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편이 아닌 것은 나의 적이다.'
내 생각으로는 이 말은 확실히 반쪽의 진리만 전하는 것이다.
내가 생명을 바치고 있는 궁극적인 문제에 대해
내 편도 아니고, 적도 아닌 듯 무관심한 사람만이 나의 적이다.
그러나 적극적인 의미에서 나의 적인 사람,
내가 살고 있는 평면에 들어와 그 내부에서 나와 싸우고 있는 사람,
이 사람이야말로 최고의 의미에서 나의 편이다.
나이 많은 사람이 정착하는 독단론(獨斷論)은 때때로
지금에 이르러서는 빼놓을 수 없는 근거지이다.
나이가 들수록 삶이 더욱더 의심스러워지고 복잡해지며 막연해지기 때문이다.
어떤 나이를 지나면 한층 심해져서 마침내는
삶에 견딜 수 없게 되어 인간의 적응력이 스러지게 된다.
우리는 그곳에서 해체하고 그곳에서 몰락한다.
그렇지 않은 경우는 독단론이라는 인위적인 고정성으로 도피하는 것이다.
단순히 생존을 위한 투쟁이 좋든 싫든 향상을 위한 투쟁이며,
생존의 개념이 보여 준다고 생각되는 단순한 同位관계가 아니라
오히려 승리, 격동, 우월에 의해서만 도달할 수 있다는 사실은
생물 진화에 있어서의 경이이다.
때론 우리는 배후에 있어서 도덕적이다.
이를테면 어떤 도덕적인 결의를 꾀하여 이것을 실현하려고 한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가 처음 생각했던 것보다 큰 힘과 큰 희생을 내포하고 있다.
우리는 이것에 대해서는 이미 책임을 질 수 없다.
우리는 도덕적인 것을 행함에 불구하고 그것이 은밀히 내포하고 있던
이 부분에 관해서는 이미 아무 공적을 갖고 있지 않다.
우리의 표현된 사상이 종종 이것을 생산할 때에
생각지 못했던 객관적 내용을 지니는 경우가 있듯이,
우리의 행위도 결의 속에 들어 있지 않던 도덕적 부분을 지니는 경우가 있다.
말하자면 당황하여 자기 암시적인 압박을 하여 첫발을 내디딘 뒤부터는
우리는 이미 바라는 것이 아니라 다만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더욱 높아지려고 노력하는 정신적인 인간이 무엇보다 먼저 회피해야 할 것은
사물을 자명(自明)한 것으로서 받아들이는 것과 편애(偏愛)하는 것이다.
- 게오르그 짐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