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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적탐방후기☞/♣ 남한산성

[20071014]남한산성과 이성산성 연계산행을 다녀오다 - 5부

by 맥가이버 Macgyver 2007. 10.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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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0월 14일(일) 남한산성과 이성산성 연계산행을 다녀오다.

 

오늘은 그간 숙제처럼 남아있던 '이성산과 이성산성'을 찾아나선다.

'이성산과 이성산성'이 '남한산성의 연주봉 옹성'에서 이어지는 능선을 따라가다보면 만나게 된다는 정보를

오래전에 들었지만 발길을 들이지 못하다가 오늘에서야 시간을 내게 된다.

 

지난 2005년 7월 22일(금)에 하남시에 있는 성광학교를 들머리로 해서 객산을 거쳐 남한산의 벌봉에 오른 후,

이어 남한산성 일주를 하고 온 적이 있다.

해서 이번 '이성산과 이성산성'을 찾아가는 길은 지난 2005년 7월 22일(금)에 다녀온 코스대로 성광학교에서 객산을 거쳐 남한산성 벌봉 암문으로 들어서서 벌봉에 오른 후, 봉암성을 거쳐 남한산성 동장대 암문으로 들어서서 남한산성 성곽길을 따라 남한산성 서문까지 간 후, 서문으로 나와 연주봉 옹성에 들러 조망 후에 능선을 타고가며 금암산을 거쳐 금암산과 이성산을 잇는 동물이동통로를 이용하여 이성산에 오르고, 마침내 이성산성을 찾아 둘러보고 하산하여 고골사거리에 있는 광주향교에서 여정을 마감하였다.

 

☞ 자세한 이야기는 맥가이버 블로그의 사진으로 대신한다.

 

 

☞ 5부를 시작하며...

 

 ▼ 금암산 정상에 올라서니... 

 

☞ 금암산(金巖山) 

남한산의 줄기에 있는 산으로서 해발 322m이다.
이 산은 바위가 많을 뿐 아니라 바위 색깔이 비단색을 띄고 있어 금암산이라 하였다 한다.
또한 바위들이 많아 산 아래에서 볼 때 바위가 얼기설기 있는 것처럼 보여지고 있어 ‘얼거산’이라 하기도 한다.
금암산 자락에는 신복선사지·약정사지·자화사지 등 옛 절터로 추정되는 곳이 많이 있으며,

춘궁리 3·5층석탑이 있는 동사지와 금암산 마애불이 있다.

 

 ▼ 서울외곽순환도로

 

 ▼ 북한산과 도봉산이...

 

 

 ▼ 급경사길을 내려서서...

 

 

 

 

 

 

 

 

 

 

 

 

 

 

 

 ▼ 이 철탑을 지나서...

 

 ▼ 갈림길에서 뚜렷한 길인 좌측 내리막을 택했는데...

 

 ▼ 묘가 있는 곳을 지나...

 

 

 ▼ 동물이동통로가 있어야 하는데 도로가 나온다.

 

 ▼ 도로이정표를 보니...

 

 ▼ 도로를 따라 직진...

 

 

 ▼ 저 동물이동통로(산복터널 위)를 지나가기 위해...

 

 ▼ 동물이동통로를 지나...

 

 ▼ 이성산을 오르면서...

 

 

 

 

 

 ▼ 이성산 정산의 산불감시초소

 

☞ 이성산(二聖山)

이성산은 춘궁동 산36번지 일대에 위치한 산으로서 해발 209m이며 춘궁동과 초이동을 끼고 있다.

남한산에서 금암산을 따라 이어진 줄기에 속한 이 산은 이성산성이라 불리우는 석축산성(石築山城)이 있다.
삼국시대 유물들이 출토되고 있으며, 오래전부터 백제도읍지와 관련하여 학계의 주목을 받아 오고 있는 산이다.
이성산성에 대한 9차 발굴조사가 현재 끝난 상태이다.

 

 ▼ 이성산성을 찾아서...

 

 

 

 ☞ 이성산성(二聖山城)

 

이성산성은 하남시 춘궁동 산 36번지 일대의 이성산 (해발 209.8m)에 위치한 삼국시대의 석축산성이다.

성벽의 높이는 6∼7m이고, 둘레는 1,665m이다. 성 내부의 면적은 약 160,361㎡으로 48,500평에 달한다.

유구로는 7동의 건물지와 3개 저수지가 발견되었다.
건물지는 장방형 건물이 4동이 고, 8각, 9각, 12각 건물이 각각 1동이 있다.

산성의 정상부 가까이에 있는 8각, 9각 건물은 장방형 건물을 사이에 두고 동서로 배치되어 있는데 동쪽의 9각 건물은 하늘에 제사지내는 천단이고, 서 쪽의 8각 건물은 사직단으로 추정된다. 특히 이곳에서 4개소의 신앙유적이 발견되었다.

신앙 유적은 건물의 폐기되고 난 이후 건물지의 초석 위에 난초석 가까운 곳에 100∼150cm 크기의 돌을 세워 놓고 주변에 잔돌을 쌓아놓은 형태인데 주변에서 인위적으로 부러뜨려놓은 토제, 철제마 등 총3,352점 의 유물이 출토된 역사상, 학술상 중요한 유적지이다.

이성산성에 사람이 거주하기 시작한 시 기는 하남시 미사동에는 선사시대의 유적과 초기백제시대의 농경지가 조사되어 있는 것으로 미루어 보 아 춘궁리 지역에도 역시 선사시대부터 주민들이 거주하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또한 1988년 고속도로 건설로 인한 발굴과정에서 이화여대 발굴단의 건물지 발굴에서 청동기∼초기철기시대에 이른 문화층이 발견되어 최소한 청동기시대부터는 이 지역에 주민들이 거주하기 시작했음을 알 수 있다.

삼국시대에 들어 이 지역은 475년까지 백제가 점유하고 있었다. 이러한 이유로 많은 역사학자 들이 이 지역을 백제 초기 도읍지의 배후 산성으로 보고 있다. 한강을 끼고 있는 지리적 위치로 볼 때 이러한 견해는 타당성을 가진다고 할 수 있다.

조선후기시대의 학자인 정약용(1762∼1836), 홍 경모는 이성산성을 온조의 고읍으로 보았으며 왕궁은 광주고읍인 춘궁동에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김정호는 1864년에 발간된 ≪大東地志≫에서 이성산에 백제의 성지가 있다고 하였다. 이 병도, 천관우, 김용국 등도 하남위례성과 한성을 동일한 곳으로 그 위치를 춘궁동 일대로 비정하는 데 에 견해를 같이 하고 있다.

현재에는 근들어 최몽룡, 권오영은 백제의 도읍이 하북위례성→하남위례성→한산→한성으로 옮겨간 것으로 보고 하북위례성을 중랑천 일대로, 한산을 이성산성으로, 한 성을 춘궁동 일대로 비정한 고대사를 밝히는 중요한 사적이다.

----------------------- 퍼온 글

 ▼ 여기가 이성산성

 

 

 

 

 

 

 

 

 

 

 

 

 

 

 

 

 

 

 

 

 

 

 

 ▼ 이성산성 입구에 도착하여...

 

 ▼ 외곽순환도로 아래를 지나...

 

 ▼ 광주향교로...

 

 ▼ 고골사거리에서 광주향교로 들어가는 길...

 

 ▼ 광주향교 하마비

 

 ▼ 광주향교 

 

 

 ▼ 보수공사 중...

 

 ▼ 은행나무가 일부분만 단풍이 들어...

 

 ▼ 이 집에서...

 

 ▼ 저녁식사를 하고...

 

☞ 이것으로 '남한산성과 이성산성 연계산행을 다녀오다'를 마친다.

 

 

 2007년 10월 14일(일)    

'남한산성과 이성산성 연계산행을 다녀오다'

 
-▥☞ 1부(천호역-성광학교-객산 정상)☜▥-
 
-▥☞ 2부(객산 정상-벌봉 암문)☜▥-
  
-▥☞ 3부(벌봉 암문-동장대 암문-남한산성 북문)☜▥- 
 
-▥☞ 4부(남한산성 북문-연주봉 옹성-금암산 정상)☜▥- 
 
-▥☞ 5부(금암산 정상-이성산성-광주향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