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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인의 사람과 길] 돌담 사이 처마 밑 옛집의 향기… 고향의 그리움 달래주네

by 맥가이버 Macgyver 2013. 2. 7.

[박종인의 사람과 길] 돌담 사이 처마 밑 옛집의 향기… 고향의 그리움 달래주네

 

입력 : 2013.02.07 04:00

논산 명재 고택과 관촉사

 
잊힌 것에 대한 그리움이 옛 집에 배어 있다. 잊힌 선비 정신, 잊힌 우리 것, 잊힌 여유…. 논산 명재 고택에 어둠이 깔린다.
충남 논산은 한 나라의 수도였던 이웃 마을 공주와 부여에 가려 비산비야(非山非野), 산도 아니고 들도 아닌 밋밋한 얼굴로 천 년을 살았다. 장군 계백과 오천 결사대가 5만 나당 연합군과 백제 최후의 전쟁을 치른 이래 논산은 그랬다. 망국(亡國)의 설움과 계백의 충절을 버무려 천오백 년을 버티며 살았다. 윤완식(57)은 그 논산벌에 산다. 그가 사는 18세기 한옥 명재 고택은 문화 답사의 목적지며 동시에 드물게 하룻밤을 묵을 수 있는 우아한 고택이다.

1999년 형님 윤경식의 죽음으로 윤완식은 파평 윤씨 노종파 윤증 선생 13세손이 되었다. 서울에서 직장에 다니던 40대 사내는 명재 윤증 선생의 고택에 내려와 종손의 의무에 얽매였다.

명재 윤증(1629~1714)은 조정에서 18차례 벼슬을 내렸으나 갖은 이유를 대며 나아가지 않았다. 대신 은둔하며 경세제국을 했다고 하여 백의정승(白衣政丞)이라 불린다.

 
논산 관촉사 은진미륵의 두 얼굴. 근엄한 앞모습과 장난기 가득한 옆모습.

 

고고한 선비의 숨결, 명재 고택

'구(口)'자 형태로 지어진 이 집은 솟을대문도 없고 담도 낮다. 노론과 소론이 겨루던 19세기, 소론의 핵심인 윤증 집안을 감시하려고 노론파가 향교를 집 옆으로 옮겨버렸다. 윤완식은 "감시당하느니 차라리 다 보여주자고 작심하고 대문을 없앤 것으로 안다"고 했다. 사랑채 문짝은 문틈에 골을 만들어서 문 양쪽이 딱 아귀가 맞게 닫힌다. 문풍지가 필요 없다. "그런 실용성이 지금까지 이어져 제사도 양력으로 지낸다"고 했다. 사랑채 아래에는 천문학에 박식했던 윤완식의 증조부 윤하중이 만든 해시계 흔적이 남아 있다.

안채는 여덟 칸 대청을 가지고 있다. 뒷문을 열면 씨간장 장독대와 대숲이 보인다. 대청에서 오른편은 여자, 왼편은 남자의 공간이다. 그래서 여자를 여편이라 했고 남자를 남편이라 했다. 낮은 담벼락은 바깥 사람과의 소통을 위함이며 담보다 낮은 굴뚝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밥 짓는 연기를 숨기려는 배려라고 했다. "가을에는 사람들이 걷어가라고 일부러 큰길에 나락을 널어놓았다. 적선(積善) 덕에 동학 때도, 6·25 전쟁 때도 살아남았다."

사람들은 건축미를 감상하고 건축에 스며 있는 대쪽 같은 사대부 정신을 듣는다. 윤완식이 말했다. "양복이 정장이 됐고, 양장점이 의상실이 됐다. 양옥은 그냥 집이고 우리 집을 한옥이라 부르는 세상이다. 다 사라졌다." 그게 사람들이 명재 고택을 찾는 이유다. 사라진 것들, 사라진 선비 정신과 사라진 우리 집에 대한 그리움을 논산벌 사대부 집에서 해소하고 돌아가는 것이다.

장난기 가득한 부처의 미소

순례는 관촉사로 이어진다. 이 땅에서 가장 큰 석불인 은진미륵이 있는 절이다. 가분수 부처, 땅에서 솟은 바위불, 촛불처럼 빛나는 돌부처….

그런데 부처 오른편 언덕에서 바라보면, 송구하게도 미륵불의 장난기 가득한 얼굴이 보이는 것이다. 근엄하기만 하고 심각하기만 하다면 그 어찌 중생을 구제할 존재이겠는가. 관촉사에 가면 부처님의 숨은 얼굴을 반드시 대면할 일이다. 몸통 곳곳에 남아 있는 흔적도 곱씹어볼 일이다. 왜 우리 조상들은 마무리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저렇게 석정 구멍과 금을 남겨 놓았을꼬.

그리고 계백 유적지와 개태사로 간다. 계백 유적지는 논산의 비장한 얼굴이다. 왜(倭) 나라에 전수했던 백제의 군사기술, 그리고 계백의 무덤과 관련 유적들이 있다. 개태사는 왕건이 지은 절이다. 고려 왕조와 운명을 같이해, 조선 시대에 허망하게 사라지고 터만 남았다가 일제 때 중창됐다. 볼 거리는 딱히 없으나, 본전에 모신 석불 3존과 철확, 그러니까 무쇠솥은 가치롭다. 논산 사람이 저승에 가면 염라대왕이 꼭 묻는 질문이 있다고 한다. "은진미륵 보았니, 개태사 철확 보았니, 강경 미내다리 보았니." 일제 때 지름 2m, 둘레 6.28m, 높이 97㎝인 이 가마솥이 들판에서 발견되면서 절도 다시 지어졌으니 이승에서나 저승에서나 개태사 철확은 인기다.

이번 주 고향 찾아 경부고속도로를 타는 사람들, 시간이 남거나 차가 막히거들랑 논산에 들러 명재 고택의 향기를 맡아보는 건 어떨까. 고속도로에서 빠져나와 30분이면 닿는 곳이다. 고향 향한 그리움 잠시 미리 풀어내는, 그런 행복한 시간이 있는 곳이다.

여행수첩

서울 기준 명재 고택~관촉사~개태사 코스 .

천안논산고속도로 탄천IC→645번 지방도 논산, 노성 방면→이후 ‘노성’ 방면 이정표 따라가면 노성산성길 나오고 명재 고택→고택에서 나와 23번국도 득안대로 논산 방면→광석교차로에서 ‘대전’ 방면으로 P턴→부적교차로 ‘연무, 논산’ 방면 우회전→1번국도 계백로 1km→논산대로 1km→관촉사 이정표 따라 진입하면 관촉사→아까 부적교차로까지 나간 뒤 대전, 부여 방면 직진→1번국도 계백로 6km→외성삼거리 감곡리 방면 우회전 이후 이정표 따라 직진하면 백제군사박물관/계백장군 유적지→유적지에서 나와 충곡로 신풍리 방면 좌회전→버스 정류장 삼거리 좌회전→1번국도 계백로 나오면 ‘대전, 계룡’ 방면 우회전 6.5km 가면 개태사

논산은 인근 천안과 함께 순대가 특산이다. 연산원조순대집(041-735-0367). 국밥 5000원, 순대 7000원. 이달부터 탑정호에서 잡히는 웅어를 비롯한 매운탕도 추천. 황산옥(041-745-4836). 돌아오는 길에는 노천 농가들이 파는 지역 특산품 딸기를 쇼핑하는 재미도 있다.

명재 고택: 안채와 사랑채, 별채, 초가에 묵을 수 있다. 초가집(8만원)부터 사랑채(40만원)까지. 초가집을 제외하고는 취사 불가. 대신 저녁식사는 고택에서 내준다. 아침이면 13세손 윤완식씨의 강의가 있고 비정기적으로 사랑채에서 국악 연주가 있다. 염색, 다례, 매듭 등 전통 체험도 할 수 있다. 공연 및 체험 행사는 유료.
www.mye ongjae.com, (041)735-1215

②탑정호 주변 연무그린관광호텔(041-742-3344), 레이크힐호텔(041-742-8851)

논산 관광안내 tour.nonsan.go.kr, (041) 730-3224·33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