 때문에 문학의 배경 속으로 떠나는 여행은 작품을 풍요롭게 이해하는 방법이자 새 이야기를 만드는 길이 된다.

책 읽기 좋은 계절을 맞아 ‘매거진 +2’는 책 한 권과 카메라 하나 들고 떠나는 ‘문학여행’을 소개한다. 이번 여행지는 ‘중국인 거리’(오정희·1979), ‘협궤열차’(윤후명·1992), ‘괭이부리말 아이들’(김중미·2000),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박민규·2002) 등에 등장하는 인천이다.

◇협궤열차가 지나던 소래 포구

“협궤열차 타봤어?”

그녀가 느닷없이 물었다. 나는 무슨 물음인가 하다가 피식 웃고 말았다. …

“그걸 한번 타보고 싶어서. 요전번에도 트럭하고 부딪쳐서 넘어졌다면서?”

류는 흰 이를 드러내며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 열차가 그런 식으로 넘어지는 것이 어쩌다 없지 않았다. 그 말을 듣자 나는 불현듯 역으로 나가 보고 싶다는 생각이 불끈 일었다. 그것은 욕망에 가까웠다.(협궤열차 中)

옛사랑과 조우해 느끼게 된 현재의 쓸쓸함과 과거의 낭만을 그린 윤후명의 소설 ‘협궤열차’는 수인선(水仁線) 협궤열차를 무대로 한다. 이 열차는 인천의 소금을 항구를 통해 일본으로 가져가기 위해 1930년대 만들어졌다. 협궤열차는 수원과 인천을 오가다 1995년 12월 31일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지금 소래 포구에 남아 있는 협궤열차의 흔적은 ‘소래철교’다. 철교 난간 폭이 2m 정도밖에 안 되는데 그 안에 4줄의 철길이 깔려 있는 것을 보면 누가 봐도 ‘협궤열차’의 길임을 알 수 있다. 울긋불긋 녹이 슨 철로는 세월에 부식된 침목을 베고 누워 있다. 안전을 위해 철망이 덮인 소래철교에 오르면 어시장과 시커먼 뻘, 포구에 처연하게 기댄 어선 등 포구의 풍경을 한눈에 볼 수 있다.

바다는 눈에 보이지도 않는 먼 곳에 있었다. 그런데도 밀물 때만 되면 어김없이 그 골짜기를 채우는 데 실수가 없었다. 멀리서 바닷물의 자락이 긴 잠옷처럼 갯벌에 끌리고 갈매기가 솟는다 싶으면 벌써 순식간에 황해가 자랑하는 뻘물이 밀려 올라왔다. …

덕적도 근해에서 철 따라 잡히는 수산물의 가짓수는 꽤 다양했다. 민어·숭어·우럭·조기·도미·광어·홍어·상어·서대·양태·밴댕이에 낙지·주꾸미·꼴뚜기 게다가 새우·조개·굴·꽃게. (협궤열차 中)

1 인천 앞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중국인 거리는 황혼을 바라보기에 좋은 장소다.
삼국지 이야기를 벽화로 담은 ‘삼국지벽화’길에서 석양을 바라본 모습. /
2 바로 옆에 복선 철로가 생기며 소래철교는 잊힌 옛날 다리가 되었다.
하지만 60여년간 수원과 인천을 오가던 협궤열차가 다니던 그 길에 올라서면 소래 포구의 정겨운 풍경이 한눈에 보인다.

소래 포구 어시장은 그야말로 ‘문전성시(門前成市)’다. 강을 통해 바다로 나가는 문(소래 포구) 앞에 열린 시장에는 수산물과 젓갈을 사려는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보통 시내 재래시장 정도 크기인 이곳에 한 해 300만명 이상이 찾아온다고 하니 그 북적댐을 가히 짐작할 만하다.

이곳 공기에는 짜고 비릿한 냄새가 배어 있다. 시장에선 꽃게·갈치·새우·전어·젓갈 등 갖가지 바다의 소생들이 좌판에 앉아 손님을 유혹한다. ‘갈치 5마리 만원’ ‘홍합 1㎏ 3000원’ ‘전어 20마리 만원’ ‘손질된 자반 6마리 5000원’ 등 가격표를 들여다볼 새도 없이 능숙한 상인들이 팔을 잡아끈다.

◇여전히 활기찬 중국인 거리

바다를 한 뼘만치 밀어둔 시의 끝, 해안 동네에 다다라 우리는 짐들과 함께 트럭에서 내려졌다. 밤새 따라오던 달은 빛을 잃고 서쪽 하늘에 원반처럼 납작하게 걸려 있었다. …

폭이 좁은 길을 사이에 두고 조그만 베란다가 붙은, 같은 모양의 목조 이층집들이 늘어선 거리는 초라하고 지저분했으며 새벽 닭의 첫 날개질 같은 어수선한 활기에 차 있었다. 그것은 이른 새벽 부두로 해물을 받으러 가는 장사꾼들의 자전거 페달 소리와 항만의 끝에 있는 제분 공장 노무자들의 발길 때문이었다. (중국인 거리 中)

 
배다리 헌책방 골목은 보물창고다.
용돈을 모아 꾸준히 사 모으던 월간 만화잡지도, 부잣집 친구 집에서 보던 백과사전도 부담 없는 가격에 살 수 있다.

소설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에서 '지구와 클립턴 행성을 오가는 길고 긴 여행'으로 표현된 서울과 인천을 오가는 국철. 그 끄트머리가 바로 인천역이다. 용산에서 출발해 육상 허들 선수처럼 역 사이를 건너뛰며 질주하는 급행열차도 이곳에는 닿지 않는다.

'중국인 거리'가 있는 곳도 인천역이다. 소설 '중국인 거리'에서는 전쟁 직후 고단한 삶의 터전으로 그려졌지만 지금은 화려하고 요란한 느낌이다. 거리를 가득 메운 붉은 풍등 덕이다. 풍등이 시뻘건 석양과 겹칠 때 이곳은 흡사 '서유기'에 나오는 화염산처럼 보이기도 한다.

중국 음식은 이곳의 장기다. 지금도 주말이면 '중국인 거리의 중국집들은 자장면의 면발보다 더 많은 수의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삼미슈퍼스타즈 中)는 표현이 유효해진다. "관광객들은 중국인 거리의 자장면을 즐기고, 인천 시민은 화교들이 동인천역에서 운영하는 자장면을 더 즐겨 먹는다"는 이곳 주민의 말도 흥미롭다.

고소한 냄새의 공갈빵, 맛깔스러운 양꼬치와 월병은 주인의 진격 명령만을 기다리며 군기를 바짝 세운 '맛의 군대'다. 고구마·단호박·팥·고기 등을 넣은 만두를 종갓집 장독만한 화덕 안쪽에 붙여 쪄내는 '화덕 만두'집에서는 이따금 손님을 가게 안으로 부른다. 화덕에 붙여놓은 만두가 노랗게 겉을 태워 절정의 유혹을 선보이는 순간이다.

1 월미도발 영종도행 여객선. 영종대교·인천대교가 놓이기 전까지 영종도로 갈 때 가장 많이 이용한 교통수단이었다. / 2 인천 중구청 앞에는 근대건축관(구일본18은행 인천 지점)등 개항 때 지은 건물과 당시 일본식 가옥들을 재현한 '근대개항 거리'가 있다. / 3 홍콩 영화 '황비홍'에 나오는 거리를 연상시키는 인천역 앞 '중국인 거리'
◇괭이부리말이 있는 만석동

중국인 거리에서 월미도 가는 길에 들러볼 만한 곳이 소설 '괭이부리말 아이들'로 알려진 만석동 쪽방촌이다. 재개발을 앞두고 채 50여가구도 남지 않은 황량함과 현대식 아파트와 공장단지에 섬처럼 둘러싸인 모습이 애잔하다. 낡고 가난한 이 동네가 보기에 좋을 리는 없다. 하지만 노을이 질 무렵 집들이 벽을 맞댄 이 동네를 걷다 보면 저녁까지 동네 어귀에서 아이들과 숨바꼭질하던 어린 시절이 떠오른다.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올라온 이농민들은 돈도 없고 마땅한 기술도 없어 괭이부리말 같은 빈민 지역에 둥지를 틀었다. 판잣집이라도 얻을 돈이 있는 사람은 다행이었지만 그나마 전셋돈마저 없는 사람들은 괭이부리말 구석에 손바닥만한 빈 땅이라도 있으면 미군 부대에서 나온 루핑이라는 종이와 판자를 가지고 손수 집을 지었다. 집 지을 땅이 없으면 시궁창 위에도 다락집을 짓고, 기찻길 바로 옆에도 집을 지었다. 그리고 한 뼘이라도 방을 더 늘리려고 길은 사람들이 겨우 다닐 만큼만 내었다. 그래서 괭이부리말의 골목은 거미줄처럼 가늘게 엉킨 실골목이 되었다. (괭이부리말 아이들 中)

괭이부리말을 나와서 여력이 있다면 월미도까지 걸어보기를 권한다. 석양이 내려앉으면 월미도 앞바다엔 황금빛 물이 든다. 그 순간 밝은 햇살을 쪼인 바다 위 만물은 무채색이 되어버린다. 이 역설적인 풍경 속에서 연인들은 휴대전화를 들고 석양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다. 노인들은 심드렁하게 반원을 그리며 바다에 낚시 추를 담근다. 아빠에게 먹을 것을 사달라 조르는 아이들 옆에는 이른 저녁부터 복잡한 얼굴로 맥주를 들이켜는 중년 사내가 있다. 모두의 가슴에 소설 한 편씩 쓰이는 계절이다.

■여행 수첩

 

국철 백운역에서 시내버스 20번을 타면 종점이 소래 포구다. 오이도역에서 수인선을 타고 소래포구역에서 내려도 된다. 국철 인천역에 내리면 정면에 중국인 거리가 보이고 뒤편 고가도로 쪽으로 역을 끼고 돌면 만석동과 월미도로 갈 수 있다.

동인천역에서 도원역 방향으로 5분 정도 걸으면 배다리 헌책방 골목이 있다. 백과사전부터 수험서, 소설, 시 등 지금은 절판된 책들을 수북하게 쌓아 놓은 헌책방 10여곳이 줄지어 있다.
▲인천시청 관광진흥과 (032)440-4044

인천 '명물'들

(왼쪽위부터) 화덕만두, 유니자장면, 월병, 닭강정
화덕만두

중국인 거리에서 맛볼 수 있다. 반죽에 단호박, 팥, 고기, 고구마 등으로 속을 채워넣은 뒤 커다란 항아리 안쪽에 붙여 구워낸다. 겉은 바삭하지만 속은 촉촉하면서 온기가 오래 지속된다.

유니자장면

동인천 화교 중식당에서 먹을 수 있다. 간자장처럼 면과 소스가 따로 나오고, 일반 자장면보다 소스의 색깔이 흐리다. 고기를 잘게 저며서 씹히는 맛은 다소 적으나 느끼하지 않고 담백하다.

월병

 

공갈빵과 더불어 중국인 거리의 가장 대표적인 간식거리다. 마패만 한 크기에 속을 단단히 채워넣었다. 단호박, 잣, 흑임자, 팥 등 다양한 재료로 맛을 낸 이곳 월병은 100% 수제라고 한다.

닭강정

동인천역 신포시장의 명물이다. 따뜻할 때 먹는 것도 좋지만, 조금 식힌 뒤에 먹으면 달콤하면서도 매콤한 맛을 제대로 즐길 수 있다고 한다. 커다란 솥에 닭과 소스, 견과류를 넣고 비비는 모습도 장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