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꽃은 누가 뭐래도 아름답다.
붉고 매끄러운 장미의 살결, 은은하게 적셔오는 달디단 향기,
겉 꽃잎과 속 꽃잎이 서로 겹치면서 만들어 내는 매혹적인 자태,
여왕의 직위를 붙여도 정말 손색이 없는 꽃이다.
가장 많이 사랑 받는 꽃이면서도 제 스스로 지키는 기품이 있다.
그러나 모든 꽃이 장미일 필요는 없다.
모든 꽃이 장미처럼 되려고 애를 쓰거나 장미처럼 생기지 않았다고 실망해서도 안 된다.
나는 내 빛깔과 향기와 내 모습에 어울리는 아름다움을 가꾸는 일이 더 중요하다.
어차피 나는 장미로 태어나지 않고 코스모스로 태어난 것이다.
그러면 가녀린 내 꽃대에 어울리는 소박한 아름다움을 장점으로 만드는 일이 중요하다.
욕심부리지 않는 순한 내 빛깔을 개성으로 삼는 일이 먼저이어야 한다.
남들에게서는 발견할 수 없는 내 모습, 내 연한 심성을 기다리며 찾는 사람이 반드시 있기 때문이다.
어찌하여 장미는 해마다 수 없이 많은 꽃을 피우는데
나는 몇 해가 지나야 겨우 한 번 꽃을 피울까말까 하는 난초로 태어났을까 하고 자책할 필요가 없다.
나는 장미처럼 화사한 꽃을 지니지 못하지만 장미처럼 쉽게 지고 마는 꽃이 아니지 않는가.
나는 장미처럼 나를 지킬 가시 같은 것도 지니지 못했지만
연약하게 휘어지는 잎과 그 잎의 담백한 빛깔로 나를 지키지 않는가.
지금 장미를 사랑하는 사람의 숫자가 물론 더 많지만 더 오랜 세월 동안 사랑 받아온 꽃이 아닌가.
화려함은 없어도 변치 않는 마음이 있지 않은가.
그래서 사랑 받고 있지 않는가.
나는 도시의 사무실 세련된 탁자 위에 찬탄의 소리를 들으며 앉아 있는 장미가 아니라
산골마을 어느 초라한 집 뜨락에서 봉숭아가 되어 비바람을 맞으며 피어 있을까 하고 자학할 필요가 없다.
나는 장미처럼 붉고 짙으면서도 반짝반짝 빛나는 아름다운 빛깔을 갖고 태어나지 못하고
별로 내세울 것도 없는 붉은빛이나 연보랏빛의 촌스러운 얼굴빛을 갖고 태어났을까 하고 원망할 필요가 없다.
봉숭아꽃인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내 빛깔을 자기 몸 속에 함께 지니고 싶어
내 꽃과 잎을 자기 손가락에 붉게 물들여 지니려 하지 않는가.
자기 손가락을 내 빛깔로 물들여 놓고 바라보면서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하고 또 생각할 만큼 장미는 사랑 받고 있을까.
장미의 빛깔은 아름다우나 바라보기에 좋은 아름다움이지
봉숭아꽃처럼 꽃과 내가 하나되도록 품어주는 아름다움은 아니지 않는가.
장미는 아름답다.
그 옆에 서 보고 싶고, 그 옆에 서서 장미 때문에 나도 더 황홀해 지고 싶다.
너무 아름답기 때문에 시기심도 생기고 그가 장미처럼 태어났다는 걸 생각하면 은근히 질투도 난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장미일 필요는 없다.
나는 나대로, 내 사랑하는 사람은 그 사람대로 산국화이어도 좋고 나리꽃이어도 좋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