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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도보여행후기☞/☆ 소백산 자락길

[20130803~0806]3박 4일에 소백산 자락길 12자락 한 번에 이어걷기 - 제3일차 제3부 -

by 맥가이버 Macgyver 2013. 8.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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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년 08월 03일(토) ~ 06일(화)  

 3박 4일에 소백산 자락길 12자락 한 번에 이어걷기를 다녀오다.
   

 

누군가가 '누우면 죽고, 걸으면 산다(臥死步生)'고 했다.

맥가이버는 '산 따라 강 따라 길 따라' 걷는 것을 죽고사는 차원이 아닌 즐기는 차원에서 걷는다.

즉, 좋은 길을 걷다가 새로운 환경이나 상황, 사람을 만나면서 알게 되고, 느끼고, 감동 받고, 깨닫는 것을 즐긴다.

 

 맥가이버의 낭만도보 - '3박 4일에 소백산 자락길 12자락 한 번에 이어걷기' 이야기 

 

 맥가이버의 낭만도보 - '3박 4일에 소백산 자락길 12자락 한 번에 이어걷기' 코스

 

[ 제1일차 ]

2자락 : 방천길[풍기역-풍기인삼시장-풍기소방서-소백산역]

3자락 : 죽령옛길, 용부원길, 장림말길[소백산역-죽령옛길-죽령마루-용부원리-대강면]

4자락 : 가리점마을옛길[당동리-장현문안골-마조리-노동리-기촌교-기촌리(금곡초)]
 

[ 제2일차 ]
5자락 : 황금구만량길[기촌리-매남치-대대리(대곡초)-구만동-보발분교-보발재(고드너머재)]

→ 6자락 : 온달장군과 평강공주의 로맨스 길[보발분교-보발재(고드너머재)-방터-온달산성-온달관광지-영춘면사무소]
                                                                 ↑보발재에서 595번 지방도따라 걸어 구인사 앞에서 점심식사를 위해 길 변경함.

→소백산자락길 7자락 : 십승지 의풍옛길[영춘면사무소-동대리-의풍옛길입구-베틀재-의풍리]
                                                                                          ↑시간상 동대리에서 의풍리 숙소까지 택시로 이동함.

 

[ 제3일차 ]

8자락 : 접경길, 대궐길[의풍분교-삼도접경공원-마흘천-현정사-남대분교-주막거리]
→ 9자락 : 방물길. 보부상길[주막거리-상신기마을-늦은목이재-생달마을-물야저수지(오전댐)]


→10자락 : 쌈지길, 소풍길[오전댐-뒷뜰마을(장터)-봉화학예관(오전분교)-죽터-땅골-부석사(무량수전)]

→11자락 : 과수원길, 올망길, 수변길[부석사-속두들-숲실-사그랭이-양지마을-남절-모산-단산지-좌석(시거리)]

                                                                                                 ↑남절에서 원통(원티)으로 가는 길이 수풀로 뒤덮혀 우회함.

 

[ 제4일차 ]

12자락 : 자재기길, 서낭당길, 배점길[좌석(시거리)-자재기재-두레골(장안사)-점마-덕현-배점-배점주차장]

→ 1자락 : 선비길, 구곡길, 달밭길[소수서원-금성단-배점주차장-죽계구곡-초암사-달밭골-비로사-삼가리(소백산 자락길 홍보관)]

                                                     ↑소백산 자락길 일주를 하면서 위 구간은 배점주차장에서 왕복해야 하기에 시간상 생략함.

→2자락 : 학교길, 승지길[삼가주차장-삼가분교-금계저수지-삼가펜션마을-금선정-정감록촌(임실)-풍기소방서-풍기역]

 

 

▼ '3박 4일에 소백산 자락길 12자락 한 번에 이어걷기' 코스도(출발前 예정)

 

▼ 아래 '소백산 자락길 코스도'를 클릭하면 확대됨.  

 

  

소백산 자락길 한 번에 이어걷기를 떠나기 전에...

 

'소백산 자락길 한 번에 이어걷기는 
 사전답사 없이 진행되는 초행길이며, 숙식에 대한 예약도 없이 무작정 출발합니다.
여행 중에 숙박 및 식사는 상황에 따라서 하게 됩니다.
즉, 숙박 장소를 예약하지 않아 적당한 곳을 찾아야 하고, 식사도 적당한 곳에서 하게 될 겁니다.
다시 말해 잠자리와 먹거리 걱정을 하면서 걸어야 하며, 때에 따라서는 최악의 경우가 생길 수도 있습니다. 
잠자리와 먹거리에 대한 대책 없이...

 코스에 대한 사전답사 없이...

'낯선 곳으로의 여행은 두렵지만 매혹적이다'라는 말처럼

낯선 곳으로 무작정 떠나볼까 합니다.
 이점 양지하시기 바랍니다.

시비 없는 좋은 여행을 위해 적정인원으로 진행합니다."


 해서 5명의 인원이 무작정 떠나는 '3박 4일에 소백산 자락길 한 번에 이어걷기'를 하게 되었고...
 
 
소백산 자락길 한 번에 이어걷기를 하면서...
 
일단 '3박4일에 소백산 둘레길 12자락 이어걷기'가 예정했던 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제1일차는
4자락 종점 기촌리를 지나 약 5km 더 걸어서 5자락 대대리까지 가고자 하였으나 기촌리에서 멈추어야 했다.
무작정 떠나면서 첫날 숙박장소로 염두에 둔 대대리의 몇군데 숙박 장소들이 때마침 휴가 피크타임과 겹쳐서 빈 곳이 없단다.
그렇지만 함께 한 님들과 지혜를 짜내어 아주 특별한 곳에서 숙식을 해결할 수 있었다.
 
제2일차는
시작을 예정과 달리 대대리가 아닌 기촌리에서부터 시작하게 되었고, 중식을 준비하지 못한 관계로
6자락길 보발재에서 온달산성쪽으로 가지 못하고, 보발재에서 구인사로 가는 595번 지방도를 따라 걸었다.
구인사 입구 식당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온달산성관광지를 거쳐 나머지 구간을 걸어 영춘면사무소까지 걸었고...
이어 7자락길은 영춘면에서 동대리까지만 걷고, 의풍옛길입구에서 베틀재를 넘어 의풍리까지 구간은 택시로 이동하였다.
 
제3일차는
 8자락 시작점인 의풍분교에서부터 9자락을 거쳐, 10자락, 그리고 11자락의 남절마을까지는 잘 걷다가...
남절마을(→원통1.3km)에서 자락길 안내표시를 따라 '→원통1.2km' 지점을 지나 이름모를 작은 고개에 올라서니...
고개마루는 '소백산 자락길 시그널'이 나뭇가지에 걸려 있는 4거리인데, 소백산 자락길 방향표시가 없지만
산으로 이어지는 좌우능선길이 아닌 '소백산 자락길'이라고 판단되는 정면의 수풀길을 지나 잠시 길을 이어가는데...
잠시 후에 수풀이 무성한 곳을 밀림을 헤쳐나가듯 가는데 길을 잘못 들었나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로 길을 헤쳐나가기 힘들었다.
혹시 길을 잘못 들었나 하는 생각에..., 일행들과 이런 길을 헤쳐나가는 것이 무리라 판단되어 일단 '고개 4거리'까지 되돌아왔다.
 
고개4거리에서 다시 살펴보았으나 조금 전에 걸었던 길이 소백산 자락길을 제대로 찾아가는 길이 맞다고 판단 되었지만...
곧 어둠이 밀려드는 시각인지라 일행들과 다시 원통(원티)을 향해 밀림 같은 수풀을 헤치고 나가는 것은 무리라 여겨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좌측 산능선을 따라 올라보니 능선마루에는 묘가 보이고, 반대편으로 내려가는 희미한 길이 보이기에
일행들과 함께 능선을 따라 작은 언덕 두어 개를 넘어 논두렁을 따라 '남절마을'로 내려서서 마을길을 따라 노곡리까지 걸어나갔다.
노곡리에서 좋은 주민을 만나 물과 시원한 수박을 얻어 먹고 택시를 불러주어 세쨋날 숙박장소인 좌석리로 이동하였다.
 
제4일차는
12자락 시점인 좌석리(좌석2교)에서 시작하여 자작재와 점마, 덕현을 거쳐 12자락 종점인 배점주차장까지 간 후,
배점주차장에서 1자락의 금성단과 소수서원 구간은 왕복을 해야 하는데 일정상 생략하고 바로 '죽계구곡'을 향해 올랐다. 
점심식사를 할 마땅한 곳이 없는 죽계구곡 옛길을 따라 오르다가 초암사에 들러 점심을 얻어먹고 힘내어 갔다.
 
1자락 종점인 삼가야영장 옆에 소백산 자락길 홍보관에 들러 홍보물을 사진으로 찍으며 생각했다.
이곳에 이런 홍보관을 짓고 운영하는 경비로 자락길 안내표시에 신경쓰고, 여름철에 수풀이나 제거해 줬으면 하고...
그리고 여러 곳의 지명이 현지인이 쓰는 것과 다르게 적혀 있던데 실사를 하여 제대로 수정했으면 좋겠다고...
 
2자락 시점 삼가주차장에서부터 금계저수지, 금선정 지나고 풍기소방서를 거쳐 풍기역으로 돌아와서 3박4일의 여정을 마쳤다.
 
 
 
소백산 자락길 한 번에 이어걷기를 하고나서...
 
 인디언 속담에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는 말이 있다.
맥가이버는 혼자 빨리도 가봤고, 혼자 멀리도 가뵜지만 이번엔 함께 가기 위해 길을 나섰었다.
 
누군가가 그랬다.
'낯선 곳으로의 여행은 두렵지만 매혹적이다.'라고...
낯선 길을 걸으면서 먹을 곳과 잘 곳을 걱정하며 길을 찾아가는 즐거움!
한발 한발 내디딜 때마다 만나는 새로움!
그것은 이번 도보여행의 매력이었다.
 
'늘 언제나 항상 변함없이'
'서로 같이 함께 더불어'
'내가 꿈을 이루면 그 꿈은 또다른 이의 꿈이 된다.'
 
맥가이버가 좋아하고 즐겨쓰는 말이다.
  
 덥고 습한 날씨 속에서도 긴 길을 함께 걸어준 좋은 님들께 감사드린다.
 
'모든 만남은 걷고 있을 때 이루어진다'라는 말이 있는데,
길을 걷다보면 새로운 풍광을 보게 되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게 되고, 새로운 경험을 하고, 새로운 것을 알게 된다.
 
☞ '3박 4일에 소백산 자락길 12자락 한 번에 이어걷기'를 다녀오다
자세한 이야기는 맥가이버의 블로그 사진후기로 대신한다.

  

맥가이버가 '때론 함께, 때론 홀로' 산행이나 여행, 도보를 하면서 후기를 주로 사진으로 작성함은

인간의 만남이 유한함을 알기에 어떤 연유로 비록 언젠가 헤어지더라도 추억 속에서 함께 하고자 함이고,

또 하나 이유가 있다면 걸으면서 보고 느낀 것을 글로 다 표현치 못하는 무능함에 있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를 더 든다면 누군가가 같은 길을 걷고자 할 때 작은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입니다.

 

 

'3박 4일에 소백산 자락길 12자락 한 번에 이어걷기'를 다녀오다 - 제3일차 제3부를 시작하며...

 

 

▼ 12시 43분 - 물야저수지(오전댐)

 

▼ 12시 43분 - 물야저수지(오전댐)에서...

 

▼ 915번 지방도를 따라...

 

 

 

 

▼ 12시 52분 - 후평리 버스정류장에서...

 

 

▼ 후평리 마을로 들어서서...

 

▼ 12시 53분 - 후평교를 건너...

 

 

▼ 후평쉼터

 

 

 

 

 

 

 

 

 

 

▼ 12시 58분 -

 

 

 

▼ 13시 00분 -

 

 

▼ 13시 01분 -

 

 

 

▼ 13시 02분 -

 

 

 

 

 

 

 

 

 

 

 

 

 

 

 

 

 

▼ 13시 14분 -

 

▼ 13시 14분 -

 

 

 

 

 

 

▼ 13시 28분 -

 

 

 

 

▼ 13시 37분 -

 

 

 

 

 

 

▼ 13시 43분 -

 

 

 

 

 

 

▼ 13시 56분 -

 

▼ 13시 56분 -

 

 

 

 

 

 

▼ 14시 21분 - 소백산 자락길 11자락 시작점

 

 

 

 

 

▼ 14시 26분 - 부석사 후문 매표소

 

 

 

 

 

 

 

 

부석사[浮石寺]
경북 영주시 부석면 봉황산(鳳凰山) 중턱에 있는 절.
 

종파 : 해동 화엄종
창건시기 : 676년 (신라 문무왕 16)
창건자 : 의상조사
소재지 : 경상북도 영주시 부석면 부석사로 345(북지리 148)

 

한국 화엄종(華嚴宗)의 근본도량(根本道場)이다.

676년(신라 문무왕 16) 의상(義湘)이 왕명을 받들어 창건하고, 화엄의 대교(大敎)를 펴던 곳으로,

창건에 얽힌 의상과 선묘(善妙) 아가씨의 애틋한 사랑의 설화는 유명하다.

 

1016년(고려 현종 7)에 원융국사(圓融國師)가 무량수전(無量壽殿)을 중창하였고

1376년(우왕 2)에 원응국사(圓應國師)가 다시 중수하고, 이듬해 조사당(祖師堂)을 재건하였다.

그 후 여러 차례 중수와 개연(改椽)을 거쳐 1916년에는 무량수전을 해체 수리하였다.

 

경내에는 무량수전(국보 18)·조사당(국보 19)·소조여래좌상(塑造如來坐像:국보 45)

·조사당 벽화(국보 46)·무량수전 앞 석등(국보 17) 등의 국보와

3층석탑·석조여래좌상·당간지주(幢竿支柱) 등의 보물,

원융국사비·불사리탑 등의 지방문화재를 비롯하여

삼성각(三聖閣)·취현암(醉玄庵)·범종루(梵鐘樓)·안양문(安養門)·응향각(凝香閣) 등 많은 문화재가 있으며

또 신라 때부터 쌓은 것으로 믿어지는 대석단(大石壇)이 있다.

 

의상은 제자가 3,000명이나 있었다고 하며 그 중에서 10대덕(十大德)이라 불리는

오진(悟眞)·지통(智通)·표훈(表訓)·진정(眞定)·진장(眞藏)·도융(道融)·양원(良圓)·상원(相源)·능인(能仁)·의적(義寂) 등은

모두 화엄을 현양(顯揚)시킨 승려들이었다.

 

이 밖에도 《송고승전(宋高僧傳)》에 그 이름이 보이는

범체(梵體)나 도신(道身)및 신림(神琳) 등도 의상의 훌륭한 제자였으며

의상 이후의 부석사와 관계된 고승으로는

혜철국사(惠哲國師)·무염국사(無染國師)·징효대사(澄曉大師)·원융국사·원응국사 등이 그 법통을 이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부석사 [浮石寺] (두산백과)

 

 

부석사[浮石寺]

경상북도 영주시 부석면 북지리 봉황산(鳳凰山)에 있는 절.


대한불교조계종 제16교구 본사인 고운사(孤雲寺)의 말사이다.

676년(문무왕 16) 2월에 의상(義湘)이 왕명으로 창건한 뒤 화엄종(華嚴宗)의 중심 사찰로 삼았다.

 

≪삼국유사≫에 이 절의 창건설화가 수록되어 있다.

당나라로 불교를 배우기 위하여 신라를 떠난 의상은 상선(商船)을 타고 등주(登州) 해안에 도착하였는데,

그곳에서 어느 신도의 집에 며칠을 머무르게 되었다.

그 집의 딸 선묘(善妙)는 의상을 사모하여 결혼을 청하였으나, 의상은 오히려 선묘를 감화시켜 보리심(菩提心)을 발하게 하였다.

 

선묘는 그때 “영원히 스님의 제자가 되어 스님의 공부와 교화와 불사(佛事)를 성취하는 데 도움이 되어드리겠다.”는 원을 세웠다.

의상은 종남산(終南山)에 있는 지엄(智儼)을 찾아가서 화엄학을 공부하였다.

그 뒤 귀국하는 길에 의상은 다시 선묘의 집을 찾아 그 동안 베풀어준 편의에 감사를 표하고 뱃길이 바빠 곧바로 배에 올랐다.

 

선묘는 의상에게 전하고자 준비해 두었던 법복(法服)과 집기(什器) 등을 넣은 상자를 전하기도 전에 의상이 떠나버렸으므로,

급히 상자를 가지고 선창으로 달려갔으나 배는 이미 떠나가고 있었다.

 

선묘는 의상에게 공양하려는 지극한 정성으로 저만큼 떠나가는 배를 향해 기물상자를 던져 의상에게 전하고는,

다시 서원(誓願)을 세워 몸을 바다에 던져 의상이 탄 배를 보호하는 용이 되었다.

용으로 변한 선묘는 의상이 신라에 도착한 뒤에도 줄곧 옹호하고 다녔다.

 

의상이 화엄의 대교(大敎)를 펼 수 있는 땅을 찾아 봉황산에 이르렀으나 도둑의 무리 500명이 그 땅에 살고 있었다.

용은 커다란 바위로 변하여 공중에 떠서 도둑의 무리를 위협함으로써 그들을 모두 몰아내고 절을 창건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의상은 용이 바위로 변하여서 절을 지을 수 있도록 하였다고 해서 절 이름을 부석사로 하였다고 한다.

 지금도 부석사의 무량수전(無量壽殿) 뒤에는 부석(浮石)이라는 바위가 있는데, 이 바위가 선묘용이 변화했던 바위라고 전한다.

 

창건 후 의상은 이 절에서 40일 동안의 법회를 열고 화엄의 일승십지(一乘十地)에 대하여 설법함으로써

이 땅에 화엄종을 정식으로 펼치게 되었다.

특히, 의상의 존호를 부석존자(浮石尊者)라고 칭하고

의상의 화엄종을 부석종(浮石宗)이라고 부르게 된 것은 모두 이 절과의 연관에서 생겨났다.

 

의상 이후의 신라 고승들 가운데 혜철(惠哲)이 이 절에서 출가하여 ≪화엄경≫을 배우고 뒤에 동리산파(桐裏山派)를 세웠고,

무염(無染) 또한 이 절에서 석징(釋澄)으로부터 ≪화엄경≫을 배웠으며,

절중(折中)도 이 절에서 장경(藏經)을 열람하여 깊은 뜻을 깨우쳤다고 한다.

 

고려시대에는 이 절을 선달사(善達寺) 또는 흥교사(興敎寺)라고 하였는데,

선달이란 선돌의 음역으로서 부석(浮石)의 향음(鄕音)이 아닐까 하는 견해도 있다.

 

또, 고려 정종 때의 결응(決凝)은 이 절에 머무르면서 대장경을 인사(印寫)하고,

절을 크게 중창한 뒤 1053년(문종 7)에 이 절에서 입적하였다.

1372년(공민왕 21)에는 원응국사(圓應國師)가 이 절의 주지로 임명되어 퇴락한 당우를 보수하고 많은 건물들을 다시 세웠다.

 

그 뒤 조선시대의 역사는 자세히 전하지 않으나 1580년(선조 13)에 사명당(泗溟堂)이 중건하였으며,

1746년(영조 22)에 화재로 인하여

추승당(秋僧堂)·만월당(滿月堂)·서별실(西別室)·만세루(萬歲樓)·범종각 등이 소실된 것을

그 뒤에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국보 제18호인 부석사무량수전과 국보 제19호인 부석사조사당(浮石寺祖師堂)을 비롯하여,

조선시대 후기의 건물인 범종루(梵鐘樓)·원각전(圓覺殿)·안양루(安養樓)·선묘각(善妙閣)·

응진전(應眞殿)·자인당(慈忍堂)·좌우요사(左右寮舍)·취현암(醉玄庵) 성보전시관 등이 있다.

 

이들 가운데 범종루와 안양루는 대표적인 누각이고,

원각전·응진전·자인당은 법당이며,

선묘각은 부석사의 창건연기와 인연이 있는 선묘의 영정을 봉안하여둔 곳이다.

 

범종루는 사찰의 중문(中門)에 해당하며,

본전을 향하는 입구 쪽에서는 팔작지붕을 하고 반대방향은 맞배지붕이므로

일반 사찰건축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특이성을 보이고 있다.

정면 3칸, 측면 4칸의 2층 누각으로서,

누각에는 ‘鳳凰山浮石寺(봉황산부석사)’라는 편액이 있을 뿐 범종은 없다.

 

안양루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다포집으로서,

누각 안에는 부석사의 현판기문을 모아두었는데,

그 안에는 사명당이 쓴 <안양루중창기>가 있다.

 

또, 취현암은 원래 조사당 옆에 있었던 부석사의 선원(禪院)이었으나, 일

제강점기에 이전되어 현재는 주지실과 종무소(宗務所)로 사용되고 있다.

 

중요문화재로는 국보 제17호인 부석사 무량수전앞석등과 국보 제45호인 부석사소조여래좌상,

국보 제46호인 부석사조사당벽화, 보물 제249호인 부석사삼층석탑, 보물 제255호인 부석사당간지주,

보물 제735호인 부석사고려각판,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27호인 부석사원융국사비 등이 있다.

이 가운데 원융국사비는 절의 동쪽 500m 지점에 위치하며 1054년에 건립한 것이다.

 

또, 삼층석탑은 본래 부석사의 동쪽 약사골 동방사지(東方寺址)에 있던 것을 이건한 것으로,

이건할 때 전라북도 익산의 왕궁리탑(王宮里塔)에서 출토된 사리를 탑 안에 봉안하였다.

그리고 부석사의 동쪽 언덕에는 10여 기의 부도가 안치되어 있는데, 그 중 1기는 고려 말의 부도로 보인다.

 

이 밖에도 이 절에는 석룡(石龍)을 비롯하여 대석단(大石壇)·선묘정(善妙井)·녹유전(綠釉塼)·선비화(禪扉花)·석조(石槽)·맷돌 등이 있다.

석룡은 절의 창건과 관련된 것으로 현재 무량수전 밑에 묻혀 있는데,

머리 부분은 아미타불상 바로 밑에서부터 시작되며, 꼬리 부분은 석등 아래에 묻혀 있다고 한다.

일제강점기에 이 절을 개수할 때 이 거대한 석룡의 일부가 묻혀 있는 것이 발견되었으며, 자연적인 용의 비늘 모습이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선묘정은 절의 동쪽에 있는데, 가뭄이 있을 때는 기우제를 드렸다고 한다.

 

대석단은 신라시대에 축조한 것으로 절의 입구에 있다.

거대한 축석(築石)을 사용한 것이 아니라 크고 작은 면석(面石)을 섞어 쌓은 것이 특징이다.

이 석단은 3단으로서 극락세계의 구품연화대(九品蓮花臺)를 상징한다는 설이 있으나 명확한 근거는 없다.

무량수전 앞에 안양루를 오르는 석단이 2단으로 조성되었으므로,

 대석단과 합하여 상·중·하의 셋으로 보는 가람 경영방법의 하나로 볼 수도 있다.

 

녹유전은 가로와 세로가 14㎝의 정방형 기와로서 두께는 7㎝이며,

벽돌 표면에 0.3㎜ 정도의 녹유를 발라 광택을 내게 한 신라시대의 유품이다.

이것은 ≪아미타경≫에 극락세계의 땅이 유리로 되어 있다고 한 것에 입각하여 무량수전의 바닥에 깔았던 것이다.

 

선비화는 의상이 사용했던 지팡이를 꽂아 놓았더니 살아난 것이라 하는데,

 ≪택리지 擇里志≫에 의하면 의상이 죽을 때 “내가 여기를 떠난 뒤 이 지팡이에서 반드시 가지와 잎이 날 것이다.

이 나무가 말라죽지 않으면 내가 죽지 않으리라.” 하였다는 기록이 전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부석사 [浮石寺]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 14시 36분 - 부석사 무량수전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榮州 浮石寺 無量壽殿]
경상북도 영주시 부석면(浮石面) 북지리(北枝里) 부석사에 있는 고려 중기의 건물.
 

지정종목 : 국보
지정번호 : 국보 제18호
지정일 : 1962년 12월 20일
소재지 : 경상북도 영주시 부석면 북지리 부석사
시대 : 고려
크기 ; 정면 5칸, 측면 3칸


1962년 12월 20일 국보 제18호로 지정되었다.

정면 5칸, 측면 3칸, 단층 팔작지붕 주심포계 건물이다.

부석사(浮石寺)의 본전(本殿)으로서 676년(신라 문무왕 16) 의상대사(義湘大師)가 왕명을 받들어 창건하였다.

 

그후 몇 번의 중창(重創)이 있었고, 조선 광해군(光海君:1608∼1623) 때 단청(丹靑)을 하였다.

이곳에는 국보 제45호인 소조여래좌상을 모시고 있는데, 무량수전의 건물이 남향(南向)인데 비해 이 불상만 동향(東向)인 점이 특이하다.

추녀의 네 귀를 8각 활주로 받쳐주고 있다.

전면(前面) 기둥 사이에는 중앙어간(中央御間)과 양협간(兩夾間)에 분합문을 달아 출입하도록 하고 단간(端間)에는 창문을 달았다.

기둥에는 알맞은 배흘림이 안정감을 주며 간결한 두공(枓栱)과 우주(隅柱)에 보이는 귀솟음 수법은 건물 전체를 한층 더 돋보이게 한다.

자잘한 정자살 분합문 위에 시원스런 포벽(包壁), 그 위에 가늘고 긴 기왓골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이 불전(佛殿)은 1916년의 해체, 수리 때 발견된 묵서명(墨書銘)에 의하면 1376년(고려 우왕 2) 중창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구조수법이나 세부양식이 묵서명 연대의 건물로는 볼 수 없고, 적어도 13세기 초까지 올려볼 수 있다.

그 이유의 하나는 같은 경내에 있는 조사당(祖師堂)이 1377년(고려 우왕 3)에 건립되었다는 묵서명이 나왔고,

이 건물과 비교할 때 100년 내지 150년 정도 앞섰다고 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목조건물 중 봉정사 극락전(국보 제15호)과 더불어 고대 사찰건축의 구조를 연구하는 데 매우 중요한 자료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 [榮州 浮石寺 無量壽殿] (두산백과)

 

 

 

 

 

 

 

 

 

 

 

 

 

 

▼ 14시 21분 - 부석사 일주문을 지나...

 

 

▼ 부석사 당간지주

 

▼ 14시 58분 - 부석사 안내도에서...

 

 

 

 

 

 

 

 

 

 

▼ 15시 02분 - 부석사 앞 종점식당에서 늦은 점심식사를 하고...

 

▼ 15시 58분 - 주인의 환송을 받으며...

 

 

 

☞ 여기서 '3박 4일에 소백산 자락길 12자락 한 번에 이어걷기'를 다녀오다 - 제3일차 제3부를 마치고...

 

 

 

 

 2013년 08월 03일(토) ~ 06일(화)  

 3박 4일에 소백산 자락길 12자락 한 번에 이어걷기를 다녀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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