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알고 싶어요☞/?? 알고싶어요 ??

삼복(三伏)의 어원 및 유래, 풍속, 시절음식, 복날, 초복, 중복, 말복

by 맥가이버 Macgyver 2005. 7. 29.

삼복(三伏)



삼복(三伏)더위가 다시 찾아왔다. 복날은 설, 추석, 단오, 유두, 한식, 동지 등과 함께 옛 사람들이 즐기는 명절로 매년 일진에 따라 정해진다.

 

하지 이후 셋째 경일(庚日)이 초복이며 열흘 뒤인 넷째 경일이 중복이다. 그리고 입추 후 첫 경일을 말복이라 한다.

이에 따라 올해는 하지인 지난 6월21일 이후 첫째 경일인 26일(경신일), 둘째 7월6일(경오일) 다음의 셋째 경일인 7월16일(경진일)이 초복이고 넷째 경일인 7월26일(경인일)이 중복날이 되었다. 말복은 입추인 8월7일 다음 첫 경일인 15일(경술일)이 된다.

 

복(伏)은 사람 인(人)과 개 견(犬)자가 합친 회의문자(두개 이상의 독립 한자를 합하여 만든 새로운 글자)다. 즉 사람 옆에 개가 엎드려 있는 것을 만들어 '엎드릴 복'자라는 새 글자를 만든 것이다. 이에 따라 복날 보신탕을 먹는다고들 흔히 생각하나 문헌상에 이를 뒷받침하는 기록이 없다.

 

또 伏자의 고대 상형문자를 보면 개가 엎드려 있는지 사람과 나란히 있는지 구분이 안 된다. 개고기를 혐오하는 서양인들이 보면 '봐라. 개와 인간이 나란히 서 있는 걸로 보아 그들은 친구가 아닌가' 라는 반론을 제기할 여지도 있다.

 

보신탕을 즐기는 이들한테는 약간 섭섭할지 모르겠지만 복날의 유래는 좀 다른 데 있는 것 같다. 조선조 광해군 때 이수광이 지은 '지봉유설'의 '시령부' 가운데 '절서'를 보면 이런 구절이 나와 있다. " 한서 동방삭전에 '복일'에 고기를 하사한다 하였고 양운의 글에 '세시와 복일과 납일에 양을 삶고 염소를 굽는다'고 하였다.

 

고증하여 보니 진나라가 처음으로 복날 제사하는 사당을 짓고 제사하였으며 한나라 풍속에서도 진나라 풍속을 그대로 좇았다" 또 "한서를 고찰하여 보니 복(伏)이라고 한 것은 음기가 장차 일어나고자 하나, 남은 양기에 압박되어 상승하지 못하고 음기가 엎드려 있는 날이라는 뜻으로 복일이라고 이름한 것이다."

 

그럼에도 왜 복날이면 견공들이 재앙을 면하지 못하는가. 그 답은 음양오행설에 있다. 음양오행으로 보면 여름은 불 즉 화(火)에 속한다. 화가 극성하는 여름철에는 화가 쇠(金)를 누르는 병리적 현상이 일어난다. 쇠도 여기에 굴복해 엎드린다는 것이다. 이러니 인간인들 오죽하겠는가. 무기력해지고 허약해질 수밖에 없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금에 해당하는 경일(복날)에 몸을 보충하여야 하는데 개가 또한 이 금에 속한다. 개들로서는 황당하기 짝이 없고 분통터지는 설이지만 별다른 대책이 없으니 기가 막힐 것이다.

 

삼복기간에는 체온이 올라가는 것을 막기 위해 피부 근처에 다른 철보다 혈액이 많이 몰린다. 결과 위장과 근육의 혈액순환에 지장이 온다. 여름이면 식욕이 떨어지고 만성피로에 시달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먹는 것 시원찮으며 농사일은 힘겹던 전통사회에서는 이런 고통을 극복하기 위해서 복날 보신이라는 말로 영양섭취를 했다. 개장국, 삼계탕, 육개장이 이를 위한 주 메뉴였다. 그때나 지금이나 지도층 가정이나 고위층 인사들은 경제적으로 넉넉해 고기를 스스로 구하거나 정부에서 나누어주는 하사품으로 여름에 맞섰지만 농민 등 서민층은 별다른 방법이 없었다.

 

소, 돼지는 한 가정의 생계를 좌우하는 큰 재산이었으므로 손대지 못하고 대신 집에서 기르던 개를 희생시키는 것이 고작이었다. 온 동네 사람들이 모여 이날 하루는 그 동안의 노고를 서로 위로하며 잔치를 벌였다. 봄이 오자마자 들판에 나가 일하기 시작하면서 어느 한 날 쉬어 본 적이 있던가.

 

날이 좋으면 좋은 대로 비가 오면 오는 대로 논과 밭일은 할 일이 쌓이고 아무리 해도 표가 나지 않는 힘든 나날이었다. 게다가 삼복더위까지 오니 몸과 마음을 다시 추스르지 않으면 가을 농사일을 하기 힘들 것이 뻔했다.

 

삼복은 그런 점에서 힘을 재충전하는 휴가였다. 이 기간에 농민들은 아직 농사일이 늦어진 집의 일을 도우며 협동정신을 새로이 하고 허약해진 심신을 보강했다. 남존여비의 굴레에서 허덕이던 여자들끼리 계곡으로 물놀이를 가거나 바닷가에서 모래찜질을 하는 자유를 누리는 때도 삼복기간이었다.

 

조정에서부터 서민들까지 삼복동안 혹서를 이겨내고 가을을 준비하는 힘을 재구축한 것이다. 그리고 힘든 노동을 같이 해나가는 두레정신을 재다짐했다.

 

따라서 복날은 요즘 사람들이 보신탕을 먹고 멋쩍은 얼굴을 하고 나오는 날이 아니라 여름을 이겨내려는 조상들의 지혜와 협동정신을 강조하던 과거의 전통이 살아있는 날이다. 박물관에 유물로 전시되고 만 것이 아니다.

 

4,5 년전 충청도 어느 지방에 갔더니 아직도 복날이 엄연한 명절로 지켜지고 있었다. 마을마다 들 어귀의 느티나무 아래 아니면 회관에 큰 가마솥을 걸어 고기를 삶으며 동네 잔치를 벌였다. 농악대가 풍장을 울리는가 하면 어느 동네에서는 이동노래방이 등장해 질펀한 한 마당이 펼쳐지기도 했다.

 

그리고 다른 마을에 가서 축하하는 뜻에서 한바탕 놀아주면 거기에서도 답방을 하여 흥겹게 판을 벌이는 등 마을간의 정도 더욱 두텁게 다졌다. 설,추석 등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이 날 서울 등 외지에 나간 젊은이들이 돌아와 동네 어른들과 하루를 지낸 흐뭇한 명절이었다. 복날의 원형이 그렇게 살아있는 모습을 보니 반갑기 그지없었다.

-----
박연호

칼럼니스트
'쌍용' 사보 8월호 (2001.08)

 

 

삼복의 어원

삼복은 음력 6월에서 7월 사이에 들어 있는 속절(俗節)이다. 하지 후 셋째 경일(庚日)을 초복, 넷째 경일(庚日)을 중복, 입추 후 첫 경일(庚日)을 말복이라 하여, 이를 삼경일(三庚日) 혹은 삼복 이라 한다. 복날은 10일 간격으로 오기 때문에 초복과 말복까지는 20일이 걸린다. 그러나 해에 따라서 중복과 말복 사이가 20일 간격이 되기도 하는데, 이를 월복(越伏)이라고 한다. 복의 어원에 대해서는 신빙할 만한 설이 없다. 다만 최남선의《조선상식(朝鮮常識)》에 의하면 '서기제복(暑氣制伏)'이라는 뜻으로 풀이되고 있다.

 

삼복의 유래

복은 원래 중국의 속절로 진(秦)·한(漢) 이래 매우 숭상된 듯 하다. 조선 후기에 간행된《동국 세시기》의 기록에 의하면 "상고하면《사기(史記)》에 이르기를 진덕공(秦德公) 2년에 처음으로 삼복 제사를 지냈는데, 성 4대문 안에서는 개를 잡아 충재(蟲災)를 방지했다고 하였다."라는 내용이 전한다. 이로 보아 삼복은 중국에서 유래된 속절로 추측된다.

 

삼복의 풍속
삼복은 1년 중 가장 더운 기간으로 이를 '삼복더위'라 한다. 조선시대 궁중에서는 더위를 이겨 내라는 뜻에서 높은 벼슬아치들에게 빙표(氷票)를 주어 관의 장빙고에 가서 얼음을 타가게 하였다. 복중에는 더위를 피하기 위하여 아이들과 부녀자들은 여름 과일을 즐기고, 어른들은 술과 음식을 마련하여 산간계곡으로 들어가 탁족(濯足)을 하면서 하루를 즐긴다. 한편으로 해안지방에서는 바닷가 백사장에서 모래찜질을 하면서 더위를 이겨내기도 한다. 복날과 관계 있는 속신으로 '복날에 시내나 강에서 목욕을 하면 몸이 여윈다.'는 것이 있다. 이러한 속신 때문에 복날에는 아무리 더워도 목욕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초복에 목욕을 하였다면 중복과 말복 날에도 목욕을 해야 하는데, 이런 경우에는 복날마다 목욕을 해야만 몸이 여위지 않는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삼복의 시절음식
초복과 중복, 그리고 말복에 걸친 삼복더위를 이겨내는 시절음식으로 개장국이 있다. 개장국은 더위로 인해 허약해진 기력을 충전시켜 준다. 허준이 저술한《동의보감(東醫寶鑑)》에는 "개고기는 오장을 편안하게 하며 혈맥을 조절하고, 장과 위를 튼튼하게 하며, 골수를 충족시켜, 허리와 무릎을 온(溫)하게 하고, 양도(陽道)를 일으켜 기력을 증진시킨다."는 기록이 있어 개고기의 효능을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이외에도 복날에 개장국을 끓여 먹는 풍속은 여러 세시기(歲時記)에도 나타난다. 이들 기록은 개고기의 효능과 복중에 개장국을 절식(節食)으로 즐기는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예컨대《열양세 시기(洌陽歲時記)》에 의하면 "복날에 개장국을 끓여 조양(助陽)한다."는 기록이 있고, 또《동국세 시기(東國歲時記)》에는 "개장국을 먹으면서 땀을 내면 더위를 물리쳐 보허(補虛)한다."고 하였다. 또〈농가월령가(農家月令歌)〉에는 황구(黃狗)의 고기가 사람을 보한다고 하여, 황구를 일등품으로 여기고 있다.

이러한 문헌을 통해서 볼 때, 개장국은 우리 민족이 건강식으로 널리 즐겼음을 알 수 있다. 개고기 요리법에 관한 기록은 조선시대 조리서에 나타난다.
조선시대 조리서에는 개고기 요리 의 종류와 원리를 다양하게 기록하고 있다. 예컨대《규곤시의방(閨 是議方)》에는 개장·개장국누 르미·개장고지누르미·개장찜·누런 개 삶는 법, 개장 고는 법 등 전통 요리법이 자세하게 기록 되어 있다. 또《부인필지(婦人必知)》에 의하면 "개고기는 피를 씻으면 개 냄새가 나고, 피가 사람 에게 유익하니 버릴 것이 아니라 개 잡을 때 피를 그릇에 받아 고기국에 넣어 차조기잎을 뜯어 넣고 고면 개 냄새가 나지 않는다."라는 기록이 있다.

우리 민족이 개장국을 건강식으로 널리 즐겼음은 분명하나 지방에 따라서 개고기를 먹으면 재수가 없다고 하여 금하기도 하였다. 또 특정 종교의 세계관에 의해 개고기를 식용으로 하는 것을 금기시 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이유로 개장국을 대신하여 삼계탕을 즐기기도 한다. 삼계탕은 햇병아리를 잡아 인삼과 대추, 찹쌀 등을 넣고 고은 것으로서 원기를 회복하는 데 도움을 준다. 이외에도 팥죽을 쑤어 먹으면 더위를 먹지 않고, 질병에도 걸리지 않는다고 하여 초복에서 말복까지 먹는 풍속이 있다. 팥죽은 벽사의 효험을 가진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무더운 복 중에 악귀를 쫓고 무병하려는 데에서 나온 풍습이다.

'▣알고 싶어요☞ > ?? 알고싶어요 ??'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우리나라 국보  (0) 2005.09.05
디카 배우기 97선  (0) 2005.08.28
[20050709]물을 좋아하는 식물(서울광장)  (0) 2005.07.09
손자병법 36계  (0) 2005.07.06
이 꽃의 이름을 아시나요?  (0) 2005.06.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