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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화(開花)의 법칙 ] 봄꽃, 한 해 전 여름부터 꽃눈 준비… 겨울잠 자야 피죠

by 맥가이버 Macgyver 2023. 3. 14.

[ 개화(開花)의 법칙 ]  봄꽃, 한 해 전 여름부터 꽃눈 준비… 겨울잠 자야 피죠

개화(開花)의 법칙

 /그래픽=유재일
 
 
추운 겨울이 지나고 따뜻한 봄이 오면 형형색색 꽃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해요. 겨울과 봄의 경계엔 동백이 먼저 펴요. 이어 매화→산수유→목련→개나리→진달래 등 순으로 봄꽃이 피어나지요. 식물은 왜 이렇게 시간을 달리하여 꽃을 피울까요. 봄꽃 세상에도 질서가 있다는데, 그 질서는 무엇이 만들어낼까요.

시차를 두고 차례로

진화생물학자들에 따르면, 식물이 꽃을 피우는 시기를 조절하는 것은 더 많은 자손을 퍼뜨리려는 전략이라고 해요. 식물은 동물처럼 좋은 환경을 찾아 옮겨 다니지 못하니 꽃 피는 시간이라도 달리해 경쟁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려는 것이래요.


식물은 항상 햇빛과 물, 땅속 영양분 등 자원을 얻고자 다른 식물과 경쟁해요. 또 수술의 꽃가루를 암술머리에 옮겨주는 곤충을 먼저 차지하기 위해서도 경쟁하지요. 잎이 나기 전 샛노란 꽃을 피우는 개나리는, 잎에서 영양분을 얻지 못해 꽃가루도 적고 꿀도 별로 없지만 다른 꽃보다 일찍 피기 때문에 꽃가루를 퍼뜨릴 곤충을 독차지할 수 있는 거예요.

한 나무 줄기에서도 시차를 두고 꽃이 피어요. 꽃대의 아래쪽에서 위쪽으로 올라가며 피거나 위에서 아래로 피거나 하지요. 꽃이 단번이 아니라 시차를 두고 피면 그만큼 피어 있는 시간이 늘고 꽃가루받이 확률도 높일 수 있겠지요. 식물이 개화 시기보다 너무 일찍 피면 꽃가루받이에 관여하는 곤충과 상호 관계가 깨질 수 있어요. 곤충이 등장하기도 전에 빨리 피고 져 버린다면 나무는 열매를 맺지 못하게 되고 번식도 할 수 없어요. 곤충도 꿀을 얻을 기회가 없겠지요.

색깔과 향기의 유혹

꽃의 색깔과 향기는 곤충을 유인하는 수단이에요. 곤충은 좋아하는 꽃 색깔과 향기가 제각각이에요. 그래서 식물은 자기가 원하는 곤충을 불러들이기 위해 독특한 꽃 색깔과 향기를 만들어요.


봄이 올락 말락 할 때쯤 수줍게 자태를 드러내는 동백꽃은 붉은색을 띠어요. 또 추울 때 피는 꽃이어서 꽃잎이 두꺼운데 그 속에 꿀이 저장돼 있어요. 이 꿀과 동백의 붉은색에 끌려서 찾아오는 동물은 곤충이 아닌 동박새예요. 나비와 벌이 활동하지 못하는 시기에 꽃을 피우고 꿀 향기와 아름다운 꽃으로 동박새를 유혹해 꽃가루받이를 맡기는 것이죠. 밤에 피는 박꽃과 달맞이꽃은 어둠 속에서도 잘 보이는 흰색과 노란색을 띠어요. 또 초롱꽃 같은 통꽃(꽃잎이 서로 붙은 꽃)은 벌이나 작은 곤충을 받아들이기 위해 지금과 같은 크기와 깊이의 초롱(호롱) 모양을 갖게 됐다고 합니다.

기온이 식물의 겨울잠 깨워

그렇다면 식물은 어떻게 봄이 온 것을 알고 꽃을 피울까요. 식물이 겨울잠에서 깨고 적당한 계절에 꽃을 피우는 것은 바로 온도와 일조 시간을 인지하는 식물의 정교한 메커니즘 덕분이에요. 같은 지역에서도 양지와 응달에서 꽃 피는 순서가 다른 것은 꽃대가 충분히 따스해져야 꽃눈이 나오기 때문이에요.


봄꽃의 꽃눈은 갑자기 생겨난 게 아니에요. 이미 여름부터 가을까지 준비한 거예요. 한 해 전부터 형성된 꽃눈은 추운 겨울 동안 낮은 온도 상태를 거쳐야 꽃을 피울 수 있어요. 이것을 춘화(春化) 현상이라고 해요. 주위 기온이 10도 정도의 환경으로 바뀌면 봄이 오는 것을 직감하고 꽃눈의 생장 억제 호르몬을 줄이는 대신 개화 호르몬(플로리겐·florigen)을 생성하기 시작해요. 그러면서 겨울잠의 깊이도 얕아져 한두 달 후에는 꽃눈을 틔울 상태가 돼요.

그렇다면 이제 막 겨울잠을 자기 시작한 개나리를 봄처럼 따뜻한 온실로 옮기면 어떻게 될까요. 꽃이 필까요. 아니에요. 오랜 기간 낮은 온도의 춘화 현상을 겪지 않은 개나리는 아무리 따뜻한 환경이 되더라도 꽃을 피울 때라고 여기지 않아 개화 호르몬 생성을 재촉하지 않는답니다.

개화 시기의 결정

꽃이 피는 시기는 햇빛이 비추는 시간으로도 결정돼요. 낮과 밤 길이(광주기·光週期)의 변화를 인지해 저마다 일정한 계절에 꽃을 피우지요. 빛은 식물이 자라는 시기, 꽃을 피울 시기, 열매 맺을 시기 등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식물엔 하루 중 빛이 비치는 시간(일조 시간)이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개나리는 꽃이 봄에 피는 데 반해 국화는 가을에 피는 것은 각각 일조 시간을 감지해 반응하기 때문이에요. 개나리처럼 낮이 길어지는 계절에 꽃을 피우는 식물을 장일(長日) 식물, 국화처럼 낮이 짧아지는 계절에 꽃을 피우는 식물을 단일(短日) 식물이라고 해요. 원예 식물은 대부분 일조 시간에 관계없이 꽃눈을 형성하는 중일(中日) 식물입니다.

광주기에는 빛(광)과 시간(주기)이라는 두 가지 물리적 개념이 포함돼 있어요. 빛을 인식하는 것은 잎에 있는 피토크롬이라는 감광 색소가 담당해요. 피토크롬이 빛의 양과 강도 등을 파악해 그 정보를 개화 시기 조절 유전자에 전달하지요. 그러면 개화 유전자가 온도·습도·일조량 등을 감지해 꽃눈을 발아시킬 준비를 합니다. 또 식물은 사람의 '배꼽 시계'처럼 '생물 시계'를 갖고 있어서 하루 중 낮의 길이가 짧은지, 긴지 파악할 수 있어요.

결론적으로 봄꽃은 생장 온도, 겨울 추위를 거치는 춘화, 광주기에 따른 식물 호르몬 조절, 개화 유전자의 발현 등으로 시기를 결정해 이른 봄부터 차례차례 피어나는 거예요. 서정주 시인은 '국화 옆에서'라는 시에서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라고 노래했습니다. 탐스러운 꽃 한 송이가 피는 과정에서 소쩍새 울음소리보다 훨씬 많은 요소가 식물에 영향을 주고 있는 셈입니다.
기획·구성=안영 기자 김형자 과학 칼럼니스트
 
 
출처 :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