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22일(토)
'반월역에서 치및산-퇴미산-반월호수-둔대봉-우래봉-덕봉-덕고개-정난종선생묘-동래정씨 동래군파종택-갈치호수-대야초교-대야미역까지 걷기'를 다녀와서...
'반월역에서 치및산-퇴미산-반월호수-둔대봉-우래봉-덕봉-덕고개-정난종선생묘-동래정씨 동래군파종택-갈치호수-대야초교-대야미역까지 걷기' 코스
반월역→육교→청주한씨묘역→치및산(92m)→삼천천다리→삼천리마을 정류장→굴다리→철계단→청송심씨묘비→퇴미산(158.2m)→송전철탑→청주한씨납골묘→청송심씨묘역→군포대야물말끔터→반월호수둘레길-군포반월호수 풍물학교→안골정류장→전망바위→송전철탑→둔대봉(207.5m)→우래봉 헬기장→산불감시초소/우래봉(266.5m)→무명봉→송전철탑→덕봉(180.5m)→덕고개→경기 흙향기 맨발길→정난종선생묘 및 신도비→속달약수터→속달마을 동래군파 재실(성달재)→동래정씨 동래군파종택→갈치호수→동래정씨 속달가족묘지→센트럴아이파크아파트→생수교회→대야동행정복지센터→군포대야초교→대야미역
오늘은
반월역에서 치및산-퇴미산-반월호수-둔대봉-우래봉-덕봉-덕고개-정난종선생묘-동래정씨 동래군파종택-갈치호수-대야초교-대야미역까지 걷기 위해 길을 나선다.
▼ 우래봉 헬기장에서...
정난종 선생 묘 및 신도비 외 묘역 일원
鄭蘭宗 先生 墓 및 神道碑 外 墓域 一圓
시대 : 조선 전기
유형 : 유적
분야 : 예술·체육/서예
요약
경기도 군포시에 있는 조선전기 문신·서예가 정난종과 동래 정씨의 묘역. 신도비. 시도기념물.
내용
1989년 경기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일명 동래정씨가묘(東萊鄭氏家墓)라고도 한다.
동래 정씨 묘역은 약 1,000여 평으로 수리산(修理山) 능선을 따라 묘소가 분산, 배치되어 있는데, 아래로부터 선대 묘역이 모셔진 역장(逆葬)의 모습이 특색이다.
묘역에는 묘비 6기, 묘갈(墓碣) 1기, 신도비 2기, 장명등(長明燈) 4기, 문인석(文人石) 8기, 망주석(望柱石) 4기, 상석(床石) 4기, 향로석 4기 · 동자석 4기, 묘소 6기 등이 있다.
정난종은 조선 초기의 문신으로 이조 · 공조 판서 등의 관직을 두루 거친 훈구파(勳舊派)의 거두이다.
특히 초서와 예서를 잘 썼으며, 시호는 익혜(翼惠)이다.
그의 묘는 부인 완산 이씨(完山 李氏)와 쌍분인데, 1486년(성종 17)과 1489년에 각각 조성하였다.
묘비(墓碑)는 135×44×20㎝로 종형이수(鐘型螭首)의 형태를 이루며, ‘有明朝鮮國純誠佐理功臣資憲大夫議政府右參贊兼同知經筵事東萊君贈諡翼惠鄭公之墓(유명조선국순성좌리공신자헌대부의정부우참찬겸동지경연사동래군증시익혜정공지묘)’의 명문(銘文)이 있다.
또 양식이 동일한 부인 묘비에는 ‘貞夫人完山李氏之墓(정부인완산이씨지묘)’라는 명문이 있다.
묘비는 남곤(南袞)이 찬(撰)하고 강징(姜徵)이 썼다.
상석은 164×16㎝의 장대석 11개를 쌓았으며, 장명등은 210㎝ 높이로 대석 위에 옥개석(屋蓋石)을 얹었다.
문인석은 높이가 각각 210㎝와 146㎝이다.
신도비의 총 높이는 314㎝이나 비신은 192×82×26㎝로 이수는 2마리 용이 정교하게 새겨져 있으며, 4면의 당초문(唐草文)과 2단의 안상문(眼象文)을 조각하였다.
비문도 남곤이 찬하고 강징이 썼는데, 1525년(중종 20)에 조성되었다.
정광보(鄭光輔)는 정난종의 장남으로 창원도호부사 · 김해진관병마동첨절제사 · 첨지중추부사에 이르렀다.
정광보의 묘 역시 부인과 쌍분이며, 묘표(墓表: 푯돌)는 179×53×18㎝의 규모로 1525년에 조성되었다.
전면에는 ‘通政大夫行昌原都護府使金海鎭管兵馬同僉節制使鄭公之墓 淑夫人全義李氏之墓(통정대부행창원도호부사김해진관병마동첨절제사정공지묘 숙부인전의이씨지묘)’라 새겨져 있다.
장명등은 158㎝로 안상문이 조각된 원형의 화창(火窓: 석등의 불을 켜 놓는 창)을 이루며, 문인석과 망주석은 각각 170㎝와 163㎝의 크기이다.
묘갈은 2단의 기단 위에 귀부(龜趺)를 놓고 비신과 이수(螭首)를 얹어놓은 형식인데, 귀부는 177×140×80㎝로 조각이 섬세하다.
비문은 이행(李荇)이 짓고 글씨는 성세창(成世昌)이 썼다.
정광필(鄭光弼)은 정난종의 차남으로, 중종 때 영의정에 올랐고 시호는 문익(文翼)이다.
묘는 부인과 쌍분으로 각각 봉분의 높이는 200㎝이고, 지름은 450㎝의 규모이다.
묘비 전면에는 ‘有明朝鮮國大匡輔國崇祿大夫議政府領議政兼領經筵弘文館藝文館春秋館象監事世子師贈諡文翼鄭公之墓(유명조선국대광보국숭록대부의정부영의정겸영경연홍문관예문관춘추관상감사세자사증시문익정공지묘)’와 ‘貞敬夫人恩津宋氏之墓(정경부인은진송씨지묘)’가 새겨져 있다.
묘비의 크기는 173×50×18㎝로 그 옆에는 장명등 · 상석 · 망주석 · 문인석 등을 배열하였다.
신도비는 총 높이 417㎝로 비신은 213×91×28㎝이며, 비문은 소세양(蘇世讓)이 짓고 이황(李滉)이 썼는데, 1562년(명종 17)에 건립하였다.
정난종 묘 아래 있는 정진원(鄭震遠)묘 역시 쌍분으로 묘비와 상석이 있다.
묘비는 총 높이 135㎝로 비신은 115×46×13㎝ 규모인데, 전면에 ‘朝鮮國嘉善大夫同知中樞府使蓬海君鄭公之墓 贈貞夫人全州李氏之墓(조선국가선대부동지중추부사봉해군정공지묘 증정부인전주이씨지묘)’라는 명문이 새겨져 있다.
동래 정씨묘역은 선대를 밑에서부터 안장하는 등 톡특한 양식으로 조선시대 묘제 연구에 귀중한 자료이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군포 동래 정씨 동래군파 종택
(軍浦 東來 鄭氏 東來君派 宗宅)
군포 동래 정씨 동래군파 종택(軍浦 東來 鄭氏 東來君派 宗宅)은 대한민국 경기도 군포시 속달동에 있는 조선시대의 종택이다.
2000년 4월 11일 경기도의 문화재자료 제95호로 지정되었다.
개요
동래 정씨 동래군파의 종가이다.
가옥 안채는 조선 정조 7년(1783)에 세운 것으로 추정하며, 사랑채는 고종 14년(1877)에 지은 것이다.
현재 건물은 안채, 사랑채, 작은사랑채, 문간채, 행랑채가 남아 있다.
사랑채는 앞면 5칸으로 왼쪽부터 방 1칸·사랑방 2칸·마루방·행사청 순으로 되어 있어 평면 분할이 독특하다.
작은사랑채는 앞면 3칸으로 공부방으로 사용하였다.
문간채는 앞면 3칸으로 대문·창고로 구성되어 있으며 후에 5칸을 더 지어 안채의 폐쇄성을 높여 주었다.
행랑채는 수해 때문에 가운데 칸이 무너져 있다.
[출처]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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