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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의 종주 후기☞/♧ 천보산맥 종주

[20080120]천보산(회암사)/칠봉산(대도사)연계산행 - 3부

by 맥가이버 Macgyver 2008. 1.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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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월 20일 (일) '천보산(회암사)/칠봉산(대도사) 연계산행'을 다녀오다.

 

 

양주역-회암사지-회암사-천보산 정상(423m)-삼거리(해룡산 갈림길)-장림고개(탑동-회암동)

-석봉-석장봉(505m)-공터-칠봉산 정상(506.1m)-억새 삼거리(제생병원 갈림길)-길골고개(안골-사귀)

-대도사 갈림길(연꽃바위)-산신각(신령바위)-대도사-어씨문중묘역-송내수퍼-송내교회-송내동4거리-지행역

 

 

 오늘은 경기도 양주시, 동두천시에 있는 칠봉산과 천보산을 연계하려고 길을 나섰다.

먼저 칠봉산을 오르고 천보산을 이은 후에 회암사로 내려서서 회암사지를 둘러보려했다.

그런데 초행이라 칠봉산의 들머리로 동두천시 송내동 송내상회로 정하고 일단 전철을 탔는데,

탄 전철이 의정부까지만 가는 것이어서 회룡역에서 다음 전철을 기다렸다가 타니 이번에는 양주까지만 간다.

해서 양주역에서 내려 버스를 기다리니 송내상회쪽으로 가는 버스가 한참동안 오지 않는다.

주위 사람들께 물어도 잘 모른단다.

 

마침 오는 30번 버스기사에게 물으니 회암사에 데려다 준다고 하여 역코스로 가기로 하고 버스에 탔다.

그런데 운전기사가 내려준 '회암1통1반 버스정류장'에서 회암사지를 찾아가는데 약간 애를 먹었다.

  

☞ 자세한 이야기는 맥가이버 블로그 사진으로 대신한다.

 

 

▼ 칠봉산/천보산 개념도  

☞ 천보산(423m)과 칠봉산(506.1m)에 대하여...

 

천보산(423m)과 칠봉산(506.1m)은 행정구역상 경기도 양주시,동두천시,포천시의 경계에 위치한 산이다.

일명 천보산맥의 핵심적인 산들인데,

 

천보산(423m)은

조선시대 어느 임금이 난을 당하여 이 산에 피신하였다가
난이 끝나자 목숨을 건진 이 산을 금은보화로 치장하라고 신하에게 명하였다

신하가 난리후라 금은보화를 구하기는 어렵고 하니 이름을 하늘 밑에 보배로운 산이라고 하는 것이

좋겠다고 간청하여 천보산이라고 불리워 지게 되었다고 전한다

 

 그리 높지않은 산이지만 유서깊은 회암사지와 회암사를 거느리고 있다.

 

옛 절터 부근에 1977년 중건한 현재 회암사에는 대웅전·삼성각·영성각(影聖閣) 등이 있고,
경내에는 보물 387호(선각왕사비, 나옹선사 추모비), 보물 388호(무학대사 부도),

보물 389호(쌍사자 석등)며 경기도 유형문화재 49호(지공선사 부도 및 석등),

50호(나옹선사 부도 및 석등), 51호(무학대사비) 등과 볼거리가 많다.

 

고려 충숙왕때 창건된 266칸의 대규모 사찰이었던 회암사지(檜巖寺地)

천보산 남쪽 기슭에 페허가 된 채 현재 발굴현장의 모습으로 남아있다. 

그 회암사지에는 회암사지 부도탑(경기도 유형문화재 제 52호)과 당간지주(향토유적 13호)가 우뚝 서 있다.

 

칠봉산(506.1m)은

발치봉, 응봉, 깃대봉, 투구봉, 솔치봉, 돌봉, 석봉의 일곱 봉우리가 솟아 있는 데에서 이름이 유래 되었고,

또 옛날 단풍으로 물든 풍광이 비단 병풍과 같다 해서 일명 금병산(錦屛山)으로도 불렸다.

 그리고 조선 세조가 말년에 이 산에 올라 수렵했다고 하여 '어등산(御登山)'이라는 이름도 얻었다.


산세는 북쪽이 완만한 육산이고, 남쪽은 급경사 바위절벽들로 이뤄져 있다.
 

500m급 밖에 되지 않는 산이지만 산에 오르면 전망이 좋고 암릉이 많아 아기자기한 산행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제대로된 안내판이 없어 지명이 통일이 안되고 심지어 정상의 위치도 분명치 않다.

 

 

 

☞ 회암사지(檜巖寺地)에 대하여...

 

회암사는 고려 충숙왕 15년(1328) 인도의 고승 지공화상이 창건하였고,

우왕 2년(1376) 지공의 제자인 나옹이 다시 지었으며,

조선 성종 3년(1472) 세조비 정희왕후의 명으로 삼창되어 고려 말부터 조선 초에 걸쳐 번창하였던 국찰이었다.

특히, 태조 이성계의 각별한 관심으로 나옹의 제자인 무학대사를 회암사에 머무르게 하여

 불사가 있을 때마다 대신을 보내 찰례토록 하였으며,

이성계가 왕위를 물려주고 난 뒤 회암사에서 수도생활을 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태조 이성계 이후 성종3년(1472) 정희왕후가 하성부원군 정현조를 시켜 중창 시켰으나,

당시 억불숭유정책이 심화되면서부터 회암사는 여러 차례 유생의 상소와 함께

특히 명종 때 불교를 중흥하려던 문정왕후의 죽음으로

보우대사가 제주도로 유배된 이후 쇠망의 길로 접어들게 되었으며,

이후 보우대사가 유배지에서 피살되고 덩달아 회암사 승려까지 미움을 받게 되니

200여년 동안 번성하던 회암사는 빈 집이 되어 버렸다.

이때부터 점차 퇴폐해지기 시작하여 어느 때인지 모르게 회암사는 인멸되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번성기 때 회암사의 규모는 전각이 총 262간이었고, 암자도 17개나 되었으며

또한, 모셔진 불상도 15척짜리가 7구나 있었다고 하며, 관음상도 10척이나 되어

당시 회암사는 크고 웅장하며 아름답기가 동국 제일로서 이런 절은 중국에서도 많이 볼 수 없을 정도였다고 한다.

 

이후 대사찰이 폐사되면서 순조 21년(1821년)에 이응준이란 자가 술사 조대진의 말을 듣고

이 곳 법당자리에 선친의 묘소를 옮기기 위하여 절터에 남아있던 지공과 무학의 비를 철거하였으나

이 사실이 알려지자 나라에서 두 사람을 섬으로 유배하고

순조 28년(1828)에 비를 원래의 위치에 다시 세웠다고 전하고 있다.

 

또한, 운허요하가 쓴 "천보산 회암사 대웅전 창건기"에

1828년에 탑비를 다시 세우면서 조그만 암자를 지어 가람을 수호하고, 옛 회암사를 잇게 했으며,

1922년 봉선사주지 홍월초화상이 새로 보전을 지어 불상을 봉안하고

지공, 나옹, 무학의 세 화상의 진영을 모셨다고 한다.

이후 1977년에 호선대사가 서북쪽에 큰 법당을 지어 오늘의 회암사에 이르게 되었다.

 

후설에 의하면 회암사의 폐사는 빈대가 많아 불을 태워서 없어진 절로도 알려져 있으며,

당파 싸움으로 인하여 소실됐다는 설도 있고,

또한 절의 크기에 대해서 가마솥 안에 들어가 팥죽을 쑬 만큼 절의 규모가 컸다고 하며,

사람이 너무 많아서 쌀을 씻는 함지박이 너무 커 사람이 빠져 죽어도 모를 정도였으며,

전국을 다니다가 만나는 승려들에게 어디서 왔냐고 물으면 "회암사에서 왔다고 할 만큼 승려 수가 많았다"고 한다.

 

옛 회암사는 문헌상 동방의 첫째였고 우리나라의 국찰이었으나 폐허가 된 후

사지에 석벽과 기단, 계체 등 일부만 남아 있었던 것을

1964년 이곳을 국가지정 사적 제128호로 지정하여 보존. 관리해오다가

1996년부터 우회도로 개설과 사지에 대한 장기적인 조사. 발굴 계획을 수립하여

현재 경기도 박물관에서 조사. 발굴하고 있으며,

앞으로 사적지내 사유지를 매입하고 원형 그대로 발굴한 후

문화와 역사적 가치창출로 지역의 전통문화를 활성화시키고

역사적 교훈이 될 수 있는 교육의 장으로 활용할 계획으로 있다.

 

위 글의 내용출처 : http://www.visitkorea.or.kr/
 

 

회암사지에 대해 좀 더 자세한 설명은 아래를 클릭하세요.

회암사 http://www.vrkg21.net/heamsa/heamsa.htm

 

 

☞ 3부를 시작하며...

 

 

 ▼ 칠봉산 정상이라고...

 

 ▼ 그런데 누군가 바위에 '석장봉'이라고...

 

 ▼ 이곳이 지도상의 석장봉(505m)인 듯...

 

 

 

 

  ▼ 다시 진행...

 

 ▼ 의자가 있는 곳 뒤로 보이는...

 

 ▼ 이 바위는 쉽게 오를 수 있게 계단식?으로 - 앞으로 '전망대바위'라고 해야 할 듯...

 

 ▼ 주위를 조망하다 우측을 보니 감악산이 보이네...

 

 ▼ 가다가...

 

 ▼ 뒤돌아 보니 이런 바위가...

 

 

 

 

 ▼ 공터를 지나...

 

 ▼ 조금 더 가니...

 

 ▼ 여기가 지도상의 칠봉산 정상(506.1m)인 듯...

 

 ▼ 삼각점이 있고...

 

 ▼ 군참호로 사용했었던 듯...

 

 

 

 ▼ 연리지

 

 

 

 ▼ 멋진 자태의 소나무가...

 

 

 ▼ 여기가 억새삼거리...

 

 ▼ 오늘은 대도사삼거리 방향으로...

 

 

 

 

 ▼ 이건 연리지? - 마치 깨물어 주는 듯...

 

 

 

 

 

 

 

 ▼ 건너편에 제생병원이 보이네 - 제생병원 뒤에는 소요산이...

 

 ▼ 마차산과 감악산도...

 

 ▼ 길골고개

 

 ▼ 길골고개에서 오르니 우측에 보이는 저 바위가...

 

 ▼ 연꽃바위

 

 ▼ 대도사삼거리에 올라서서...

 

 ▼ 대도사 방향으로...

 

 ▼ 연꽃바위를 다시 보니...

 

 

 ▼ 대도사로...

 

 ▼ 저기는...

 

 ▼ 신령바위가 있는 산신각

 

 ▼ 좌측 바위문을 돌아가니...

 

 ▼ 산신령이...

 

 

 ▼ 이곳을 넘으면 대도사 가는 길인 듯...

 

 ▼ 신령바위 뒤쪽에도...

 

 ▼ 대도사가 보이네...

 

 ▼ 대도사는 비구니 사찰이라고...

 

 ▼ 각황전과 범종각

  

 ▼ 범종각 아레에는...

 

 ▼ 와불이...

 

 ▼ 대도사를 나서며...

 

 ▼ 각황전 너머로 우뚝한 바위가...

 

 ▼ 연꽃바위

 

 ▼ 아스팔트도로를 따라 내려가니...

 

 ▼ 축사가 있고...

 

 ▼ 소 잔등을 긁어주는 솔이 돌아가다가 멈추니...

 

 ▼ 잠시 후에 소가 반대쪽으로 몸을 갖다대니 솔이 자동으로 돌아가네...어미소가 500원을 넣었나?

 

 ▼ 어씨문중묘역을 지나...

 

 

 ▼ 빈들을 지키는 미루나무

 

 

 ▼ 빈집

 

 ▼ 안을 들여다보니 낙숫물만 떨어지고...

 

 ▼ 이런 문구가...

 

 

 

 

 

 ▼ 지도상의 '송내수퍼'를 지나...

 

 ▼ 이곳에 버스정류장이...그리고 인도가 만들어져 있네...

 

 ▼ 조금 더 내려오니 버스주차장이 있고...

 

 ▼ 동네로 올라가지 않고 바로 나가는 버스

 

 ▼ 침목 파는 곳이 있고...

 

 

 ▼ 송내교회 앞을 지나...

 

 ▼ 3번 국도와 경원선 철로가 보이고...

 

 ▼ 지행역 1.2km라...걸어가자!

  

 ▼ 지행역 앞 송내동4거리에 도착하여...

 

 ▼ 제생병원에서 내려오는 길을 알아보고...

 

 ▼ 종이골 유래

 

  ▼ 지행역

 

 ▼ 지행역에서 시작할 때는 4번 출입구에서...

  

 ▼ 참고로...

 

 ▼ 천보산맥[의정부 천보산(335.5m)에서 양주 천보산(423m)거쳐 동두천 칠봉산(506.1m)까지]종주를 꿈꾸며...

  

☞ 이것으로 '천보산(회암사)/칠봉산(대도사) 연계산행'을 마친다.

 

 

 

 2008년 1월 20일 (일) 

'천보산(회암사)/칠봉산(대도사) 연계산행을 다녀오다'

양주역-회암사지-회암사-천보산 정상(423m)-삼거리(해룡산 갈림길)-장림고개(탑동-회암동)

-석봉-석장봉(505m)-공터-칠봉산 정상(506.1m)-억새 삼거리(제생병원 갈림길)-길골고개(안골-사귀)

-대도사 갈림길(연꽃바위)-산신각(신령바위)-대도사-어씨문중묘역-송내수퍼-송내교회-송내동4거리-지행역

 

-▥☞ 1부[양주역-회암1통-회암사지-회암사]를 보시려면 여기를 누르세요.☜▥-


-▥☞ 2부[회암사-천보산 정상(423m)-장림고개-석봉-석장봉(505m)]를 보시려면 여기를 누르세요.☜▥-


-▥☞ 3부[석장봉(505m)-칠봉산 정상(506.1m)-대도사-송내교회-지행역]를 보시려면 여기를 누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