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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적탐방후기☞/♣ 궁궐·왕릉·묘ㆍ원

[20081108]창경궁과 세계문화유산 종묘로 가을 고궁산책을 다녀오다 - 2부

by 맥가이버 Macgyver 2008. 11.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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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1월 08일 토요일
'창경궁과 세계문화유산 종묘로 가을 고궁산책을 다녀오다'
 
종로3가역-창덕궁 돈화문-창경궁 돌담길-창경궁 정문 홍화문-옥천교-명정문-명정전-대온실(식물원)-춘당지
-팔각칠층석탑-풍기대-통명전-환경전-경춘전-함인정-종묘육교-종묘 영녕전-정전-전사청-종묘 외대문(정문)-종각역
 
오늘은 고궁 단풍을 감상하러 길을 나서면서 예약은 하지 않았지만 혹시나 하는 기대로
창덕궁 옥류천 단풍을 욕심내고 창덕궁 매표소에 문의하니 이미 현장판매분은 매진되었다고 한다.
예상은 하였지만 가을 고궁을 찾는 이들이 무척 많았다.
 
해서 창경궁으로 발길을 돌리기로 하고...
창경궁 돌담길을 따라 창경궁의 정문인 홍화문을 거쳐
옥천교를 건너 명정문을 거치고 명정전에서 오늘의 테마는 단풍인지라...
고궁의 전각을 보기보다는 주변 수목의 단풍든 풍광을 보기 위해 산책로를 따라 걸으며
단풍과 가을하늘을 카메라에 담았다.
 
'창경궁'과 세계문화유산인 '종묘'를 다녀온 가을 고궁산책의...
 
☞ 자세한 이야기는 맥가이버의 블로그 사진으로 대신한다.
     
 
'창경궁과 세계문화유산 종묘로 가을 고궁산책을 다녀오다 - 2부'를 시작하며...
  

 

대온실(식물원)

 

1909년에 준공된 우리나라 최초의 식물원이다.

건축 당시 한국 최대의 목조구조 식물원이었으며, 열대지방의 관상식물을 비롯한 희귀한 식물을 전시하였다.

1986년 창경궁 복원공사를 계기로 자생목본류를 중심으로 야생화와 함께 전시하고 있다.

현재 대온실은 2004년 2월 6일에 등록문화재 제83호로 지정되었다.

 

 

 

 

 

 

 

 

 

 

 

 

 

 

 

 

 

 

 

 

 

 

 

 

 

 

 

 

 

 

 

 

 

팔각칠층석탑 - 보물1119호


춘당지 옆에 세운 탑이다.

일제 강점기 이왕가박물관을 만들 때 만주(滿洲)에서 가지고 온 상인으로부터 매입하여 세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몸돌에 “遼陽重/ 開山都/ 綱挺玉/ 巖壽塔”의 명문(銘文)이 새겨져 있으며,

 “大明成化六年庚寅歲秋七月上澣吉日造”라고 기록되어 있어 1470년(성종원년)에 만들어진 것임을 알 수 있다.

8각의 평면 위에 7층의 탑신을 세운 석탑으로 전체 모습은 라마탑의 형태와 비슷하다.

 

 

 

 

 

 

 

 

 

 

 

춘당지

 

춘당지는 1909년에 조성된 원지(苑池)이다.

두 개의 연못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위의 것이 1,107평방미터, 아래 것이 6,483평방미터이다.

연못 속의 섬(366평방미터)과 1986년에 조성한 것이다.

춘당지가 있는 이곳은 원래 연산군이 서총대(瑞총臺) 앞 대지를 파다가 중종반정으로 중단한 곳이다.

그 후 권농장(勸農場)의 논이 있었는데 연못으로 만들었다.

 

 

 

 

 

 

 

 

 

 

 

 

 

 

 

 

 

 

 

 

 

 

 

 

 

 

 

 

 

 

 

 

 

 

 

 

 

 

 

 

 

 

 

풍기대

 

이 풍기대는 영조 8년(1732)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풍기대 위의 구멍에 깃대를 꽂고 그 깃대에 기를 달아 바람의 방향과 속도를 재던 것으로, 방향은 24방향으로 측정하였다.

전체 높이는 228.1센티미터인데, 하부대석 높이는 92.4센티미터, 상부 팔각주의 높이는 135.7센티미터이다

 

 

 

 

 

 

 

 

 

 

 

 

 

 

 

 

 

 

 

 

 

 

 

 

  

통명전

 

통명전은 창경궁의 연조 공간으로 명정전 서북쪽에 있으며,

왕과 왕비가 생활하던 침전의 중심 건물이다.

창경궁 창건 때 세워졌는데,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재건이 되고,

다시 이괄의 난과 정조 때 화재를 입었다.

지금의 건물은 순조 34년에 중건된 것이다.

남향한 전면에는 월대를 두고 양모서리에는 청동제 드므를 놓고

그 북쪽에 외벌대 기단 한 단을 두어 건물을 세웠다. 
 
정면은 7칸이고 측면이 4칸인 이익공계(二翼工系) 건물로 겹처마에 팔작지붕을 하였다.

지붕 위에는 용마루가 없는 것이 특징이고, 전후퇴칸을 두었다.

북서쪽 일부의 방을 제외하고는 건물 내부 바닥에 모두 우물마루를 깔았는데,

정면으로 보아 양측에 2칸씩 방을 꾸몄음이,

1984년의 발굴조사에서 연도지(煙道址)가 노출됨으로써 확인되었다.  

 

 

 

 

 

 

 

 

경춘전

 

이 전각은 창경궁의 내전으로 성종 14년에 건립되었다.

그후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광해군 8년에 재건하였으나,

순조 30년에 불탄 것을 그 34년에 다시 지어 오늘에 이른다.

 

이 경춘전은 정조와 헌종이 탄생한 곳이며, 현판은 순조의 어필이다.
정면 7칸, 전후퇴칸을 포함해서 측면 4칸 단층 팔작기와집으로 겹처마이며,

네모기둥 위에는 이익공의 공포를 짜고, 기둥간에는 두세 개씩의 화반을 놓았다.

네면에는 모두 세살문을 달았고 그 위에 교살창을 하였다.

 

좌우엔 온돌방과 중앙3칸은 마루를 깔았는데

양측으로 각 2칸과 전후퇴칸은 연등천정을 하고 우물천정을 하였다.

 

 

환경전

 

이 건물은 성종 15년에 건립되었으며, 임진왜란으로 소실된 것을 광해군 8년에 중건하였다.

그 후 순조 30년(1830)의 큰 불로 소실되었던 것을 그 34년에 중수하여 오늘에 이른다.

이곳은 창경궁의 한 내전으로 왕이 늘 거동하던 곳이며,

중종이 이곳에서 승하했고, 익종이 승하했을 때는 빈궁(殯宮)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정면 7칸, 측면 4칸의 단층 팔작기와집으로, 겹처마이며

기둥 위에는 이익공의 공포를 짜고 기둥간에는 두세 개씩의 화반을 놓았다.

 

건물의 내부에는 모두 우물마루를 깔았고,

외진평주(外陳平柱)와 내진고주(內陣高柱)를 배열하여 퇴량을 걸고

그 위로는 연등천장을 하고 안쪽으로는 우물반자를 하였다.

대량(大樑)은 내진고주 사이에 걸었다. 

 

 

 

 

 

 

 

함인정

 

이곳에는 원래 성종 15년에 지은 인양전이 있었는데,

임진왜란 때 불타버린 뒤 인조 11년(1633)에 인경궁의 함인당을 이건하여 함인정이라 한 것이다.

이곳은 특히 영조가 문무과거에서 장원급제한 사람들을 접견하는 곳으로 사용하였다고 한다.
정면 3칸, 측면 3칸의 단층 팔작기와집으로 겹처마이며,

기둥 위에는 이익공의 공포를 짜았고, 주간에는 화반 두 개씩을 놓았다.

 

내부에는 모두 우물마루를 깔았는데,

내진주(內陳柱)로 구획된 마루는 한 단 높게 처리하여 그 위로는 우물천정을 하고

사방둘레의 퇴간(退間)에는 연등천정을 하였다

 

 

 

 

 

 

 

 

 

 

 

 

 

 

 

  

 

 

 

 

 

 

☞ 여기서 '창경궁과 세계문화유산 종묘로 가을 고궁산책을 다녀오다 - 2부'를 마치고...

 

 

2008년 11월 08일 토요일
[창경궁과 세계문화유산 종묘로 가을 고궁산책을 다녀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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