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가지산] 계곡 많고 물 풍부한 ‘영남알프스 최고봉’
8월 ‘마운스토리’ 울산 가지산
가지산은 육산의 모습을 띠다가 정상 부위에 가서는 전형적인 악산의 형태를 보여 준다.
정상 비석 주변은 온통 암벽뿐이다.
영남알프스 으뜸봉 가지산迦智山·加智山(1,240m). 언제라도 가고 싶은 산이다. 영남알프스는 경남북에 걸쳐 한데 모여 있는 수많은 봉우리 중에 간월산(1,083m), 신불산(1,209m), 영축산(1,081m), 재약산(1,108m), 천황산(1,189m), 가지산, 고헌산(1,032m) 등 해발 1,000m 이상의 대표적인 7개 산군의 풍광이 유럽 알프스 못지않다고 해서 명명됐다. 알프스의 우뚝 솟은 설산의 형상에 비견할 바는 아니지만 그 아름다운 풍광은 알프스 못지않다는 의미이다.
가지산은 봄에는 진달래와 천연기념물 제462호 철쭉군락지가 등산객을 반긴다. 100여 만㎡에 있는 20여 만 그루의 철쭉군락지는 한국의 몇 안 되는 철쭉 천연기념물 중의 한 곳이다. 2005년 8월 ‘가지산 철쭉나무 군락지’란 이름으로 지정됐다. 여름엔 영남알프스 으뜸 봉우리를 뽐내기라도 하듯 골짜기마다 형성된 계곡에서 뿜어내는 풍부한 수량은 무더위를 식히기엔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석남사계곡·학소대폭포와 계곡, 심심이계곡, 학심이골, 오천평반석이 있는 쇠점골계곡, 호박소 용수골 등은 언제 가도 등산 후 탁족濯足을 즐길 수 있는 물이 흐른다. 가을의 대표 풍경인 억새와 단풍 또한 여느 산 못지않다. 한국에 단풍 좋지 않은 산이 어디 있을까 만은 전통적인 비구니 사찰인 석남사 주변 단풍을 한 번이라도 본 사람은 반드시 다시 찾게 하는 고운 색깔을 자랑한다.
아름다운 단풍을 만드는 필수조건인 풍부한 물이 온 산의 나무를 만산홍엽으로 물들인다. 억새 군락은 자타공인 전국 최고를 자랑한다. 겨울엔 영남알프스 최고봉답게 설경과 일출을 보기 위한 진정한 산꾼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특히 쌀바위 주변의 설경은 보는 이로 하여금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산꾼이 운영하는 식당 겸 대피소가 2개나 있을 정도.
봄 철쭉, 여름 계곡 등 사시사철 비경
한국의 명산이라 불리는 산들은 특정 계절이 더 아름답다고 구분하기 쉽지 않다. 가지산과 마찬가지로 사계절 모두 아름답고 가고 싶기 때문이다. 사계절 각각의 신이 있다면 가지산 사계의 신은 각각 “내 계절이 가장 비경이다”고 주장할 것 같다.
가지산은 이러한 명성에 걸맞게 1979년 일찌감치 도립공원으로 지정됐다. 영남알프스의 수많은 봉우리 전체를 포함시키지 않았지만 워낙 범위가 넓어 도립공원 면적도 전국 최고를 자랑할 정도다. 가지산과 더불어 영축산(일명 취서산)과 천성산(812m)·원효산(922m) 일원을 광범위하게 포함한다. 행정구역도 울산 울주군, 경남 밀양시, 경북 청도군 등에 걸쳐 있다. 그래서 가지산도립공원은 양산 통도사지구, 내원사지구, 석남사지구로 구분해서 부른다.
가지산을 여름 산으로 소개하는 이유는 계곡이 많고 수량이 풍부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와 관련한 스토리가 있기 때문이다. 이는 가지산과 운문산이 육산의 모습을 띠는 것과 무관치 않다. 물론 정상 부위는 전형적인 악산의 모습을 띠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육산에 가깝다.
풍수지리설에 의하면 가지산과 운문산은 육산의 여성성의 산으로, 수행하는 승려가 깨달을 즈음 되면 여자가 나타나 ‘10년 수행 도로아미타불’로 만든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그래서 아예 이를 방지하기 위해 석남사와 주변의 운문사·대비사는 전형적인 ‘여승’ 비구니 전문도량이며, 지금도 많은 비구니가 수도에 정진하고 있다.
보통 악산에 육산의 모습을 띠고, 육산에 악산의 형태를 띠면 명당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가지산 정상은 전형적인 명당의 조건을 충족한다. 철쭉 군락이 정상 부위 아래에 걸쳐 수십여 만 평을 형성하고 있으면서 유독 정상 부위는 암벽으로 이뤄져 있기 때문이다.
가지산 청도 방향에 있는 운문천.
정상에 서면 다른 영남알프스 봉우리들이 전부 발아래 있다. 하지만 조망하기 쉽지 않다. 가장 높은 봉우리인 만큼 항상 구름이 주변 봉우리를 가린다. 탁 트인 풍광을 즐길 수 있는 날은 운 좋은 날이다.
정상에는 두 개의 안내문이 눈에 들어온다. 운문산 생태·경관보전지역이라는 안내판에는 ‘이 지역은 까막딱따구리, 삵, 하늘다람쥐, 담비, 벌매, 올빼미 등 멸종위기 야생생물이 서식하고 있는 생태계의 보고입니다’라고 등산객들의 생태보전에 협조를 바라고 있고, 다른 안내판은 정상 비석 뒷면에 장문의 내용을 담고 있다.
‘가지산은 원래 석남산石南山이었으나, 1674년 석남사가 중건되면서 가지산으로 불리게 됐다고 한다. 신라 흥덕왕 때 전라도 보림사의 가지선사가 와서 석남사를 지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전해지기도 한다. 까치의 이두식 표기인 가치에서 비롯됐다는 설도 있다. 내륙 산들 가운데 가장 먼저 해돋이를 볼 수 있으며, 쌀이 꿀방울 흐르듯 또닥또닥 나온다는 전설을 가진 쌀바위도 유명하다. (후략)’
가지산의 원래 지명이 석남산이었다는 내용과 석남사의 유래가 눈길을 끈다. 가지산의 다른 명칭은 천화산穿火山·실혜산實惠山·석면산石眠山이라고도 불렸다고 전한다.
가지산 천연기념물 철쭉 군락지에 철쭉들이 관목이 아닌 교목같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다.
가지산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신라 말 구산선문 중의 하나인 가지산문이다. 구산선문은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뒤 불교가 한창 번성할 때 고승들이 중국에 가서 달마선법을 받아와 종풍을 크게 날릴 당시 아홉 개의 종파를 말한다. 실상산문·사굴산문·동리산문·성주산문·사자산문·희양산문·봉림산문·수미산문과 가지산문이 이에 속한다. 각 산문의 본산은 사자산문은 사자산에, 희양산문은 희양산과 같이 대개 그 산에 있다. 그렇다면 가지산이 당시의 기록에 어떻게 나올까?
<삼국유사>권5 신주편에서도 ‘밀본이 선덕왕의 병을 고치다’는 제목에 ‘국존 조계종이 가지산하 인각사 주지 원경충조대선사 일연이 찬하였다’는 내용이 소개된다. 이후 발간된 문집 <동국이상국집>과 <동문선>,<목은시고>에 ‘가지산迦智山’이란 지명이 나오지만 현재 위치와는 전혀 다르다. 여기에 등장하는 가지산은 전남 장흥에 있는 가지산을 말한다. 정상 비석 뒷면에 기록한 내용과 같이 장흥의 가지산 보림사에서 수도한 가지선사가 경상도 어느(석남산? 가지산?) 산에 석남사를 창건하면서 가지산의 유래가 시작됐다고 보면 별로 틀리지 않는다.
경상도의 가지산이나 석남사에 대한 내용은 조선 이전까지 어디에도 등장하지 않는다. 조선시대 들어 <조선왕조실록> 태종 7년(1407)에 ‘여러 고을의 복을 빌던 절을 명찰로 대신 지정하다’에 언양의 석남사도 명찰에 속하는 것으로 나온다. 이로 미뤄 볼 때 1407년 이전부터 석남사는 왕조로부터 명찰로 인정받을 만큼 위세를 가진 사찰이었던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런데 1530경 발간된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언양 석남사가 나오지 않는다. 같은 책 언양현편에 ‘석남산은 현의 서쪽으로 27리에 있다. 천화현穿火峴은 현의 서쪽 28리에 있으며 밀양부와 경계이다’라고 소개하고 있다. 석남산이란 지명은 관찬지리지에 공식적으로 처음 등장하지만 왕조실록에 명찰로 기록된 석남사는 없다. 불과 100여 년 전에 기록된 왕조실록에 등장한 명찰이 관찬 지리지엔 왜 빠졌을까. 이는 당시 제작자가 실수로 명찰 석남사를 빠트렸거나 아니면 태종 이후 석남사의 위세가 급격히 기울었던지 두 가지로 해석할 수 있다. 명찰이 불과 100여 년 만에 형편없이 추락한 뒤 사람들의 기억에 사라졌을 가능성은 시간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점을 고려할 때 제작자의 실수로 누락했을 가능성이 높다.
석남산→가지산→석남산→가지산으로 바뀌어
이후 1682년 제작된 고지도 <동여비고>에는 석남산이 표기돼 있다. 현재의 일부 문헌에 ‘가지산은 원래 석남산이었으나, 1674년 석남사가 중건되면서 가지산으로 불리게 됐다’고 하는데, 중건 이후 10여 년 뒤 제작된 지도 <동여비고>에 석남산이 명확히 나오는 걸로 봐서 이같은 내용은 잘못된 설명으로 보인다. <동여비고>를 통해 17세기 후반까지 석남산과 석남사로 명명됐을 것으로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석남산이란 지명은 18세기 들어 반전이 일어난다. 1700년대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신경준의 <산경표>에 낙동정맥 줄기로 단석산~운문산에 이어 가지산(여기서는 ‘迦智山’으로 표기)이 나오고, 뒤를 이어 천화현~취서산~원적산 등이 연결되어 있다. 이로 미뤄볼 때 1700년대 들어 석남산에서 가지산으로 바뀐 게 아닌가 추정할 수 있다.
어떤 사건이 전환점이 됐는지, 왜, 무슨 이유로 바뀌었는지에 관한 구체적 내용은 어느 문헌에도 찾을 수 없다. 단지 884년 도의국사에 의해 창건된 석남사가 임진왜란으로 소실된 뒤 1674년 중건된 이후 일정 기간 석남사와 석남산으로 불린 사실을 옛 문헌을 통해 확인할 수 있지만 1700년대 이후 석남산에서 가지산으로 바뀐 이유에 대해서는 파악할 수 없다.
이후 1800년대 중반 즈음, 즉 19세기 중반에 제작된 고지도 <대동여지도>와 <대동전도> 등에는 ‘가지산’으로 표기돼 있다. 자연스레 가지산으로 정착된 듯 보인다. 하지만 20세기 초 근대에 일제가 한반도 지명정리를 위해 제작한 <조선지지자료>에는 다시 석남산과 석남사로 통일돼 있다.
전형적인 여성성의 산으로 비구니 사찰 많아
정리를 하자면, 석남사란 명칭은 예나 지금이나 똑 같이 불리어왔지만 석남사를 끼고 있는 산은 최초 기록에는 석남산으로 표기되다가 1700년대를 기점으로 정확한 이유를 알 수 없지만 가지산으로 바뀐다. 몇 백 년간 가지산이란 지명을 사용하다가 20세기 들어 다시 석남산으로 지명정리를 했다는 게 지금까지 문헌을 관찰한 결과다.
아니면 계속해서 가지산과 석남산을 혼용해서 사용했지만 어느 시기에 하나의 명칭을 더 많이 사용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런데 지금은 다시 가지산으로 사용하면서 한자를 ‘加智山’으로 혼용해서 표기하고 있다.
전하는 얘기로는 가지산 지명유래에 대해 전라도 보림사의 가지선사라는 승려가 와서 석남사를 창건했다고 해서 가지산이라 명명했다는 설과 까치의 옛말 ‘가치’를 나타내는 이름이라는 설 등이 있다. 하지만 둘 다 별로 근거 없어 보인다. 차라리 불교에서 그 유래를 찾는 게 더 타당하리라 판단된다. 왜냐하면 신라나 고려는 불교국가였고, 당시 웬만한 사찰과 산지명은 전부 불교에서 유래했기 때문이다.
‘迦智山’의 불교적 의미는 ‘부처가 대비大悲와 대지大智로 중생을 돌보는 지혜를 가진 산’이란 의미다. ‘迦智’는 중생이 그 지혜를 만나서 배우고, ‘加智’는 그 지혜를 중생 스스로 더한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신라 말 구산선문 중 가지산문의 본산인 석남사라는 고찰에서 부처의 대자대비한 지혜를 중생에게 베풀어 주고, 중생들이 배우는 산이라는 의미로 명명됐을 것으로 해석하면 별 무리 없어 보인다.
하지만 두 가지 한자가 별 차이가 없어 그대로 뒀을지 모르겠지만 옛 문헌에 나오는 원래의 표기인 ‘迦智山’으로 통일하는 게 정확하리라 판단한다. 그리고 20세기 초 석남산으로 지명 정리를 했는데, 왜 다시 가지산으로 사용하는지에 대해 명확한 설명을 해주는 것도 국토지리정보원이나 지자체가 할 일이 아닌가 여겨진다.
가지산 등산로는 울산·밀양·청도 세 지자체에 걸쳐 있어 매우 다양하다.
먼저, 울산에서 가장 많이 이용하고 가장 짧은 코스인
▲석남터널~가지산 중봉을 거쳐 정상으로 올라가는 방법이다. 총 6km에 3시간 30분가량 소요. 가장 짧은 코스이기 때문에 초반부터 가파른 오르막으로 시작하는 단점이 있다.
▲석남사주차장에서 출발해서 석남고개~중봉을 거쳐 정상을 향하는 방법이다. 총 9.4km에 5시간 소요. 따라서 석남터널에서 올랐다가 석남사주차장, 즉 석남사로 하산하는 방법은 총 15.4km에 8시간 남짓 잡아야 한다.
▲운문령(재)에서 출발해서 귀바위~쌀바위를 거쳐 정상까지 오르는 방법이다. 총 9.6km에 4시간 30분가량 소요. 귀바위 암벽은 등반하기 좋아 전국에서 많은 바위꾼들이 찾는다.
밀양에서 출발하는 코스는
▲얼음골을 지나 구연폭포 호박소에서 출발해 석남고개와 가지산 중봉을 거쳐 정상까지 오르는 방법이다. 총 7.4km에 3시간 30분가량 소요.
청도에서 출발하는 코스는
▲운문사~사리암~심심계곡~아랫재를 거쳐 정상까지 가는 방법이다. 총 10.5km에 6시간가량 소요.
▲운문사~사리암을 거쳐 쌍폭과 학소대폭포를 지나 정상까지 가는 방법도 있다. 총 10.5km에 6시간 이상 소요. 청도에서 출발하는 코스는 운문산 생태·경관보호구역과 계곡을 지나야 하는 관계로 통제구간이 많거나 등산로가 길고 험한 코스가 많다.
글·사진 박정원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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