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가이버의 '의왕시 오봉산 일주산행(중앙도서관-정상-오봉산약수터-병풍바위-중앙도서관)' 코스
의왕시보건소→중앙도서관(책마루)→195봉→204.5봉→201.6봉→204.1봉→205.4봉(삼각점)→철탑갈림길→당정마을
→철탑갈림길→205.4봉(삼각점)→쉼터→오봉정사→오봉산약수터→병풍바위→중앙도서관(책마루)→청소년수련관(꿈누리)
지난 해 6월에 '의왕역에서 왕송호수ㆍ덕성산ㆍ망치봉ㆍ오봉산 이어 걷고 당정역까지 걷기'를 다녀오면서
오봉산의 능선을 잠시 들르면서 언제 다시 와서 오봉산을 살펴보리라 했었는데 오늘에서야 오봉산을 찾는다.
오봉산만 둘러보기엔 시간이 너무 짧아서 '의왕누리길 전 구간 이어걷기'도 이어서 하기로 한다.
'의왕누리길 전구간 이어걷기' 바로가기 ☞ http://blog.daum.net/macgyver/16157705
▼ 의왕역 2번 출입구 밖에서...
오봉산[五鳳山]
경기도 의왕시 고천동 서쪽에 있는 작은 산이다.
의왕시의 여섯 개 산(청계산, 모락산, 백운산, 바라산, 덕성산, 오봉산) 중 하나로,
의왕시청 바로 뒤쪽에 있으며 높이는 205m이다.
원래는 봉우리가 다섯 개라 하여 오봉산(五峯山)이라 하였는데,
언제부터인가 한자가 변경되어 오봉산(五鳳山)이라 표기되고 있다.
산의 명물은 중턱에 있는 병풍바위로, 높이 18m, 폭 30m 규모이다.
이 바위는 의왕시가 선정한 ‘의왕 자연8경’ 중 하나이며,
암질이 단단하고 돌기 부분이 잘 발달되어 있다.
산에는 병풍바위 외에도 약바위, 두꺼비바위 등 특징적인 형상의 바위들이 여럿 있다.
[출처 : 두산백과]
오봉산의 전설
의왕시 고천동에 오봉산이 있다.
원래 산봉우리가 다섯개여서 五峯山 이라고 하였는데
언제부터인가 "峯"이 "鳳"으로 바뀌어 근자에는 "五鳳山"이라고 지도에까지 표기되어 있는 산이다.
이 산은 의왕시 왕곡동에서 시청 쪽으로 오려면 경수산업도로 건너편으로 봉우리 다섯 개가 나란히 바라다 보이고
그 끝에 한 봉우리가 더있어 봉우리 여섯 개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그러니까 어쨌든 五峯山 이라는 표기가 맞는 것이라고 이 마을 古老들은 말하고 있다.
그런데 이 오봉산에 얽힌 전설이 의왕시 왕곡동에 있는 청풍김씨의 문중에 전해지고 있으며,
이 이야기는 또한 의왕시의 古老들이면 누구나 알고 있는 꽤 오래된 것이다.
옛날에 중국에서
어떤 地術師가 무슨 계기로 그만 죄를 얻게 되어 그것도 역적이라는 죄명을 쓰고
목숨을 건지기 위하여 조선 땅으로 피신을 하게 되었다.
겨우 목숨을 부지하기 위하여 도망하여 온 터라 가진 것도 없고 하여 별로 먹지도 못하고 제대로 입지도 못하여
기진맥진한 모습으로 이 곳 의왕시까지 와 저자거리의 한 구석에 멍하니 앉아 있었다.
그런데 우연한 계기로 그 초라한 초립동이 차림의 중국사람 곁에 앉았던 청풍김씨 한 분이 그를 딱하게 여기고
집으로 데리고 와 음식을 주고 옷도 새로 마련하여 주면서 며칠 쉬다가 가라고 하였다.
그런데 마침 그 때 그 청풍김씨댁 할머니가 중환이어서 매우 위독한 상태로 사경을 헤매고 있었다.
이에 그 중국 지관은 할머니의 병환을 살피더니
도저히 소생할 가망이 없음을 판단하고 청풍김씨에게 말을 이렇게 건네었다.
" 아무것도 모르는 저이지만 노부인의 병환으로 아무래도 회춘하시기가 어려운 고비까지 이른 것 같습니다.
타국에 와 생면부지인 당신을 만나 나는 겨우 고생을 벗어나 이제 몸도 다 회복하였습니다.
이에 당신께 고마움을 표시해야 할 아무것도 지니지 못하였으나,
다만 중국에서 약간 배운 기술이 있는지라 저 노부인을 모실 산소라도 하나 보아 추천하겠습니다."
청풍김씨는 이 중국 지관의 말이 하도 고마워 함께 산소자리를 보러 나섰다.
저 앞에 바라보이는 오봉산을 건너다 보고 함께 그리로 가자 하였다.
중국 지관의 뒤를 따라 오봉산에 이르러 그 뒤편으로 가니
어느 집 한 채가 있는 곳까지 가서 이 집터가 고지라고 일러주는 것이었다.
그리고 광중이 될 자리까지 지정하여 주는데 그 자리란 바로 그 집의 장독대가 있는 지점이었다.
청풍김씨는 딱하였다.
아무리 자기 노모님을 모실 자리로서 명당을 추천받았다 하지만
어엿이 살림을 차리고 있는 집에 들어가 그 집터를 산소자리로 양보해 달라고 하기가 어려웠다.
여러 시간을 끙끙거리다가 큰 마음을 먹고 그 집에 들어가 자초지종을 이야기하고 찾아온 뜻을 말하였다.
처음부터 승낙을 받으리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나 역시 그랬다.
뿐만 아니라 그 집 주인에게는 이만저만한 노여움을 산 게 아니었다.
청풍김씨는 결국 사과의 말을 하고는 되돌아올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참으로 이상한 일이 벌어진 것이었다.
청풍김씨가 그 집터에서 돌아온 그날 밤에,
그러니까 집터를 산소 자리로 양보하여 달라고 말을 건네었다가
오히려 잘못되었다고 사과까지 하고 돌아온 그날 밤에
어찌된 영문인지 오봉산 뒤, 그 집에 불이 나서 몽땅 타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바로 그날 밤 또한 이 청풍김씨 댁 노부인도 그 시각에 운명하고 말았다.
마을에서는 이야기 거리가 생겼다.
멀쩡히 집짓고 사는 이에게 산소자리로 내어 달라고 한 것도 이야기 거리인데,
거절하였더니 그날 밤으로 이상하게도 원인 모를 불이 나 집 한채를 몽땅 태웠고,
그뿐 아니라 청풍김씨댁 노부인이 또한 시간을 맞추어 운명하셨으니 더욱 그러하였다.
따라서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청풍 김씨네에서 그 집터를 산소자리로 하려고 일부러 불을 질렀다느니,
혹은 불이 난 것은 그 집터가 청풍김씨네 노부인 산소자리로 이미 하늘이 정해 준 것이어서 그렇다느니,
그것은 하필이면 그 불이 난 밤에 노부인이 운명하실 것이 무엇이냐?
그것으로도 이미 하늘이 정하여 준 것이다 등등 말은 꼬리를 물고 이어나갔다.
어쨌건 산소자리를 위한 이야기가 당시 양가 사이에서 시작되었고
결국은 원만한 합의를 얻어 그 타버린 집터에 청풍김씨는 묘를 쓰게 되었다.
장사를 치르기 전날 중국에서 온 지술사는 다시 청풍김씨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이제 노부인을 모실 자리도 확정되었으니 저로서도 그간의 은혜에 보답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다만 한가지 꼭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습니다.
이는 꼭 지켜주시기 바랍니다.
노부인을 모시기 위하여 땅을 파서 광중을 만들 때 얼마큼 파 내려가면 펑퍼짐한 돌이 부딪칠 것입니다.
그러면 그 이상 더 파지 마십시오.
꼭 지켜야 합니다."
그리고는 다시 옷을 가다듬어 입고는 이번엔 떠나는 인사를 하였다.
"이제 저는 중국으로 돌아갈 때가 되었습니다.
건곤(乾坤)을 보아하니 죄명이 누명으로 밝혀져 역적의 누명이 깨끗이 씻겼습니다.
저는 이제 떠나야 합니다.
거듭 부탁드리겠는데 광중에 펑퍼짐한 돌이 나타나거든
그 이상 더 파내려가지 마시고 그 돌 위에다 그냥 하관하시기를 바랍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하더니 훌쩍 길을 떠나 중국으로 돌아가 버렸다.
드디어 장례날이 되었다.
산역을 하고 상여를 모시고 온 집안이 떠들썩 하였다.
산소자리까지 상여를 모시러가 광중이 다 되기를 기다리면서
때를 기다리고 있는데 일하던 사람이 웅성거리기 시작하였다.
광중을 파는 주위에서 꾸부리고 있던 화장꾼들도 한 몫 거들고 있었다.
"더 파야지. 너무 얕지 않아?"
"아냐, 그만 파라고 했어. 여기 봐. 돌이 놓여있지 않아?"
"그렇지만 이렇게 광중이 얕아서야 …"
"상관없어, 더 파지 마."
"이럴 게 아니라 상주에게 직접 보이고 결정하세."
결국은 상주인 청풍김씨에게 가서 이 사실을 이야기하고 처분을 바랬다.
청풍김씨는 이 이야기를 듣더니 직접 가 보았다.
분명히 중국 지관이 말한 대로다.
그러나 광중으로서는 너무 얕아 보였다.
그도 혼자 결정하기가 망설여졌다.
그래서 일단 작업을 중단시키고 급히 가족회의를 열기 위하여
산소 가까운 곳에 대기중인 상여 앞으로 가서 구수회의를 가졌다.
이 때 광중을 파던 산역꾼들도 한동안 쉬기 위하여 광중으로부터 멀리 떠나 나무그늘 밑으로 갔고,
다만 청풍김씨네 막내 아우만이 홀로 광중을 지키고 있었다.
원래 광중을 파게 되면 반드시 누군가가 지키고 있게 마련이다.
혼자 광중을 지키고 있던 막내는 지금 말썽이 되고 있는 펑퍼짐한 돌을 내려다 보고 있었다.
그리고는 슬며시 광중으로 들어섰다. 다시 그 펑퍼짐한 돌 위에 올라 서 봤다.
그런즉 밑에 무슨 돌이 있는지 어떤지 그 돌이 기우뚱거렸다.
무심코 그는 그 돌 한쪽 끝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그 밑을 내려다 보았다.
이게 웬일인가?
그 펑퍼짐한, 흡사 구들장 같은 돌을 들어 올리면서 내려다 보는 순간,
그는 '윽!' 하면서 다시 돌을 놓아 버렸다.
그 순간 무엇인가 둔탁한 소리를 내며 부러지는 것 같았다.
그리고는 그 넓적한 돌은 제자리에 자리를 잡았다.
다시 그 막내는 놀랜 가슴을 어루만지면서 눈을 지그시 감았다.
그 돌 아래 펼쳐졌던 광경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그 돌 밑에는 돌로 된 옥동자 다섯 개가 앉아 있었고, 그
들을 향하여 그들 보다 조금 더 큰 옥동자 하나가 서 있었다.
흡사 옥동자 다섯에게 무엇인가 일러주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다시 이 막내는 너무 놀라 쳐들었던 돌을 놓는 순간
무엇인가 부러지는 듯한 소리를 생각하고는 그 돌 위에서 이 구석, 저구석 밟아 보았다.
그런데 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돌을 쳐들기 전까지는 기우뚱거리던 그 넓적한 돌이
이젠 조금도 흔들리지 않고 꽉 제자리에 이가 맞은 듯이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제야 아까 무엇인가 부러지는 듯한 소리는
바로 그 다섯 개 옥동자 앞에 서 있던 옥동자의 머리가 부러진 것으로 여겨졌고,
그 머리가 부러지기 전에 그 넓은 돌이 그 키에 걸려서 기우뚱거렸을 것임이 분명하였다.
이윽고 상여 앞에서 긴급 가족회의를 열면서 광중의 돌을 제거할 것인가 말 것인가 를 의논하였으나
끝내는 중국 지술사의 말을 따르기로 하고 그 돌위에 그냥 하관을 하고서 묘를 만들었다.
산소가 다 치성되고 나서도 이 막내는 그러한 광경이 너무나 무서워 아무에게도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이 산소에 관한 비밀은 이 막내만이 알고 그냥 지켜져 온 것이다.
한편 중국으로 돌아간 지술사는 자기 아버지에게서 꾸중을 듣게 되었으니,
갖은 고생을 겨우 끝내고 집에 돌아온 아들에게 이렇게 나무라는 것이었다.
"보아하니 너는 너의 목숨을 아껴주고 구해준 조선땅의 청풍김씨 댁을 은혜는 못 갚을지언정
역적의 집안으로 인도하였으니 그럴 수가 있느냐.
어서 되돌아가서 그 산소를 옮기도록 하여라."
아들이 그 연유를 물었다.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조선 땅에서는 가장 좋은 길지로 은혜를 갚았다고 생각되는데요."
"아직 멀었다. 너는 아직 모르는 것이 있다.
그 자리는 5정승을 거느리고 역적 모의를 하는 또 하나의 옥동자가 있었느니라.
그가 바로 그 집안을 역적의 집안으로 만들 후손이니라."
중국의 지술사는 새삼 자기 아버지의 지혜에 탄복하고 그 길로 다시 조선으로 건너와 청풍김씨댁을 찾았다.
뜻하지 않게 다시 만난 청풍김씨 댁에서는 이만저만 반가운 것이 아니었다.
중국의 지관은 들어서자마자 자기가 잡아준 산소를 다른 곳으로 옮기자고 제의하면서 서둘렀다.
그 때의 청풍김씨의 막내도 한자리에 있었다.
이제는 더 숨길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아니 숨겨서는 안되겠다고 판단을 하자 그제서야 여러 사람들,
즉 집안식구와 중국 지관앞에서 그 날, 장례식날 광중에서 겪은 일을 모조리 차근차근 이야기하였다.
자초지종을 듣고 난 중국 지관은 그제야 한숨을 푹 쉬면서,
"그럼 되었고, 그 부러진 것이 바로 다섯 개 옥동자 앞에 서 있던 옥동자의 목이 틀림없소.
그렇다면 이제 역적은 사라지고 그 대신 정승이, 그것도 6정승이 나올 것입니다."
하면서 저으니 마음을 놓는 듯 하였다.
그 후에 정말로 이 청풍김씨 집안에는 6정승이 계속 쏟아져 나왔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저 오봉산 봉우리가 그 산 이름처럼 다섯 개지만
사실은 가만히 바라보면 한쪽 끝에 또 하나의 작은 봉우리가 있음을 발견하게 되는데
이것이야말로 모두 여섯 개 봉우리, 즉 6정승을 암시하는 것이라고들 말하고 있다.
출처 : 의왕시청 http://www.uw21.net/
☞ 이것으로 '의왕시 오봉산 일주산행(중앙도서관-정상-오봉산약수터-병풍바위-중앙도서관)을 다녀오다'를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