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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과 깨달음☞/♡ 좋은 시 모음

안항雁行 / 오탁번 詩

by 맥가이버 Macgyver 2024. 1. 30.

 

안항雁行 / 오탁번

 

해 설핏 기운 북녘 하늘로

나울나울 날아가는 기러기 떼는

고래실 논바닥에서 벼이삭 쪼아 먹고

미꾸리도 짬짬이 잡아먹어

날갯죽지에는 보동보동 살이 올랐겠다

 

휴전선 넘어 날아갈 때는

형제끼리 총 겨누는 사람들이 미워서

물똥도 찍찍 내갈기겠다

 

날아가다가 좀 쉬고 싶으면

황해도 연안 갯벌에 내려앉아

북녘 사람들에게

집집마다 피어오르는 저녁연기와

천수만 갈대밭 흔드는

겨울바람 소리도 전해주겠다

 

압록강 건너

그 옛날 우리 조상들이 씨 뿌리던

광막한 만주벌 날아갈 때는

기럭기럭 기럭기럭 슬피 울면서

천오백 년 전 고구려 때

흙 속에 깊이 묻혀

여태껏 눈도 못 튼 볍씨의

긴긴 잠을 흔들어 깨우겠다

 

나볏이 줄지어 날아가는

이웃 형제처럼 수더분한 기러기 떼여

고구려 사람들의 鳥羽冠 깃털같이

못자리에서 쑥쑥 자라는 모를

마을 사람들이 두렛일로

한 모숨 한 모숨 모내기하듯

몇 천만리 아득한 북녘 하늘을

나울나울 정답게 날아가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