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산행·도보여행정보☞/♡ 산행·여행 지도 & 정보

[부산 금정산 지도]부산 금정산 등산지도 등산코스 & 금정산성 등산코스 등산안내도 모음

by 맥가이버 Macgyver 2013. 12. 16.

[부산 금정산 지도]부산 금정산 등산지도 등산코스 & 금정산성 등산코스 등산안내도 모음

 부산 금정산 종주 & 부산 금정산성 일주를 위하여

▼ 아래 [부산 금정산 지도]부산 금정산 등산지도 등산코스 & 금정산성 등산코스 등산안내도'를 클릭하면 확대됨.

 

▼ 아래 [부산 금정산 지도]부산 금정산 등산지도 등산코스 & 금정산성 등산코스 등산안내도'를 클릭하면 확대됨.

  

▼ 아래 [부산 금정산 지도]부산 금정산 등산지도 등산코스 & 금정산성 등산코스 등산안내도'를 클릭하면 확대됨.

 

금정산[金井山:801m]
 부산광역시 금정구와 경상남도 양산시 동면(東面) 경계에 있는 산.


높이는 801m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의 '동래현 산천조', 《동래부지》 등에 따르면,

산정에는 높이 3장(丈:1장은 10자) 정도의 돌이 있고 샘은 둘레가 10여 자[尺]이고 깊이가 7치[寸]로서

늘 물이 차 있으며 가뭄에도 마르지 않고 금빛이 났는데, 금색 물고기가 5가지 색의 구름을 타고 하늘에서 내려와

그 샘에서 놀았다는 전설에서 산이름이 유래되었다고 전해진다.

 

백두대간의 끝자락에 해당하는 산으로,

주봉(主峰)인 고당봉은 낙동강 지류와 동래구를 흐르는 수영강(水營江)의 분수계를 이루는 화강암의 봉우리이다.

 

북으로 장군봉(727m), 남쪽으로 상계봉(638m)을 거쳐 백양산(642m)까지 산세가 이어져 있고

그 사이로 원효봉·의상봉·미륵봉·대륙봉·파류봉·동제봉 등의 준봉이 나타난다.

 

규모는 그리 크지 않으나 나무와 물이 풍부하고 화강암의 풍화로 인한 기암절벽이 많다.

북쪽으로 산정으로부터 남쪽으로 ㄷ자형을 이루는 금정산성(金井山城:사적 215)이 있는데,

성은 삼국시대에 축성되었으며 한국 옛 산성 중 규모가 웅대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산중에는 약수터가 14군데 있고 수목 2,300여 종과 600여 마리의 동물이 서식하고 있다.

산의 북동쪽 계곡부에 한국 5대 사찰 중 하나인 범어사(梵魚寺)가 있으며,

주변 기슭에는 금강공원(金剛公園)·성지곡공원 등이 조성되었다.

금강공원에서 산성고개에 이르는 케이블카가 있고,

이 산은 민속촌·어린이공원·휴가촌·골프클럽 등을 갖춘 관광단지로서, 부산시민의 휴식·소풍지가 된다.

 

[출처: 두산백과]


 

금정산[金井山]

부산광역시 금정구와 경상남도 양산시 동면에 걸쳐 있는 산.


높이 801m. 태백산맥이 남으로 뻗다가 한반도 동남단 바닷가에 이르러

부산 북쪽에 솟은 명산으로, 부산의 진산이기도 하다.

최고봉은 북쪽의 고담봉(801m)이며,

북으로 장군봉·계명봉(602m), 남으로는 원효봉(687m)·의상봉·파리봉·상계봉 등

600m 내외의 봉우리들이 백양산(白陽山, 642m)으로 이어진다.

 

낙동강과 수영강(水營江)의 분수계가 되며,

낙동강의 지류인 화명천(華明川)을 바라보고 ㄷ자형을 하고 있다.

산정부는 각섬석화강암(角閃石花崗岩)으로 되어 있으나,

그 남동부는 마산암류(馬山岩類), 북부는 안산암질암류(安山岩質岩類)로 구성되어 있다.

 

산정의 능선상에는 암반이 노출된 첨봉이 많으며, 대체로 동쪽과 남쪽은 급사면이고 북쪽은 완사면을 이룬다.

급사면상에는 주빙하환경(周氷河環境)의 산물로 보이는 암괴류(岩塊流)와

사력(砂礫)이 덮여져 있고 이들 사이에 송림이 우거져 있다.

 

이 산은 주릉 북동쪽에 있는 범어사로 인하여 더욱 잘 알려져 있다.

범어사 서쪽에는 주봉인 고담봉이 솟아 있고, 북쪽으로 장군봉

동쪽에는 계명봉 능선이 에워싸서 동래온천장과 항도(港都) 부산을 발 아래로 한다.

 

≪삼국유사≫에는 ‘금정범어(金井梵魚)’로 기록되어 있어,

신라시대부터 널리 알려졌고 항상 금정산과 범어사를 연결지어 왔음을 짐작할 수 있다.

 

≪동국여지승람≫에는 산이름 유래에 대해, “동래현 북쪽 20리에 금정산이 있고,

산꼭대기에 세 길 정도 높이의 돌이 있는데 그 위에 우물이 있다.

둘레가 10여 척이며 깊이는 일곱 치쯤 된다.

물은 마르지 않고 빛은 황금색이다.

 

전설로는 한 마리의 금빛 물고기가 오색구름을 타고 하늘에서 내려와

그 속에서 놀았다고 하여, 금정이라는 산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이로 인하여 절을 짓고 범어사라 이름지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동국여지승람≫보다 앞서 편찬된 ≪세종실록≫ 지리지에도 이와 거의 같은 내용이 적혀 있다.

즉, 금정은 금어(金魚)가 사는 바위 우물에서 유래된 것이다.

 

범어사는 678년(문무왕 18)에 의상이 창건한 화엄십찰의 하나로,

경상남도의 통도사·해인사와 더불어 3대 사찰의 하나이다.

20여 동의 가람과 신라 때의 석탑(보물 제250호)은 금정산과 더불어

부산 시민의 등산·야외 생활과 관광 명소로써 이름이 높다.

이 절 부근에 계명암을 비롯한 여섯 암자가 있어, 범어사 둘레의 명소를 이룬다.

 

이 밖에도 금정산성과 미륵암·정수암·국청사가 있고, 상계봉 남쪽엔 석불사가 있다.

금정산성은 사적 제215호로 되어 있고, 원래 동래읍의 외성으로 축성되어 동래산성이었으나 금정산성으로 개칭되었다.

 

산성은 임진왜란 후 당시 경상 감사의 진언으로 1703년(숙종 29)에 축성했고,

그 뒤 다시 증축하였으나 일제 강점기에 파괴, 훼손되었다가

1972년부터 2년간에 걸쳐 동·서·남 3문과 성곽 및 4개의 망루를 복원함으로써,

둘레 1만 7336m, 높이 1.5∼6m의 우리 나라 최대 산성이 되었다.

 

금정산 주변에는 양산군 동면의 높이 12m가 되는 음각의 마애여래입상,

장군봉에 있는 자연굴인 은동굴, 임진왜란 당시의 전몰호국무신을 모신 충렬사 등의 명소가 있다.

 이 밖에도 케이블카 시설·동식물원·민속관 등이 있는 금강공원(金剛公園),

산성마을·동래온천이 있어 부산 시민들이 즐겨 찾는다.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금정산성 (金井山城)

 

 

조선시대에 돌로 쌓은 석성으로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고 난 후인

숙종 29년(1703)에 국방을 튼튼히 하고 바다를 지킬 목적으로 쌓은 곳이다.

전체길이는 약 17km이다.

 

『증보문헌비고』에 의하면 박태항에게 책임지어 쌓게 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이에 앞서 현종 8년(1667) 통제사 이지형이 왕에게 금정산성을 고칠 것을

건의하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이미 오래 전에 쌓은 것으로 보인다.

 

낙동강 하구와 동래지방이 내려다 보이는 중요한 곳에 있어 바다로 침입하는 적에 대비한 성임을 알 수 있으며,

성의 크기나 성벽을 쌓은 양식으로 볼 때 처음 성을 쌓은 시기는 보다 앞선 시기까지도 올려 볼 수 있다.

숙종 33년(1707)에는 성이 너무 넓다 해서 성의 중간에 남북을 구분하는 성을 쌓았고

영조 50년(1774)에는 성이 너무 커서 지키기 어렵다 하여 일단 폐지하였다.

 

순조 6년(1806)에 성을 다시 고쳤으며, 성벽은 화강암을 자연석 그대로 이용하였다.

일제 강점기에 일본인들에 의해 파괴된 것을 1972년부터 1974년까지 동문·서문·남문을 복원하였으며,

1989년에 북문을 복원하였다.

 

현재 4㎞의 성벽이 남아 있으나,

조선 후기에 도성과 주변의 대규모 방어시설을 충실히 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우리나라 최대 규모의 산성으로 중요한 의의를 지니고 있다.

 


금정산성[金井山城]

 

부산광역시 금정구 금성동에 있는 삼국시대의 산성.

 

둘레 1만7336m,

지정면적 71만5468㎡.

사적 제215호.

 

금정산 꼭대기에서 서남으로 계곡을 따라 축성되었으며 동서남북 사방의 성문과 수구문·암문 등의 시설이 있다.

≪증보문헌비고≫에 의하면 이 성은 1703년(숙종 29)에 감사 조태동(趙泰東)이

동래부사 박태항(朴泰恒)으로 하여금 쌓게 한 것으로서, 둘레 9,011보(步), 높이 15척(尺)이라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이 이전인 1667년(현종 8) 통제사 이지형(李枝馨)이 왕에게 금정산성을 보수할 것을

건의하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미루어, 이보다 더 오래된 시기에 축성된 것으로 보이지만 확인할 수는 없다.

 

한편, 이 성이 낙동강의 하구와 동래 지방이 내려다 보이는 요충지에 위치하고 있어

바다로 침입하는 적에 대비하기 위한 성곽임이 확실하고,

또 성의 규모나 성벽의 축조양식으로 볼 때

처음 축성시기는 삼국시대까지도 올려볼 수 있어서

≪증보문헌비고≫의 축성기록은 초축(初築)이 아닌 수축(修築)으로 보인다.

 

그 뒤 1707년 동래부사 한배하(韓配夏)가 성이 너무 넓다 하여

남북 두 구역으로 구분하는 중성(中城)을 쌓고 장대(將臺)·군기고(軍器庫) 등의 시설을 보강하였다.

또한, 1806년 동래부사 오한원(吳翰源)이 성을 중수하고 동문을 신축하였으며

서·남·북문에 문루(門樓)를 만들고 수비군을 배치하였다.

 

이때의 길이는 32리로 기록되어 있으며, 당시 숙종 이래의 산성 수축공사의 경위를 새긴

금정산성복설비(金井山城復設碑)가 지금의 동래구 장전동에 건립되었다.

 

동쪽 성벽은 산꼭대기부터 500∼600m의 분수령을 따라 험준한 지형과 암벽을 이용하여 요새를 이루고 있다.

서쪽 성벽은 산꼭대기에서 구포방면의 능선과 계곡을 건너 동쪽 성벽으로 이어지고 있다.

성벽은 이곳에 많은 화감암을 자연석 그대로 1.5∼3m의 높이로 지형의 굴곡과 고저에 따라 쌓았으며,

중요한 부분에는 가공한 무사석(武砂石 : 네모 반듯하게 다듬어 높이 쌓아 올리는 돌)을 사용하였다.

 

성문에는 문루를 세웠고 서문 옆에는 3련의 홍예형 수구문을 설치하였으며,

성벽의 요소요소에는 보루와 암문을 설치하였다.

설치 당시 성내에는 중군소(中軍所)와 군기고 등 수비에 필요한 건물과

국청사(國淸寺)·해월사(海月寺) 등이 있었으나 현재는 국청사만이 남아 있다.

 

이 산성은 약 4㎞의 성벽이 남아 있으나 우리 나라 최대의 산성으로

중요한 의의를 지니고 있으며 1972년에 동문과 남문이, 1974년에 서문과 수구문 및 망루가 복원되었다.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 아래 [부산 금정산 지도]부산 금정산 등산지도 등산코스 & 금정산성 등산코스 등산안내도'를 클릭하면 확대됨.

 

 

▼ 아래 [부산 금정산 지도]부산 금정산 등산지도 등산코스 & 금정산성 등산코스 등산안내도'를 클릭하면 확대됨.

 

 

 

 

▼ 아래 [부산 금정산 지도]부산 금정산 등산지도 등산코스 & 금정산성 등산코스 등산안내도'를 클릭하면 확대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