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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과 깨달음☞/♡ 山과길의 글·시

산山의 철학

by 맥가이버 Macgyver 2007. 12. 14.
 

첨부이미지山 의 哲學 첨부이미지

 

 

사람들은 왜 산에 올라 가는가?

'산이 거기에 있기 때문이다. 산이 우리를 부르기 때문이다' 라고

영국의 등산가인 '멀로리경'은 말했다.

 

'네 영혼이 고독하거든 산으로 가라'고 독일의 어떤 시인은 노래 하였다.


인생이 우울해지면 산으로 가는 것이 좋다.

배낭을 메고 조용한 산길을 정다운 친구들과 같이 걸어가면
인생의 우울이 어느새 안개처럼 사라지고 만다.

산은 무언의 표정으로 우리에게 정다운 손짓을 한다.

 

1) 봄의 산은 연한 초록빛의 옷을 입고 '수줍은 처녀처럼' 우리를 부른다.

2) 요즘 여름의 산은 풍성한 옷차림으로 '힘있게' 우리를 유혹한다.

3) 가을의 산은 단풍으로 성장하고 '화사하게' 우리를 초대한다.

4) 겨울의 산은 순백한 옷차림으로 '깨끗하게' 단장하고 우리에게 맑은 미소를 던진다.


삶에 지치고 생에 권태를 느겼을 때에는 산에 오르는 것이 좋다.

이마에 땀을 흘리면서 산의 정상을 향하여 전진할 때에 우리는
생의 용기를 느끼고 삶의 건강성을 다시 찾을 수 있다.

 

정신이 피곤하고 인생이 무거운 짐으로 느껴지면 산을 찾아가라.
맑고 깨끗한 산의 정기는 우리의 정신에 새로운 활력소를 불어 넣는다.

 

산은 언제나 우리를 부르고 있다.

산에는 산의 언어가 있다.
산은 몸짓으로 말한다.

큰 바위는 억센 형태로 말하고, 잔잔한 샘물은 맑은소리로 말하고,
흰 폭포는 힘찬 운동으로 말하고, 푸른초목은 빛깔로 말한다.

나무사이를 스쳐가는 바람은 소리로 말하고, 아름다운 꽃은 향기로 말한다.

산속의 모든 존재는 저마다 제 언어가 있다.
우리는 그 언어를 읽을 줄 알아야 한다.

 

산의 언어는 바로 침묵 그것이다.

침묵의 언어가 우리에게 더 많은 것을 가르치고, 더 풍성한 것을 이야기 한다.
우리는 산의 언어를 듣고, 새기고, 읽을 줄 알아야 한다.

자연(Nature)은 신(조물주)이 만든 위대한 책(冊)이다.
우리는 산이라는 큰 책에서 많은 것을 배운다.

 

악성(樂聖) 베토벤은 자연을 가장 사랑한 예술가였다.
그는 특히 숲을 사랑했고, 숲의 나무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


베토벤은 이렇게 말했다.

 

'숲속의 전능자여, 숲속에서 나는 행복하다.
한 그루 한 그루 나무가 당신을 통해서 말을 건네온다.

오오 신(神)이여, 얼마나 장엄한 모습인가.
산상(山上)의 숲에는 정적이 있다.

신에 봉사하는 정적이 전원에 있을 때에도 하나하나의
나무가 나를 향하여 찬송하라고 말해오는 것 같지 않은가.
숲 속의 황홀한 환희
이 모든 것을 누가 표현할 수 있겠는가.'

산은 자연의 철학자다.
산은 우주의 교육자다.
산의 "침묵의 소리"를 경청하기 위해서 산을 찾아가자.

 

인생의 많은 위대한 것이 산에서 잉태 하였다.

1) 인도의 심원한 철학은 히말라야 산속의 명상에서 나왔다.

2) 타고르의 아름다운 시(詩)는 깊은 산의 산물이다.

3) 괴테는 산에서 위대한 시의 영감을 얻었다.

4) 동양의 많은 아름다운 시의 고향은 산이다.

5) 엉터리 전도사는 산에서 조화의 진리(眞理)를 터득하고

6) 파우스트는 인생에 권태를 느끼고, 향락에 지쳤을때 산속의
대자연의 소박한 미(美)와 건강한 생명을 보고

재출발하는 힘찬 용기와 활력소를 얻었다.

높은 하늘을 바라보며, 시원한 공기를 마시며,

푸른 자연을 즐기면서, 넓은 대지를 힘차게 걸어갈 때

우리의 생명은 젊고, 순수하고, 아름다워진다.

 

걷는 것을 배워라.
걷는 것을 사랑하여라.
걷는다는 것은 내가 내 발로 혼자 늠름하게 서서
목적지를 향하여 힘차게 나아가는 것이다.

 

인간의 발이 땅을 밟지 않을때 심신(心身)이 질병이 생긴다.
적어도 하루에 만보는 걸어라.

걷는 것처럼 우리의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하는 것이 없다.

'인간은 자연의 아들이요, 대지의 딸이다.'

'우리는 흙에서 나서 흙으로 돌아간다.'

 

인간이 자연을 멀리하면 멀리 할수록 정신병, 문명의 질환에 걸린다.

현대인은 문명에 지쳤다.

우리는 자연의 품으로 돌아가 '산의 정기'를 마셔야 한다.

산의 정기와 침묵에 안길때 우리는 '생의 싱싱한 건강성'을 다시 찾을 수 있다.

 

산을 좋아하는 사람치고서 악인이 없다.

산의 정기가 사람을 착하게 만든다.
우리는 산속을 거닐 때 누구나 인간 본연의 착한 마음으로 돌아간다.
어머니품에 안기면 모든 자식들이 다 착해지는 것과 같다.

 

베토벤은 이렇게 말했다.

'나의 더러워지지 않은 자연속에서 자기를 되찾고 나의 마음을 맑게 씻어야 한다.'

산의 정기로써 마음의 세탁을 하자.

- 세심정혼(洗心淨魂) -

 

낙엽을 밟으면서 말없이 산길을 걸으면 정신의 때가 자연히 씻어지고,

생명의 오염이 저절로 정화된다.

 

산은 우리의 지친 마음을 조용히 어루만져주는 '자연의 의사'다.
산은 우리의 정신에 힘과 기쁨을 주는 '우주의 목사'다.
산은 '자연의 철학자'다.
산은 우리에게 인생의 많은 진리와 지혜를 가르친다.

우리는 산한테서 무엇을 배워야 하나?

 

첫째로 산은 우리에게 침묵을 가르친다.

침묵의 힘, 침묵의 위대성을 가르친다.
'나처럼 의젓한 침묵의 법을 가지라'고 말한다.

 

이순신 장군은 일본과 싸울 때의 '진중서한'에서 이렇게 말했다.

'정중여산(靜重如山)',

즉 조용하고 무겁기가 산과 같다고 했다.

산은 침묵의 천재다.
우리는 산속을 거닐면서 떠들 필요가 없다.

 

둘째로 산은 또 우리에게 장엄(莊嚴)을 가르친다.

산은 '장엄미'의 상징이다.
산은 높을수록 장엄하다.

우리는 왜 높은 산에 오르기를 좋아하는가.
산을 정복하는 '승리의 쾌감'을 위해서다.
또 멀리 바라보는 시원한 '전망의 기쁨'을 갖기 위해서다.

그러나 그보다 더 큰 이유는 '산의 장엄미'를 느끼기 위해서다.

 

나는 스위스 갔을 때

4,000M에 육박하는 알프스의 높은 봉우리에 올라가 본 일이 있다.

흰눈이 덮인 높은 '영봉의 품'에 안겼을 때

산의 다시 없는 장엄미의 황홀함을 느꼈다.

산은 신의 창조물 중에서 가장 장엄한 미다.
우리는 높은산의 장엄한 미 앞에 설 때 압도되는 감을 느낀다.

인간의 힘이 도저히 미칠 수 없는 우주의 대생명력을 느낀다.


산은 또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치는가?

 

셋째로 '조화의 진리'를 가르친다.

산속에서는 모든 것이 다 제자리에 저답게 놓여있다.
하나도 부자연한 것이 없다.
자연은 곧 조화요, 조화는 곧 미다.

인간의 행동에는 부자연과 부조화가 많지만,
자연은 조화 아닌것이 없다.

 

'자연은 위대한 예술가다.'

산속의 그 바위, 그 나무,그 생물,그 길,그 돌맹이들이 어쩌면 그렇게 저마다
제가 마땅히 있어야 할 자리에, 그렇게 자연스럽게 놓여 있을까.

우리는 산속을 거닐면서 자연의 위대한 조화에 누구나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자연은 질서의 천재(天才)요, 조화의 천재다.

자연스러운 것은 아름답고 생명이 길다.
산속에서 우리는 조화의 미와 진리를 배운다.

 

'자연속에 있는 모든것은 법(法)과 더블어 행동한다'고 철학자 칸트는 말했다.

법은 질서를 말한다.
자연의 모든 존재는 질서속에서 움직인다.

옛날의 그리스인들이 우주를 질서라고 말한 것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다.

우주를 의미하는 그리스어의 코스모스(Cosmos)는 질서란 뜻이다.

우리는 산에서 질서의 정신과, 질서의 진리를 배운다.

산은 또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치는가?


넷째로 '진실의 덕'을 배운다.

산속에서는 모든 것이 말할 수 없이 소박하고 단순하다, 그것은 있는 그대로다.

가식이 없는 세계다.
꾸밈이 없고 허영이 없다.
자연은 인간을 속이지 않는다.

자연에는 거짓이 없다. 진실이 있을 뿐이다.

인간이 인간을 기만한다.

 

산은 위대한 교육자다. 우리르 착하게 만든다.
인간의 기교, 아첨, 술수, 거짓, 가식은 자연의
위대한 단순성 앞에 여지없이 무너지고 만다.
그것이 인간의 구원이다.

 

'자연은 신의 예술이다.'라고 시인(詩人) 단테는 말했다.

자연은 신의 에술이기 때문에 거짓이 없다.
가짜가 없다. 진실이 있을 뿐이다.

우리는 산의 소박과 단순과 진실의 교훈을 배워야 한다.

 

다섯째로 산에는 우정이 있다.

산처럼 인간과 인간을 가깝게 '결합'시키는 것이 없다.
산에 가면 미움이 없어진다. 미움이 있을 수가 없다.
모두다 소박하고 단순하고 진실한 자기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미움의 감정이 있을 수가 없다.

우리는 산에 가면 모두 착해진다.
이것만으로도 산에 간다는 것은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산속에서는 미움이 없어지기 때문에 나와 너 사이에 진실한 인간적 대화가 꽃핀다.
참말의 향연이 이루어진다.

산은 또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치는가?

 

여섯째로 인간의 분수와 한계를 느끼게 한다.

산은 따뜻하게 미소짓는 어머니의 얼굴을 가지는 동시에
용서와 아량을 모르는 비정한 무서운 얼굴을 나타낸다.

인간이 자기의 분수를 모르고,

아무 준비없이 산에 갔다가는 무서운 재난을 당한다.

 

'산은 비정하다.'

세상에 등산처럼 위험한 것이 없다.
갑자기 폭우가 쏟아지고, 난데없는 산사태가 일어나고
짙은 안개가 우리의 시야를 가린다.

우리는 산의 무서움을 알아야 한다.

분별과 능력과 준비가 없이 산을 대하다가는 산한테 희생을 당한다.

자연은 인간으로 하여금 인간의 분수와 능력의 한계를 준엄하게 인식시킨다.


우리는 산과 친하되 산을 두려워할 줄 알아야 한다.

산은 자모(慈母)인 동시에 엄부(嚴父)이다.
우리는 산의 비정(非情)을 알아야 한다.

산앞에 겸손한 자만이 '산의 벗'이 될 수 있다.

 

나는 산(山)의 철학(哲學)을 생각해 보았다.

우리는 이 위대한 자연의 철학자인 산한테서 많은 것을 배워야 한다.

 

1.산의 침묵의 덕(德)을 배우고

2.장엄미를 배우고

3.조화의 진리(眞理)를 터득하고

4.진실(眞實)의 정신을 깨닫고

5.우정(友情)을 알고

6.또 인간의 한계를 인식해야 한다.

산이 우리를 정답게 부르고 있다.

한라의 웅자, 내장의 단풍, 가야(伽倻)의 계곡, 속리(俗離)의 숲,
설악의 골짜기, 백운(白雲)의 바위, 소백의 철쭉, 월악산의 영봉 등이
철따라 옷을 갈아 입으면서 우리에게 반가운 손짓을 한다.

 

일에 지쳤을 때, 정신이 피곤할 때, 인생의 고독을 느낄 때
삶이 메말랐을 때 우리는 산을 찾아가야 한다.

산의 정기, 산의 빛, 산의 침묵, 산의 음성, 산의 향기는
우리의 심정에 새로운 활력소와 생명의 건강성을 줄 것이다.

 

우리는 산이라는 자연의 위대한 철학자한테서 깊은 말씀을 배워야 한다.

그는 두려우면서도 친밀한 우리의 벗입니다.

'산에 가는 것은 의사없는 종합병원에 입원하는 것이다.'

 

☞ 안병욱 박사의 수필 <山 의 哲學> 중에서

 

늘 언제나 항상 변함없이

 




 

 

위 사진은 2006년 1월 17일(화) 강촌 검봉/봉화산 연계산행 時

'강선봉'을 오르는 도중에 찍은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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