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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권 비박산행 르포 | 연인산] 이 산정에서 하룻밤 머물면 그대 사랑과 소망이 이루어지리

by 맥가이버 Macgyver 2012. 9. 27.

[수도권 비박산행 르포 | 연인산] 이 산정에서 하룻밤 머물면 그대 사랑과 소망이 이루어지리

  • 글·신준범 기자
  • 사진·염동우 기자

 

백둔리~소망능선~정상~우정능선~우정고개~용추계곡 17km

바쁜 일상에 지칠 때 산행이 약이 된다. 미래의 행복을 위해, 생존의 불안 때문에 일중독 혹은 완벽주의에 빠진 사람들은 자신의 증상을 모른다. 누군가 옆에서 얘길 해줘도 불행한 삶의 패턴은 바뀌지 않으며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스스로 깨닫는 수밖에 없다. 산은 이렇듯 고립된 현대인의 심리와 자존심을 건드리지 않으면서 치유하는 묘한 힘을 갖고 있다. 산행의 과정이 일종의 자기 치유라고 볼 수 있다.


 
▲ 연인산 정상에서 비박한다. 하면에서 청평으로 이어진 불빛이 별빛처럼 아득하다.

여유롭게 자연을 즐기고 조용히 자신을 되돌아보기에 근교 비박산행이 좋다. 약간 늦게 일어나 점심쯤 친구들을 만나 산으로 향하는 것이다. 차로 1~2시간만 가면 바로 산행할 수 있는 근교산을 오른다. 등산객들이 이미 하산하고 난 후인 오후 3시 이후에 산에 들어 조용한 걸음을 음미하는 것이다. 3시간 이내에 비박지에 닿아 장비를 풀고 노을을 배경 삼아 저녁을 음미하면 된다. 저녁이 깊어 별들의 잔치가 시작되면 사람의 마음도 자연에 동화된다.


 
▲ 1 소망능선의 잣나무숲길. 그늘이 짙어 여름에도 선선한 편이다. 2 정상 아래의 장수샘. 정상 경치만큼이나 기막힌 물맛이다.

요즘 사회에서 속내를 드러내 보이는 건 적에게 무방비로 몸을 노출시키는 거라 믿는 사람들도 이 밤만큼은 무장해제가 된다. 몸과 마음에 좋은 느린 산행을 위해 산으로 든다. 목적지는 가평 연인산(1,068m) 꼭대기다. 


연인산(戀人山)은 이름을 개명한 산 중에서 가장 성공한 사례로 손꼽힌다. 국토지리정보원 발행 지형도에는 1,068.2m로 표기된 무명봉이었다. 그러나 산 아래 상판리 주민들은 우목봉이라 불렀고, 조선시대 문헌에는 산 위로 달이 떠오른다 하여 월출봉이라 불렸다는 기록도 있다. 연인산이란 이름은 1999년에 생겼다. 가평군 지명위원회가 등산인과 관광객에게 지역의 산을 정확하고 친근감 있게 알리기 위해 붙였다. 덕분에 뛰어난 산세에 비해 알려지지 않았던 연인산은 찾는 이가 급격히 늘어 2007년 도립공원으로 지정되기에 이르렀다.


낭만적인 이름 덕분에 젊은 연인들이 찾기도 하는데 이들 때문에 생긴 별명이 ‘연인 깨기산’이다. 연인산은 경기도에서 드문 1,000m대 산으로 정상까지 최소 2시간 이상, 산행 시작지점에서 해발고도 최소 700m 이상을 끌어올려야 하는 큰 산이다. 등산 경험이 적은 젊은 연인들이 가벼운 마음으로 왔다가 예상치 못한 산행의 힘겨움에 다툼을 벌여 연인 사이가 종종 깨진다고 해서 생긴 별명이다. 


▲ 3 소망능선과 장수능선이 만나는 지점인 879m봉.

‘러브랜드’라는 낡은 간판을 지나 오르면 축구장 두 개 크기의 공원에 닿는다. 공원이라지만 휑한 공터만 있을 뿐, 주차장인지 캠핑장인지 용도를 알 수 없다. 공터 끝에 대형 등산안내도가 있고 계단을 올라서면 백둔리 소망능선 입구다.


 
▲ 1 연인산 정상에서 본 해넘이. 2 정상 귀퉁이 흙으로 된 4~5평 정도 공간에 비박을 할 수 있다.

정갈한 잣나무숲이 사람을 맞는다. 순간, 여름에서 가을로 바뀐 듯 시원하다. 향기로우면서도 톡 쏘는 야성의 숲 냄새, 머리가 맑아진다. 잎사귀를 스쳐온 햇살의 초록빛에 눈이 시원하다. 솔잎 쌓인 흙길은 푹신해 디딜 때마다 편안함이 온몸으로 퍼진다. 흠뻑 땀이 흐르지만 걸을수록 몸이 개운하다. 잣나무숲의 숨결이 몸속으로 스며들고 있음이다.


산행 초반, 아직 호흡이 정리되지 않았지만 산은 사정 봐주지 않고 오르막을 들이민다. 동행한 이는 오랜 산행 동료인 안명선(아이더 검단산점장)씨다. 폭염의 힘이 가장 센 8월 초지만 선선하다. 더위가 한 풀 꺾인 오후 5시, 흐린데다 평소 없던 바람마저 분다. 산행도 오르막이지만 힘들지 않고, 땀이 나지만 금방 마른다. 잣나무 뿌리가 곳곳에 드러날 정도로 산객이 많은 코스지만 마주치는 사람은 한 명도 없다. 시원한 고요를 묵묵히 즐기며 오른다.

 

장수샘 물은 꿀맛보다 나아
끊임없이 덤벼오는 오르막을 두 발로 다 상대하며 오르자 장수능선 합수점인 879m봉이다. 조망이 없어 봉우리다운 맛은 없지만 급한 오르막을 해치웠다는 안도감에 한숨 돌린다. 한결 부드러워진 능선을 오르는 길에 장수샘이 있다. 정상에서 야영하기 위해 여기서 물을 채운다. 물맛이 달고 시원하다. 차갑다는 말로 부족할 정도로 물이 차갑다. 페트병에 물을 받아 손에 들고 있으면 시릴 정도다. 장수샘 덕분에 더 풍요로워질 저녁을 생각하며 남은 힘을 쏟아붓는다.


▲ 3 해넘이를 배경으로 즐거운 저녁을 먹는다.
4 해돋이를 맞으며 상쾌한 아침을 맞는다. 정상 비박은 해돋이와 해넘이의 감동을 만끽할 수 있어 좋다.

정상에 닿자 처음으로 시야가 터진다. 분홍색으로 물든 하늘이 너무 감미로워 배낭을 내려놓는 것도 잊고 멍하니 하늘을 본다. 노을이 가라앉자 비박을 준비한다. 타프를 치고 돗자리를 펴고 배낭을 푼다. 찌개를 끓이고 고기를 구워 1,068m에서 소박한 만찬을 즐긴다. 멀리 가평읍내와 상판리의 불빛이 별빛처럼 미세하다. 세상과 동떨어진 것 같은 조용한 분위기, 좋다. 


몇 번 잠을 깬다. 빗방울과 모기 때문이다. 1,000m 넘는 고지엔 모기가 없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진화했는지 끊임없이 물어뜯는다. 비는 멈췄지만 타프가 없었다면 곤욕스러울 뻔했다.


아침에 보니 뚜렷한 경치가 드러난다. 북쪽으로 혹등고래처럼 검은 덩치로 거칠게 솟은 명지산이 제일 먼저 눈에 든다. 남쪽으로는 연인산보다 높은 봉우리가 없어 시야가 훨씬 시원하게 트인다. 곡선을 이룬 산의 흘러내림이 멀리까지 겹쳐 있어 보고 있노라면 사람의 마음도 부드러워진다. 자세히 보면 흘러내리는 산의 결에서 운해가 피어오른다. 산이 살아 있음을 본다.


▲ 1 깨끗하고 아기자기한 용추계곡.

정상 표지석은 독특하게 하트 모양이며 ‘사랑과 소망이 이루어지는 곳’이라 적혀 있다. 하룻밤 재워준 연인산에 감사하며 우정능선으로 내려선다. 정상을 막 내려서면 비교적 완만한 터가 나온다. ‘아홉마지기’라 불리는 너른 터다. 이곳에 얽힌 이야기가 있다. 옛날 숯을 굽는 청년과 참판댁의 여종이 서로 사랑에 빠지게 되었다. 결혼을 청한 청년에게 참판은 조 100석을 가져오면 결혼 시켜주겠다고 하여 청년은 연인산 정상 부근의 분지를 발견해 아홉 마지기의 밭을 일궈 조 100석을 마련한다. 그러나 참판이 그를 역적의 아들로 몰아 쫓기게 되었고, 실의에 찬 청년은 아홉 마지기 밭에 불을 질러 죽었고, 처녀도 따라 죽었다고 한다. 사랑과 소망이 이뤄진다는 의미와 달리 이루어지지 못했던 한 맺힌 사랑의 이야기가 연인산에 전한다.


아홉마지기 터에는 무인산장과 샘이 있다. 능선을 버리고 사면 아래로 160m 가면 산장이다. 등산로에서 약간 떨어져 있다 보니 찾는 이가 드물어 길이 풀에 뒤덮였다. 산장 옆에 호스로 물이 나오는 작은 샘이 있으나 물의 양이나 질이 장수샘보다 못하다.
우정능선은 연인산 특유의 휴식 같은 산줄기를 그대로 보여준다. 산불방화선을 만들기 위해 능선의 나무를 베어내 오붓한 숲길이 생긴 것이다. 키 큰 신갈나무와 잣나무가 번갈아 그늘을 만들어주고 가운데로 난 여유로운 흙길은 영화의 한 장면처럼 끝없이 이어진다. 오르내림이 많은 산줄기지만 그늘이고 발디딤이 푹신한 길이라 산행이 어렵지 않다.


▲ 2 푹신한 흙길에 분위기 좋은 숲길을 더한 우정능선.
3, 4 무인산장과 산장 옆의 샘. 풀 속에 뒤덮여 있다.
5 우정고개에서 용추계곡으로 이어진 임도의 야생화.

우정봉은 밋밋하여 봉우리다운 맛은 없다. 표지석이 없어 신경 쓰지 않으면 우정봉을 지나고 있음을 눈치 채기 어렵다. 우정능선의 가장 낮은 안부인 우정고개에 닿으면 6개의 갈림길이 있다. 임도 3개와 산길 3개가 교차한다. 여기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마일리 국수당’ 방면으로 하산한다. 1.6km로 짧아 하산이 편하다. 반면 용추계곡으로 이어진 길은 10.2km에 이르는 먼 길이라 베테랑이 아니라면 권하기 어렵다. 그러나 하류의 관광객들이 맛 볼 수 없는 상류만의 원시 계곡미를 누릴 수 있다. 망설임 없이 용추계곡 방향 임도를 걷는다. 길이 좋아 걸음이 빠르다. 임도는 걷기 편하지만 사면이 구불구불 끝없이 이어진 경우가 많아 합리적인 등산로가 아니며 초보자의 경우 오히려 조난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임도를 버리고 산길로 들어서자 용추계곡의 싱그러운 매력이 더 생생하다. 때론 재잘거리며, 때론 콸콸거리며 맑게 흐른다. 골을 따라 왼쪽 오른쪽 건너가며 오래도록 걷자 조금씩 사람의 흔적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막바지 피서객들의 물놀이 소리로 시끌벅적하다. 조용한 산 분위기에 익숙해진 탓에 시끄러운 용추계곡 하류를 얼른 떠나고 싶다.


숯 굽는 청년과 종살이 하던 처녀의 이루어지지 못한 한이 오히려 이곳을 찾는 연인의 사랑과 소망을 이루지게 한다는 의미가 담긴 연인산. 자연적인 오르막조차 함께 극복할 자신이 없다면 애초에 연인 사이는 이루어질 수 없다고 말하는 건지도 모른다.


[산행 길잡이]
정상과 1,048m봉 헬기장 비박지로 알맞아
연인산은 수도권 비박산행에 알맞다. 서울에서 가깝고 들머리에서 비박지까지 3시간 이내에 닿을 수 있다. 게다가 정상에서 멀지 않은 곳에 샘이 있어 무게 부담을 줄일 수 있다. 정상에선 일몰과 일출을 감상하고 운치 있는 비박을 즐길 수 있다. 다만 정상의 15평 정도 되는 분지에서 비박에 용이한 흙으로 된 터는 4평 정도에 불과해 4~5명 정도가 적당하다. 막영 터로 추천할 만한 다른 곳은 1,048m봉 정상 헬기장이 있다. 정상보다 더 시야가 트여 있고 넓어 3~4인용 텐트 여러 동을 쳐도 충분하다. 정상에서 우정능선을 따라 700m 떨어져 있다. 


정상으로 이어진 가장 짧은 코스는 가평군 북면 백둔리에서 소망능선을 따라 오르는 길이다. 연인교 버스정류소부터 걸어가면 정상까지 5.5km, 승용차로 백둔리 공원에서 출발하면 3.9km다. 소망능선 들머리에서 2시간 30분 정도면 정상에 닿는다. 무인산장은 시야가 막혀 있고 풀이 높아 음산한 분위기다.


하산은 장수능선을 따라 백둔리로 원점회귀하거나 우정능선을 종주해 우정고개까지 이른 다음 마일리나 용추계곡으로 내려 갈 수도 있다. 우정고개에서는 마일리 국수당 방면이 1.6km로 짧고 용추계곡은 10km가 넘는 긴 길이라 마일리로 하산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소망능선과 우정능선을 거쳐 용추계곡으로 하산하는 코스는 17km에 9시간 정도 걸린다. 용추계곡은 산행이 끝나는 해오름펜션에서 3km를 더 내려가야 버스종점인 공영주차장에 닿는다.


교통 가평버스터미널에서 백둔리행 버스를 타고 연인산 입구에서 하차하면 된다. 1일 6회(06:20, 10:10, 11:50, 14:20, 17:20, 19:30) 운행하며 30분 정도 걸린다. 요금은 1,300원. 연인산 입구 하차 후 연인교 건너 임도 따라 직진 3km 오르면 소망능선 입구인 러브랜드 푯말이 있는 공원에 이른다.


용추계곡에서 가평터미널행은 1일 8회(07:10, 09:40, 12:10, 14:40, 15:30, 16:50, 18:20, 20:30) 운행한다. 노선에 따라 가평역을 경유하는 버스도 있다. 문의 가평버스터미널(031-582-2308). 택시를 타고 갈 경우 백둔리까지 2만 원 정도 받는다. 가평택시(031-582-2141).


숙식(지역번호 031) 들머리인 백둔리와 날머리인 용추계곡 모두 식당을 겸한 민박이나 펜션이 즐비하다. 용추계곡에는 해오름펜션(582-6430), 칼봉산쉼터(010-6339-7488), 르노와르콘도형펜션(581-8867), 용추펜션(582-6900), 둥지펜션(010-4359-4676), 옛날순두부(581-6400), 숲속의하루매점민박(582-8511) 등이 있다. 백둔리에는 연인산다목적캠핑장(070-4060-0828)에 오토캠핑장, 모빌홈, 캐빈하우스, 클럽하우스 등의 다양한 숙소가 있다. 그밖에도 가평별장펜션(010-5583-0714), 게스트하우스 하루(010-3818-1250), 백림산방(582-5307) 등이 있다. 소망능선 입구의 공원에 축구장 2개 크기의 너른 공터가 있어 야영 가능하다. 식수는 계곡에서 떠 오거나 미리 준비해야 하며 간이 화장실이 있다.

 

출처 : 월간 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