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10월 22일(일) 가을 단비를 맞으며 절두산 성지에서 하늘공원까지 우중산책을 다녀오다.
지난 주 10월 14일~15일 양일간에 걸쳐 '한강100km울트라도보일주'를 하면서
옵션으로 성산대교에서 하늘공원에 올라 억새축제도 감상하기로 하였으나
체력소진과 시간적 여유가 없어 그날 오르지 못한 '하늘공원'을 오르기 위해
오늘 다시 모여 합정역에서 절두산 성지를 거쳐 한강변으로 나가
'한강100km울트라도보일주'의 마지막 구간을 새로운 기분으로 걷다가 성산대교를 거쳐
평화의공원을 지나 하늘공원으로 오르기 위해 가던 중 흘러나오는 안내방송에
오늘 우천으로 인해 억새축제의 폐막공연이 취소되고
관람객 입장도 17시까지로 제한한다고...
불과 5분여 차이로 하늘공원으로 오르지 못하고 입구에서 실랑이?를 잠시 벌리다가
공원매점에 간단한 뒤풀이를 하고 귀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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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합정역 7번 출구에서 절두산 성지로 이동하는 님들...
▼ 천주교 외국인 묘지공원을 들어서며...
▼ 가을단비를 맞으며....
▼ 알맞게? 내린 가을단비에 나무들이 반가는 듯...
▼ 잔디도 촉촉히...
▼ 단풍잎도 비에 젖어...
▼ 당산철교 아래로...
▼ 님들이 읽고 있는 것은...
절두산 성지[切頭山聖地]
서울특별시 마포구 합정동 일대의 한강변에 자리잡고 있다.
이 지역은 한강변 최고의 절경으로 유명하며
봉우리의 모양에 따라 가을두(加乙頭)·용두봉(龍頭峰)·잠두봉(蠶頭峰)이라고도 불렸다.
절두산이라고 불리게 된 유래는
1866년 병인양요(丙寅洋擾) 당시 프랑스 함대가 이곳 양화진(楊花津)까지 진격해온 적이 있었는데,
이에 흥선대원군은 "양이(洋夷)로 더럽혀진 한강의 물을 서학(西學) 무리들의 피로 씻어야 한다"고 하면서
전국 각지에 척화비(斥和碑)를 세웠으며 이와 함께 수많은 교인들을 붙잡아
양화진 근처의 이 산봉우리에서 목을 잘랐다고 하는 데서 비롯되었다.
절두산에서 가장 먼저 순교한 사람은 이의송(李義松)으로 1866년 10월 22일 부인·아들과 함께 처형당했다.
그후 신원을 알 수 없는 사람까지 헤아려 천주교측에서는 약 1만 명가량의 순교자가 이곳에서 처형당했다고 한다.
특히 선참후계(先斬後啓)라 하여 심문과정 없이 바로 처형했기 때문에 많은 인명 피해가 있었다고 하며
이때문에 처형당한 사람들에 대한 자세한 기록이 전해지지 않고 있다.
잘린 목은 그대로 한강에 던져졌고 머리가 산을 이루고 강물이 핏빛으로 변했다고 한다.
순교 100주년이 되던 해인 1966년 순교자기념관이 건립되었으며, 기념관은 성당·박물관·경당(經堂)으로 이루어져 있다.
한편 양화진에는 개신교가 전래되면서 한국선교에 헌신했던 많은 외국인 선교사들이 묻혀 있는 외인묘지가 있다.
- 다음 백과사전에서 -
▼ 님들께 은혜와 축복이 있기를...
형구돌
병인박해 때 교수형을 집행하기 위하여 고안된 것으로 충청북도 연풍 공소에서 발굴되어 1974년에 이전해 왔다.
이 형구돌은 1886년 한불 조약으로 종교의 자유가 허락되면서 땅 속에 묻혔던 것을 발굴 해 낸 것으로,
앞 구멍에 머리를 대고 목에 밧줄을 건 뒤에 뒷구멍에서 잡아당겨 질식시키는 교수형 집행 기구였다.
그밖에 순교자들을 고문했던 형구들은 성당 앞 형구전시장에 전시되어 있다.
둘레 3m, 두께 30cm, 앞 구멍 지름 30cm, 뒷구멍지름 6cm.
▼ 김대건 신부 동상
김대건 신부 동상
성 김대건 신부의 성화를 의뢰하면서 고증 작업이 시작되었고,
과학적으로 실측 조사한 수치와 균형에 의하여 김대건 신부의 성화가 그려지게 되었다.
동상은 김대건 신부 탄생 150주년 맞아 기념 제작된 것으로,
'애국선열조상 건립위원회‘가 건립한 것으로 홍익대 전뢰진 교수에 의해 제작되었으며,
1972년 김수환 추기경의 축성과 함께 제막되었다.
김대건 신부의 동상은 뒤에 가톨릭 대학교로 이전되었으며, 그 자리에 지금의 동상이 자리하게 되었다.
좌대 높이 5.8m, 본상 높이 4.35m
▼ 동글이님(右)과 교우님
▼ 기도처
▼ 예수의 십자가 고난
오성바위와 문지방 돌
이 바위는 처음에는 복자바위라 불렸다.
병인박해(1866)때 순교한 다블뤼 안주교, 오매트리 오신부, 위앵 민신부, 황석두 루가, 장주기 요셉의 사연이 깃든 바위로
다섯 분의 성인을 기리는 뜻으로 오성바위라고 이름을 붙여주었다.
병인박해 때 체포되어 서울로 압송 될 때와 충남 보령 갈매못 형장으로 끌려갈 때 쉬었다 간 바위로
이 다섯 성인들이 여기서 쉬는 동안 포졸들이 포승을 풀어 주어서
안주교는 교우들을 만나 격려하고 함께 기도한 후 막걸리로 목을 축였다고 한다.
그 앞의 돌은 김대건 신부와 함께 입국한 다블뤼 안주교가 21년간 숨어 살던 방을 드나들 때마다 밟고 다니던 문지방돌이다.
▼ 척화비 모형
척화비
병인양요(1866년)와 신미양요(1871년) 이후 대원군은 1871년 4월
서울의 종로 네거리를 비롯하여 전국의 중요 도시에 척화비를 세우게 되었다.
척화비에는 “洋夷侵犯 非戰則和 主和賣國(서양 오랑캐가 침범함에 싸우지 않음은 곧 화의하는 것이요,
화의를 주장함은 나라를 파는 것이다.)”라고 쓰여있다.
현재 절두산에 있는 것은 모조품이다.
▼ 한강변으로 나서며...
▼ 감회에 젖어...
▼ 이제 예사롭지 않은 이정표를 바라보는 노랑국화님
▼ 당산철교
▼ 양화대교
▼ 갈매기의 비상
▼ 양화대교 방향으로 걸어가는 님들...
▼ 비가 그친 듯...
▼ 양화대교 밑을 지나는 유람선
▼ 멀리 성산대교가 보이고...
▼ 양화대교와 선유도
▼ 성산대교
▼ 매점을 가리키는 노랑국화님
▼ 성산대교에서 동글이님과 함게 하신 같은 교회 교우님
▼ 이곳이 성산대교 기점
▼ 감회에 젖고...
▼ 이제 하늘공원을 향해...
▼ 홍제천을 따라...
▼ 월드컵경기장 방향으로...
▼ 추색이 완연...
▼ 봄비님
▼ 동글이님
▼ 상암월드컵경기장을 배경으로...
▼ 안내방송을 듣고 급한 걸음으로...
▼ 하늘공원 입구로 가니...
▼ 입장불가라고...
▼ 살랑이를 벌리면서 쳐다본 하늘계단
▼ 끝내 하늘공원을 오르지 못하고 '다시 한 번 더'를 기약하며...
▼ 공원매점에서 간단하게 뒤풀이를 하고...
▼ 평화의호수로 이동하다가...
☞ 이것으로 가을 단비 속에 '절두산 성지에서 하늘공원까지' 우중산책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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