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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과 깨달음☞/♡ 좋은 글 모음

집착(執着)을 버려야 하는 이유

by 맥가이버 Macgyver 2007. 2. 1.

 
 

♤- 집착(執着)을 버려야 하는 이유 -♤

 

무언가를 나누어주거나 또 무언가를 받을 때,
참 기분이 좋다.
줄 때도 기분이 좋고, 받을 때도 기분이 좋다.

그런데 주었을 때 좋은 기분하고,
받았을 때 좋은 기분은 좀 다르다.

주었을 때 기분이 좋은 이유는 무얼까?

 

무언가를 주게 되면
'내 것'이 소멸되기 때문에 괴로워야 할텐데
좋은 것은 무엇 때문인가?

 

그것은 우리 안의 참 나,
다시 말해 온 우주 법계의 참 성품이
둘이 아닌 하나로, 대아(大我)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주는 자도 받는 자도
주는 것 또한 모두가 하나의 성품이니까
무엇을 주고받고도 없이 그냥 좋은 것이다.

즉 주었을 때 좋은 기분은
가만히 살펴보면 근원적인 기쁨이라고 할 수 있고,
받았을 때 좋은 기분은
보통 세간(世間)적인 기쁨이라고 할 수 있다.

 

받았을 때 '내 것'이 늘어나는 것이니까.
받았을 때는 들뜨는 기쁨이지만
주었을 때의 기쁨은 그저 담담하고 맑다.

물론 주고받기를 다 초월해 버렸다면
주는 것이든 받는 것이든 똑같이 근원적인 기쁨을
얻을 수 있겠지만 보통이 그렇다는 말이다.

 

다시 말하면 주었을 때 우리는 기쁨을 느낀다.
근원적인 통찰의 기쁨을 느끼는 것이다.
주었을 때 좀 더 근원의 마음자리를 느끼게 된다.
좀 더 본래의 마음자리,

참 성품과 가까이 하게 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면 주었을 때 '내 것'이 소멸되니까
괴로워야 하겠지만 참으로 맑게 주었을 때는

'큰 나(大我)'가 '큰 나'에게 주고 또 받는 것이기

때문에 결국 그것도 '큰 나'가 받는 것이니까

좋은 것이란 말이다.

이것이 우리가 베풀고 보시(布施)를 해야 하는 이유다.

 

보시(布施)가 단순한 복을 짓는 일을 뛰어넘어
깨달음의 씨앗이 되는 이유인 것이다.

물론 주고 나서, 베풀고 나서
좋은 느낌이 아닌 싫은 느낌일 수도 있다.

주고 나서 마음이 괴롭다거나
'내 것'을 잃었다는데

아깝다거나 허탈감을 느낄 수도 있다.

 

그것은 집착(執着)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집착(執着)이 남아 있는 베풂은 기쁠 수가 없다.
참된 베품은 집착(執着)이 없는 데서 온다.


베품이야말로 무집착(無執着)의 온전한 실천이다.

집착(執着)하지 않아야 맑게 베풀 수 있고,
또한 베풀었을 때 집착(執着)을 버릴 수 있다.

 

무집착(無執着)이야 말로
모든 중생들의 괴로움을 풀어줄 수 있는 해답이다.
집착(執着)이 모든 괴로움의 씨앗이 되기 때문이다.

모든 괴로움의 씨앗은 집착(執着)이고,
집착(執着)을 놓아야

평화롭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으며,
바로 그 집착(執着)을 놓으려면 베풀어야 한다.

 

집착(執着)을 놓는 것이 모든 수행의 핵심이다.

집착(執着)을 버리는 것이 마음을 비우는 것이고,
공으로 나아가는 길이며,
반야(般若) 지혜를 얻는 깨달음의 길이다.

 

조금 달리 말하면
집착(執着) 없는 행이야말로 베품의 행위이다.

집착(執着) 없이 일을 할 때
그 일은 복덕(福德)을 증장(增長)시키며,

지혜를 증장(增長)시킨다.

 

집착(執着) 없는 행을 하려면
과거도 미래도 다 놓아버릴 수 있어야 한다.

과거를 기억은 할지언정
연연해하거나 붙잡고 늘어질 것은 없고,
미래를 계획은 할지언정
연연해하거나 집착(執着)할 것은 없는 것이다.

 

과거나 미래에 마음이 걸리게 되는 것
그것이 바로 집착(執着)이다.

그렇기에 집착(執着) 없는 행은
오직 지금 이 순간에 존재함으로써 얻을 수 있다.

오직 지금 이 순간 과거도 미래도 놓아버리고
다만 이 순간에 존재할 때 집착(執着)은 없다.

그렇게 지금 이 순간에 깨어있는 마음으로

사물을 볼 때 이 세상은 좋고 나쁠 것도 없고
옳고 그를 것도 없는 텅 빈 고요 그 자체다.

 

좋다 싫다, 옳다 그르다 하고 고집할 것이 없으니
그 마음의 모든 분별이 쉬게 된다.

모든 분별을 쉬고 텅 빈 시선으로 세상을 보게 되면
이 세상은 전혀 새로운 순간이 열린다.

이 세상은 이전에 알고 있던 세상도 아니고,
내 틀 속의, 내 고정관념 속의 세상도 아니며,
오직 지금 이 순간 밖에 없는 어린아이같이

순수하고 텅 빈 새로운 순간이 되는 것이다.

 

날마다, 아니 매 순간 순간이

새롭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집착(執着)이 없다는 것은
분별할 것이 없다는 말이고, 날마다 새롭다는 말이며,

그러한 시선으로 세상을 살아가게 된다면
그 삶 자체가 보시(布施)의 삶이 되고
복을 짓는 삶이 되는 것이다.

 

- 좋은 글에서
 


위 사진은 2007년 1월 02일(화) 북한산/북악산 연계산행 時

'관봉 정상'에 올라 '백운대'를 쳐다보며 찍은 것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