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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과 깨달음☞/♡ 좋은 시 모음

길 떠남에 대하여

by 맥가이버 Macgyver 2008. 2. 2.
 

첨부이미지길 떠남에 대하여 / 신형식 첨부이미지

 

  

 

떠나는 것에 이미 익숙해진 우리

이제 그런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언제든지 떠나자

아무 데로나 떠나자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집을 나서자

 

내곁에서 그대가 떠나갔듯이

내 곁에서 이제 우리도 떠나자

느닷없이 시작된 낯선 풍경 속으로

걸어가고 있는 그대 모습은

그 자체가 감상적이다

천천히 걸어도 아무도 비키라고 말하지 않는 길

다리가 아프면 쉬면 그만이니

이제 나도 그대 곁으로 걸어가 본다

 

홀로 떠나자

그대를 그대가 만나러 걸어갔듯이

내가 나 자신을 만나러 가는 길

길가에 피어나는 꽃

그도 홀로다

망망대해를 바라보는 밤바다의 등대

그도 홀로다

떼를 지어 우는 숲 속의 벌레들

가만히 보면 그도 홀로 울고 있다

 

이제 이야기 하자

홀로 있음에 그들에게 솔직하게 이야기해 보자

들어 줄 수 있는 것들이 즐비한 이 세상

어찌 홀로라고만 말할 수 있겠는가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걸어보자

내가 가고 있음에 길이 되고 있는

이 창조적인 방랑

눈이 소복하게 쌓인 새벽에

첫 발자국을 남기며 걸어가듯

이제 오래오래 남을 기억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이 아침의 상쾌한 공기를 맡으며

떠남으로써 비로소 발견하는 나를 만나자

 

이젠 말을 걸기다

나 아닌 타인에게 말을 걸기다

그놈의 네비게이션처럼

잘난 체 하는 세상 밖으로 걸어 나가면

그제야 만날 수 있는 낯선 사람들

그래서 정감 있는 사람들

길을 묻고 있음에도

출렁이는 바다가 보이고

꼬불꼬불 살아 온 과거가 보이는

등이 꾸부정한 촌부나

섬마을 새악시

어찌 말을 걸지 않을 수 있는가

어찌 타인일 수만 있는가

 

무작정 나선 길

묻고 또 묻고 가노라면

길의 말들이 들린다

길들의 말이 비로소 들린다

내가 내 목소릴 내고

그대가 그대의 음성으로 노래하듯

모든 길들에게는 그 길만의 언어가 있고

그 길만의 철학이 있다

 

길옆에 작은 꽃 한 송이 귀 쫑긋 세워

지금 길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지 않는가

길들의 무용담에 귀 기울이고 있지 않는가

작은 수첩 하나 정도는 넣어가도 좋지 않겠는가

세상이 주절주절 전해주는 이야기를

삐뚤삐뚤 적고 있노라면

내 속내를 끼적끼적 적고 있노라면

비로소 나의 길이 보이고

그 마음의 길을 따라 걸어가는

나의 세상이 보인다

아름답게 보인다

그래서 내가 내가 되는 그 길이 비로소 보인다

그렇게 멀리서만 바라보던 나의 길이 보인다

 

해 뜨기 전부터

해 질녘까지 걷다 보면

느낄 수 있다

한창 때 보다 조금 부족할 때가

한창 때 보다 기울어져갈 때가 아름답다는 것을

어차피 기웃대는 세상은 한 쪽으로 기울 수밖에 없다

인생에 있어서도 가장 중요한 순간이

어쩌면 황혼일 지도 모른다

 

모든 것 포기하고 싶은 그 순간에도

우리 길 위에 서 있음을 잊지 말자

길은 꼭 떠나기 위해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길은 꼭 멀어지기 위해서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그대에게로 가는 길

그대가 내게로 오는 길

그리고 내가 내게로 돌아오는 길

길이란 모두 한가지다

 

길 위에 서 있어도 그대로 길이 되지 않는가

우리 삶에 있어 언제나 배경이 되는 길 위에 서서

나도 그대도 우리 인생의 배경이 되어 보면

또한 좋지 않겠는가

우리가 꾸고 싶은 꿈의 배경이 되어 보면

이 또한 좋지 않겠는가

굳이 먼 곳으로 떠나지 않아도 좋지 않겠는가

지금도 어느 곳에선가 동이 트고 있을 것이다

우리 어디론가 떠나 봄이 좋지 않은가

 

늘 언제나 항상 변함없이

  

위 사진은 2008년 1월 27일(일)

경기도 이천 정개산/원적산 연계산행(동원대학에서 영원사까지)을 다녀오면서

'원적산 정상 천덕봉(634.5m)을 오르는 도중에 찍은 것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