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라지는 세상에 밀려버린 길…
확장공사로 인적 끊겨가는 옛 7번 국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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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호항이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의 전망대.
7번 국도를 달리는 차들은 이런 풍경 앞에서 차를 멈춘다.
그러나 이 길은 오는 연말 새로운 7번 국도가 놓이면서
국도 자리에서 밀려나게 된다. |
대한민국에서 ‘바다 여행의 고전’이라면 단연 ‘7번 국도’였습니다.
강원 고성에서 부산까지 동해안의 등뼈를 따라 내려가는 513㎞의 이 길은
동해에서 이름난 명소를 죄다 거쳐가는 길이었지요.
굽이친 해안도로 언덕에 오르면 넘실거리는 바다가 차창으로 한가득 밀려들었고,
거쳐가는 포구마다 비릿하고 짭조름한 바다 냄새까지 맡을 수 있는 길이었습니다.
천천히 굽어지는 도로를 따라 핸들을 잡고도
푸른 바다를 향해 고개 한 번 돌릴 여유쯤은 있는 그런 길이었습니다.
예전의 7번 국도는 분명 그랬습니다.
그러나 지금 7번 국도는 달라졌습니다.
고성에서 속초, 양양, 강릉을 지나 삼척까지는 그런대로 옛 정취를 간직하고 있지만,
삼척에서 울진을 지나 포항까지 잇는 길은 몇구간만 빼고는 자로 잰 것처럼
직선으로 다시 놓였고, 속도를 위해 포구의 마을은 아예 멀찌감치 둘러서 갑니다.
산자락을 교묘하게 뚫어 터널을 냈고,
낮은 곳은 괴어 허공에 높이 걸린 다리를 놓았습니다.
아예 터를 높이고 가드레일로 막아 건널목은 커녕
사람들의 접근을 거부하는 이 길은 이제 고속도로가 돼버리고 말았습니다.
이 길에서는 바다가 보인다 한들 맹렬한 속도에 고개 한 번 돌려볼 여유조차 없습니다.
이전의 7번 국도에서는 어디건 마음에 드는 풍경을 만나면
길 옆에 차를 세우거나 샛길로 들어서면 됐지만,
지금은 아차 하고 나들목 하나를 놓치면 백미러를 힐끔힐끔 봐가며
다음 나들목까지 끝도 없이 달려갔다가 되돌아와야 합니다.
과거의 7번 국도가 느릿느릿 가다가 우연히 만나는 풍경에 감동하는 길이었다면
새 7번 국도는 ‘목적한 곳’이 아니라면, 아예 들를 일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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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곡항에서 금진항으로 이어지는 해안도로.
‘헌화로’란 이름이 붙은 이 길은 바다를 끼고
기암괴석 사이를 달리는 최고의 드라이브 코스다.
또 때때로 드러나는 탁 트인 해안선이
가슴을 시원하게 해준다. |
새로 놓인 7번 국도는 마치 축지법과 같습니다.
해안 풍경이나 비릿한 어촌의 내음을 다 접어버리고
출발지에서 목적지까지 최단거리 직선을 긋습니다.
그 길에 올라선 목적이 ‘이동’이라면 더없이 편리해지고 신속해진 것이겠지만,
‘바다를 만나기 위한 길’로 그 길을 택한 여행자들은 씁쓸할 뿐입니다.
7번 국도가 이렇듯 달라진 것은 물론 하루아침의 일은 아닙니다.
7번 국도 확장 공사는 지난 1989년부터 시작된 것이니
벌써 얼추 20년이 다 되었다는군요.
그렇게 조금씩 조금씩 달라진 길은
이제 올 연말 삼척시 근덕면 매원리에서 원덕읍 월천리까지 구간 개통과
2010년 고성군 간성읍 상리에서 현내면 사천리까지의 구간 개통만을
남겨놓고 있습니다.
7번 국도가 다 달라지기 전에 그 길을 찾아 달려 봤습니다.
맹렬한 속도의 길을 벗어나 되도록 옛 7번 국도를 따라갔고,
깊숙한 해안도로도 다시 달려 봤습니다.
그 길을 달리면서 구불구불 바다를 바라보며 허름한 포구를 들러가며
천천히 달렸던 길이 잊히는 것이 안타까웠습니다.
옛 국도는 벌써 인적이 끊기면서 초라해져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도를 펴들고 어렵사리 옛 국도로 찾아들던 가족여행객과
맹방해수욕장이 바라뵈는 언덕을 자전거로 넘던 이들을 만나면서
옛 7번 국도는 아주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 믿었습니다.
세월의 깊이가 다르긴 하지만 대관령의 옛길이,
문경새재를 넘던 과거 길이 다시 살아남았듯 말입니다.
고성·속초·강릉·삼척·울진 = 글·사진 박경일기자 parking@munhw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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