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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 일출 일몰 명소

by 맥가이버 Macgyver 2009. 12. 24.

밤새도록 달려갔다 올해와 이별했다

 

무박 2일 기차여행

화재에 한 부분을 내어주기 직전 우연히 향일암(061-644-4742)의 마지막 일출을 보았습니다.

오후 11시 20분 용산역에서 출발하는 '연말 남도 열차'를 타고 오전 4시 45분 여수역에 내려

'소원이 이뤄진다'는 향일암에서 빨간 해를 만났습니다.

집으로 돌아오고 난 후 접한 화재 소식에 놀라 향일암 총무 스님인 연규 스님에게 전화를 걸어봤습니다.

"화재 때문에 향일암 일출을 볼 수 없는 게 아니냐는 문의가 많지만,

늦어도 28일까지는 화재 현장을 정리하고 손님을 맞을 예정입니다.

그렇죠, 역경이라면 역경이지요. 하지만 어려운 일이 생겼다고 암자를 닫지는 않습니다.

중생들은 암자가 '해를 향한다'고 생각하지만, 향일암은 해를 머금은 절에 가깝거든요."

캄캄한 밤 서울을 떠난 열차는 한반도를 북에서 남으로 느릿느릿 가로질러 새벽 5시가 채 되기 전 전남 여수에 닿는다. 주황빛 태양은 별빛을 밀어내고 수평선 위로 솟아오를 준비를 마쳤다. 온전한 하루가 선물처럼 눈앞에 모습을 드러낸다.

향일암뿐이겠습니까. 올 한 해 우리 모두 마음 한구석, 기억 몇 조각, 다짐 여럿이 불에 타듯 스러졌겠지요.

인간들은 그래서 '지구가 태양을 한 바퀴 돌아서'라는 핑계를 들어 시간을 나누어 새 시작을 다짐하는 게 아닐까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태초신(太初神)의 이름은 크로노스, 즉 '시간'입니다.

한 해의 끄트머리에서 시간의 흐름을 오감으로 느낄 수 있는 일출과 일몰에 집착하는 건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겠지요.

해돋이를 보러 가는 길 꽉 막히는 차 안에서 한숨만 내쉬는 '연말의 악몽'이 재현되지 않도록

코레일에서는 연말연시에만 특별히 운행하는 '해돋이 열차'를 많이 내놓았습니다.

한해 마지막 날인 12월 31일 열차는 거의 매진됐지만,

꼭 그 날짜를 고집하지 않고 앞뒤 날짜를 노려본다면 묵은해의 마무리와 새해의 시작을 일출과 함께 간편히 맞을 수 있을 듯합니다.

전남 보성 녹차밭 트리 뒤로 하루 해가 넘어간다. / 조선영상미디어 이구희 기자
동해의 일출은 거대하고 기운 세다. 동해에서 강릉까지 해안선을 따라 새 아침을 달리는 열차. / 조선영상미디어 김승완 기자 wanfoto@chosun.com

매주 금·토요일 오후 11시 20분 용산역을 출발해 여수역에 도착한 후 남해 보리암에서 일출을 보고 순천생태공원,

곡성 기차마을을 둘러보고 용산역으로 돌아오는 '남도 무진기행' 상품이 대표적입니다.

코레일 전남본부(061-749-2289·www.korail.biz)는 기차에서 내린 후 각 여행지를

전세버스로 연결해주는 이 상품을 12월까지 4만9000원, 새해부터는 7만9000원에 판매합니다.

용산~여수 왕복 열차 비용(5만4200원)을 감안하면 파격적인 가격입니다.

무박 일출 여행의 '고전'으로 꼽히는 정동진 여행도 연말 특별 무박 상품을 이용하면 풍성해질 듯합니다.

1월 1일~2월 6일 매주 금·토요일 출발하는 '정동진 해돋이·태백산 눈꽃 기차여행'(문의 홍익여행사 02-717-1002)의

무박 2일 열차의 가격은 4만9000원. 태백산 눈꽃 관광까지 즐길 수 있는데 가격은 열차 왕복 티켓에 7000원 정도만 더한 가격입니다.

잠 안 자고 밤새 달리는 '무박 일출 여행'은 사실 조금 고단합니다.

하지만 연말·연시니까 딱 한번, 느리고 따스한 열차로 밤새 달려 태양과 시선을 마주쳐보는 건 어떨까요.

묵묵히 바다 위로 솟아오르는 따스한 불덩이가 새 하루, 그리고 새해를 열렬히 축하합니다. 그

 따스하고 관대한 빛살에 또 한해의 소망을 살며시 묶고 돌아옵니다.

 


내일은 내년의 태양이 뜬다

일출&일몰 전국 명소 10

사람들이 굳이 해(年)를 나누고 떠들썩하게 연말연시를 자축하는 건 자신에게 새 출발의 기회를 주기 위함이 아닐까.

해넘이와 해돋이를 바라보는 인간의 마음은 태양 주변을 돌고 돌아 제 위치에 서는 지구처럼 '다시 한 바퀴'를 다짐한다.

- 일출 명소 5

1. 울산 간절곶과 강양항

간절곶에 해가 떠야 한반도의 하루가 시작된다.

새해 첫날, 우리나라 내륙에서 가장 먼저 해가 떠오르는 곳이 울산 간절곶(울산시 울주군 서생면 대송리)이다.

2010년 1월 1일 간절곶의 일출 시각은 오전 7시 31분 26초.

'빠른 일출'로 역시 이름난 포항 호미곶보다 약 50초 빠르다.

호미곶이 간절곶보다도 더 동쪽에 있는 듯 보이지만,

지구 자전축이 23.5도 기울어져 있기 때문에 해가 떠오르는 시각은 간절곶이 더 빠르다.

간절곶에 사람이 너무 많이 몰리면 간절곶 바로 북쪽, 진하해수욕장과 강양항에서 해돋이를 감상해도 좋다.

문의 울산광역시청 관광과 (052)229-3850

2. 안면도 황도해변

안면도 북단, 철새로 이름난 천수만을 접한 곳에 작은 섬 황도(충남 태안군 안면읍 황도리)가 있다.

선착장과 펜션 단지 앞에 서면 천수만 건너편, 충남 홍성군의 나지막한 산 뒤에서 아침 해가 솟는다.

능선 위로 해가 얼굴을 드러내려 할 무렵, 천수만의 잔잔한 물결이 시시각각 다른 색깔로 옷을 갈아입는다.

보랏빛에서 주황빛, 빨간빛으로 변하는 바다의 '패션 쇼'가 현란하다.

해가 능선을 빠져나오는 순간 천수만은 온통 금빛이다.

그 바다에 마침 물안개라도 깔렸거나, 통통배라도 몇 척 지나가거나,

간월호에 깃들어 겨울을 나는 철새들이 춤이라도 춘다면 평생 가장 화려한 일출을 맞을지 모른다.

문의 안면읍사무소 (041)670-2612

3. 무안 도리포

전남
무안군의 도리포(전남 무안군 해제면 송석리)는 충남 당진 왜목마을, 서천 마량포구와 더불어

서해안에서 일출을 볼 수 있는 곳 중 하나로 유명하다.

도리포는 해제반도의 한 귀퉁이가 북쪽으로 길게 뻗어나간 땅의 끝자락,

함평만과 영관군과 함평군을 경계로한 칠산바다 부근에 바다의 경계에 위치하고 있다.

부둣가에서 동쪽을 바라보면 함평만이 넓게 펼쳐지고 그 뒤로는 함평군의 나지막한 산들이 남북 방향으로 줄지어 달린다.

해는 그 산줄기 위에서 솟아오른다.

황금빛 아침 햇살이 함평만을 가득 채우기 시작하면 고깃배 주변에서 단잠을 자던 갈매기들이 일시에 깨어나 합창과 군무를 펼친다.

문의 무안군청 관광문화과 (061)450-5319

4. 제주도 용눈이오름

제주 해변이 여행객들로 붐빌 때 묵묵히 오름(제주도의 기생 화산)에 올라 해를 맞아보면 어떨까.

제주도 북동쪽, 구좌읍 종달리에 위치한 용눈이오름(247.8m)은 나지막한 구릉과 바다가 어우러진, 이국적이고 찬란한 일출을 선물한다.

다랑쉬오름을 뒷전에 두고 거친 바람에 떠밀리며 쉬엄쉬엄 20분 정도 오르면 용눈이오름 정상 부근에 닿는다.

여기서 동남 방향으로 시선을 두면 성산 일출봉과 우도 앞바다가 시야에 들어온다.

아침 햇살이 들판에 비치기 시작할 때, 밭둑에 아직 남아있는 억새들이 말갈기처럼 부드럽게 반짝인다.

문의 구좌읍사무소(064)728-7711

부드러운 수평선 위로 빨간 해가 솟는다. 조선 후기 화가 겸재 정선과 단원 김홍도가 모두 사랑했던 낙산사(강원도 양양군 강현면)의 기운찬 일출은 지금도 뜨겁고, 새롭다. 사진에 나온 정자는 현재 보수공사 중인 낙산사 의상대. 낙산사 측은 “12월 초부터 보수 공사 중이지만 올해 말까지는 공사가 완료돼 새해 일출객을 맞는 데는 지장이 없을 것”이라고 했다. / 조선영상미디어 유창우 기자 canyou@chosun.com

5. 낙산사

오봉산 자락 낙산사(
강원도 양양군 강현면 전진리) 의상대(보수중이다) 자리에 서면 오직 바다와 하늘뿐이다.

바다 위로 붉고 크고 동그랗게 태양이 떠오르면 그 따스한 생명의 기운이 온몸에 스민다.

의상대에 오르기 전 낙산사를 지나면서 사람들은 저마다 새해의 소망 하나씩을 마음에 담아온다.

조선 후기의 화가 중 최고로 꼽히는 겸재 정선과 단원 김홍도 모두 낙산사 일출을 그렸다.

용처럼 넘실대는 바다 위에 솟은 발그레한 해… 옛 화가의 시선에 살포시 눈을 맞춘다.

문의 낙산사 종무소 (033)672-2448


- 일몰 명소 5

1. 안면도 꽃지해변

낙조가 황홀한 안면도 꽃지해수욕장(충남 태안군 안면읍 승언리) 앞바다엔 애절한 사랑 이야기를 품은 두 바위가 솟아 있다.

주인공 이름은 승언과 미도.

신라 흥덕왕 때 장보고의 부하였던 승언이 바다에 나가 전사했고, 남편을 기다리던 미도는 애가 타서 세상을 떴다.

바위가 자리한 곳은 미도가 시선을 고정하던 바다라고 전해진다.

사람들은 바위를 할아비바위와 할미바위라 부르고, 문화재청은 최근 이 바위들을 명승 제69호로 지정했다.

일몰 감상객들은 두 바위 사이로 지는 해를 사진에 담겠다며 ‘명당’ 자리 확보전을 벌인다.

반도처럼 삐죽 솟은 안면도는 일몰과 일출을 모두 감상할 수 있는 곳이다.

꽃지해변에서 일몰을 본 후 다음날 아침 차로 30분 거리인 황도해변에서 솟아오르는 새해를 맞이해도 좋겠다.

황도해변 주변엔 펜션들이 모여 있는데 대다수의 펜션 객실에서 해돋이가 보인다.

안면도닷컴(www.anmyondo.com)에서 일출·일몰 시간과 펜션 예약이 가능하다.

문의 태안군청 문화관광과 (041)670-2765

2. 진도 세방해변

전라도를 에워싼 다도해의 낙조는 남도 소리 가락을 품은 듯 진하다.

‘구성진 낙조’의 진수는 전남 진도군 지산면 가치리에서 가학리로 이어지는 해안도로에서 절정을 이룬다.

양덕도(발가락섬), 주지도(손가락섬), 가사도 등이 잡힐 듯 가깝게 보이는 바다가 밀도 높은 일몰을 선물한다.

특히 세방마을 인근 세방낙조전망대는 차 대기 편하고 바다가 코앞이라 일몰 명소로 인기를 끈다.

문의 진도군청 문화관광과 (061)540-3219

3. 통영 달아공원

통영 미륵도의 ‘땅끝’인 달아공원(경남 통영시 산양읍)에 서면

맑디맑은 바다와 수많은 섬이 빚어내는 한려해상국립공원 풍광이 화려하게 눈에 담긴다.

장재도, 저도, 송도, 학림도, 곤리도, 연대도, 만지도, 오곡도, 추도, 욕지도…

이름을 다 부를 수 없는 수십 개 섬이 가는 해의 끄트머리를 못내 놓지 못하는 여행객의 허전한 가슴에 동동 떠오른다.

‘해넘이 잔치’가 시작되면 바다 사이의 섬들이 빠르게 빛깔을 바꾼다.

해넘이가 끝난 후엔 달이 둥실 떠오르고 부지런히 오가는 어선들의 불빛으로 수평선은 은하수처럼 밝아온다.

12월 31일은 때마침 보름과 가까워(음력 11월 16일) 2009년 마지막 해뿐 아니라 달까지 제대로 감상할 수 있겠다.

문의 통영시청 관광과 (055)650-4610

4. 제주도 자구내포구

자구내포구(제주도 한경면 고산1리)는 제주도 서쪽 차귀도와 콧잔등을 맞대고 있다.

포구 한쪽에 돌로 쌓은 ‘도대불’은 지금의 등대처럼, 호롱불을 켜서 뱃길을 밝히던 곳이다.

포구 가까이 사는 사람 중에 나이가 들어 고기잡이를 나갈 수 없는 이들이 저녁에 나와 불을 켜고 새벽에 불을 껐단다.

나이 든 등대지기의 마음이 조금은 쓸쓸한 석양과 어쩐지 어울린다.

포구 뒤편에 솟아있는 당산봉(148m)에선 대섬, 지실이섬, 와도 등 3개의 섬으로 이뤄진 차귀도와

여러 개의 여(물 위로 솟은 바위)가 조금 더 시원하게 내려다보인다.

문의 한경면 사무소 (064)728-7911

강화도 동막해변에서 바라본 일몰. 밀물 때의 바다는 푸근하고 썰물 때 풍광은 역동적이다. / 조선영상미디어 허재성 기자 heophoto@chosun.com

5. 강화도 동막해변

수도권과 가까워 먼 길 떠날 채비 없이, 설렁설렁 찾아가기 좋다.

해변에 늘어선 솔숲이나 모래사장에 서면 부드럽게 포물선을 그리는 해가 신도, 시도, 모도, 장봉도, 영종도 옆 바다를 붉게 물들인다.

동막해변 동쪽 끝의 ‘분오리돈대’에 올라가서 석양빛을 배경화면으로 삼아 여행객들의 실루엣을 카메라에 담아도 ‘작품’이 된다.

인천시 강화군 화도면 동막리.

문의 강화군청 관광팀 (032)930-4336

 

 

 

[방방곡곡 체험여행] 금오산의 붉은 태양 오동도의 초록 숲

남도 무박열차 여행

오후 11시 20분 용산역을 출발한 무궁화호는 일부러 그러는 듯 느릿느릿 달린다.

새벽 1시가 넘도록 수다를 떨던 이들이 동시에 숨을 죽인다. 두껍고 넓은 창에 코를 대고 다른 사람들이 하는 대로 창 밖을 바라봤다.

하늘에서 땅으로 조심조심 내려앉는 눈송이가 한밤의 무궁화호를 뒤따라온다.

기차 밖 수은주는 영하 5도보다도 낮다는데, 기차 안은 후끈한 스팀 난방 덕에 땀이 송송 맺힐 정도로 뜨끈하다.

어린 시절 기차에서 삶은 계란을 까먹던 시절의 온기….

부드럽고 포근한 기차의 미덕이 기억 속에서 되살아난다.

KBS 토크쇼 '미녀들의 수다'에 출연 중인 말레이시아인 포케인(23·고려대 3학년)씨와

친구 엘살바도르인 카를로스 올리보(25·고려대 2학년)씨와 함께 약 5시간 기차로 달려 다시 버스로 갈아타고 여수 향일암 입구에 닿았다.

여수역에 내린 시각은 오전 4시 45분, 버스를 타고 향일암에 도착한 시간은 오전 6시쯤으로 일출까지는 한 시간 넘게 남았다.

새벽같이 문을 여는 향일암 입구 '처갓집 식당(061-644-7929)'에 들어가

고소한 갓김치와 생선구이, 우거짓국이 나오는 백반(6000원)으로 배를 채우고 향일암을 향해 발을 뗀다.

조선영상미디어 이구희 기자 poto92@chosun.com 어느 큰나라 임금처럼, 하늘 한가운데를 향해 찬란하고 당당하게 솟아오르는 전남 여수 향일암의 일출. 이 사진은 향일암에 화재가 나기 전날인 19일 찍은 것으로 지금은 사그라진 원통보전에서 본 마지막 일출의 모습이다. 화마(火魔)가 지나간 이 작은 암자는 지금 매일 아침 떠오르는 태양을 머금 으며 새해를 준비 중이다.

해 뜨기 한 시간 전, 시커먼 새벽의 바다는 폭포 소리를 내며 운다.

까만 융단에 꾹꾹 박아 넣은 듯한 별들이 고요히 세상을 내려다본다.

파도의 떨림이 얼음 같은 공기를 가로질러 나뭇가지 사이에 숨죽인 새들을 깨운다.

새 하루의 첫해를 보겠다고 눈빛을 벼린 사람들의 발소리는 타박타박 어둠을 천천히 밟는다.

초연하고 평화로운 새벽의 푸른 빛이 공기에 가득하다.

향일암 부근, 일출을 볼 수 있는 장소는 두 군데다.

암자로 올라가서 지금은 불타 없어진 '원통보전(圓通寶殿)' 앞 벼랑 끄트머리에서 해를 마주하는 게 가장 일반적인 방법이다.

암자까지 가지 말고 중간에 갈림길로 빠져 금오산 정상에 올라 해를 기다려도 된다.

오르막 계단을 20여분 올라가는 사이 숨이 제법 가빠지고 땀이 송송 맺히지만, 산 아래서 보는 일출보단 아무래도 시원한 맛이 더하다.

19일 새벽, 금오산 정상에 올라 바다를 향하고 섰다. 먼 여행에서 돌아오는 친구를 기다리는 마음으로 수평선을 간절하게 쳐다본다.

일출 시각은 30분 넘게 남았지만 수평선 바로 아래 자리한 태양 덕분에 바다는 벌써 울긋불긋 웅성거린다.

오전 7시 34분, 바다와 구름 사이로 빨간 해가 빠끔하게 모습을 드러낸다.

빛도 아니고 불도 아닌, 빨갛고 따스한 에너지의 덩어리가 왕좌에 처음 오르는 어느 큰 나라 임금처럼 천천히 하늘 한가운데를 향한다.

조용히 일출을 보던 포케인씨가 소리친다.

"말레이시아에 있는 고향은 트룽가누라는 바닷가 마을이에요.

그곳에서도 이렇게 해가 떠요. 해가 뜨는 모습이 너무 비슷해 신기한데요."

진한 주황빛 하늘 아래로 새파란 하늘의 한 조각이 길게 퍼지고 그 아래 바다 속에 시커먼 해저 언덕이 모습을 드러낸다.

햇살은 바다 위를 걷고 작은 배 하나가 그 사이를 가로지른다.

새들이 '쪼쪼쪼' 하루의 첫 노래를 뱉으며 신나게 날아오른다.

이렇게 또, 손상되지 않은 하루가 선물처럼 시작된다.

남도 일출열차에 오른 말레이시아인 포케인(오른 쪽)씨와 친구 카를로스 올리바씨. / 상록수가 많은 여수 오동도의 초록빛 겨울 풍경 속. 부지런한 동박새의 즐거운 노래가 어우러진다.

>> 향일암 일출을 본 다음 어디로 갈까

해와 눈을 마주치며 시작된 남도의 겨울은 차로 30분 거리인 '동백의 섬' 오동도에서 이어가는 게 자연스럽다.

여수와 오동도를 잇는 1차선 다리에 일반 차량은 들어갈 수 없고 '동백버스'라고 부르는 작은 셔틀을 이용해야 한다.

500원을 내고 버스에 오른 지 10여분 후에 닿은 오동도는 온통 초록 빛깔이다.

곧게 뻗은 대나무, 튼튼한 소나무, 느긋한 후박나무….

섬을 뒤덮은 나무들은 대부분 사철 푸른 아열대성 상록수다.

특히 섬에 가장 많은 동백나무는 한겨울에 빨간 꽃을 피우기 때문에 사진으로만 본다면 이 작은 섬의 겨울이 여름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겨울의 여왕' 동백나무 사이로 요란하게 울음을 뱉는 동박새들은 '추위가 뭔가요'라고 말하는 듯 현란하게 날아다닌다.

출발 시각이 정해져 있지 않은 오동도 유람선(061-661-0077)을 타면 맑고 깊은 남해의 매력을 간편하게 즐길 수 있다.

10명 정도 사람이 모이면 출발하는데 주말에는 보통 오전 8시 30분부터 배가 다닌다.

오동도 입구에서 돌산대교를 돌아 나오는 약 1시간 코스는 8000원,

오동도에서 향일암까지 다녀오는 약 2시간 코스는 1만5000원이다.

여수에서 차로 약 1시간 거리인 보성의 겨울은 또 다른 온기로 따스하게 밝혀져 있다.

보성군청에서 녹차밭 전망대인 '다향각' 부근에 설치한 '녹차밭 크리스마스트리'는

둥글둥글 길게 펼쳐진 녹차밭에 자잘한 조명을 설치해 연말 분위기를 제대로 낸다.

향일암에서 첫 모습을 보였던 태양은 녹차밭 너머 잔잔한 저수지 영천지와

그 곁에 펼쳐진 나지막한 산 뒤로 아쉽다는 듯 붉은 흔적을 남기며 하루를 접는다.

다향각 옆 찻집 '초록잎이 펼치는 세상'(061-852-7988)에 앉으면 넓은 창밖으로 차 밭 트리의 화려한 곡선이 내다보인다.

추운 밤에는 특히, 바로 앞 차 밭에서 재배한 녹차 한잔(3000원)의 온기가 고맙다.

여수 시청 관광과 (061)690-8070

코레일 전남본부 여행센터 (061)749-2289

 
 
일출 배달하는 '1641호 열차' 동해 정동진서 해맞이
 
매일 밤 10시 40분 서울 청량리역에서 무궁화호 열차를 타면 제천, 영월, 태백을 경유해서
이튿날 새벽 4시 40분 무렵 정동진역(강원도 강릉시 강동면 정동진1리)에 닿는다.
강릉역까지 가는 극소수의 사람을 빼면 이 '1641호 열차' 승객의 대부분은 정동진역에서 내린다.
새 아침의 해를 정면으로 바라볼 수 있는 일출의 감동을 맛보기 위해서다.

친절하게도 역 안에 '오늘의 일출 시각' 표지판이 세워져 있어 얼마를 더 기다려야만 아침 해를 보게 되는지 알 수 있다.
역무원들은 매일매일 이 시각표를 갈아 끼운다. 그 정성에 마음이 먼저 아침을 맞는다.

12월 말 일출 시각은 오전 7시 30분 전후다. 기차를 타고 정동진역에 도착하면 약 세 시간 정도 시간이 남는다.
기차여행객들은 이 여유시간이 부담스럽지 않은 듯 저마다의 방식으로 해를 기다린다.
'ㄷ'자 모양의 나무 의자가 놓인 대합실의 최대 수용 인원은 많아야 40명 정도.
겨울철 주말이면 서 있기 어려울 정도로 비좁게 느껴진다.
그래서인지 '대합실을 크게 만들어달라', '크게 넓힌 대합실 옥상에 전망대를 설치해달라'는 민원이 많단다.
조선영상미디어 이경호 기자 ho@chosun.com
'해변 산책파'는 아예 집을 나설 때부터 몸에 두를 담요까지 준비해와 매서운 바닷바람 속을 걷는다.
새벽부터 문을 여는 정동진역 앞의 몇몇 식당과 편의점에서 우동, 라면, 떡볶이, 순대, 꼬치 같은 군것질거리를 사먹는 이들도 많다.
야간열차에서 '우리가 자러 온 건 아니잖니'라며 수다를 멈추지 않는 승객들 탓에
잠을 설친 이들은 역 앞 민박집으로 들어가 잠시나마 눈을 붙이기도 한다.

오징어잡이 배들의 집어등이 하나 둘 꺼지고 이 배들이 항구로 들어올 무렵 아침 해가 솟아오른다.
일출을 보겠다는 의지 하나로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가족과 연인들은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도 박수까지 치면서 즐거워한다.
신선한 기운으로 가득 찬 아침 해는 모든 이들의 소망을 빠짐없이 받아주려는 듯 묵직하고 느리되 힘차게 하늘로 치솟아 오른다.
새벽을 기다린 이들의 눈동자 속에, 이렇게 또 새 하루가 시작된다.

●문의: 정동진역 (033)644-5062
www.jeongdongj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