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16일(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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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흥국사 성임당탑에서...
남양주 흥국사 성임당탑
(南楊州 興國寺 聖任堂塔)
남양주 흥국사 성임당탑(南楊州 興國寺 聖任堂塔)은 대한민국 경기도 남양주시 별내면 흥국사 경내를 조금 벗어난 동북쪽 낮은 능선상에 있는 탑이다.
1985년 6월 28일 경기도의 유형문화재 제203호로 지정되었다.
개요
흥국사의 창건 시기는 알 수 없지만 1568년 선조가 덕흥대원군의 원당을 짓고 흥덕사라는 이름을 내렸다고 한다.
국왕이 1626년(인조 4년) 다시 제각을 짓는 등 중건하여 절 이름을 '흥국사'라고 내려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후에도 국왕의 지원에 의한 여러번의 중수가 있었던 것으로 보아 조선후기 왕실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던 사찰이었음을 알 수 있다.
성임당탑은 경내를 벗어난 동북쪽 낮은 능선 상에 자리잡고 있으며, 원위치로 보인다.
지대석을 제외한 기단부와 옥개석은 팔각으로, 탑신석과 상륜부는 원형으로 신라시대 이래 유행한 팔각원당형 양식을 계승하였다.
이 부도는 석조부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인 탑신석을 원구형으로 마련하여 원구형 부도 양식에 속한다.
기단부의 연화문과 좌우로 길게 뻗은 안상, 높은 옥개석, 연주문이 표현된 상륜부는 건립 시기가 조선후기 임을 알 수 있게 한다.
탑신석 상부에는 '성임당축존지탑'이라는 명문이 있어 주인공 당호가 성임당이며, 법명이 축존이었음을 알 수 있다.
아직 성임당의 행적이 구체적으로 밝혀지지 않아 정확한 건립시기는 알 수 없지만, 부도의 양식과 돌을 다듬는 수법으로 보아 18세기를 전후한 시기에 건립된 것으로 보인다.
이 부도는 조선후기 경기도와 강원도를 중심으로 성행한 부도들과 친연성을 보이고 있으며, 규모가 대형이다.
따라서 부도의 주인공이 유력한 승려였음도 알 수 있다.
[출처] 위키백과
남양주 흥국사 소조 석가여래삼존 좌상 및 16나한상 일괄
南楊州 興國寺 塑造 釋迦如來三尊 坐像 및 十六羅漢像 一括
시대 : 조선 전기
유형 : 유물
분야 : 예술·체육/조각
요약
경기도 남양주시 흥국사에 있는 조선시대 소조석가여래삼존상 및 16나한상 일괄.
개설
2013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흥국사 영산전에 봉안된 소조석가여래삼존상 및 16나한상으로, 국가유산 조사과정 중에 발원문과 바닥면 묵서 기록을 통해 1650년에 중수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원래의 조성시기는 1650년보다 빠른 조선 전기의 불상으로 추정된다.
2011년 3월 소조석가삼존불좌상만 경기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가 이후 기록들이 발견되면서 소조석가삼존불좌상을 포함한 모든 존상들이 보물로 지정되었다.
흥국사 영산전에 석가여래를 중심으로 좌우에 보살상들이 봉안되어 있고 16나한상, 제석천상, 사자상 2구, 인왕상 1구 등의 권속상들은 남양주시립박물관에 모셔져 있다.
내용
존상들 가운데 석가여래상과 제1빈두로발라타사존자상(第一賓頭盧跋羅墮闍尊者像), 제15아씨다존자상(第十五阿氏多尊者像) 내부에서 발원문을 포함하여 복장유물이 발견되었다.
복장유물 물목은 석가여래상에 1650년 발원문과 후령통, 사리 · 오색사 · 쇠못(후령통 내부 납입),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 다라니 등이 봉안되어 있었다.
그리고 제1존자상에는 1892년 원문 1매, 제15존자상은 후령통, 『묘법연화경』, 『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 다라니 등이 있었다.
석가여래상 발원문에는 1650년 8월 조성 기록과 발원 목적 등을 기록하였다.
그리고 제1존자상 발원문에는 1892년에 16성상을 전라도 고산(高山) 안심사(安心寺) 약사암(藥師庵)에서 흥국사로 이안한다는 내용이 적혀 있어, 16나한상의 경우 현재의 전북특별자치도 완주군 안심사에서 이안해 왔음을 알 수 있다.
한편 제석천상과 제10반탁가존자상(第十半託迦尊者像)의 바닥면에서도 중수와 관련된 묵서가 발견되었다.
이 묵서명을 통해 1650년에 중수되었음이 다시 한번 확인되는데 당시 참여했던 서희(瑞熙), 상민(尙敏), 조능(祖能), 성일(性日) 등의 화원 이름이 명기되어 있다.
수화원 서희는 17세기에 제작한 작품이 거의 없다.
그러나 상민은 혜희의 차화승으로 보은 법주사 목조관음보살좌상(1655)과 갑사 보장전 목조불좌상을 제작하였으며 조능은 우두머리 조각승으로서 김제 청룡사 목조관음보살좌상(1655, 원 봉안처 전주 봉서사), 함양 법인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1657) 등을 조성한 화원이다.
즉 이들 영산전 불상들은 1650년에 중수된 상으로, 원 봉안처는 전북특별자치도 완주 안심사 약사암이며 1892년 왕실의 상궁들에 의해 현재의 봉안 사찰인 흥국사로 이안해 왔음이 확인된다.
흥국사는 1568년 선조의 아버지인 덕흥대원군의 원당을 지어 편액을 하사받았던 사찰로 이후 정조, 고종 등 꾸준하게 왕실의 후원을 입어 중수와 중건이 있었으며 19세기에 가장 많은 불사가 있었다.
특징
석가여래삼존상은 고개를 약간 숙인 자세에 턱이 좁은 갸름한 얼굴형, 상반신이 길고 무릎이 넓고 낮은 길쭉한 신체비례 등이 특징이다.
주존불인 석가여래상은 왼손은 배 부분에 두고 오른손은 무릎 위에 손 끝을 가지런히 둔 항마촉지인을 취한 자세로 앉아 있다.
머리는 육계와의 경계 없이 둥그스름한 타원형 중간계주만 표현하였으며 얼굴은 눈 아래 광대뼈가 강조되었고 눈꼬리가 올라간 작은 눈, 작은 입 등을 표현하여 고요하고 침울한 인상을 풍긴다.
착의법은 변형 편단우견식으로 대의를 왼쪽 어깨 위에 살짝 걸치고 왼쪽 팔을 드러내었고 밋밋한 가슴 아래에는 자연스럽게 주름 잡힌 승각기가 보인다.
옷주름들은 간결하면서도 굴곡이 깊어 볼륨감이 있으며 흙의 재질적 특성으로 부드럽게 처리되었는데 특히 무릎 부분의 옷주름이 도드라지게 표현되었다.
석가의 좌우측 보살상들은 머리에 보관을 쓰고 앉아 있는데 좌협시는 왼손을 가슴 부위에, 오른손을 배 부분에 두었고 우협시는 그 반대의 손 모습을 취하였다.
신체비례, 얼굴 표현 등은 본존불상과 유사하다.
정수리에 상투형 머리를 올렸으며 어깨 위의 머리카락은 생략되었다.
신체에는 화형 귀걸이, 수식이 세 줄 드리워진 목걸이, 간결한 팔찌 등을 착용하였다.
착의법은 편삼 위에 대의를 걸친 변형 통견식이나 옷주름 세부 표현에서는 역시 본존불상과 같다.
길쭉한 신체 비례와 낮은 무릎, 도드라지게 표현된 무릎 위 옷주름 등은 1458년 영주 흑석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국보, 1993년 지정), 1482년 천주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 등과 비교되고 보살상의 상투표현과 어깨 위 머리카락의 생략 등은 16세기 보살상들의 특징적인 요소로 이 삼존상은 15~16세기에 조성된 조선 전기 불상으로 추정된다.
16나한상은 현재 표면을 짙게 채색한 상태로 1892년 흥국사로 이운하면서 다시 채색한 것으로 생각된다.
나한상들은 상반신이 길고 무릎이 낮은 길쭉한 비례에 마른 모습이며 사실적으로 묘사한 얼굴은 표정이 다양하여 실재적인 특징을 보인다.
나한상들은 사자, 호랑이 등의 동물과 함께 앉아 있거나 염주, 불자, 파초, 경책을 든 모습, 합장한 모습 등 독특하고 다채로운 자세와 지물을 표현하였다.
의자에 앉은 제석천상과 두루마리를 든 사자상, 칼을 쥔 인왕상 등은 규격이 작고 간결하게 표현하였다.
나한상은 작은 얼굴과 길쭉한 신체비례에서 삼존상과 마찬가지로 조선 전기 불상들과 비교되며 턱이 좁은 갸름한 얼굴은 경주 기림사 건칠보살반가상(1501년. 보물, 1965년 지정)과 닮았다.
나한상의 제작시기는 조선 전기인 15~16세기에 조성된 것으로 판단된다.
의의와 평가
남양주 흥국사 소조석가여래삼존좌상 및 16나한상은 15~16세기경에 조성되어 1650년에 중수된 중요한 불상이다.
즉 우리나라의 현존하는 나한상 가운데 일괄로 조성된 가장 오래된 작품이다.
비교적 작품 수량이 적은 조선 전기 불교조각사 연구에 있어 귀중한 자료이며 소조상이나 나한상 연구에 중요한 작품으로 평가된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남양주 흥국사 목조 지장보살삼존상 및 시왕상 일괄
南楊州 興國寺 木造 地藏菩薩三尊像 및 十王像 一括
시대 : 조선 후기
유형 : 유적
분야 : 예술·체육/조각
요약
경기도 남양주시 별내면 흥국사에 있는 조선후기에 조성된 목조불상과 시왕상 및 그 일괄 불교조각상.
개설
흥국사 시왕전에 봉안된 목조 지장보살좌상과 도명존자 · 무독귀왕으로 구성된 삼존상을 중심으로 한 시왕상과 그 일괄 조각상으로서 제4 오관대왕, 제7 태산대왕 및 제9 도시대왕의 복장 유물을 통하여 1792년(정조 16)에 조성된 것임을 알 수 있다.
2011년 3월 8일에 경기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고, 흥국사에서 관리해오고 있다.
내용
본존 지장보살상은 대웅보전에 봉안된 목조석가삼존불좌상과 더불어 18세기 중 · 후반에 전라도 지역에서 활약한 조각승 상정(常淨)의 작품이거나 그 유파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승려형 지장보살상의 얼굴은 길고 갸름하다. 또한 하품중생인을 결한 것 같으면서도 오른손을 거의 무릎 아래까지 내리고 있는 것도 특이하다.
결가부좌한 두 다리 사이의 부채꼴형 옷 주름이 강조된 것이나, 가슴 부위의 내의가 도식적으로 주름진 모습은 18세기 후반기의 조각 양식을 반영하고 있다.
시왕상들은 높이 1m 내외로서 아담한 편이며, 각각의 자세가 다양하게 등장하고 있다.
특히 시왕이 앉는 의자의 등판과 팔걸이의 봉황 · 용 장식이 강조된 것은 주목된다.
오관대왕 복장에서는 후령통, 『일체여래비밀전신사리보협다라니(一切如來 秘密全身舍利寶篋陀羅尼)』(1792년)를 포함한 다양한 다라니가 출토되었고, 태산대왕의 복장에서는 후령통, 『금강반야바라밀경(金剛般若波羅蜜經)』과 더불어 『일체여래비밀전신사리보협다라니』(1792년)가 발견되었다. 도시대왕의 복장에서는 1792년(정조 16)에 제작되면서 작성된 발원문과 『불설광본대장경』, 『불설지심다라니경(佛說地心陀羅尼經)』, 6종의 『금강반야바라밀경』,『선문염송집(禪門拈頌集)』(권10·11),『법집별행록절요병입사기(法集別行錄節要幷入私記)』,『삼신주다라니』(1792년), 2종의 『일체여래비밀전신사리보협다라니』(1792년) 및 부적이 발견되었다.
한편 목조 사자(使者) 상 및 인왕상에도 『약사유리광여래본원공덕경(藥師琉璃光如來本願功德經)』을 비롯하여 다양한 다라니가 복장물로 봉안되었다.
인왕상은 휘날리는 옷자락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것이 특징이다.
특징
지장보살상과 시왕상들은 모두 중생들의 소리를 더 잘 들으려는 듯 귀가 유난히 크게 강조된 경향을 보이는데, 이것이 이 시기 조각승 상정 계열 유파의 양식적 특징이라 생각된다.
의의와 평가
다양한 자세로 생동감 있게 묘사되고, 의자 등에 풍부한 장식성을 지닌 이 조각상들은 조선 후기 불교조각의 다양성을 보여주고 있어 주목된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남양주 흥국사 대웅보전 목조 석가삼존불 좌상
南楊州 興國寺 大雄寶殿 木造 釋迦三尊佛 座像
시대 : 조선 후기
유형 : 유적
분야 : 예술·체육/조각
요약
경기도 남양주시 흥국사 대웅보전에 있는 조선후기에 조성된 화려한 광배가 특징인 목조 삼존 불상.
개설
흥국사 대웅보전 내 수미단(須彌壇) 위에 화려하게 투각된 목조광배(木造光背)를 갖춘 석가불을 중심으로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이 배치된 목조삼존불좌상이다.
2011년 3월 8일에 경기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고, 경기도 남양주에 있는 흥국사에서 관리해오고 있다.
내용
목조 석가여래 좌상은 높이가 77.3㎝로 머리와 신체가 인체비례에 가까운 균형 잡힌 모습이다.
불상은 머리를 약간 앞으로 숙여 구부정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머리에는 뾰족한 나발(螺髮)과 경계가 불분명한 육계(肉髻)가 있고, 이마 위에 반원형의 중앙 계주(中央髻珠)와 정수리 부위에 낮은 원통형의 정상 계주((頂上髻珠)를 장식하였다.
타원형의 얼굴에는 가늘게 뜬 눈, 원통형의 코, 살짝 미소를 머금은 입에서 풍기는 인상이 조각승 상정(尙淨)이 제작한 경기도 양주시 회암사(檜巖寺) 목조여래좌상 등과 거의 유사하다.
목에는 삼도(三道)가 수평으로 표현되어 17세기 불상에서 볼 수 있는 자연스러움은 사라졌다.
불상의 착의법은 오른쪽 어깨에 수직으로 한 가닥의 대의 자락이 가슴까지 늘어져 한쪽 면만 둥글게 처리하고, 나머지 대의 자락은 오른쪽 어깨에 비스듬히 걸친 후 팔꿈치와 복부를 지나 왼쪽 어깨로 넘어간다.
반대쪽 대의 자락은 왼쪽 어깨를 완전히 덮고 수직으로 내려와 복부(腹部)에서 반대쪽 대의 자락과 자연스럽게 접혀있다.
하반신을 덮은 옷자락은 오른쪽 발목에서 밑으로 간략하게 펼쳐져 있다.
왼쪽 무릎 위에 늘어진 소맷자락은 17세기 후반에 호남에서 활동하였던 색난(色難)이 제작한 불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연판형이 단순화된 형태로 늘어져 있다.
불상의 측면은 어깨선을 따라 옷 주름이 두 가닥 수직으로 내려오다가 앞자락은 손을 따라 완만하게 늘어지고, 뒷자락은 수직으로 길게 늘어졌다.
이 사이로 앞자락의 중간 부분에서 사선을 그리며 뒷자락으로 옷 주름이 접혀 인(人) 자형을 이룬다.
불상 뒷면은 목둘레에 대의 끝단을 두르고, 왼쪽 어깨에 앞에서 넘어온 옷자락이 대좌 위까지 길게 늘어져 있다.
가슴을 덮은 승각기(僧脚崎)는 수평으로 묶어 연판형 주름이 상단에 접혀있다.
수인(手印)은 오른손을 편 상태로 무릎 위에 얹고, 왼손을 무릎 위에 엄지와 중지를 둥글게 맞닿은 형태로, 조선 후기 석가불이 취한 자세를 하고 있다.
석가불 좌우에 놓인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은 화염문(火焰文)과 화문(花文) 사이에 용문(龍文)이 장식된 화려하고 커다란 보관을 쓰고, 상체를 앞으로 내밀어 구부정한 자세를 하고 있다.
보살상의 인상과 신체 비례는 본존과 거의 유사하지만, 대의 안쪽에 편삼을 걸쳐 치켜든 손목 밑으로 편삼자락이 늘어져 있는 것과 지물을 들고 있는 손의 위치가 다르다.
삼존불의 뒤에는 각각 보주형(寶珠形) 거신광배가 투각으로 세워져 있다.
본존과 문수보살의 광배는 각각 3매의 판목을, 보현보살의 광배는 4매의 판목을 각 연결 부분마다 무쇠 못으로 고정시켜 틀에 끼웠다.
화려한 화염문이 광배의 가장자리를 두르고, 광배 내부에는 여섯 송이의 연화를 각기 다른 모습으로 조각하였으며, 따로 제작한 작은 화불(化佛)을 광배에 끼워 입체감이 잘 나타난다.
석가불의 광배는 3구의 화불을 배치한 반면, 협시 보살상의 광배에는 2구의 화불과 사자와 코끼리를 타고 있는 동자상 1구씩을 배치하였다.
특징
흥국사 대웅보전 목조삼존불좌상은 조성발원문이 남아있지 않아 구체적인 조성시기와 봉안 사찰을 알 수 없다.
그러나 얼굴에서 풍기는 인상이나 착의법(着衣法) 등에서 조각승 상정이 1755년(영조 31)에 제작한 양주 회암사 봉안 목조불좌상이나 부천 석왕사 목조보살좌상과 동일하여 18세기 중반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의의와 평가
흥국사 대웅보전에 봉안된 목조삼존불좌상은 18세기 중반을 대표하는 조각승 상정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조선 후기 불교조각사에서 가장 화려한 광배를 가진 불상으로 작품성이 뛰어나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수락산 흥국사 水落山 興國寺, 덕절(德寺), 수락사(水落寺), 흥덕사(興德寺)
시대 : 고대/삼국
유형 : 유적
분야 : 종교·철학/불교
요약
경기도 남양주시 수락산(水落山)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의 원광이 창건한 사찰.
내용
덕절(德寺)이라고도 한다.
대한불교조계종 제25교구 본사인 봉선사의 말사이다.
599년(진평왕 21) 원광(圓光)이 창건하여 수락사(水落寺)라 하였으며, 그 뒤 조선 중기까지의 역사는 전래되지 않고 있다.
1568년(선조 1)에 왕이 이 절에 덕흥대원군(德興大院君)의 원당(願堂)을 짓고 편액(扁額)을 하사하여 흥덕사(興德寺)로 개칭하였는데, 민간에서 덕절이라고 부르는 이유도 이 원당 때문이다.
1626년(인조 4) 다시 흥국사로 개명하였다.
1793년(정조 17) 왕실의 시주를 받아 기허(騎虛)가 대웅전을 중수하였다.
1818년(순조 18) 만월전(滿月殿)과 양로실(養老室)을 제외하고 모든 요사(寮舍)가 불타버린 뒤, 4년 만에 왕명에 의하여 기허가 대웅전 등 법당과 요사를 중건하였고, 1856년(철종 7) 은봉(隱峰)이 육면각(六面閣)을 중수하고 단청하였으며, 1870년(고종 7) 시왕전(十王殿)을 중수하였다.
1878년에 다시 불타버린 것을 용암(庸庵)이 중건하였으며, 1888년 제암(濟庵)이 법당과 요사를 중수하고 단청하였다.
이 절은 덕흥대원군의 묘소를 모신 이래 왕가(王家)에서 편액을 내리고 중수 · 중건을 몇 차례 실시하는 등 각별한 관심을 보였던 특별한 사찰이다.
특히, 1790년(정조 14)에는 봉은사(奉恩寺) · 봉선사(奉先寺) · 용주사(龍珠寺) · 백련사(白蓮寺) 등과 함께 나라에서 임명하는 관리들이 머무르면서 왕실의 안녕을 비는 오규정소(五糾正所)의 한 사찰로 채택되었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1985년 경기도 문화재자료(현,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된 대웅보전을 비롯하여 영산전 · 시왕전 · 독성전(獨聖殿) · 만월보전(滿月寶殿) · 반산암 · 단하각 · 응향각 · 만세루(萬歲樓) · 승방(僧房) 등이 있다.
전해 오는 보물로는 조선 중기의 작품으로 보이는 경판(經板)이 보존되어 있다.
원래 안해장전(安海藏殿)에 보관되어 오던 것으로, 미타경족자판(彌陀經簇子板) 1부, 연종보감판(蓮宗寶鑑板) 1부, 미타경판(彌陀經板) 1부, 십육관경판(十六觀經板) 1부 등이 남아 있다.
이들은 모두 남호대사(南湖大師)가 직접 써서 판각한 것이다.
또한 시왕전에 봉안되어 있는 지장보살 삼존상과 시왕, 그 권속 등 21구가 일괄로 2011년 경기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이 밖에 어필병풍(御筆屛風) 1권 및 십장생화병풍(十長生畵屛風) 1좌가 있고, 2006년 경기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성임당(聖任堂)의 탑이 있다.
영산전은 2014년 경기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덕흥대원군 묘 德興大院君 墓
시대 : 조선
유형 : 유적
분야 : 역사/조선시대사
요약
경기도 남양주시에 있는 조선시대 제14대 선조의 부친 덕흥대원군의 무덤. 시도기념물.
내용
1980년 경기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묘역 규모 112㎡이며, 묘역은 사성(莎城)으로 둘러 쌓여 있으며 봉분은 호석(護石)으로 둘러져 있고 높이 190㎝, 둘레 15.7m의 쌍분이다.
봉분 앞에는 상석(床石)이 있고 그 앞에 장대석으로 계절(階節: 무덤 앞에 평평하게 만들어 놓은 땅)을 쌓고 정면에는 석등을 배치하고 좌우로 망주석(望柱石)과 문인석(文人石)을 각각 배치하였다.
묘비는 대리석으로 규모는 높이 168㎝, 너비 53㎝, 두께 18㎝이다.
비문은 ‘덕흥대원군하동부대부인정씨지묘(德興大院君河東府大夫人鄭氏之墓)’라고 되어 있다.
또 묘소 앞 약 20m 지점에 대리석으로 된 신도비가 있는데 규모는 총높이 350㎝, 비 높이 196㎝ 너비 80㎝, 두께 27㎝이다.
귀부(龜趺)와 이수(螭獸)는 화강암으로 되어 있고 1573년(선조 6)에 세워졌다.
비문은 홍섬(洪暹)이 지었으며 송인(宋寅)이 썼다.
한편 묘소 아래 아들 하원군(河原君)의 묘가 있고 마을에는 대원군의 위패를 모신 덕흥사(德興祠)가 있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덕흥대원군 묘 德興大院君 墓
시대 : 조선
유형 : 유적
분야 : 역사/조선시대사
요약
경기도 남양주시에 있는 조선시대 제14대 선조의 부친 덕흥대원군의 무덤. 시도기념물.
내용
1980년 경기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묘역 규모 112㎡이며, 묘역은 사성(莎城)으로 둘러 쌓여 있으며 봉분은 호석(護石)으로 둘러져 있고 높이 190㎝, 둘레 15.7m의 쌍분이다.
봉분 앞에는 상석(床石)이 있고 그 앞에 장대석으로 계절(階節: 무덤 앞에 평평하게 만들어 놓은 땅)을 쌓고 정면에는 석등을 배치하고 좌우로 망주석(望柱石)과 문인석(文人石) 무인석(武人 石 )을 각각 배치하였다.
묘비는 대리석으로 규모는 높이 168㎝, 너비 53㎝, 두께 18㎝이다.
비문은 ‘덕흥대원군하동부대부인정씨지묘(德興大院君河東府大夫人鄭氏之墓)’라고 되어 있다.
또 묘소 앞 약 20m 지점에 대리석으로 된 신도비가 있는데 규모는 총높이 350㎝, 비 높이 196㎝ 너비 80㎝, 두께 27㎝이다.
귀부(龜趺)와 이수(螭獸)는 화강암으로 되어 있고 1573년(선조 6)에 세워졌다.
비문은 홍섬(洪暹)이 지었으며 송인(宋寅)이 썼다.
한편 묘소 아래 아들 하원군(河原君)의 묘가 있고 마을에는 대원군의 위패를 모신 덕흥사(德興祠)가 있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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