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일역에서 출발하여
안양천 따라 고척교오금교신정교오목교목동교양평교양화교까지 가서
성산대교로 한강을 도강하여평화의 공원과 호수를 거쳐 상암월드컵경기장을 지나
불광천 따라 역촌역까지서오릉로 따라 수국사까지다시 서오릉로 따라 서오릉까지
꿈을 이루려면 첫발을 내디뎌야 합니다.
꿈을 이루려면 첫발을 내디뎌야 합니다.
꿈을 이루려면 첫발을 내디뎌야 합니다
우리가 무언가를 원하면 전 우주가 그 꿈을 이루도록 돕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첫발을 내디뎌야 합니다.
그러면 시작되는 것이죠.
'파울로 코엘료'의 '산티아고 가는 길(Camino de Santiago:카미노 데 산티아고)'에서
오늘은 황금사원 수국사(守國寺)와 서오릉(西五陵)을 찾아서 가고자 한다.
그동안 차일피일하며 미루었던 수국사와 서오릉 탐방이
첫발을 내디디지 못하고 혹시나 주저앉을까 염려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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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오릉은 5개의 왕릉으로 구성되어 있다. 서오릉 지역이 무덤지역으로 선택된 이유는 세조 3년(1457)에 세자 장(덕종)이 사망하자, 풍수지리설에 의해 경릉이 들어서면서 부터이다.
서오릉은 덕종과 소혜왕후의 경릉, 8대 예종과 계비 안순왕후의 무덤인 창릉, 19대 숙종과 제1계비 인현왕후·제2계비 인원왕후의 명릉, 숙종의 원비인 인경왕후의 무덤인 익릉, 21대 영조와 정성왕후의 무덤인 홍릉을 말한다.
서오릉은 동구릉 다음으로 큰 조선왕조 왕실의 가족무덤를 이루고 있다. 조선시대 왕실에서는 품격에 따라 왕과 왕비의 무덤은 ‘능’, 왕의 생모·왕세자·빈의 무덤은 ‘원’, 대군·공주 등의 무덤은 ‘묘’로 구분하여 불렀다.
서오릉에는 5개의 능 이외에도 조선왕조 최초의 ‘원’으로 명종의 첫째 아들인 순회세자의 무덤 순창원과 숙종의 후궁으로 많은 역사적 일화를 남긴 희빈 장씨의 무덤이 있다.
서오릉(西五陵)에 최초(最初)로 능기(陵基)가 택정(擇定)되어 봉릉(奉陵)된 것은 경릉(敬陵)이다.
경릉(敬陵)은 추존왕(追尊王) 덕종(德宗)과 동비(同妃) 한씨(韓氏)의 능(陵)으로서 세조(世祖)의 원자(元子)이며 왕세자(王世子)에 책봉(冊封)된 장(璋) 세조(世祖) 3년(1457년) 9월 춘추(春秋) 20세(歲)로 훙서(薨逝)함에 길지(吉地)로서 고양(高陽) 동(東) 봉현(蜂峴)이 거론(擧論)되고 부왕(父王)인 세조(世祖)가 친행(親幸)하여 능지(陵地)로 택정(擇定)된 것이다. 덕종(德宗)은 세자시(世子時) 훙서(薨逝)하여 의경묘(懿敬墓)로 하였으나 성종(成宗) 7년(1476년) 덕종(德宗)으로 추존(追尊)되고 의경묘(懿敬墓)를 경릉(敬陵)으로 추숭(追崇)하였다.
경릉(敬陵) 이후 덕종(德宗)의 弟 예종(睿宗)의 창릉(昌陵)이 설릉(設陵)되고 200여년(餘年) 뒤 숙종(肅宗) 원비(元妃) 김씨(金氏)의 익릉(翼陵)과 숙종(肅宗)과 동제1계비(同第1繼妃) 민씨(閔氏), 제2계비(第2繼妃) 김씨(金氏)의 명릉(明陵)이, 30여년후(餘年後)인 영조(英祖) 33년(1757년)에 영조(英祖) 원비(元妃) 서씨(徐氏)의 홍릉(弘陵)이 마지막으로 설릉(設陵)되고 이후(以後) 서오릉(西五陵)으로 불려지게 된 것이다.
서오릉(西五陵) 경내(境內)에는 순창원(順昌園)과 수경원(綏慶園) 및 대빈묘(大嬪墓)의 2원(園) 1묘(墓)가 있다.
조선조왕실(朝鮮朝王室)의 묘제(墓制)는 왕(王)과 왕비(王妃)는 능(陵)으로, 왕(王)의 생모(生母)인 사친(私親)이나 왕세자(王世子) 및 그 빈(嬪)은 원(園)으로, 대군(大君), 공주(公主), 옹주(翁主), 후궁(後宮)은 묘(墓)로 품격(品格)에 따라 차등(差等), 구분(區分) 호칭(呼稱)하였다.
순창원(順昌園)은 명종(明宗)의 제1자(第1子)인 순회세자(順懷世子)나 세자빈(世子嬪) 공회빈(恭懷嬪) 윤씨(尹氏)의 원(園)으로서 세자(世子)는 명종(明宗) 18년(1563년) 13세(歲)의 나이로 요절(夭折)하여 이곳에 장사(葬事)지냈으며 조선왕조(朝鮮王朝) 최초(最初)의 원(園)이다.
수경원(綏慶園)은 장조대왕(莊祖大王)의 사친(私親)이며 영조(英祖)의 후궁(後宮)인 영빈이씨(暎嬪李氏)의 원(園)이다. 영빈이씨(暎嬪李氏)는 영조(英祖) 40년(1764년) 훙서(薨逝)하여 경기(京畿) 고양(高陽) 연희(延禧) 신촌리(新村里)에 설원(設園)하였으며 한일합병(韓日合倂) 이후(以後)인 1920년대(年代) 당시(當時) 연희전문학교(延禧專門學校)가 수경원(綏慶園) 인근(隣近)에 개교(開校)되어 학교(學校)가 확장(擴張)되면서 학교(學校) 교내지(校內地)의 일부(一部)에 수경원(綏慶園)이 위치(位置)하게 됨에 따라 200여년(餘年)이 지난 1968년 6월에 이곳 서오릉(西五陵) 경내지(境內地)로 천장(遷葬)하였다.
대빈묘(大嬪墓)는 경종대왕(景宗大王)의 사친(私親)이며 숙종(肅宗)의 후궁(後宮)인 대빈장씨(大嬪張氏)의 묘(墓)이다. 희빈장씨(禧嬪張氏)는 숙종(肅宗)의 후궁(後宮)이 되고 왕비(王妃)와 계비(繼妃)의 소생(所生)이 없어 장씨(張氏) 소생(所生) 윤(윤)이 왕세자(王世子)로 책봉(冊封)된 숙종(肅宗) 14년(1688년) 왕비(王妃)가 되었으나 숙종(肅宗) 20년(1694년) 갑술옥사(甲戌獄事)로 강빈(降嬪)된 후(後) 동(同) 27년(1701년) 무고(誣蠱)의 옥(獄)으로 폐빈(廢嬪), 사사(賜死)되고 경기(京畿) 광주(廣州) 오포(五浦) 문형리(文衡里)에 설묘(設墓)되었으며 경종(景宗) 2년(1722년) 왕산부대빈(王山府大嬪)으로 추존(追尊)되었고 269여년(餘年) 후(後)인 1969년 6월 서오릉(西五陵) 경내(境內)로 천장(遷葬)됨으로써 숙종(肅宗)의 명릉(明陵)과 같은 서오릉(西五陵) 경역내(境域內)에 있게 된 것이다.
서오릉(西五陵) 경내(境內)엔 1960년대(年代)에 설치(設置)된 군(軍) 주둔지(駐屯地)가 있다. 상당(相當)한 면적(面積)에 이르는 이 주둔지(駐屯地)는 대북한(對北韓)과의 대치상황(對峙狀況)에서 군사목적상(軍事目的上) 설치(設置)된 것이기는 하나 그 위치(位置)가 서오릉(西五陵) 경내(境內) 능역(陵域)인 만큼 능역(陵域)으로서 보존(保存)되도록 환원(還元)되었으면 하는 것이다.
재실(齋室)은 동구릉(東九陵)의 예(例)와 같이 각(各) 능(陵)마다 있지 아니하고 서오릉(西五陵) 전역(全域) 아우르는 재실(齋室)이 서오릉(西五陵) 정면(正面) 출입로변(出入路邊)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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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오릉
1970년 5월 26일 사적 제198호로 지정되었다. 경기도 고양시 용두동(龍頭洞)에 있다.
서오릉은 풍수적(風水的)인 길지(吉地)에 왕실의 족분(族墳)을 이룬 것인데, 경릉(敬陵)·창릉(昌陵)·익릉(翼陵)·명릉(明陵)·홍릉(弘陵)의 5능을 일컫는다. 이곳에는 5능 외에 명종(明宗)의 첫째 아들 순회세자(順懷世子)의 순창원(順昌園)이 경내에 있으며, 최근 숙종(肅宗)의 후궁 장희빈(張禧嬪)의 대빈묘(大嬪墓)도 경내에 옮겨 놓았다.
⑴ 경릉 : 세조(世祖)의 세자 장(璋:德宗)과 그 비(妃) 소혜왕후 한씨(昭惠王后 韓氏)의 능이다. 능제(陵制)는 좌측이 왕, 우측이 비의 동원이강식(同原異岡式)으로 왕우비좌(王右妃左)의 일반 상례와 반대되고 있다. 이는 왕비가 생전에 덕종의 추존에 따라 왕비로 책봉되었기에 능제도 왕릉 형식을 갖추었으나, 왕은 당초 세자로 돌아갔으므로 세자묘대로 두기로 하였기 때문이다.
⑵ 창릉 : 덕종의 아우인 예종(睿宗)과 그 계비(繼妃) 안순왕후 한씨(安順王后 韓氏)의 능이다. 왕릉·왕비릉이 동원이강식을 이루고 있고, 그 석물(石物) 배치는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의 전통적인 예에 따르고 있으며, 석물의 양식상 특이한 것이 있다면 고석(鼓石)의 무늬와 석난간 대석주 주두양식(石欄干 大石柱 柱頭樣式)이다.
⑶ 익릉 : 숙종왕비(肅宗王妃) 인경왕후 김씨(仁敬王后 金氏)의 능이다. 능제(陵制)는 기본적으로 《국조오례의》의 제도를 따르면서 부분적으로는 임진왜란 이후의 양식을 좇고 있다. 능표(陵表)는 송시열(宋時烈)이 찬(撰)했고 심익현(沈益顯)이 글씨를 썼다.
⑷ 명릉 : 숙종(肅宗)과 계비(繼妃) 인현왕후 민씨(仁顯王后 閔氏)와 제2계비 인원왕후 김씨(仁元王后 金氏)의 능이다. 숙종과 인현왕후의 능이 쌍분(雙墳)으로 조영(造營)되고 인원왕후 능이 우측에 있어 좌측이 숙종의 능과 동원이강의 배치로 된 형식이다. 명릉은 조선의 능제상(陵制上)에 한 시기를 이루었으니 즉 그 제도는 《속오례의 산릉의(續五禮儀山陵儀)》의 골자가 되었고 조선 후기 치장(治葬)의 근간이 된 《상례보편 산릉의(喪禮補編山陵儀)》의 기초를 이루었다.
⑸ 홍릉 : 영조 원비(英祖元妃) 정성왕후 서씨(貞聖王后 徐氏)의 능이다. 영조는 왕후의 택조(宅兆)를 정하면서 장차 함께 묻히고자 허석(虛石)의 제도를 쓰고 능상석물(陵上石物)은 쌍릉(雙陵)을 예상하여 배치하여 놓고 있다. 현재 홍릉 우측의 공간은 바로 이것으로 영조의 능이 동구릉(東九陵)에 자리잡게 되자 빈 채로 남아 있게 되었다. 이 능은 능상설(陵象設)의 제도와 양식은 기본적으로 명릉(明陵)양식을 따르고 있으면서, 장명등(長明燈)·석망주(石望柱) 등에 독특한 양식의 변화를 보이고 있고 난간석주 주두양식(欄干石柱柱頭樣式)이 특이한 것으로 《속오례의(續五禮儀)》와 《국조상례보편(國朝喪禮補編)》의 제도가 잘 반영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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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부를 시작하며...
▼ 서오릉매표소 앞에서...
▼ 고양시 안내도를 보니...
▼ 서오릉주변을 확대하여...
▼ 서오릉 안내도
▼ 지금 시각이 10시 25분이니....
▼ 저기...
▼ 금천교를 지나...
▼ 해설사의 해설을 들으며...
▼ 먼저 순창원부터...
▼ 여기가...
▼ 순창원
▼ 2중 연리지
▼ 여기는...
▼ 경릉
▼ 이 묘의 주인은 왕이 아닌 세자시절에 죽어 묘를 만들었기에 왕과 왕비의 능과는 달리 석물이 간단하다.
▼ 소혜왕후의 릉
▼ 정자각
▼ 잡상
▼ 왼쪽 계단은 신계(神階), 오른쪽은 어계(御階)
▼ 반대편에는 어계(御階)만 있다.
▼ 여기는...
▼ 왕과 왕비의 묘가 아니기에 석물이 곡장 밖에 나와 있다.
▼ 장희빈묘 뒤에 바위틈에서 소나무가 자란다고...
▼ 서오릉산책길에서 현재 위치는...
▼ 여기는...
▼ 정자각 뒤로 묘가...
▼ 바라보는 방향에서 우측에 하나만...그 이유는 블로그 첫머리 설명글에...
▼ 물봉선
▼ 창릉 앞에 놓인 비호교를 건너...
▼ 여기는...
▼ 창릉
▼ 창릉은 동원 이강릉이다.
▼ 이제 산책로를 따라 익릉으로...
▼ 쑥부쟁이
▼ 줄기가 몇 가닥?
▼ 여기서...
▼ 고사목
▼ 현위치 익릉 앞
▼ 여기가...
▼ 여기는...
▼ 원점으로 돌아와서...
▼ 저 문으로 나가서...
▼ 주차장에 있는 은행나무 밑둥이...
▼ 명릉 입구...
▼ ?
▼ 여기가...
▼ 명릉
▼ 神道와 御道, 그리고 좌우에 臣道
▼ 수라간이나 수복방의 주춧돌
▼ 정자각
▼ 신계와 어계
▼ 비각
▼ 예감 - 축문을 태우는 곳
▼ 정자각에는...
▼ 잡상이 있는데...
▼ 기단석들은 전쟁의 상처를 입고...
▼ 고추잠자리
▼ 홍살문의 삼태극
▼ 서오능 정류장에서 버스와 전철로 귀가...
☞ 이것으로 '구일역에서 안양천/불광천따라 수국사/서오릉까지' 도보여행을 다녀오다'를 마친다.
-▥☞ 1부[구일역-안양천-양화교-성산대교-평화의공원-상암월드컵경기장]는 여기를 누르세요.☜▥-
-▥☞ 2부[상암월드컵경기장-불광천-응암역-역촌역-수국사-분재연구원-서오릉]는 여기를 누르세요.☜▥-
-▥☞ 3부[서오릉(순창원-경릉-대빈묘-홍릉-창릉-익릉-수경원-명릉)-서오릉 정류장]는 여기를 누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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