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가시
가시는 꽃과 나무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세상에, 또는 스스로에게 수없이 찔리면서
사람은 누구나 제 속에 자라나는 가시를 발견하게 된다.
한번 심어지고 나면 쉽게 뽑아낼 수 없는
탱자나무 같은 것이 마음에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을,
뽑아내려고 몸부림칠수록 가시는 더 아프게 자신을 찔러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후로 내내 크고 작은 가시들이 나를 키웠다.
아무리 행복해 보이는 사람에게도 그를 괴롭히는 가시는 있기 마련이다.
어떤 사람에게는 용모나 육체적인 장애가 가시가 되기도 하고,
어떤 사람에게는 가난한 환경이 가시가 되기도 한다.
나약하고 내성적인 성격이 가시가 되기도 하고,
원하는 재능이 없다는 것이 가시가 되기도 한다.
그리고 그 가시 때문에 오래도록 괴로워하고 삶을 혐오하게 되기도 한다.
로트렉이라는 화가는 부유한 귀족의 아들이었지만 사고로 인해 두 다리를 차례로 다쳤다.
그로 인해 다른 사람보다 다리가 자유롭지 못했고 다리 한쪽이 좀 짧았다고 한다.
다리 때문에 비관한 그는 방탕한 생활 끝에 결국 창녀촌에서 불우한 생을 마감했다.
그러나 그런 절망 속에서 그렸던 그림들은 아직까지 남아서 전해진다.
"내 다리 한쪽이 짧지 않았더라면 나는 그림을 그리지 않았을 것이다."
라고 그는 말한 적이 있다.
그에게 있어서 가시는 바로 남들보다 약간 짧은 다리 한쪽이었던 것이다.
로트렉의 그림만이 아니라, 우리가 오래 고통 받아온 것이
오히려 존재를 들어 올리는 힘이 되곤 하는 것을 겪곤 한다.
그러니 가시 자체가 무엇인가 하는 것은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닐지도 모른다.
어차피 뺄 수 없는 삶의 가시라면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다스려나가느냐가 더 중요하지 않을까 싶다.
그것마저 없었다면 우리는 인생이라는 잔을 얼마나 쉽게 마셔 버렸을 것인가.
인생의 소중함과 고통의 깊이를 채 알기도 전에 얼마나 웃자라 버렸을 것인가.
실제로 너무 아름답거나 너무 부유하거나 너무 강하거나
너무 재능이 많은 것이 오히려 삶을 망가뜨리는 경우를 자주 보게 된다.
그런 점에서 사람에게 주어진 고통,
그 날카로운 가시야말로 그를 참으로 겸허하게 만들어줄 선물일 수도 있다.
그리고 뽑혀지기를 간절히 바라는 가시야말로
우리가 더 깊이 끌어안고 살아야 할 존재인지도 모른다.
- 나희덕의 산문집 <빈통의 물>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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