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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궁의 가을 정원… "왕들의 운치, 나도 느껴볼래요"

by 맥가이버 Macgyver 2011. 9. 26.

 

[서울] 고궁의 가을 정원… "왕들의 운치, 나도 느껴볼래요"

  • 입력 : 2011.09.25 23:08

[관람객 붐비는 오래된 정원들]

 

덕수궁 정관헌 - 고종이 커피 즐겨마신 자리… 지대 높아 궁안 내려다보여
창덕궁 후원 - 부용지·애련지 등 연못 많아… 산세따라 설계된 비정형의 美

 

지난 21일 오후 서울 덕수궁에 넥타이를 맨 직장인 정도우(40·금융회사)씨가 거닐고 있었다. 정씨는 "기분 전환하러 나왔다"며 "도심에서 작은 '일탈'을 하기에는 이런 전통 정원만 한 곳이 없다"고 말했다. 빌딩 숲과 담장 하나를 사이에 두고 푸른 숲이 우거진 전혀 다른 세계가 있기 때문이다.

가을 하늘 밑 전각 사이로 바람에 나뭇잎 흔들리는 소리, 사박사박 모래 흙길 밟는 소리가 들렸다. 1900년 대한제국 시절 고종이 다과를 즐기고 음악을 듣던 '정관헌(靜觀軒)' 앞에선 대학생 이성준(24)씨가 종이컵에 든 블랙커피를 홀짝였다. 이씨는 "고종이 여기서 우리나라 최초 커피를 즐겨 마셨다고 하는데, 덕수궁 안 커피숍에서 '아메리카노'가 아닌 '고종 커피'를 팔면 좋겠다"고 말했다.

 
지형을 파헤치지 않고 산골짜기에 폭 안긴 듯한 건축물,
2만6000여 그루에 달하는 수목이 빼어난 조경미를 자랑하는 한국 최대의 정원 창덕궁 후원에 가을이 찾아오고 있다.
/이진한 기자 magnum91@chosun.com

가을의 초입, 서울 곳곳 궁궐 안 '오래된 정원'이 북적인다. 최이태 문화재청 궁능문화재과장은 "단풍이 들면 창덕궁 후원, 경복궁 향원정·경회루, 덕수궁 정관헌은 늘 붐빈다"고 전했다.

정관헌은 솔밭이 어우러진 덕수궁을 '고요하게(靜) 내다본다(觀)'는 뜻이다. 청동색 단청, 금빛 장식 문양이 돋보이는 발코니는 햇빛을 꾹꾹 눌러담은 듯 바래 있었다. 촘촘하게 장식된 바닥, 육중한 로마네스크풍 돌기둥이 줄지어 선 모습은 동서양이 어우러지는 독특한 분위기를 풍긴다. 러시아 건축가 사바찐(Sabatin)이 설계했고, 덕수궁에서 가장 높은 자리에 있어 덕홍전, 함녕전 등을 내려다 볼수 있다.옆에는 300년이 넘은 17m짜리 회화나무가 우뚝 서 있다.

세계문화유산이자 한국 최대 궁중 정원인 창덕궁 '후원(後苑)'에는 여성 관람객 30여명이 눈에 띄었다. 높은 구두에 화사한 치마를 입은 최모(27·군무원)씨는 "서울에 온 지 7년이 넘었는데 그동안 제대로 둘러보지 못해 혼자 시간을 냈다"고 말했다.

네모 반듯한 '부용지(芙蓉池)'에는 뽀얀 옥빛 연못물이 출렁였다. 창덕궁 관리소는 최근 낙엽과 꽃가루로 탁해진 부용지를 투명하게 만들기 위해 정화제를 풀며 애쓰고 있다.

후원은 부용지, 애련지, 반도지, 옥류천 일원이 각각 독립적으로 꾸며져 있어 부지런히 걸으며 숨은 의미를 찾는 재미가 있다. 산세를 해치지 않고 건물이 골짜기마다 포근히 안겨있는 듯한 동양 조경의 정수(精髓)로 전각이 직선으로 배치된 경복궁과는 달리 비정형의 미(美)가 있다.

부용정과 규장각 사이 대나무, 덩굴 식물로 두른 생울타리 '취병(翠屛)'은 자연과의 조화를 그대로 드러낸다. 화려한 장미넝쿨 꽃담인 서양의 '트렐리스(trellis)'와 비교된다. 문화해설사 천대중(39)씨는 "나무 한 그루, 건물 기둥 하나에 새긴 역사·문화적 의미를 알면 감동이 깊어진다"고 말했다.

◆ 궁궐 안 문화행사

10월 11~12일에는 저녁 7시부터 2시간 동안 '창덕궁 달빛기행'이 열린다. 다음 달을 놓치면 내년 4월까지 기다려야 한다.

경복궁 경회루(慶會樓) 특별관람도 10월 말이면 끝난다. 덕수궁 정관헌에서 매주 목요일 7시마다 열리던 국악공연행사 '덕수궁 풍류'는 다음 달 13일이 마지막. 금요일 저녁마다 열리는 '정관헌에서 명사와 함께'는 오는 30일 경기민요 명창 이춘희, 다음 달 7일에는 '시골의사' 박경철 원장을 끝으로 마무리 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