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05일(월)
시청역에서 서울광장ㆍ광화문광장ㆍ칠궁ㆍ청와대뒷길ㆍ백사실계곡ㆍ홍제천길ㆍ경의선숲길ㆍ신촌역까지 이어 걷기를 다녀와서...
'시청역에서 서울광장ㆍ광화문광장ㆍ칠궁ㆍ청와대뒷길ㆍ백사실계곡ㆍ홍제천길ㆍ경의선숲길ㆍ신촌역까지 이어 걷기' 코스
시청역 1번 출구→대한문→서울광장→청계광장 소라탑→광화문광장→광화문→국립고궁박물관→경복궁 영추문→봉황분수대→무궁화동산→칠궁→청와대뒷길 칠궁안내소→백악정→청와대 전망대→대통문→만세동방약수터→청운대전망대→청운대쉼터→청운대→청운대안내소→북악산 2번출입문→북악산 1번출입문→카페 산모퉁이→응선사→백석동천 각자바위→백사실계곡→별서터→현통사→홍제천 신영교→불암/일붕조사문→세검정→홍지문/오간수문→옥천3교→옥천암 보도각백불→포방교/포방터시장(남문)→홍은1동주민센터 앞 징검다리→홍제천 장미정원→홍전교→홍은교→홍제교→열린 홍제천길(홍제 유연)→홍제3교→백련교→홍제천 인공폭포(서대문 홍제폭포)→홍연교→사천교→연남교 아래 탁족장→경의선숲길 세교실개천→홍대입구역→Red Road발전소(舊경의선책거리)→레드로드역→홍대땡땡거리→신촌역
오늘은
'시청역에서 서울광장ㆍ광화문광장ㆍ칠궁ㆍ청와대뒷길ㆍ백사실계곡ㆍ홍제천ㆍ경의선숲길ㆍ신촌역까지 이어 걷기'를 위해 길을 나선다.
▼ 시청역 1번 출구에서...
칠궁(七宮, 육상궁(毓祥宮))은 조선과 대한제국의 왕의 생모이지만
왕비가 되지 못한 일곱 후궁의 신주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사당이다.
이곳은 처음 1725년(영조 1) 영조의 생모 숙빈 최씨의 사당을 조성하고 이름을 ‘숙빈묘(淑嬪廟)’라 하였다.
이후 1744년(영조 20) 이름을 ‘육상묘(毓祥廟)’라 하였다가
1753년(영조 29) 궁원제(宮園制, 왕을 낳은 후궁(사친)의 사당과 무덤을 궁과 원으로 높이는 제도)가 만들어지면서
지금의 ‘육상궁(毓祥宮)’으로 승격되었다.
이후 고종과 순종대에 한양 사대문 안에 각각 흩어져 있던
연호궁(延祜宮), 저경궁(儲慶宮), 대빈궁(大嬪宮), 선희궁(宣禧宮), 경우궁(景祐宮)이 육상궁 경내로 옮겨졌고,
마지막으로 1929년 덕안궁(德安宮)이 옮겨지면서 지금의 칠궁이라 부르게 되었다.
이곳은 일곱 후궁의 신주를 모셨지만,
사당의 건물은 총 다섯 개인데 육상궁과 연호궁, 선희궁과 경우궁은 각각 하나의 사당에 두 후궁의 신주를 모셨다.
그 밖에 제사를 준비하는 재실(齋室, 풍월헌, 송죽재, 삼락당)과 냉천정(冷泉亭) 등의 건물은 영조 대에 육상궁을 조성할 때 지은 건물이다.
출처 : 국가유산청 궁능유적본부
육상궁과 연호궁은 칠궁에 있는 사당 중 가장 중심이 되는 곳으로, 한 건물에 두 후궁의 신주를 모셨다.
현판은 건물 가운데 위쪽에 걸려있는데 연호궁 현판이 앞에 걸려있고,
그 뒤에 육상궁의 옛 이름인 육상묘 현판이 걸려있다.
육상궁(毓祥宮)은
조선 19대 숙종의 후궁이자 21대 영조의 생모 숙빈 최씨(淑嬪 崔氏, 1670~1718)의 신주를 모신 곳으로,
육상궁의 육상은 ‘상서로움을 기른다’라는 뜻이다.
영조는 왕위에 오른 후 현재의 자리에 숙빈 최씨의 사당을 조성하고 숙빈묘(淑嬪廟)라 불렀다가
1744년(영조 20) 육상묘(毓祥廟)로 이름을 바꾸었고,
1753년(영조 29)에 지금의 이름인 육상궁으로 높였다.
숙빈 최씨는 본관이 해주인 최효원의 딸로 태어나 1676년(숙종 2)에 7세의 나이로 궁녀로 입궁하였고,
1693년(숙종 19) 숙종의 후궁이 되었다.
1694년(숙종 20)에 영조를 낳았으며, 1699년(숙종 25) 숙빈이 되었다.
이후 1718년(숙종 44)에 세상을 떠났고, 무덤은 현 경기 파주시 광탄면에 위치한 소령원(昭寧園)이다.
연호궁(延祜宮)은 조선 21대 영조의 후궁이자 황제로 추존된
진종의 생모 정빈 이씨(靖嬪 李氏, 1694~1721)의 신주를 모신 곳으로,
연호궁의 연호는 ‘복을 맞이한다’라는 뜻이다.
연호궁은 정빈묘(靖嬪廟)라는 이름으로 처음 조성되었다가
정조가 왕위에 오른 후 효장세자가 왕으로 추존되자 1778년(정조 2) 사당의 이름을 연호궁으로 높였다.
원래 연호궁은 따로 건물이 있었으나 언제 육상궁에 같이 합쳐졌는지는 알 수 없다.
정빈 이씨는 본관이 함성인 이준철의 딸로 태어나 1701년(숙종 27)에 8세의 나이로 입궁하였고,
1719년(숙종 45) 영조의 첫째 아들 진종(효장세자)를 낳았다.
경종 즉위 후 영조가 왕세제로 책봉되면서 후궁이 되었으나 1721년(경종 1)에 세상을 떠났다.
영조 즉위 후 아들이 왕세자로 책봉되면서 정빈(靖嬪)에 추봉되었으며,
무덤은 현 경기 파주시 광탄면에 위치한 수길원(綏吉園)이다.
출처 : 국가유산청 궁능유적본부
덕안궁(德安宮)은
대한제국 1대 고종의 후궁이자 의민황태자(영친왕)의 생모
순헌황귀비 엄씨(純獻皇貴妃 嚴氏, 1854~1911)의 신주를 모신 곳으로,
덕안궁의 덕안은 ‘덕이 있고 편안하다’라는 뜻이다.
덕안궁은 원래 덕수궁 경내에 있었으나,
1913년 현 서울 중구 태평로 부근으로 옮겼다가 1929년 육상궁 경내로 다시 옮겼다.
순헌황귀비 엄씨는 본관이 영월인 엄진삼의 딸로 태어나 5살의 나이에 궁녀로 입궁하였다.
1895년(고종 32) 을미사변 이후 신변의 위협을 느낀 고종을 러시아공사관으로 피신하는 일을 적극적으로 도왔다.
이후 정식으로 고종이 후궁이 되어 1897년에 황태자를 낳았고,
1903년(광무 7)에 황귀비가 되었다.
경술국치 후 1911년에 덕수궁 즉조당에서 세상을 떠났고,
무덤은 현 서울 동대문구 청량리에 위치한 영휘원(永徽園)이다.
출처 : 국가유산청 궁능유적본부
저경궁(儲慶宮)은
조선 14대 선조의 후궁이자 왕으로 추존된 원종의 생모 인빈 김씨(仁嬪 金氏, 1555~1613)의 신주를 모신 곳으로,
저경궁의 저경은 ‘경사를 모아 쌓는다’라는 뜻이다.
저경궁은 인조가 왕위에 오른 후 인빈묘(仁嬪廟)라 불렀다가,
1755년(영조 31) 다른 곳에 있던 사당을 송현궁(현 서울 중구 한국은행 부근)으로 옮기고 저경궁으로 높였다.
이후 1870년(고종 7) 경우궁(유비 박씨의 사당, 현 서울 종로구 계동 부근)으로 옮겼다가,
1908년(융희 2) 육상궁 경내로 옮겼다.
인빈 김씨는 본관이 수원인 김한우의 딸로 태어나 1573년(선조 6)에 선조의 후궁이 되었다.
선조와의 사이에서 4남(의안군, 신성군, 원종, 의창군)
5녀(정신옹주, 정혜옹주, 정숙옹주, 정안옹주, 정휘옹주)를 낳았으며,
1604년(선조 37) 인빈이 되었다.
1613년(광해군 5)에 세상을 떠났으며,
무덤은 현 경기 남양주시 진접읍에 위치한 순강원(順康園)이다.
출처 : 국가유산청 궁능유적본부
대빈궁(大嬪宮)은
조선 19대 숙종의 후궁이자 20대 경종의 생모
옥산부대빈 장씨(玉山府大嬪 張氏, 1659~1701)의 신주를 모신 곳으로,
대빈궁의 대빈은 ‘옥산부대빈의 대빈’을 뜻한다.
대빈궁은 처음 현 서울 종로구 낙원동 종로세무서 부근에 있었다가
1870년(고종 7) 육상궁 경내로 잠시 옮겼고,
1887년(고종 24) 원래 자리로 옮겼다가 1908년(융희 2) 육상궁 경내로 다시 옮겼다.
옥산부대빈 장씨는 본관이 인동인 장형의 딸로 태어나
숙종 대의 대왕대비였던 장렬왕후를 모시는 궁녀로 입궁하여
1686년(숙종 12)에 숙종의 후궁이 되었다.
1688년(숙종 14) 경종을 낳아 희빈(禧嬪)에 봉해졌으며,
기사환국으로 인현왕후가 폐위되자 왕비가 되었다.
그러나 1694년(숙종 20) 갑술환국으로 인현왕후가 다시 왕비로 복위되자 희빈으로 신분이 낮아졌다.
1701년(숙종 27)에 세상을 떠났으며,
경종이 왕위에 오른 후 1722년(경종 2) 옥산부대빈(玉山府大嬪) 추존되었다.
무덤은 현 경기 고양시 서오릉 경내에 위치한 대빈묘(大嬪墓)이다.
출처 : 국가유산청 궁능유적본부
선희궁과 경우궁은 한 건물에 두 후궁의 신주를 모셨다.
현판은 건물 가운데 위쪽에 걸려있는데 경우궁 현판이 앞에 걸려있고,
그 뒤에 선희궁 현판이 걸려있다.
선희궁(宣禧宮)은 조선 21대 영조의 후궁이자 황제로 추존된
장조의 생모 영빈 이씨(暎嬪 李氏, 1696~1764)의 신주를 모신 곳으로,
선희궁의 선희는 ‘복을 널리 편다’라는 뜻이다.
선희궁은 현재 현 서울 종로구 청운효자동 서울맹학교 경내에 조성되어 의열궁(義烈宮)이라고 부르다가,
1788년(정조 12) 선희궁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선희궁은 1870년(고종 7) 육상궁 경내로 잠시 옮겼고,
1897년(고종 34) 원래 자리로 옮겼다가 1908년(융희 2) 육상궁 경내로 다시 옮겼다.
영빈 이씨는 본관이 전의인 이유번의 딸로 태어나 1701년(숙종 27)에 입궁하여
궁녀로 생활하다가 1726년(영조 2) 영조의 후궁이 되었다.
영조와의 사이에서 1남(장조, 사도세자) 6녀를 낳았으며,
1764년(영조 40)에 세상을 떠났다.
1899년(광무 3) 사도세자가 황제로 추존되면서 황제의 어머니 지위를 받게 되었고,
무덤은 현 경기 고양시 서오릉 경내에 위치한 수경원(綏慶園)이다.
경우궁(景祐宮)은 조선 22대 정조의 후궁이자 23대 순조의 생모
유비 박씨(綏妃 朴氏, 1770~1822)의 신주를 모신 곳으로,
경우궁의 경우는 ‘큰 복’이라는 뜻이다.
경우궁은 원래 현 서울 종로구 계동 부근에 있었으나
1886년(고종 23) 현 서울 종로구 옥인동으로 잠시 옮겼고,
1908년(융희 2) 육상궁 경내로 다시 옮겼다.
유비 박씨는 본관이 반남인 박준원의 딸로 태어나 1787년(정조 11)에 유빈(綏嬪)이 되었고,
정조와의 사이에서 1남(순조) 1녀(숙선옹주)를 낳았다.
1822년(순조 22)에 세상을 떠났고,
대한제국 선포 후 1901년(광무 5) 황제(정조선황제)의 후궁이자 황제(순조숙황제)의 생모이므로
특별히 추봉해야 한다는 논의로 유비(綏妃)로 추봉되었다.
무덤은 현 경기 남양주시 진접읍에 위치한 휘경원(徽慶園)이다.
* 綏의 음은 ‘수’ 또는 ‘유’이나,
1823년(순조 23)에 작성된 <유빈박씨 진향문>에 한글로 ‘유빈’이라 기록되어 있어 이를 토대로 ‘유’로 씀.
출처 : 국가유산청 궁능유적본부
☞ 여기서 '시청역에서 서울광장ㆍ광화문광장ㆍ칠궁ㆍ청와대뒷길ㆍ백사실계곡ㆍ홍제천길ㆍ경의선숲길ㆍ신촌역까지 이어 걷기 - 1부'를 마치고...
시청역에서 서울광장ㆍ광화문광장ㆍ칠궁ㆍ청와대뒷길ㆍ백사실계곡ㆍ홍제천길ㆍ경의선숲길ㆍ신촌역까지 이어 걷기를 다녀오다.
▣ 1부[시청역→서울광장→광화문광장→광화문→봉황분수대→칠궁→칠궁안내소→백악정]
는 http://macgyver-dct.tistory.com/16164126 ☜클릭
▣ 2부[백악정→청와대전망대→만세동방약수터→청운대→청운대안내소→북악산1번출입문]
는 http://macgyver-dct.tistory.com/16164127 ☜클릭
▣ 3부[북악산1출입문→백사실계곡→홍제천신영교→세검정→홍지문→보도각백불→홍전교]
는 http://macgyver-dct.tistory.com/16164128 ☜클릭
▣ 4부[홍전교→홍제유연→홍제폭포→사천교→경의선숲길→홍대입구역→땡땡거리→신촌역]
는 http://macgyver-dct.tistory.com/16164129 ☜클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