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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등산사진후기☞/♤ 관악산·삼성산·호암산

[20070211]호암산(호압사)/삼성산(삼막사)/관악산(불성사) 연계산행 - 2부

by 맥가이버 Macgyver 2007. 2.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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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2월 11일(일) 호암산(호압사)/삼성산(삼막사)/관악산(불성사) 연계산행을 다녀오다.

 

오늘은 호암산의 호압사와 삼성산의 삼막사, 그리고 관악산의 불성사를 순례하는 테마로

3개 산을 연계하는 산행을 하였다.

 

'신림역' 3번 출구 밖에서 함께 하겠다는 님들을 만나서 버스를 타고 '벽산아파트'에서 하차한 후

'호암산문' 옆으로 난 잣나무길을 따라 오르다가 '호암산 호압사'라는 표지석이 있는 곳에서

다시 아스팔트 도로를 따라 오르다가 '호압사'에 들러 둘러보았다.

 

이후 이야기는 사진으로 대신한다.

 

 

☞ 제2부 삼성산 삼막사 이야기

 

▼ 맥가이버는 저 앞 삼거리를 호암산과 삼성산의 경계로 본다.

 

 ▼ 좌측 내리막은 철쭉동산으로 가는 길이다.

 

▼ 이제 삼성산을 향하여...

 

▼ 능선을 따라...

 

▼ 우측으로는 경인교대와 광명역사가 보이고...

 

 

 

 

 

▼ 넓은 암반 위에서...

 

▼ 보니...

 

▼ 경인교대와 광명역사가...

 

 ▼ 다시 살짝 내려서다가...

 

▼ 제1국기봉을 올려다 보니...

 

 

▼ 비탈길을 올라서고... 

 

 

 

 

▼ 주막거리를 지나...

 

 ▼ 교행이 어려울 정도로 등산객들이 많다.

 

 

▼ 관악산을 보니...

 

▼ 많은 등산객들이 점심식사 중이다.

 

▼ 이제 관악산에는 돌만큼 사람도 많다.

 

▼ 거북바위 등을 타고 넘어서...

 

 

▼ 삼막사로 가는 포장도로를 따라...

 

 

 

▼ 한때 이곳에 돌을 던져 넣으면서 소원을 빌기도 했었는데...

 

▼ 이런 안내문이...

 

▼ 반월암 앞을 지나...

 

 

 

 

 

▼ 삼막사 입구 안내문에는...

 

▼ 삼성산(三聖山) 삼막사(三幕寺) 기행 - '한국의 산천'에서 빌려온 글


삼성산(461m)은 관악산의 서쪽 봉우리로써 안양시 석수동에 자리잡고 있다.

이 삼성산은 '봉은본말사지 삼성산삼막사 사적기(奉恩本末寺誌 三聖山三幕寺 事蹟記)'에 의하면 "677년(신라 문무왕 67년)에 신라의 원효(元曉), 의상(義湘), 윤필(尹弼) 대사가 함께 띠로 만든 집을 얽고 수도하니 사람들이 삼성산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되어 있다.

그리고 삼성산에 자리잡은 절 이름도 세 명의 성인이 이 곳에 암자를 짓고 수도하였다고 하여 삼막사라고 하였다고 한다. 그 후 신라 말에 도선(道詵)이 중건하여 이 삼막사는 관음사(觀音寺)로 바뀌었다고 한다.


고려 때에는 태조가 이 관음사를 중수하고 이름을 다시 삼막사로 돌려놓았다. 삼막사 선실 뒤편에 자리한 삼막사 삼층석탑이 이 고려시대의 흔적을 남기고 있다.

삼막사 내에서 가장 오랜 세월의 풍상을 겪은 이 석탑의 몸체는 층이 오를수록 급격하게 체감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무거운 느낌을 준다.


이 탑은 1232년(고려 고종 19년) 9월 몽고군의 2차 침공 때 삼막사 승도이자 승장(僧將)인 김윤후(金允候)가 몽고장군 살리타(撒禮塔)를 화살로 살해하고 승전한 것을 기념하여 지은 탑이다. 그러나 <고려사>에 의하면 김윤후는 몽고와의 전투 당시에 송탄의 백현원(白峴院)에서 수도하고 있었다고 하는데, 김윤후가 송탄에서 가까운 이 삼막사에서 진짜 수도를 하고 있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다만 이 탑의 양식이 고려시대의 것이므로 김윤후의 승전을 기념하기 하기 위해 이 탑을 만들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닐까 싶다. 이 조그마한 탑을 보면, 고려시대의 삼막사는 그리 큰 사찰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으며, 몽고와의 전란 중에 탑을 만드는 정성이 부족할 수밖에 없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고려말 조선초의 삼막사는 어땠을까? 고려 말인 1348년(충숙왕 4년)에 나옹(懶翁) 대사가 이 절에 머물면서 수도하였고, 조선 초인 1394년(태조3년)에는 국사 무학(無學) 대사가 한양 천도에 즈음하여 이 절에서 국운의 융성을 기원하였다. 이러한 인연으로 1398년 태조에 의하여 이 삼막사는 중건되었다.


'시흥읍지(始興邑誌)''경기지(京畿誌)' 등 조선의 조정에서 편찬한 문헌에는 고려 말 불교계를 이끌던 지공(智空), 나옹, 무학이 이곳에 올라 각기 수도에 정진하였기에 이곳을 삼성산이라고 불렀다는 기록도 전한다.


삼성산이 오랜 역사를 거치면서 각 시대마다 '삼성'의 유래가 임의적으로 정해진 듯 하지만, 현재로서는 어느 유래가 정확하다고 밝힐 수는 없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신라시대의 '삼성'은 '삼성'이 이 곳에 머물렀다기보다 그 '삼성'을 기리기 위한 이름일 가능성이 높다.


신라의 원효, 의상대사는 전국의 웬만한 사찰에서는 모두 차용하는 이름들이고, 삼성산 삼막사가 융성한 것이 조선시대이기 때문이다. 고려말 조선초의 '삼성'은 역사적 기록물에 전하는 바에 따라 이 삼막사에서 실제로 수도한 것으로 보인다.


도선대사와 무학대사는 우리나라 풍수의 골격을 형성한 이들이어서, 이 삼막사는 풍수적으로 한양의 땅과 깊은 연관이 있는 것으로 전해지게 되었고, 이 후 많은 이들이 삼막사를 찾게 되었다.

삼막사는 태종(太宗)때 대중창이 있었으며, 현재의 삼막사는 조선 세조 때에 세워졌다. 조선 세조 때부터는 삼막사가 남서울의 으뜸 사찰로서 서울 주변 4대 명찰의 하나로 꼽혔다. 세조는 왕실의 안녕을 위하여 도성의 사방에 원찰(願刹)을 정했는데, 동쪽의 불암사, 서쪽의 진관사, 북쪽의 승가사와 아울러 삼막사를 남왈 삼막(南曰三幕)이라 하여 남쪽의 원찰로 한 것이다.


조선 중기에는 이 삼막사에서 서산대사·사명대사 등이 수도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임진왜란 당시에는 왜구가 침범하여 불을 질렀으나 법당건물이 타지 않아 왜구가 참회하고 떠났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면 어찌 된 일인지 이 삼막사의 역사에는 우리나라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의 유명한 스님은 모두 수도하였다고 전해지고 있는 것이다. 그 시대마다 내가 살면서 본 것이 아니기 때문에 어느 스님의 행적이 사실과 부합되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조선 후기의 역사는 삼막사 사적비(三幕寺 事蹟碑)에 남아 있다. 향로봉에서 삼막사로 향하는 길가에 있는 석비는 1707년(숙종 33년)에 건립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삼막사의 위치를 말해주는 이 비는 팔작지붕 석재 아래에 날씬한 몸체를 가지고 있다.

 
삼막사 내에 자리한 여러 전각들은 대부분 최근에 복원한 것들이지만, 2단의 장대석 위에 자리 잡은 맞배지붕의 명왕전(冥王殿: 죽은 이의 넋을 극락으로 인도하는 전각)은 1880년(고종 17년)에 건립되어 1975년에 개수되었다. 이 건물의 공포(처마 무게를 받치려고 기둥머리에 짜 맞춘 목재)는 기둥 위에만 장식되어 있는 주심포(柱心包) 양식이나, 조선 후기의 일반적인 장식적 요소가 가미된 것이다.


삼막사에서 전망이 가장 좋은 곳은 망해루(望海樓)이다. 과거에는 맑은 날이면 서쪽의 서해가 보여서 이 곳의 이름을 망해루라고 하였으나, 현재는 매연으로 인하여 아주 청명한 날에만 서해 바다가 보인다. 이 곳에서 내려다보면 주위의 산줄기가 아래로 뻗쳤고, 앞쪽으로는 안양천이 가로지르며, 멀리에는 안양, 군포, 의왕시를 둘러싼 수리산(690m)이 이 곳을 포근하게 감싸주고 있다.


삼막사에 오면 빠트리지 않고 꼭 보고 가야 할 곳이 사적비에서 관악산 쪽으로 3백m가량 오르면 있다. 산정 아래의 이 곳에는 1881년(고종 18년)에 지어진 칠성각(七星閣)이 있고, 이 안에 마애삼존불상(磨崖三尊佛像)이 있다. 아름드리 적송이 쭉쭉 뻗은 산 속에 아담하게 자리한 불상이다. 불상 아래 '건륭(乾隆) 28년(1763년, 영조 39년) 계미(癸未) 8월 일화주오심(日化主悟心)'이라는 명문이 남아 있어, 이 불상이 조선 영조 대에 만들어진 것을 알 수 있다.


자연 암벽 가운데를 깊이 파서 공간을 만들었고, 연화대 위에는 해를 나타내는 일광보살과 달을 나타내는 월광보살이 협시로 앉아 있다. 이 환한 미소의 보살들은 그 중앙에 부조된 치성광여래(熾盛光如來: 밤하늘 별 중 가장 밝은 북극성을 나타내는 부처)를 모시고 있다.


사람 키 정도 되는 1.6m 높이의 이 본존불은 중후한 사각형 얼굴에 작은 목을 가지고 있지만, 눈과 입이 자비스러운 미소를 보여준다. 그러나 잘 표현된 상체에 비해, 두꺼운 옷 밑에 선으로 조각된 몸체 하부는 생략이 많아 양감을 느낄 수 없고 경직되어 있다. 이는 불교가 쇠퇴한 조선 후기 불상의 한계가 드러난 것이다.


치성광여래로 표현되는 북극성은 옛적부터 방위의 기준으로서, 나그네나 뱃사람에게 친근하고 중요한 별이었다. 그래서 하늘에서 밝게 빛나는 이 치성광여래는 아이의 수명을 관장하고 아이에게 재능과 재물을 준다고 신봉되었다. 예로부터 남아선호가 유별났던 우리나라에서 여자들은 이곳에 모여 아들을 낳고자 빌었으며, 자녀를 낳은 후에는 자녀들이 무병장수 하기를 기원했다. 이는 불교와 도교의 칠성신앙, 우리나라의 민속신앙이 결합한 것이다.


풍수지리적으로 삼막사와 칠성각은 자녀를 잉태하는 길지에 자리잡고 있다고 하며, 이 사실은 인근 주민들에게 굳건한 토속신앙이 되어있다. 이는 칠성각 앞에 기가 막히게 생긴 남근석(男根石)과 여근석(女根石)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 바위들은 계곡 아래로 뻗은 5m 높이의 바위가 지표면에 갑자기 불쑥 솟은 모양을 하고 있다. 남녀 성기를 닮은 이 자연 바위들은 선바위(立石)라고도 불리는데, 남근석의 높이는 150㎝, 여근석의 높이는 110㎝이다. 얼핏 보기에는 커다란 바위로 지나칠 수 있지만, 바위의 이름을 듣고 자세히 보면 두 바위가 남근과 여근을 영락없이 닮았다.

 
산의 정점에 갑자기 솟아있는 이 바위 돌의 이름에는 아이를 낳게 해준다는 믿음이 서려 있다. 다른 곳과는 달리 이 곳에는 남근석과 여근석이 함께 있으므로 이 남녀근석은 음양의 기운을 한꺼번에 모으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바위를 만지면서 자식 가지기를 기원하거나 집안 가족들의 무병장수를 빌면 효험이 있다고 하며, 부부가 이곳을 같이 찾으면 부부생활도 원만해진다고 한다.


이 바위들은 삼막사가 창건되기 이전부터 토속 신앙의 대상으로 숭배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오늘날에도 사월 초파일과 칠월칠석날에는 인근 안양과 서울에서 자식 없는 사람들이 많이 찾아와 소원을 빈다.


남근숭배를 중심으로 하는 생식기숭배 사상은 특히 농경사회에서 일반화된 민속 신앙으로, 우리나라에서도 역사 시대 이전부터 다산을 기원하는 형태로 시작되었을 것이다. 남아를 선호한 우리 조상들 중 남아를 낳아달라고 치성을 드린 이들이 여인들이었고, 이 여인들은 당연히 남근석 앞에서 기도를 하므로 남근석이 더 인기가 좋았을 것이다.


사실 여부를 떠나서 삼성산과 삼막사를 찾는 이들에게 이 곳은 유쾌한 웃음을 짓게 하고, 이 곳의 신비로움을 믿는 이들에게 이 곳은 삶의 활력소가 되고 있는 것 같다. 같이 산행을 했던 일행 중에는 이 남근석과 여근석을 보지 못하고 내려온 사람들이 많다.  

 

 ▼ 삼막사 경내로 올라가는 계단을 따라...

 

 ▼ 삼막사

삼성산(三聖山)에 위치한 전통사찰 제9호인 삼막사는 신라시대에 원효대사(元曉大師)가 창건한 후, 조선 초기에 무학대사(無學大師)가 중수하였고, 서산대사 (西山大師)등이 수도한 곳이라고 전해져 온다.


그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보면, 지금으로부터 1300 여년 전인 신라 문무왕(文武王) 17년(677년)에 원효, 의상, 윤필 등 세 스님이 암자를 지어 정진한 바로 그  위치에  삼막사가 지어졌다고 하며, 삼성산(三聖山)이라는 이름도 이때 만들어졌다고 한다.  그 후 도선국사(道詵國師)가 불상을 모셔 관음사(觀音寺)로 부르다,  사찰이 융성해지면서 도량의 짜임이 중국 소주(昭州)의 삼막사(三邈寺)를 닮아 삼막사로 불렀는데, 언제부터인가 삼막(三幕)으로 바뀌었다.


근대에는 지운영(池雲英)이 이곳에 백련암(白蓮庵)을 지어 은거하였고 현재 조선후기 건축 양식인 망해루(望海樓)와 명왕전(冥王殿)(경기도 유형문화재 자료 제60호)이 있으며  고려 시대 삼층석탑(三層石塔)인 일명 살례탑(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12호)과 사적비(事蹟碑)(경기도 유형 문화재 제125호), 삼막사 남녀근석(男女根石)(경기도 민속자료 제3호),  삼막사 마애삼존불(磨崖三尊佛)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94호) 외에도 삼귀자(三龜字), 감로정(甘露井) 등 다수의 비지정 문화재가 있어 삼막사의 오랜 역사를 보여주고 있다.

 

 ▼ 삼막사

대한불교 조계종 제2교구 본사인 용주사의 말사이다.

〈사지 寺誌〉에 의하면 677년(신라 문무왕 17)에 원효대사가 창건했으며, 신라말에 도선국사(道詵國師)가 중건하고 관음사(觀音寺)라 부르다가 고려시대에 왕건이 중수한 후 삼막사라고 개칭했다고 한다.

1394년(태조 3)에 무학왕사(無學王師)가 머물면서 국운의 융성을 기원한 것으로 인해 1398년 태조의 왕명으로 중건되었다.

그뒤에도 몇 차례의 대대적인 중수가 있었으며, 1880년(고종 17)에는 의민(義旻)이 명부전을 짓고 이듬해에 칠성각 등을 완공했다.

현존 당우로는 대웅전·명부전·망해루(望海樓)·대방(大房)·칠성각·요사채 등이 있으며, 중요문화재로는 마애삼존불상(경기도 유형문화재 제94호), 동종, 3층석탑, 거북이 모양의 석조(石槽) 등이 있다

 

▼ 망해루 - 이곳에서 서해가 보인단다.

 

 

▼ 범종각

 

▼ 삼막사 육관음전

 

▼ 처마 끝에 달린 쇠고리의 용도는...

 

▼ 문을 열어젖혀 올릴 때...

 

▼ 삼막사 명부전 

 

 

 

 

 

▼ 이 삼층석탑은...

 

 

 

▼ 담벼락에는...

 

▼ 여기에는 이렇게...

 

 

 

 

 

 

 

▼ 장작을 패는 등산객

 

▼ 너무나 긴 줄...

 

 

▼ 다른 등산객이 장작을 패고...

 

▼ 이제 칠성각으로... 

 

▼ 휴~~ 삼성산에 올랐습니다.(나는 누구일까요?)

 

 

 

 

 

▼ 저기는...

 

 

 

 

▼ 삼귀자

 

▼ 칠성각으로... 

 

 

 

 

 

 

 

 

▼ 상불암 갈림길에서 칠성각으로...

 

 

 

▼ 여근바위

  

 

 

▼ 남근바위

 

 

 

 

▼ 칠성각(칠보전)

 

 

 

 ▼ 삼막사 마애삼존불상

삼막사 칠성각 안에 있는 조선시대의 마애삼존불상.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94호.

높이 본존불 150㎝, 좌우협시보살상 93㎝.

불상의 무릎 아래쪽에 새겨진 명문에 의하면 이 불상은 1763년(영조 39)에 조성되었고, 전각은 1764년에 창건되어 1881년에 중건되었다고 한다.

세로 200㎝, 가로 250㎝의 자연 암벽에 새겨진 삼존불상으로 얼굴부분이 파손되어 시멘트로 보수했으며, 그 앞면에는 2층 목조전실을 설치했는데 지금은 2층에 안치되어 있다.

본존의 얼굴은 네모지고 납작한 편이지만 약간 양감이 남아 있으며, 머리 위의 육계(肉계)에는 반달형의 계주(珠)가 2개 장식되어 있다.

좁고 각이 진 어깨 위로 통견(通肩)의 법의를 걸쳤으며 옷주름은 선각(線刻)으로 간략하면서도 곡선적으로 처리했다.

두 손에는 보륜(寶輪)을 들고 있고, 다리는 오른쪽 다리만 한쪽 무릎 위에 올린 반가부좌(半跏趺坐)의 자세를 취하고 있다.

양협시보살상은 연화대좌 위에 합장한 모습으로 달과 해를 표현한 보관을 쓰고 있어 각각 일광보살과 월광보살을 상징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이 불상은 본존불이 보륜을 들고 있는 점이나 좌우에 일광보살과 월광보살이 있고 칠성각에 봉안된 형식 등으로 보아 칠성(七星)의 본존불인 치성광삼존불(熾盛光三尊佛)로 추정된다.

전체적으로 얼굴의 세부표현, 각이 진 어깨와 평면화된 신체, 투박한 옷주름 표현 등에서 조선 후기 불상의 특징이 잘 나타나 있으며 우리나라 불상에서는 보기 드물게 칠성신앙과 불교신앙이 결합된 치성광여래의 예로 중요한 자료이다.

 

▼ 이제 천주탑으로...

 

▼ 가다가 칠성각을 돌아보니...

 

▼ 너덜길을 올라...

 

 

▼ 전망이 터지는 곳에서 보니...

 

▼ 삼성산 철탑이...

 

▼ 천주탑(天柱塔)과 그 옆에는 새로 조성중인 돌탑이...

 

▼ 천주탑

 

▼ 천주탑에서 삼막사를 보니...

 

▼ 이제 상불암 위 국기봉을 향하여....

 

 

 

 

▼ 상불암 위 국기봉의 태극기가 바람에 휘날리고...

 

▼ 태극기 위로 지나가는 비행기

 

 

▼ 관악산을 바라보니...

 

▼ 소나무 사이로 삼성산의 철탑이...

 

▼ 이제 관악산으로 가기 위해...

 

▼ 상불암 위 국기봉을 내려서다가...

 

▼ 관악산을 보니...

 

 

▼ 상불암이 보이고...

 

▼ 얼굴바위

 

 

 

 

 

▼ 관악산

 

▼ 천인암 능선 

 

▼ 잠시 휴식하며 스틱을 준비하고...

 

▼ 앞에 보이는 바위는...

 

▼ 이런 모양을 하고...

 

 

▼ 바윗길을 내려서다가...

 

▼ 돌아보니...

 

▼ ?바위

 

▼ 다시 한 번 더 보고... 

 

 

▼ 천인암 입구에서...

 

▼ 우회로를 따라...

 

▼ 천암암 능선 테라스바위를 지나...

 

▼ 능선을 따라가다가...

 

▼ 여기서 좌측으로...

 

▼ 내려서서...

 

▼ 한참을 내려가면...

 

▼ 계곡이 보이고...

 

▼ 삼성산과 관악산을 가르는 계곡의 사방댐 위를 건너다가...

 

▼ 메마른 계곡을 올려다보니...

 

 

▼ 이제 관악산으로...

 

☞ 여기서 2부(삼성산 삼막사 이야기)를 마치고...

 

  

▣ 2006년 2월 11일(일)에  다녀온
 
'호암산(호압사)/삼성산(삼막사)/관악산(불성사) 연계산행' 
 
--▥☞ 1부(호암산 호압사 이야기)를 보시려면 여기를 누르세.☜▥--
 
--▥☞ 2부(삼섬산 삼막사 이야기)를 보시려면 여기를 누르세요. ☜▥--
 
--▥☞ 3부(관악산 불성사 이야기)를 보시려면 여기를 누르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