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주하는 차’ 사라지고 ‘느린 풍경’이 들어서다

텅빈 백사장 위 꼬질꼬질 앙증맞은 신발 두켤레…

한적한 바닷가 오밀조밀 가지런히 널린 오징어…

옛 7번 국도변의 작은 해수욕장에서는 신발을 벗고 모래사장을 걷는 맛도 좋다(맨위 사진).
삼척에서 울진쪽으로 내려가면 포구마다 오징어를 말리는 모습을 볼 수 있다(가운데).
해안도로에서는 해녀들이 물 밖으로 올라와 가쁘게 내쉬는 숨비소리를 가까이에서 들을 수 있다(아래).
# 새 길에 자리를 내주고 한적해진 옛길
옛 7번 국도는 해안마을의 도시와 포구를 관통했다.
옛 7번 국도는 해안마을의 도시와 포구를 관통했다.
짭조름하고 비릿한 바다 냄새의 포구를 다 들러 기웃거리며 느릿느릿 갔다.
그 길에서는 여행자와 주민들이 자연스레 섞였고, 너나없이 한데 어우러졌다.
그러나 지금의 7번 국도는 멀리 도시를 에둘러 돌아간다.
작은 포구들에 눈길 한 번 주지 않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속초 중앙시장 앞길로 주춤거리며 이어지던 7번 국도는 이제 시장 뒤쪽 지하차도로 빠져나가 왕복 6차선 도로를 시속 80㎞로 달린다.
삼척시로 드는 초입의 멋진 고갯길이었던 한재는 터널이 뚫리고 까마득한 교각의 다리가 놓였다.
새 길은 도통 시장통이나 마을을 기웃거릴 틈을 주지 않는다.
아니, 아예 관광지가 아닌 곳에는 차를 세울 수조차 없게 해놓았다.
새 길이 놓이면서 옛길은 모두 관심 밖이다.
새 길이 놓이면서 옛길은 모두 관심 밖이다.
원주지방국토관리청도, 강릉국도관리사무소도 옛 7번 국도의 노선을 아는 이가 없었다.
새로 놓인 국도의 현황에 대해서는 줄줄이 꿰고 있었지만, 옛 7번 국도는 노선지도 한 장 남아있지 않다고 했다.
원주국토청에서 겨우 얻어낸 것은 1997년에 발행한 강원도 전도 지도 한 장이 고작이었다.
2008년 발행 지도와 이 지도만 비교해봐도 명백하다.
2008년 발행 지도와 이 지도만 비교해봐도 명백하다.
최근에 7번 국도를 따라 달려 보았다면 이전보다 정취가 훨씬 덜한 것 같다고 느껴지진 않았는지.
그건 감성이 무뎌져서도 아니고, 나이가 들어서도 아니다.
길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바다를 구불구불 끼고 가는 옛길이 쭉 뻗은 새 길로 바뀐 탓이다.
지도를 짚고 옛길을 물어가며 해안 정취가 그만이었던 옛 7번 국도를 따라간다.
# 7번 국도에서 비껴가는 동해안 최고 풍경길 ‘한재’
삼척역을 지나 근덕면 쪽으로 향하는 길에서 맹방해수욕장을 아름답게 내려다볼 수 있는 고갯길이 있었다.
# 7번 국도에서 비껴가는 동해안 최고 풍경길 ‘한재’
삼척역을 지나 근덕면 쪽으로 향하는 길에서 맹방해수욕장을 아름답게 내려다볼 수 있는 고갯길이 있었다.
아름다운 바다 풍광을 따라 달리는 7번 국도에서도 몇 손가락 안에 드는 풍경이었다.
그러나 새로 난 7번 국도는 고개를 오르지 않고 터널을 지나고 높은 교각위의 다리를 건너 맹방해수욕장을 순식간에 지나쳤다.
옛 지도를 펼치고 몇번을 되돌아와서야 삼척남초등학교 앞의 오분사거리에서 왼쪽으로 난 옛 7번 국도를 찾아냈다.
한재를 넘는 길은 텅 비어 있었다. 간혹 자전거 몇대가 언덕을 올랐다.
한재를 넘는 길은 텅 비어 있었다. 간혹 자전거 몇대가 언덕을 올랐다.
고갯마루에 오르자 한재밑해수욕장과 맹방해수욕장의 흰 백사장이 길게 내려다보였다.
맹방해수욕장 뒤쪽의 덕봉산은 아직 싱싱한 초록숲이다.
바다는 정면으로 바라볼 때보다 이렇듯 측면에서 바라볼 때가 더 아름답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화창한 가을날의 아침이라 바다는 더할 수 없을 만큼 반짝거렸다.
저 멀리 가야 할 길들이 이어져 있었다.
7번 국도를 차들은 모두 한재의 허리쯤에 뚫린 터널로 들어섰다.
순식간에 터널을 빠져나온 차들은 교각위로 놓인 다리를 넘어 남쪽으로 맹렬하게 달려갔다.
한재를 내려서 옛 7번 국도로 접어들었다. 근덕면을 지나 온평까지의 옛 7번 국도는 작은 어촌과 면사무소를 지난다. 한산한 길가에서 주민들이 오징어를 말리는 풍경이 정겹다. 강원여객 버스가 털털거리며 한가한 도로를 달렸다.
# 새 도로에 내준 자리 못내 아쉬운 ‘장호항 전망대길’
온평에서 7번 국도는 다시 예전의 국도로 내려선다.
한재를 내려서 옛 7번 국도로 접어들었다. 근덕면을 지나 온평까지의 옛 7번 국도는 작은 어촌과 면사무소를 지난다. 한산한 길가에서 주민들이 오징어를 말리는 풍경이 정겹다. 강원여객 버스가 털털거리며 한가한 도로를 달렸다.
# 새 도로에 내준 자리 못내 아쉬운 ‘장호항 전망대길’
온평에서 7번 국도는 다시 예전의 국도로 내려선다.
삼척시 근덕면 매원리부터 원덕읍 월천리까지는 한창 새 7번 국도를 놓는 공사를 벌이고 있었다.
분주하게 터널을 뚫고 가드레일을 달고 있었다.
이 구간도 올 연말이면 개통된다.
그렇게 되면 궁촌해수욕장과 문암해수욕장을 지나 장호항, 신남해수욕장으로 구불구불 이어진 도로는, 7번이란 번호도 국도라는 지위도 잃게 된다.
국도를 달리다가 풍경에 마음을 뺏겨 내키는 곳으로 찾아들었던 크고 작은 해수욕장들이나 산책로로도 운치가 넘쳤던 초곡굴 가로수길도 이제 일부러 목적지로 삼지 않으면 가볼 수 없게 된다.
호산해수욕장과 용화해수욕장 사이, 동해안에서도 가장 예쁘다는 어촌 신남과 갈남도 국도에서 멀어진다.
삼척을 지나 울진으로 향하면서 동해안은 모습을 바꾼다.
삼척을 지나 울진으로 향하면서 동해안은 모습을 바꾼다.
백사장은 적어지고 기암들이 눈에 띄기 시작한다.
길도 서서히 고도를 높인다.
이 길에서 백미는 활처럼 휘어진 백사장의 용화해수욕장과 ‘한국의 나폴리’로 꼽히는 장호항이 바라다보이는 전망대.
풍광은 예전 그대로였다.
해안 풍경과 항구의 모습도 빼어났지만, 무엇보다 눈길을 끄는 것은 맑은 물빛이었다.
발밑으로 내려다보이는 바다는 밝은 초록으로 빛나며 바닥을 훤히 드러내고 있었다.
전망대 주변에는 커피며 오징어 따위를 파는 트럭 행상도 성업중이었고, 언덕의 정자 위에서도 관광객들의 감탄이 넘쳐났다.
7번 국도를 따라 남쪽으로 내려가던 차들이나 북쪽으로 올라가던 차들도 풍경에 홀려 다 길 옆의 자그마한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이 길도 몇달 뒤면 이제 7번 국도에서 비껴나게 된다.
그때쯤이면 아마 트럭 행상도 좌판을 걷게 되지 싶다.
# 곡선이 직선길 되고, 직선은 다시 곡선길 되다
동해안의 7번 국도가 속도를 위해 곡선을 직선으로 펴고 있지만, 직선이던 도로 곁에 곡선의 길을 새로 놓는 곳도 있다.
# 곡선이 직선길 되고, 직선은 다시 곡선길 되다
동해안의 7번 국도가 속도를 위해 곡선을 직선으로 펴고 있지만, 직선이던 도로 곁에 곡선의 길을 새로 놓는 곳도 있다.
빨리 갔을 때는 좀처럼 만져지지 않는 느림의 길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동해안에서 가장 유명한 관광 포인트를 찾는다면 아마도 정동진이 꼽히지 않을까.
그러나 이즈음에는 워낙 유명세를 떨쳐 오히려 닳아빠진 느낌이다.
그럼에도 정동진을 찾아 들어간 것은 심곡항에서 금진항을 지나 옥계해수욕장까지 이어진 2.4㎞의 해안드라이브 코스를 만나기 위한 것이었다.
이 해안도로는 감히 ‘동해안의 길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로 꼽을 만하다.
10년 전에 만든 이 길은 이동을 목적으로 놓은 길이 아니라, 순전히 풍광만을 목표로 놓은 길이다.
바다에 딱 붙어 기암괴석 사이를 달리는 길에서 고개를 빼면 차창 아래로 바다가 내려다보인다.
파도가 거센 날에는 포말이 거침없이 도로위까지 올라온다.
이 길이 놓이기 전의 심곡항은 해안을 끼고 있으면서도 오지 중의 오지로 꼽혔던 곳이다.
이 길이 놓이기 전의 심곡항은 해안을 끼고 있으면서도 오지 중의 오지로 꼽혔던 곳이다.
동해의 추암에서 삼척의 정라항쪽으로 바다를 끼고 이어지는 길도 지난 2000년에야 만들어진 길이다.
심곡항에서 금진항으로 이어지는 길이 수로부인의 설화에서 딴 ‘헌화로’란 멋진 이름을 달고 있는 반면, 이쪽 길은 ‘새천년해안도로’란 건조한 이름이 붙어 있지만 부드럽게 해안 길을 휘감아 도는 길의 정취는 빼어나다.
물러앉은 옛 7번 국도도 이렇듯 새롭게 단장하면 어떨까.
번듯한 새 도로에 밀려 쓰임새를 잃은 해안길을 촘촘히 붙여서 잇고, 그 길에 하나하나 이름을 붙여준다면. 맹렬한 속도의 자동차에 위협당하지 않고 자전거를 타거나 걸을 수 있는 길을 만들어준다면….
빠른 속도로 이어지는 차들은 다 왕복 4차선의 7번 국도로 보내버리고, 2차선 옛 국도는 속도보다 정취와 추억을 바라는 사람에게 내주는 것, 그것이 새 7번 국도의 가장 적절한 쓰임새 아닐까.
고성·속초·강릉·삼척·울진 = 글·사진 박경일기자
parking@munhwa.co.kr
고성·속초·강릉·삼척·울진 = 글·사진 박경일기자
parking@munhw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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