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량도 지리망산]바다 뚫고 솟은 공룡 비늘 같은 암봉… 남해를 내려보고 지리산을 올려보다
경남 통영 사량도 지리망산
공룡 등판의 거대한 비늘처럼 일어선 바위의 갈기. 그 위로 이어지는 위험천만한 암릉 길을 균형을 유지하며 걷는 일은 마치 남쪽 바다를 헤엄치는 것 같았습니다. 두 팔을 날개처럼 펼치니 금세라도 바다와 하늘의 경계로 날아오를 듯했습니다. 여기는 경남 통영의 작은 섬, 사량도에 솟은 지리망산입니다. 날카로운 암봉을 화관처럼 쓰고 있는 지리망산은 지세부터가 남다릅니다. 섬 안의 산은 물론이고 육지의 내로라하는 산과 견준대도 그렇습니다. 제 모습의 아름다움도 나무랄 데 없지만, 지리망산을 완성하는 것은 이름에 들어간 ‘망(望)’자에서 짐작되듯 ‘조망’입니다. ‘거기 서면 지리산 천왕봉이 보인다’는 얘기는 아쉽게도 옅은 연무 탓에 확인하지 못했지만, 깎아지른 아슬아슬한 암봉 끝에서 발끝에 온 신경을 집중하다 문득 고개를 들 때마다 와락 달려드는 바다와 포구 풍경만으로도 충분히 감격적이었습니다. 육지의 시간은 이미 겨울로 건너간 지 오래지만, 남쪽의 섬 사량도에는 아직 떨구지 않은 느티나무 잎에 초록빛이 다 지워지지 않았습니다. 다른 계절 다 두고 구태여 지금 사량도로 건너간 것은 하루하루 겨울에 다가갈수록 차가운 대기로 세상은 더 투명해지기 때문입니다. 차가워진다는 건 어쩌면 ‘명징해진다’는 뜻. 산정에서 보는 조망의 풍경도 그렇거니와, 세상을 보는 시야도 그런 건지 모르겠습니다. 겨울의 여행은 우리에게 참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합니다. 사량도로 건너가는 여객선의 갑판 위에서 문득 스치고 지나간 생각 하나. 섬도 바다에 솟아 있으니 어쩌면 그것 그대로 ‘산’이 아닐까. 그렇게 길 위에서 되돌아보면 두고 온 일상도 그것 그대로 ‘길’이었습니다.
# 지리망산이란 이름을 갖게 된 연유
통영의 작은 섬 사량도가 세상에 알려진 것은 오로지 한 가지 이유다. 산림청이 정한 ‘한국의 100대 명산’에 당당히 이름을 올린 ‘지리망산’의 명성 때문이다. 그러니 ‘사량도에 간다’면 그건 그대로 지리망산에 오른다는 뜻이 된다. 면류관 같은, 혹은 물고기 등지느러미 같은 암봉을 이고 있는 사량도의 산에 ‘지리’란 이름이 붙여진 것을 두고 ‘거기 서면 지리산이 보인다’는 해석으로 설명하곤 한다. 하지만 그건 외지 사람들이 섬으로 들어와 그 산을 오르내린 뒤에 붙인 것이다.
여기서 잠깐. ‘지리망산’이란 이름이 붙은 연유부터 이야기하자. 사량도 지리산의 본래 이름은 육지에서 가장 높은 산인 지리산을 뜻하는 ‘지리(智異)’가 아닌 ‘지리(池里)’였다. 섬 남쪽의 돈지(敦池)마을에서 북쪽의 내지(內池)마을 사이에 솟구쳐 올랐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었다. 그럼에도 육지에서 몰려든 등산객들은 사량도의 지리산(池里山)이란 이름에서 당연히 지리산(智異山)을 떠올렸겠고, 두 산의 공통점을 찾으려 했을 것이다. 하지만 화려한 장식처럼 솟은 암봉의 사량도 지리산은 거대한 육산인 지리산과는 산세로 보나 위용으로 보나 닮은 게 없다. 그래서 결국 찾아낸 것이 ‘맑은 날 사량도 지리산(池里山)에 오르면 지리산 천왕봉이 보인다’는 이야기였을 것이고, 산 이름도 지리산이 보인다는 뜻으로 ‘지리망산(智異望山)’으로 바뀌고 말았다. 그러다가 아예 요사이는 육지의 산과 똑같은 지리산(智異山)으로 불리기도 한다.
사실 사량도의 산은 지리망산이 아닌 불모산 혹은 달바위산으로 불러야 옳다. 대개 능선으로 몇 개의 산이 이어진 경우, 가장 높은 산의 것을 대표 이름으로 삼는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말이다. 게다가 진짜 거기서 지리산이 보이는지도 알 수 없다. 지리망산의 높이는 398m로 능선으로 이어진 불모산의 달바위봉(400m)보다 해발고도가 2m가 낮다. 그렇다고 지리망산에서의 조망이 불모산을 압도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달바위봉에서 바라보는 바다와 섬의 풍경이 낫다면 더 낫다. 그럼에도 지리망산이란 이름이 앞서는 건 아마 육지의 지리산 명성에 힘입은 때문이리라.
# 공룡의 등비늘 같은 암봉의 화려함
사량도에 닿는 배는 경남 통영의 가오치항에서도, 사천의 삼천포항에서도, 고성의 용암포 선착장에서도 뜬다. 사량도가 속한 행정구역이 통영이니 가오치항에서 뜨는 배편이 가장 잦긴 하지만, 삼천포항이나 용암포 선착장에서 뜨는 배편도 하루 서너 번은 된다. 대개의 섬들이 행정 지원을 받는 배편 하나로 겨우 육지와 드나드는데, 사량도는 육지 세 곳과 연결되는 배편을 갖고 있는 셈이다. 당연히 그건 그만큼 지리망산을 찾는 이들이 많기 때문이다.
내륙의 내로라하는 명산을 다 놓아 두고 등산객들이 사량도로 들어가 지리망산을 찾아가는 건 공룡 등판의 거대한 비늘 같은 등줄기에서 좌우로 아찔한 직벽 아래 바다를 두고 아슬아슬 걷는 맛이 그만이기 때문이다. 지리망산은 자칫 한 발만 헛디뎌도 ‘그걸로 끝’일 것만 같은 현기증 나는 아찔한 산세를 가지고 있다. 그러니 말갈기 같은 암봉의 거친 능선을 걷는 내내 사방으로 터진 조망이 빼어남은 더 말할 게 없다. 섬의 산은 풍광은 빼어나지만 대개 코스가 짧아 아쉬운데 지리망산은 400m를 넘기지 못하는 높이에도 종주 등반으로 능선을 이어붙이면 4시간 이상의 제법 벅찬 산행 코스가 만들어진다는 것도 매력적이다. 거기에다 지리망산엘 가는 이유를 하나 더 덧붙이자면, 섬으로 떠나는 낭만적인 행로가 등산의 부록처럼 따라오기 때문이기도 하다.
지리망산은 육지의 내로라하는 다른 산들이 황량한 풍경을 갖게 되는 겨울철이 특히 매혹적이다. 한겨울에도 남쪽 바다의 섬이라 바람에 훈기가 느껴지는 데다 활엽수들이 잎을 떨구고 난 뒤, 눈이 시도록 푸른 바다와 말갈기 같은 암봉을 오히려 더 근사하게 만날 수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지리망산은 만만한 산이 아니다. 칼날 같은 바위능선을 네 발로 기어가야 하는 구간이 적지 않다. 밧줄을 잡고 올라야 하는 코스도 있고, 바위 직벽을 앞으로 쏟아질 것만 같은 계단을 타고 내려가야 하는 구간도 있다. 위험 구간을 우회하는 코스가 올 들어 새로 놓여서 길이 좀 순해지긴 했다지만, 아무래도 더 빼어난 절경을 내려다볼 수 있는 자리는 이른바 ‘위험 구간’에 들어섰을 때다. 위험 구간에 올라서 능선의 칼바위를 붙잡고 발끝으로 온몸의 균형을 유지하다 보면 가슴이 저릿저릿하고, 심장이 두방망이질하는 아슬아슬한 순간을 만나게 된다. 어쩌면 이런 기분일지도 모르겠다. 남쪽의 땅끝까지 가서, 거기서 다시 배를 타고 사량도까지 들어가야 하는 번거로움에도 지리망산을 찾는 이들이 기대하는 것은….
# 섬의 서쪽에서 암릉을 타고 동쪽을 향해 걷다
사량도는 윗섬(上島)과 아랫섬(下島), 두 개의 섬으로 이뤄져 있다. 두 섬 사이에는 주민들이 ‘동강(桐江)’이라 부르는 해협이 있다. 주민들은 두 섬 사이의 바다에서 ‘강(江)’의 모습을 보았던 모양이다. 강에 붙여진 ‘거문고 동(桐)’자는 아마도 두 섬 사이 호수 같은 바다의 모습이 거문고 형상과 꼭 닮았기 때문이리라. 이 해협이 뱀처럼 구불구불하다고 해서 ‘뱀 사(蛇)’자를 써 ‘사량(蛇梁)’이란 섬 이름이 지어졌다는 얘기도 있다. 지리망산은 윗섬에 있다. 윗섬에는 사량면사무소도 있다. 사량도 인구는 아래·윗섬을 합쳐서 1700명 남짓. 그중 1000명쯤이 윗섬에, 나머지가 아랫섬에 거주하니 두 섬 중에서는 윗섬이 대처(大處)인 셈이다.
이른 아침의 희뿌연 연무 속에서 삼천포항을 출항한 여객선 ‘세종 1호’가 40여 분 만에 사량도 윗섬의 내지 선착장에 닿았다. 선착장 부근에 늘어선 느티나무들에는 아직 초록잎이 다 지지 않았다. 겨울의 문턱을 넘어섰지만 남쪽 끝자락의 섬에서는 초록이 귀하지 않다. 자그마한 섬의 한적한 항구. 고깃배들은 평화롭고, 바람은 따스하다. 지리망산에 오르는 코스는 여러 갈래다. 지리망산 정상만 바삐 밟고 내려올 수도 있고, 능선을 타고 불모산으로, 또 옥녀봉으로 넘어가는 종주 코스를 택할 수도 있다. 지리망산만 밟자면 1시간 30분 정도, 종주 코스를 따라가면 족히 4시간쯤 걸린다. 배를 타고 섬까지 들어오는 수고를 투자했으니 대개 종주 코스를 택한다. 지리망산의 종주 등반은 서쪽의 내지 쪽에서 시작해 동쪽의 면사무소 쪽으로 넘어가는 게 일반적이다. 풍경의 순서가 그게 낫기도 하거니와 배 닿는 포구와의 연결 때문에도 그렇다.
사실 어떤 코스를 택해 산을 오르느냐는 순전히 ‘배가 어느 쪽 포구에 닿느냐’에 달렸다. 내지 선착장에서 내린다면 서쪽 금북개에서 올라붙어야 하고, 돈지 선착장에서 내린다면 뒤편의 산자락을 타고 가야 한다. 어차피 두 길은 지리망산의 능선쯤에서 합쳐져 정상 쪽으로 이어진다. 두 길이 만나는 능선에 당도하면 거기서부터 ‘눈의 호사’가 시작된다. 푸른 바다와 거기 떠있는 섬, 그리고 딛고 선 능선 아래 아늑한 포구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 다 지나온 산을 자꾸 뒤돌아보는 이유
지리망산 정상까지의 산길은 부드러운 육산처럼 순하다. 아슬아슬한 암릉의 연속은 그 뒤부터다. 위험 구간을 돌아가는 우회로를 놓으면서 예전의 능선 길에는 ‘위험 구간’이란 팻말이 나붙었다. 아찔한 직벽의 위험 구간이라면 거기서 보는 풍경이 좋다는 게 당연하다. 암릉산행에 익숙지 않다면 위험을 무릅쓸 것까지는 없겠지만, 위험 구간의 들머리까지는 부지런히 들고 나는 게 풍경을 놓치지 않고 즐기는 방법이겠다.
지리망산을 지나면 풀 한 포기 없는 불모산의 달바위봉을 거쳐 가마봉과 옥녀봉을 순서대로 찍게 된다. 굽이를 돌고 암봉을 하나 넘을 때마다 풍경은 전보다 더 기기묘묘해진다. 그중에서 가장 매혹적인 풍경이 달바위봉에서 펼쳐진다. 여기서는 암릉도 암릉이지만 육지 깊숙이 밀고 들어온 바다를 둥글게 감싸고 있는 아늑한 대항 포구의 모습이 발밑에 더해진다. 아쉬운 게 있다면 이즈음 수직의 암릉 구간에 출렁다리를 놓는 공사가 한창이라 몇 개의 봉우리 출입이 통제됐다는 점. 연지봉 정상에 폭력처럼 세워진 출렁다리 첨탑은 흉물스럽지만 출렁다리나 우회로가 없다면 별 수 없이 이전의 아찔했던 직벽 코스에 붙어야 했을 터. 특히 80도 직벽 바위에 걸린 밧줄 사다리 구간을 폐쇄하고 대신 놓인 우회로가 어찌나 반가운지, 안도의 한숨이 절로 나온다. 밧줄 사다리 코스의 공포감은 그야말로 대단했다.
종주 구간의 마지막 봉우리 옥녀봉에는 딸이 자신을 범하려는 짐승 같은 아버지를 설득하다 끝내 몸을 던졌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곳. 옥녀봉은 예부터 섬주민들 사이에서 두려움의 대상이자 신성시됐던 공간이었다. 이런 전통은 지금도 여전해 주민들은 옥녀봉에다 구조물을 세우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옥녀봉에 해발고도를 알리는 표지석조차 세워지지 않은 건 그 때문이다.
# 아름드리 팽나무, 그리고 우물 속의 선정비
사량도를 찾는 외지인들은 대개 지리망산만 올랐다가는 서둘러 육지로 돌아가지만, 섬 안에는 의외로 일부러 찾아가볼 만한 것들이 곳곳에 있다. 그중 하나가 금평리 진촌마을의 최영 장군 사당이다. ‘진촌’은 고려 말부터 왜구의 침략을 지키던 수군의 진(陳)이 주둔해 있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 진촌마을의 면사무소에서 사당까지는 걸어서 5분 남짓이다. 최영 장군 사당은 육지에도 적지 않고, 남해안만 해도 사량도 외에 추자도와 남해도에도 있다. 남해안에 세워진 최영 장군 사당은 고려 말 극성을 부리던 왜적을 격퇴한 공을 기려 세운 것이다. 그러나 섬주민들은 사당을 ‘승전의 기념’이 아닌, 바다로 나갔다가 목숨을 잃은 영혼들을 달래는 공간으로 이해하고 있다. 사당에 죽은 영혼을 위로하는 ‘원혼신앙’의 흔적이 남아 있는 셈인데, 주민들이 최영 장군에게 죽은 영혼을 의탁했던 것은 아마도 장군이 조선 개국 당시 이성계에 맞서다 억울한 죽임을 당했기 때문이리라.
최영 장군 사당에서는 오히려 사당 곁에 선 팽나무 한 그루가 더 눈을 끈다. 나무가 어찌나 우람하게 활개를 치고 있던지 팻말에 적힌 ‘수령 250년’이란 나이에 족히 두 배쯤은 더 얹어야 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다. 사당으로 가는 길에 지나는 성터와 우물도 예사로 보아 넘기지 말아야 할 것이다. 지난 5월에야 수도 가설사업이 마무리된 사량도에서 우물은 신성한 공간이었다. 부정탄다 해서 손도 못 댔던 우물을, 수도를 놓고 나서 정비하다 물속에서 3기의 비석을 찾아냈다. 만호선정비. 지금으로 치면 해군 사단장쯤 되는 벼슬아치의 공덕비다.
면사무소 앞길 건너편에는 낡은 쾌속선 한 척이 전시돼 있다. 1970년대 초반부터 부산과 여수, 이른바 ‘한려수도’를 오가던 ‘엔젤 2호’다. 한려수도 인근에서 살았던 이들이라면 엔젤호를 모를 리 없다. 그때 엔젤호는 말 그대로 ‘꿈의 배’였다. 한려수도의 바닷길을 노트의 속도로 달리면서 번쩍 일으켜 미끄러지는 모습은 한려수도 관광의 대표적인 상징이었다.
사량도(통영)=글·사진 박경일 기자 parking@munhwa.com
# 지리망산이란 이름을 갖게 된 연유
통영의 작은 섬 사량도가 세상에 알려진 것은 오로지 한 가지 이유다. 산림청이 정한 ‘한국의 100대 명산’에 당당히 이름을 올린 ‘지리망산’의 명성 때문이다. 그러니 ‘사량도에 간다’면 그건 그대로 지리망산에 오른다는 뜻이 된다. 면류관 같은, 혹은 물고기 등지느러미 같은 암봉을 이고 있는 사량도의 산에 ‘지리’란 이름이 붙여진 것을 두고 ‘거기 서면 지리산이 보인다’는 해석으로 설명하곤 한다. 하지만 그건 외지 사람들이 섬으로 들어와 그 산을 오르내린 뒤에 붙인 것이다.
여기서 잠깐. ‘지리망산’이란 이름이 붙은 연유부터 이야기하자. 사량도 지리산의 본래 이름은 육지에서 가장 높은 산인 지리산을 뜻하는 ‘지리(智異)’가 아닌 ‘지리(池里)’였다. 섬 남쪽의 돈지(敦池)마을에서 북쪽의 내지(內池)마을 사이에 솟구쳐 올랐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었다. 그럼에도 육지에서 몰려든 등산객들은 사량도의 지리산(池里山)이란 이름에서 당연히 지리산(智異山)을 떠올렸겠고, 두 산의 공통점을 찾으려 했을 것이다. 하지만 화려한 장식처럼 솟은 암봉의 사량도 지리산은 거대한 육산인 지리산과는 산세로 보나 위용으로 보나 닮은 게 없다. 그래서 결국 찾아낸 것이 ‘맑은 날 사량도 지리산(池里山)에 오르면 지리산 천왕봉이 보인다’는 이야기였을 것이고, 산 이름도 지리산이 보인다는 뜻으로 ‘지리망산(智異望山)’으로 바뀌고 말았다. 그러다가 아예 요사이는 육지의 산과 똑같은 지리산(智異山)으로 불리기도 한다.
사실 사량도의 산은 지리망산이 아닌 불모산 혹은 달바위산으로 불러야 옳다. 대개 능선으로 몇 개의 산이 이어진 경우, 가장 높은 산의 것을 대표 이름으로 삼는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말이다. 게다가 진짜 거기서 지리산이 보이는지도 알 수 없다. 지리망산의 높이는 398m로 능선으로 이어진 불모산의 달바위봉(400m)보다 해발고도가 2m가 낮다. 그렇다고 지리망산에서의 조망이 불모산을 압도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달바위봉에서 바라보는 바다와 섬의 풍경이 낫다면 더 낫다. 그럼에도 지리망산이란 이름이 앞서는 건 아마 육지의 지리산 명성에 힘입은 때문이리라.
# 공룡의 등비늘 같은 암봉의 화려함
사량도에 닿는 배는 경남 통영의 가오치항에서도, 사천의 삼천포항에서도, 고성의 용암포 선착장에서도 뜬다. 사량도가 속한 행정구역이 통영이니 가오치항에서 뜨는 배편이 가장 잦긴 하지만, 삼천포항이나 용암포 선착장에서 뜨는 배편도 하루 서너 번은 된다. 대개의 섬들이 행정 지원을 받는 배편 하나로 겨우 육지와 드나드는데, 사량도는 육지 세 곳과 연결되는 배편을 갖고 있는 셈이다. 당연히 그건 그만큼 지리망산을 찾는 이들이 많기 때문이다.
내륙의 내로라하는 명산을 다 놓아 두고 등산객들이 사량도로 들어가 지리망산을 찾아가는 건 공룡 등판의 거대한 비늘 같은 등줄기에서 좌우로 아찔한 직벽 아래 바다를 두고 아슬아슬 걷는 맛이 그만이기 때문이다. 지리망산은 자칫 한 발만 헛디뎌도 ‘그걸로 끝’일 것만 같은 현기증 나는 아찔한 산세를 가지고 있다. 그러니 말갈기 같은 암봉의 거친 능선을 걷는 내내 사방으로 터진 조망이 빼어남은 더 말할 게 없다. 섬의 산은 풍광은 빼어나지만 대개 코스가 짧아 아쉬운데 지리망산은 400m를 넘기지 못하는 높이에도 종주 등반으로 능선을 이어붙이면 4시간 이상의 제법 벅찬 산행 코스가 만들어진다는 것도 매력적이다. 거기에다 지리망산엘 가는 이유를 하나 더 덧붙이자면, 섬으로 떠나는 낭만적인 행로가 등산의 부록처럼 따라오기 때문이기도 하다.
지리망산은 육지의 내로라하는 다른 산들이 황량한 풍경을 갖게 되는 겨울철이 특히 매혹적이다. 한겨울에도 남쪽 바다의 섬이라 바람에 훈기가 느껴지는 데다 활엽수들이 잎을 떨구고 난 뒤, 눈이 시도록 푸른 바다와 말갈기 같은 암봉을 오히려 더 근사하게 만날 수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지리망산은 만만한 산이 아니다. 칼날 같은 바위능선을 네 발로 기어가야 하는 구간이 적지 않다. 밧줄을 잡고 올라야 하는 코스도 있고, 바위 직벽을 앞으로 쏟아질 것만 같은 계단을 타고 내려가야 하는 구간도 있다. 위험 구간을 우회하는 코스가 올 들어 새로 놓여서 길이 좀 순해지긴 했다지만, 아무래도 더 빼어난 절경을 내려다볼 수 있는 자리는 이른바 ‘위험 구간’에 들어섰을 때다. 위험 구간에 올라서 능선의 칼바위를 붙잡고 발끝으로 온몸의 균형을 유지하다 보면 가슴이 저릿저릿하고, 심장이 두방망이질하는 아슬아슬한 순간을 만나게 된다. 어쩌면 이런 기분일지도 모르겠다. 남쪽의 땅끝까지 가서, 거기서 다시 배를 타고 사량도까지 들어가야 하는 번거로움에도 지리망산을 찾는 이들이 기대하는 것은….
# 섬의 서쪽에서 암릉을 타고 동쪽을 향해 걷다
사량도는 윗섬(上島)과 아랫섬(下島), 두 개의 섬으로 이뤄져 있다. 두 섬 사이에는 주민들이 ‘동강(桐江)’이라 부르는 해협이 있다. 주민들은 두 섬 사이의 바다에서 ‘강(江)’의 모습을 보았던 모양이다. 강에 붙여진 ‘거문고 동(桐)’자는 아마도 두 섬 사이 호수 같은 바다의 모습이 거문고 형상과 꼭 닮았기 때문이리라. 이 해협이 뱀처럼 구불구불하다고 해서 ‘뱀 사(蛇)’자를 써 ‘사량(蛇梁)’이란 섬 이름이 지어졌다는 얘기도 있다. 지리망산은 윗섬에 있다. 윗섬에는 사량면사무소도 있다. 사량도 인구는 아래·윗섬을 합쳐서 1700명 남짓. 그중 1000명쯤이 윗섬에, 나머지가 아랫섬에 거주하니 두 섬 중에서는 윗섬이 대처(大處)인 셈이다.
이른 아침의 희뿌연 연무 속에서 삼천포항을 출항한 여객선 ‘세종 1호’가 40여 분 만에 사량도 윗섬의 내지 선착장에 닿았다. 선착장 부근에 늘어선 느티나무들에는 아직 초록잎이 다 지지 않았다. 겨울의 문턱을 넘어섰지만 남쪽 끝자락의 섬에서는 초록이 귀하지 않다. 자그마한 섬의 한적한 항구. 고깃배들은 평화롭고, 바람은 따스하다. 지리망산에 오르는 코스는 여러 갈래다. 지리망산 정상만 바삐 밟고 내려올 수도 있고, 능선을 타고 불모산으로, 또 옥녀봉으로 넘어가는 종주 코스를 택할 수도 있다. 지리망산만 밟자면 1시간 30분 정도, 종주 코스를 따라가면 족히 4시간쯤 걸린다. 배를 타고 섬까지 들어오는 수고를 투자했으니 대개 종주 코스를 택한다. 지리망산의 종주 등반은 서쪽의 내지 쪽에서 시작해 동쪽의 면사무소 쪽으로 넘어가는 게 일반적이다. 풍경의 순서가 그게 낫기도 하거니와 배 닿는 포구와의 연결 때문에도 그렇다.
사실 어떤 코스를 택해 산을 오르느냐는 순전히 ‘배가 어느 쪽 포구에 닿느냐’에 달렸다. 내지 선착장에서 내린다면 서쪽 금북개에서 올라붙어야 하고, 돈지 선착장에서 내린다면 뒤편의 산자락을 타고 가야 한다. 어차피 두 길은 지리망산의 능선쯤에서 합쳐져 정상 쪽으로 이어진다. 두 길이 만나는 능선에 당도하면 거기서부터 ‘눈의 호사’가 시작된다. 푸른 바다와 거기 떠있는 섬, 그리고 딛고 선 능선 아래 아늑한 포구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 다 지나온 산을 자꾸 뒤돌아보는 이유
지리망산 정상까지의 산길은 부드러운 육산처럼 순하다. 아슬아슬한 암릉의 연속은 그 뒤부터다. 위험 구간을 돌아가는 우회로를 놓으면서 예전의 능선 길에는 ‘위험 구간’이란 팻말이 나붙었다. 아찔한 직벽의 위험 구간이라면 거기서 보는 풍경이 좋다는 게 당연하다. 암릉산행에 익숙지 않다면 위험을 무릅쓸 것까지는 없겠지만, 위험 구간의 들머리까지는 부지런히 들고 나는 게 풍경을 놓치지 않고 즐기는 방법이겠다.
지리망산을 지나면 풀 한 포기 없는 불모산의 달바위봉을 거쳐 가마봉과 옥녀봉을 순서대로 찍게 된다. 굽이를 돌고 암봉을 하나 넘을 때마다 풍경은 전보다 더 기기묘묘해진다. 그중에서 가장 매혹적인 풍경이 달바위봉에서 펼쳐진다. 여기서는 암릉도 암릉이지만 육지 깊숙이 밀고 들어온 바다를 둥글게 감싸고 있는 아늑한 대항 포구의 모습이 발밑에 더해진다. 아쉬운 게 있다면 이즈음 수직의 암릉 구간에 출렁다리를 놓는 공사가 한창이라 몇 개의 봉우리 출입이 통제됐다는 점. 연지봉 정상에 폭력처럼 세워진 출렁다리 첨탑은 흉물스럽지만 출렁다리나 우회로가 없다면 별 수 없이 이전의 아찔했던 직벽 코스에 붙어야 했을 터. 특히 80도 직벽 바위에 걸린 밧줄 사다리 구간을 폐쇄하고 대신 놓인 우회로가 어찌나 반가운지, 안도의 한숨이 절로 나온다. 밧줄 사다리 코스의 공포감은 그야말로 대단했다.
종주 구간의 마지막 봉우리 옥녀봉에는 딸이 자신을 범하려는 짐승 같은 아버지를 설득하다 끝내 몸을 던졌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곳. 옥녀봉은 예부터 섬주민들 사이에서 두려움의 대상이자 신성시됐던 공간이었다. 이런 전통은 지금도 여전해 주민들은 옥녀봉에다 구조물을 세우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옥녀봉에 해발고도를 알리는 표지석조차 세워지지 않은 건 그 때문이다.
# 아름드리 팽나무, 그리고 우물 속의 선정비
사량도를 찾는 외지인들은 대개 지리망산만 올랐다가는 서둘러 육지로 돌아가지만, 섬 안에는 의외로 일부러 찾아가볼 만한 것들이 곳곳에 있다. 그중 하나가 금평리 진촌마을의 최영 장군 사당이다. ‘진촌’은 고려 말부터 왜구의 침략을 지키던 수군의 진(陳)이 주둔해 있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 진촌마을의 면사무소에서 사당까지는 걸어서 5분 남짓이다. 최영 장군 사당은 육지에도 적지 않고, 남해안만 해도 사량도 외에 추자도와 남해도에도 있다. 남해안에 세워진 최영 장군 사당은 고려 말 극성을 부리던 왜적을 격퇴한 공을 기려 세운 것이다. 그러나 섬주민들은 사당을 ‘승전의 기념’이 아닌, 바다로 나갔다가 목숨을 잃은 영혼들을 달래는 공간으로 이해하고 있다. 사당에 죽은 영혼을 위로하는 ‘원혼신앙’의 흔적이 남아 있는 셈인데, 주민들이 최영 장군에게 죽은 영혼을 의탁했던 것은 아마도 장군이 조선 개국 당시 이성계에 맞서다 억울한 죽임을 당했기 때문이리라.
최영 장군 사당에서는 오히려 사당 곁에 선 팽나무 한 그루가 더 눈을 끈다. 나무가 어찌나 우람하게 활개를 치고 있던지 팻말에 적힌 ‘수령 250년’이란 나이에 족히 두 배쯤은 더 얹어야 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다. 사당으로 가는 길에 지나는 성터와 우물도 예사로 보아 넘기지 말아야 할 것이다. 지난 5월에야 수도 가설사업이 마무리된 사량도에서 우물은 신성한 공간이었다. 부정탄다 해서 손도 못 댔던 우물을, 수도를 놓고 나서 정비하다 물속에서 3기의 비석을 찾아냈다. 만호선정비. 지금으로 치면 해군 사단장쯤 되는 벼슬아치의 공덕비다.
면사무소 앞길 건너편에는 낡은 쾌속선 한 척이 전시돼 있다. 1970년대 초반부터 부산과 여수, 이른바 ‘한려수도’를 오가던 ‘엔젤 2호’다. 한려수도 인근에서 살았던 이들이라면 엔젤호를 모를 리 없다. 그때 엔젤호는 말 그대로 ‘꿈의 배’였다. 한려수도의 바닷길을 노트의 속도로 달리면서 번쩍 일으켜 미끄러지는 모습은 한려수도 관광의 대표적인 상징이었다.
사량도(통영)=글·사진 박경일 기자 parking@munhwa.com
통영 사량도 가는 길, 묵을 곳·먹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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