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면도
코스)안면대교→삼봉·안면해수욕장→승언저수지 수련 감상→안면도휴양림 소나무 숲길산책→꽃지해변 일몰감상 |
여러 번 갔어도 또 가고 싶은 여행지가 있다. 안면도가 그런 곳이다. 삶에 여러 가지 선택 가능성이 많던 20대 시절 모 잡지사 기자로 근무할 때 처음으로 안면도를 찾았다. 주제는 ‘독자초청여행’. 사진기자와 함께 우리는 비포장 도로를 달리며 그림이 될 만한 이곳저곳에서 사진을 찍었다. 그때는 염전과 목장이 남아 있었다.
1980년대 중반에도 안면도를 종단하는 그 길은 여전히 비포장도로였다. 쏘나타라는 새 차를 뽑은 손윗 동서는 차 밑바닥 긁히는 소리에 깜짝깜짝 놀라며 ‘이런 데로 여름휴가 여행을 오냐’고 얼굴을 붉혔다. 그 기억이 지금도 잊혀지질 않는다. 사실 안면도를 가족 피서지로 정한 데에는 나만의 의도가 숨어 있었다. 나 역시 그해 초여름, 그 형님을 따라 강원도 홍천강에 갔다가 출고된 지 얼마 되지 않은 프라이드 밑바닥을 긁어먹었던 것이다. 이제 세월은 흐르고 흘러 대학교수인 동서는 기름 팍팍 먹는 그랜저를 몰고 여행작가인 나는 4륜구동 투싼을 끌고 다닌다.
1997년 전업 여행작가의 길로 들어선 이후 필름을 정리하다 보니 매년 안면도를 찾아가고 있다. 주변의 지인들이 당일치기 여행지를 추천해 달라고 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곳이 안면도다. 그 이유는 우선 섬이 주는 매력이다. ‘그 섬에 가고 싶다’는 표현처럼 섬은 늘 우리들의 방랑 기질에 미끼를 드리운다. 그리고 안면도의 서쪽 해안은 해수욕장 천국이다. 저 아래 바람아래해수욕장에서부터 윗녘의 백사장해수욕장에 이르기까지 해수욕장이라는 이름을 단 바닷가가 12개 정도는 된다. 하늘을 향해 곧게 뻗은 토종소나무, 소문나는 것을 꺼리기라도 하는 듯 고요히 모습을 드러내는 수련을 만날 수 있다는 것도 안면도 여행의 크나큰 매력이다. 맛집 또한 즐비해서 활어회, 게장백반, 우럭매운탕, 영양굴밥, 대하 등 다양한 먹거리가 입을 즐겁게 해준다.
여기에다 빼놓을 수 없는 이유를 추가한다면 접근성이 좋다는 점이다. 수도권 거주자들의 경우 서해안고속도로 홍성나들목으로 빠져나가 천수만방조제 드라이브를 즐기다 보면 어느새 안면도 길목에 다다르게 된다. 안면도를 종단하는 길은 과거 603번 지방도로였으나 현재는 77번 국도로 격상했고 백사장항 입구에서 꽃지해변에 이르는 해안가에는 해안도로도 새로 생겨 차만 세우면 곧바로 모래밭에 발을 디딜 수 있다. 일몰까지 감상해도 그날 밤 안으로 귀가하는데 어려움이 없다.
안면도 남단의 영목항에서는 바로 앞에 떠있는 원산도로 들어갈 수도 있고, 대천항(보령항, 041-934-8772)까지 차를 싣고 갈 수도 있으니 이 또한 안면도를 매력덩어리로 만들어주는 것 아닌가.
충남 태안군 남면 신온리와 안면읍 창기리 사이에 놓인 안면대교를 건널 때 여행자들은 본래 안면도가 섬이 아니었음을 상기해야만 한다. 오늘날의 안면도는 섬이 되기 이전에는 안면반도였다. 때는 조선의 16대 임금인 인조 16년(1638).
충남 내륙에서 거둬들인 세곡을 한양으로 운반하려면 물결 잔잔한 천수만을 놔두고 남북으로 길이 80리인 안면반도 남쪽 바다를 돌아 북쪽으로 올라가야만 했다. 이건 낭비다 싶었던지 당시 충청감사였던 김육이란 사람이 대대적 공사를 벌인다. 지금의 안면대교 아래 잘록한 땅을 잘라버린 것.
그로 인해 천수만 물길과 서해 바닷물이 서로 넘나들게 되었고 안면반도는 안면도라는 섬으로 운명이 바뀐 것이다. 그로부터 330년이라는 세월이 흘러 1970년에 다리를 놓으면서 안면도 사람들의 생활도 조금은 편리해졌다.
안면도로 건너가 백사장항 입구 갈림길에서 오른쪽으로 꺾으면 해안도로가 시작된다. 백사장항은 꽃게잡이나 대하잡이 고깃배들이 모여들고 횟집들도 대거 밀집한 곳이다. 밤이면 횟집들의 네온사인이 휘황찬란하게 불을 밝혀 도시의 여행객들을 유혹한다.
삼봉해수욕장에서부터 기지포를 거쳐 안면, 두여해수욕장까지는 하나로 이어진 해변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길이가 자그마치 5㎞ 내외다. 하나씩 모두 들어가 봐도 좋고 아니면 그날의 기분에 따라 한 곳에 집중해서 머물러도 좋다. 성미 급한 여행객들은 벌써 바닷물에 뛰어 들어가 열기를 식힌다.
이들 해변에는 모래가 유실되지 않게끔 나무울타리를 둘렀다. 환경론자들은 해안도로 건설, 시멘트 옹벽 설치 등으로 모래와 바람, 지하수 등이 제대로 순환하지 못해 그 유명한 안면도 모래가 사라지는 것이라고 진단한다.
파도와 모래가 농을 주고받는 해변 감상에 이어 수련을 만나려면 승언1저수지를 찾아간다. 안면고등학교 입구를 지나면 곧장 저수지가 나타난다.
안면도휴양림 북쪽에는 승언1, 2, 3 등 세 개의 저수지가 있는데 유독 1저수지에만 수련이 많이 핀다. 하늘호수펜션 앞을 지나 두산염전으로 가는 포장도로와 만날 때까지, 그리 길지 않은 길을 따라가면서 찬찬히 수련을 감상하고 있으면 호흡도, 맥박도 느려진다.
안면도휴양림에서 날아온 솔향이 수련에게 도란도란 말을 건네는 소리도 들릴 듯하다. 정적을 깨는 것이 있다면 쇠물닭의 울음소리, 첨벙 물로 뛰어드는 개구리의 점프, 그리고 몇몇 낚시꾼들의 대화….
연꽃이 군락으로 피는 저수지는 여기저기 많지만 수련이 군락으로 피는 곳은 아마도 이곳 뿐이리라 짐작한다.
국내에서 유일하게 소나무로만 뒤덮인 안면도자연휴양림(041-674-5019)에서는 솔향에 취하고 산림욕으로 온몸을 흠뻑 적셔보자. 산림전시관에도 약간의 구경거리가 있다. 전시관 오른쪽으로 난 길을 걸어가서 작은 고개를 넘으면 숲속의 집 구역이다. 모두 18동이 있는데 이곳 통나무집에서 하룻밤을 묵으려면 인터넷 예약이 필수다.
산림욕을 즐기고 휴양림을 떠나기 전 채광석시인의 시비를 꼭 눈여겨보자. 안면읍 창기리 태생의 채광석 시인은 박정희 독재정권에 맞서 학생운동을 했고 옥고를 치르기도 한 인물이며 1987년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시비에는 ‘기다림’이라는 시를 새겨 넣었다.
‘기름진 고독의 밭에 불씨를 묻으리라/ 이름모를 산새들 떼지어 날고/ 계곡의 물소리 감미롭게 적셔오는/ 여기 이 외진 산골에서/ 맺힌 사연들을 새기고 구겨진 뜻들을 다리면서/ 기다림을 익히리라….’
여행메모(지역번호 041) 가는길
서해안고속도로 홍성나들목→천수만방조제→안면대교→안면읍. 서울 남부터미널(서초동)에서 안면도행 직행버스 하루 10회 운행.
태안시외버스터미널(674-2009)에서 승언리행 직행버스 하루 40회 운행.
맛집/안면읍 초입의 일송 꽃게장백반(674-0777)에 가면 짜지 않은 게장백반은 물론 꽃게탕을 먹을 수 있다.
| 글·사진/유연태<여행작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