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7월 6일(목) '청계천 물길따라 동대문까지, 성곽길따라 낙산공원까지' 다녀오다.
여름 청계천을 걷다가, 해질 무렵 낙산에 올라 '도시의 빌딩 너머로 지는 낙조'를 보고자...
예정은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바닥분수에서 솟구치는 시원한 물줄기를 보면서 더위를 식히고,
청계천 물길따라 걷다가 '청계천 1구간' 끝인 '동대문 오간수문'에서 시원한 맥주 한 잔 후에,
동대문에서 성곽길을 따라 '한국의 몽마르트 언덕'이라는 '낙산공원'에 올라서 시내를 둘러보고,
빌딩 너머로 지는 도시 낙조를 감상하고 싶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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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을 크게 보는 방법 = 마우스 왼쪽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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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청역 5번 출구를 나오니...
▼ 시청앞 '바닥분수'는 아직...
☞ 바닥분수란 수조가 지하에 묻혀 있어 분수가 가동되지 않을 때는 그냥 보도처럼 보이지만 가동되면 화강석 바닥에 뚫린 121개의 지름 30cm 구멍(노즐)에서 물줄기가 솟아오르는 것.
7가지 색을 발하는 131개의 LED 수중 조명이 높이 70㎝~2.5m까지 35가지의 다양하고 화려한 장관을 연출합니다.
▣ 분수대 가동안내
기간 : 3. 15 ~ 11월말
시간 : 07:30~09:00 / 12:00~14:00 / 16:00~18:00 / 20:00~21:00 (8월은 22:40까지)
▼ 서울광장 잔디밭에는...
▼ '바닥분수'에서 물이 쏟아오르자...
▼ 서울광장 잔디밭에는...
▼ 서울광장 한쪽에는...
▼ 연과 수련의 차이를 아시나요?
▼ 청계광장으로...
▼ 신문을 읽고있는 이들...
▼ 청계광장에는 '스프링'이라는 조형물 설치 中
▼ 청계천 입구에는 도우미들이...
▶ 청계광장
청계천이 시작되는 세종로에 조성된 청계광장. 삼색 조명이 어우러진 캔들 분수와 4m 아래로 떨어지는 2단 폭포가 장관을 연출한다.
폭포 양 옆에는 전국에서 돌을 가져온 8도석으로 제작된 ‘팔석담’을 깔았다. 밤이면 빛과 물이 어우러지는 환상적인 모습을 연출한다.
또, 청계천 전구간을 1/100로 축소한 미니어쳐 역시 멋진 볼거리를 제공한다.
▼ 청계광장에 설치된 '청계천 미니어처' - 청계천을 1/100로 축소했다네...
▼ 퍼포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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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계천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다면
☞ 청계천홈페이지 바로가기 http://cheonggye.seoul.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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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계천 캔들(촛불)분수
▼ 청계천 시점폭포(4m높이의 2단폭포)
▼ 팔도석이 있는 팔석담
▶ 팔석담(八石潭)이란?
「八石潭」은 모전교까지 폭 21m, 길이 60m의 구간으로서 과거의 조선 8도와 미래의 통일된 한반도에 흐르는 물의 의미를 담기 위한 각 도를 상징하는 석재조형물인 8도 저수호안석으로 구성하였고, 「八石潭」은 보행자들이 물과 직접 만나면서 경험할 수 있도록 산책로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과거 조선 8도를 나타내는 석재조형물은 각 지방을 원산지로 하는 두개의 통석과 그 통석들의 사이 갈라진 틈에 설치된 분수를 가지며, 분수를 통해 뿜어진 각 도의 분수물이 청계천에 합류됨으로써 끊임없이
흐르는 물의 생명력과 8도를 연력하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팔도의 화합을 상징하는 친수형 저수호안으로 각 팔도산지의 석재를
이용하여 형상화하고 팔도의 석재들 사이에는 화합의 물 길을 형상화하는 작은 물길이 연출되도록 분출구를 설치하였고, 八石潭 바닥 또한 석재로 되었습니다.
▼ 모전교 - 청계천의 첫번째 다리지만 길이는 가장 짧다고 합니다.
옛 교량명칭으로 길모퉁이에 자리하고 있는 과일을 파는 과전(果廛)을 '모전[隅廛]'’이라고 불렀는데, 이 다리가 바로 그 모전 부근에 있었으므로 그렇게 이름하였다.
종로구 서린동과 중구 무교동 사이의 네거리에 있던 청계천의 옛 다리이다.
부근에 토산 과일을 파는 모전(毛廛)이 있어서 ‘모전다리’즉 모전교, 모교라고 불렀다. 그러나 원래는 태종 12년(1412) 종묘입구 서쪽의 개천을 석축(石築)으로 방축하고 동쪽을 목작방축(木作防築)할 때 석교로 조성하였다.
당시는 신화방동구교라 불렀으나 영조 연간(年間)에 작성된 도성삼군문분계지도(都城三軍分界之圖)에는 모전교로 기록되어 전한다.
▼ 뒤돌아보니...
▼ 광통교쪽으로...
▼ 퍼포먼스
▼ 징검다리
☞ 청계천의 다리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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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도교 - 광통교, 장통교, 수표교(임시보도교), 세운교, 새벽다리, 나래교, 맑은내다리, 두물다리 · 차도교 - 모전교, 광교, 삼일교, 관수교, 배오개다리, 마전교, 버들다리, 오간수교, 다산교, 영도교, 황학교, 비우당교, 무학교, 고산자교 | ||
첫번째 다리 : 모전교 | ||
마지막 다리 : 고산자교 | ||
가장 긴 다리 : 19번째 다리 비우당교 46.6m | ||
가장 짧은 다리 : 2번째 다리 광통교 12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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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통교
▼ 광통교에 대하여...
▼ 거꾸로 놓인 돌
▼ 바로 놓인 돌
▼ 癸巳更浚(계사갱준) - 계사년에 다시 준설하였다.
▼ 庚辰地平(경진지평) - 이 글자를 새긴 이유는 개천(開川)을 말끔히 파냈더라도 유지보수를 게을리 하면 토사가 다시 쌓일 것이고, '경진지평'이라고 새겨 놓고, 앞으로 개천 관리시 그 글자가 다 보여야만 한다는 뜻이다.
▼ 광통교를 돌아보니...
▶ 광통교(廣通橋)
지금 서린동 124번지 부근에 있었던 다리인데 광통방에 있는 큰 다리였으므로 처음에는 대광통교라 하였다. 특히 옛부터 서울에서는 큰 다리로 알려져 정월 대보름이 되면 도성의 많은 남녀가 이 곳에 모여 답교(踏橋)놀이를 하던 곳으로 유명하였다.
서린동 124번지 부근에 있던 다리이다. 지금의 보신각이 있는 종로 네거리에서 을지로 네거리 방향으로 나아가다가 청계로와 만나는 길목에 놓여 있었던 다리이다. 조선시대 광통방(廣通坊)에 있던 큰 다리였으므로 대광통교(大廣通橋)라 했다.
『세종실록』 지리지에는 북광통교(北廣通橋),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는 대광통교, 「도성지도(都城地圖)」에는 광통교, 「수선전도」에서는 대광교(大廣橋) 등으로 각각 기록되어 있어 약간의 차이는 있으나 모두 같은 다리를 나타내는 말이며, 일상적으로 대광교 혹은 광교라고 불러왔다.
이 다리에 놓여진 돌들은 조선왕조를 개창한 태조 이성계의 계비 강씨의 묘를 황화방 정동에서 성북구 정릉동으로 옮기고 당초 묘에 썼던 돌들을 옮겨 다리를 건설하는 데 사용하였다. 왕비의 묘에서 잘 다듬어진 돌들을 다리를 건설하는데 사용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나 조선초기의 정치상황을 보면 이해할 수 있다.
즉 이성계가 자신의 왕위를 강씨의 소생인 방석(芳碩)에게 넘겨 주려 하자 전처 소생인 이방원이 난을 일으켜 정도전과 방석을 죽이는 사건인 왕자의 난이 발생하였다. 이후 정권을 장악한 이방원이 자신의 계모인 강씨의 묘를 옮기는 과정에서 묘에 사용되었던 돌들을 다리로 옮겨 놓은 것이다. 당시 이방원의 강씨에 대한 미움의 정도를 파악할 수 있는 대목이다.
한편 광교를 중심으로 그 주위에는 많은 상가들이 있어 서울 상업의 중심지 역할을 하였다. 즉 닭과 계란을 파는 가게, 갓을 만드는데 사용되는 대나무를 파는 가게, 갓을 파는 가게, 부인의 머리 장식을 파는 가게, 부인들의 패물과 가락지등을 파는 가게, 신발을 파는 가게, 물감과 중국 과실을 파는 가게, 칠 목기와 장롱을 파는 가게, 잔치 때 그릇을 세 놓는 가게, 채소를 파는 가게, 솜을 파는 가게, 말총, 가죽, 초, 실, 휴지, 책등 잡화를 파는 가게, 말안장, 등자, 굴레등을 파는 가게, 서화와 책을 파는 가게 등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어 상업의 중심지 역할을 수행하였다. 그리하여 많은 사람들이 항상 광통교 주위에 모여들어 생필품을 팔고 사곤 하였다.
1958년 광통교를 복개한 이후 다리의 돌에 새겨진 문양을 볼 수는 없지만 매우 정교한 구름무늬와 당초(唐草)무늬, 그리고 한가운데 두 손을 합장하고 머리에 관을 쓴 신장상(神將像)을 돋을새김한 돌들이 놓여 있었다. 이러한 문양의 돌을 복개된 청계천 내부로 들어가면 아직도 그래도 남아 있어 확인할 수 있다. 지금은 조흥은행 앞에 옛다리를 축소복원한 모형이 있다.
▼ 광교(廣橋) - 광통방에 있던 크고 넓은 다리라는 의미에서 옛부터 광교라 일컬어졌으며,
현재 광교 사거리가 이 위치에 해당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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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교 아래를 지나며...
▼ 정조대왕 능행반차도 - 모전교와 광통교를 지나 광교에 이르면 청계천 왼쪽 석벽에 세계 최대 규모의 도자벽화인 ‘정조대왕 능행 반차도’가 나타난다.
정조대왕이 1795년 사도세자의 회갑을 기념해 모친 혜경궁 홍씨를 모시고 화성(현재 수원)에 행차하는 모습을 광교에서 삼일교 사이 186m 구간에 백자 도판 4960장을 이어 붙인 벽화로 웅장함이 장관을 이룬다.
▼ 수선전도
▼ 징검다리가 혼잡하네...
▼ 장통교
현 중구 장교동 51번지와 종로구 관철동 11번지 사이 청계천에 놓였던 다리이다.
이 다리 근처에 ‘장찻골’로 불리는 마을이 있었다 하여 이 부근에서는 ‘장찻골다리’라 부르기도 한다. 그러나 원명은 중부 장통방에 있던 다리이므로 장통교, 혹은 줄여서 장교라 하였다.
중구 장교동 51번지와 종로구 관철동 11번지 사이 청계천에 놓였던 다리이다. 이 근방이 조선시대 장통방(長通坊)이었으므로 붙여진 이름이며, 이 다리 부근에 긴 창고가 늘어서 있었다 하여 장창교(長倉橋)라고 불렀고 달리 장찻골다리라고도 불렀으며, 장통교를 줄여서 장교(長橋)라고도 불렀다.
다리 서쪽 기둥에 '신미개조(辛未改造)'와 '기해개조(己亥改造)'의 8자가 새겨져 있는 것으로 보아 두 차례에 걸쳐 보수되었음을 알 수 있다.
남산에서 발원하여 북쪽으로 흘러 내리는 창동천과 회현동을 거쳐 내려오는 물줄기가 소광통교에서 만나고 다시 남산동천의 물줄기와 합하여져 이 다리 앞에서 청계천의 본 물줄기와 합하여 진다. 따라서 장통교를 중심으로 서쪽에는 삼각주를 이루어 넓은 지세를 형성하고 있다.
이 일대는 일찍부터 도성 안 상업의 중심지가 되어 시전상인들이 모여 살던 곳이며, 중앙과 지방 관청의 연락사무를 맡아 보던 경주인(京主人)들의 본거지였다. 뿐만 아니라 19세기 중인으로서 개화 물결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면서 선각자적 역할을 수행한 유대치(劉大致)가 장통방 지금의 보신각 뒤편에 살았었다.
▼ 삼각동 벽천
▼ 삼일교
1919년 3월 1일 탑골공원에서 독립선언을 한 뒤 전국에서 일제의 탄압에 항거하는 시위운동을 벌였기 때문에 이를 기념하기 위해 명명된 삼일로 인근에 위치하여 명칭을 인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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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표교
수표교가 놓여진 것은 1420년(세종2)으로 당시 이곳에 마전(馬廛)이 있어서 마전교라 불렀으나, 1441년(세종 23)에 다리 옆에 개천의 수위를 측정하기 위해서 수표석(水標石)을 세운 이후 수표교라고 하였다.
수표교의 원형은 1959년 청계천을 복개할 때 장충당공원으로 옮겨졌다.
▼ 원추리
▼ 관수교(觀水橋)
관수교는 1918년 일본에 의해 지금의 청계 3가 사거리에 놓여있던 다리이다.
이곳에 청계천 준설사업을 위한 준천사가 설치되어 있었고 준천사에서 청계천의 수위를 관측하였다는 데서 유래한 옛 교량 명칭으로 현 관수동에 위치 함.
▼ 능소화
▼ 세운교 - 현 세운상가에 인접하여 세워지는 다리로, 세운상가의 명칭을 인용
▼ 배오개다리
현 종로4가 네거리에 배오개(梨峴)라는 고개가 있었으므로 배오개길이라 명명한 이름에서 유래
▼ 새벽다리 - 방산시장과 광장시장을 잇는 다리로 천막을 친 재래시장의 분위기를 반영한 보행자 전용다리이다. 새벽에도 활기찬 시장을 상징한다.
▼ 옥류천 - 창덕궁 후원에 흐르던 개울을 형상화해 만든 벽천
‘옥과 같은 맑은 물이 바위를 돌아 폭포처럼 떨어진다’하여 붙여진 창덕궁 후원의 ‘옥류천’을 형상화한 조형물이다.
높이 2.5m, 폭 1m의 벽천. 옛 청계천에 유입되던 물길을 기억하기 위해 창덕궁 옥류천의 이미지를 형상화하였다. 또한 토구에서 떨어지는 물줄기는 북한산 골짜기의 작은 폭포를 보는 느낌을 준다.
▶ 옥류천
옥류천은 창덕궁 후원 북쪽 깊숙한 곳에 흐르는 개울을 가리킨다.
인조 14년(1636년)에 커다란 바위인 소요암을 깎아 둥근 홈을 만들어 옥과 같이 맑은 물이 바위 둘레를 돌아 폭포처럼 떨어지게 만들었다. 임금과 신하들이 여기에 둘러앉아 흐르는 물에 술잔을 띄우고 시를 지었다.
근처의 소요정, 태극정, 청의정 등과 함께 후원에서 가장 아름다운 경치를 간직하여 많은 임금들에게서 사랑받았던 곳이다. 소요암에는 인조의 玉流川이라는 어필 위에 숙종의 오언절구시가 새겨져 있다.[ 창덕궁 홈페이지에서 ]
▼ 마전교(馬廛橋)
인근 옛교량 명칭으로, 다리 부근에 우마(牛馬)를 매매하는 마전(馬廛)이 있었던 것에서 인용.
빛의 마을(창선)과 우마(牛馬 )시장의 유래표현을 위해 전통문살모양의 조명과 청동말(馬)상 배치
▼ 잉어가...
▼ 징검다리
▼ 나래교
나비가 날개를 활짝 편 형상의 다리로, 동대문 의류상권의 중심지역에 위치하는 교량.
인근 동대문 의류상권이 세계 패션 1번지로 비상하는 의미를 담음
▼ 비단잉어도...
▼ 버들다리
과거 오간수문 상류에 왕버들이 많았었다는 데서 명칭을 인용하였으나 서울시 지명위원회에서 재검토 권고로 공식명칭 사용 보류
사고에 따른 보행자 동선을 위해 차보도 분리 파골라 설치로 도심 속의 정원 연출
▼ 뭔가가 떠다니는 것이 보이기에...
▼ 청둥오리
▼ 패션분수
▼ 오간수교
동대문에서 을지로 6가로 가는 성벽 아래 청계천 6가에 있던 다리이다.
홍예문(紅霓門)으로 다섯 칸으로 되었다 하여 "오간수다리" 또는 "오간수문" 이라 하였다
이 다리는 청계천 물줄기가 도성을 빠져 나가는 지점에 놓여 있던 다리이다. 즉 서울에 성곽을 쌓으면서 청계천 물이 원활하게 흘러갈 수 있도록 다섯 개의 아치형으로 된 구멍을 만들었고, 그 위로 성곽을 쌓아 올렸으며, 아치 모양의 구멍을 서로 연결하여 성벽 안쪽으로 장대석을 연결하여 다리를 놓았다.
이 다리가 동대문 옆의 오간수문을 설치한 다리이므로 오간수다리라 불렀다. 이 오간수문은 물길이 잘 빠져가기 위해 가설한 것인데 조선시대에는 도성 안에서 죄를 지은 자가 도성을 빠져 달아나든가 혹은 밤에 몰래 도성 안으로 잠입하는 사람들의 통로로 곧잘 이용되기도 하였다.
그 예로 명종 때 전국적으로 사회를 흉흉하게 만들었던 임꺽정의 무리들이 도성에 들어와 전옥서를 부수고 도망갈 때도 이 오간수문을 통해 달아났었다.
이 다리는 1907년 일제가 청계천 물이 잘 흘러가도록 한다는 미명하에 오간수문을 모두 헐어버릴 때 함께 사라지고 콘크리트 다리로 교체되었다가 후에 성곽이 훼손되는 것과 함께 오늘날에는 그 자취를 찾아볼 수 없다.
마전교와 오간수다리 사이에는 조선시대 때 청계천의 하상을 준설하고 여기에서 나온 흙들을 쌓아 인공적으로 만든 산인 가산(假山)이 있었다.
▼ 이곳에도 능소화가...
▼ 오간수문
오간수문이 있던 자리로서 오간수문이란 조선초기 도성을 쌓을 때 청계천의 물줄기가 도성 안에서 밖으로 빠져나가는 지점에 있었던 다섯개의 수문을 말한다.
수문은 동대문(흥인지문)과 광희문을 잇던 성곽의 하부에 설치돼 있었다. 처음에는 3칸이었으나 5칸으로 증축되었다. 1908년, 동대문 주변 성곽을 헐면서 오간수문도 같이 헐었고 그 자리에 콘크리트 다리를 놓았다. 이 마저도 이후에 헐려 지금은 남아 있지 않다.
2003년 발굴조사 때 오간수문의 아래쪽 끝받침과 홍예(무지개 모양의 구조물) 기초부, 돌거북 등이 발굴됨에 따라 그 터를 사적 제 461호로 지정하였다.
▼ 두타빌딩
일단 청계천 1구간을 탐방하고...
잠시 허기를 달래고....
▼ 동대문
▼ 아직 정비공사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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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드베키아
▼ 낙산공원 입구
▼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쪽으로 내려와서...
▼ 빈대떡이나 먹죠.
▼ 위하여...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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