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항雁行 / 오탁번 詩
해 설핏 기운 북녘 하늘로
나울나울 날아가는 기러기 떼는
고래실 논바닥에서 벼이삭 쪼아 먹고
미꾸리도 짬짬이 잡아먹어
날갯죽지에는 보동보동 살이 올랐겠다
휴전선 넘어 날아갈 때는
형제끼리 총 겨누는 사람들이 미워서
물똥도 찍찍 내갈기겠다
날아가다가 좀 쉬고 싶으면
황해도 연안 갯벌에 내려앉아
북녘 사람들에게
집집마다 피어오르는 저녁연기와
천수만 갈대밭 흔드는
겨울바람 소리도 전해주겠다
압록강 건너
그 옛날 우리 조상들이 씨 뿌리던
광막한 만주벌 날아갈 때는
기럭기럭 기럭기럭 슬피 울면서
천오백 년 전 고구려 때
흙 속에 깊이 묻혀
여태껏 눈도 못 튼 볍씨의
긴긴 잠을 흔들어 깨우겠다
나볏이 줄지어 날아가는
이웃 형제처럼 수더분한 기러기 떼여
고구려 사람들의 鳥羽冠 깃털같이
못자리에서 쑥쑥 자라는 모를
마을 사람들이 두렛일로
한 모숨 한 모숨 모내기하듯
몇 천만리 아득한 북녘 하늘을
나울나울 정답게 날아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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