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4월 01일(수)
도보여행-'경희궁→홍난파 가옥→단군성전→창의문→백사실→세검정→석파랑→탕춘대성→불광역으로 봄나들이'를 다녀오다.
도보여행코스
서울역사박물관(금천교) → 경희궁(서울시립미술관) → 흥화문 → 돈의문(서대문)터 → 강북삼성병원(경교장) → 서울특별시교육청
→ 월암근린공원 → 홍난파 가옥 → 교남경로당 → 권율장군집터 → 옥경이슈퍼 → 종로문화체육센터 → 단군성전 →인왕스카이웨이
→ 황학정(등과정터) → 삼거리 → 청운공원 → 창의문(자하문) → 산모퉁이 → 백사실(백석동천) → 현통사 → 신영교 → 탕춘대터
→ 세검정(洗劍亭) → 석파랑(石破廊) → 홍지문(한북문/오간대수문) → 옥천소공원 → 옥천암(玉泉庵) → 보도각백불(普渡閣白佛)
→ 다시 옥천소공원 → 탕춘대성곽 → 탕춘대성(蕩春臺城) 암문 → 헬리포트 → 산불감시탑 → 정자 → 거북약수터 → 불광역 4거리
오늘은 도심(광화문-서울역사박물관)에서 출발한 후 경희궁을 거쳐 지금은 강북삼성병원 소유로 되어 있는
백범 김구선생의 사저였던 경교장에서 사진을 찍고 경교장 안을 둘러보려 했으나
안전요원에게 경교장의 사진을 찍지 말라는 제지를 당하고 내부를 들어가 보려던 마음을 접는다.
이어 서울특별시교육청 정문 앞을 지나 송월동 기상청 별관 정문 앞을 지나고
바로 옆에 새로 조성된 송월동 월암근린공원을 거쳐 홍파동 홍난파 가옥 앞에서 고향의 봄을 읊조리다가
사직터널 위에 있는 ‘교남동 경로당’을 거쳐 ‘권율장군집터’라는 표석과 수령 450년이라는 은행나무를 본 후
서울성곽이 도로로 인해 일부 끊어지고 ‘옥경이슈퍼’가 있는 곳에서 잠시 방향을 고민하다가
인왕산 성곽을 따라서는 안팎으로 그간 여러 차례 오르내렸기에 오늘은 종로문화체육센터 앞을 지나간다.
이 길은 초행이다.
그 길의 끝에는 인왕스카이웨이 시점에 있는 단군성전이 나온다.
단군성전을 둘러보고 인왕스카이웨이를 따라 걸어가다가 마을토박이 어르신을 만나 인왕산의 숨은 내력에 대해 전해 듣는다.
이어 인왕스카이웨이를 따라 걸어 인왕산 성곽의 북쪽 들날머리 지나 청운공원 정자를 거쳐
전망소나무에서 석파정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고 창의문(자하문)으로 들고난다.
이어 ‘북악산산책길’ 가는 길을 따라걷다가 ‘카페 산모퉁이’를 지나 백사실 갈림길에서 지나쳐
북악산산책로 입구에서 부암동 뒷골마을(능금나무마을)에 당도한다.
백사실(계곡)을 따라 내려서다가 ‘백석동천’ 각자바위가 있는 곳으로 잠시 들어갔다가
다시 백사실(계곡)로 돌아와서 백사 이항복의 ‘별서‘로 알려지고 있는 곳에서
메마른 연못과 그 연못에 걸쳐있는 육각정의 주춧돌, 그리고 연못 위쪽의 사랑채의 주춧돌을 둘러본다.
그리고 계곡 아래로 내려서다가 작은 폭포가 있는 암반계곡 위쪽에 위치한 일붕선사의 ‘현통사’를 둘러본다.
북한산 부암동암문으로 오르는 중간에 있는 청하동문 각자바위에서 ‘일붕선사의 기도처’라는 각자가 새겨진 것을 본 적이 있다.
그리고 현통사 뒤쪽 산에도 일붕선사의 흔적이 있다.
신영교를 건너 세검정으로 가는 길 좌측에 ‘탕춘대한지마을터’와 ‘탕춘대터’에 대한 안내문과 송모씨의 불망비를 보게 된다.
세검정을 살펴보고 상명대 앞 삼거리에 있는 '세검정의 풍류'와 '부암동 부침바위'의 조형물을 보고,
부암동의 지명과 명물에 대한 소개글도 읽어본다.
그리고 석파랑에 들러본다
많은 이들이 석파정과 석파랑에 대해 혼동하고 있는데
석파정은 조선 철종과 고종 연간에 영의정 등 고위직을 지낸 김흥근(金興根 1796∼1870)이 경영한 별서(別墅)였으나,
흥선대원군 이하응(李昰應, 1820∼1898)이 집권한 후 몰수하여 자신의 별장으로 사용하였었고...
석파랑은 서예가 소전(素筌) 손재형(孫在馨)이 말년에 작품활동을 하며 살던 건물로 지금은 전통음식점이다.
인터넷 등에서 석파랑과 석파정을 혼동하여 표기하고 주장하는 글들이 떠돌아다닌다.
소전 손재형이 부암동 산 16-1번지에 있던 석파정의 사랑채 부속건물 중 하나를 1958년 종로구 홍지동 125번지로 옮겨왔는데,
그 후 1974년 '대원군별장'이라는 별도의 이름으로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23호로 지정되면서 혼동이 온 듯하다.
다시 상명대 삼거리로 나와 홍제천을 잠시 따라 내려가면 홍지문과 오간대수문이 보인다.
홍지문을 지나 옥천소공원을 거쳐 옥천암과 보도각백불을 보고 다시 옥천소공원으로 돌아와서 언덕길을 오르면
군데군데 무너져 내린 곳이 있는 탕춘대성의 성곽이 나오는데 굽이굽이 이어져 탕춘대능선을 따라 향로봉 중턱까지 이어진다.
탕춘대 성곽을 따라가다가 탕춘대 암문에서 암문을 통해 성곽 밖으로 난 산책길을 따라 불광역까지 간다.
도보여행-'경희궁→홍난파 가옥→창의문→백사실→세검정→석파랑→탕춘대성→불광역으로 봄나들이'의
자세한 이야기는 맥가이버 불로그의 사진으로 대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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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망치질하는 사람(Hammering Man)
망치질하는 사람(Hammering Man)
---조너선 브로프스키(Jonathan Borofsky)
광화문 흥국생명 사옥 옆, 조용히 망치질하는 거인이 있다.
거인의 망치질은 소리가 나지 않는다.
온종일 지나가는 자동차와 행인들의 바쁜 발걸음에도 아랑곳없이 거인은 그저 망치질에만 여념이 없다.
조너선 브로프스키(Jonathan Borofsky)의 ‘망치질하는 사람(Hammering Man)’은
프랑크푸르트, 베를린, 바젤, 시애틀 등에 이어 세계 7번째 거인이다.
2002년, 해머링 맨 중에서 가장 늦게 설치됐지만 세계에서 가장 큰 해머링 맨이기도 하다.
조너선 브로프스키의 작품으로는 광화문의 ‘해머링 맨’외에
삼청동 국제 갤러리 지붕 위의 ‘지붕 위를 걷는 여자’,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에 ‘노래하는 사람’ 등이 있다.
▼ 서울역사박물관으로...
▼ 경희궁의 금천교
▼ 서울역사박물관
▼ 서울역사박물관 주차장으로...
사월 / 김현승
플라타너스의 순들도 아직 어린 염소의 뿔처럼
돋아나지는 않았다.
그러나 도시는 그들 첨탑 안에 든 예언의 종을 울려
지금 파종의 시간을 아뢰어 준다.
깊은 상처에 잠겼던 골짜기들도
이제 그 낡고 허연 붕대를 풀어 버린 지 오래이다.
시간은 다시 황금의 빛을 얻고,
의혹의 안개는 한동안 우리들의 불안한 거리에서
자취를 감출 것이다.
검은 연돌(煙突)은 떼어다 망각의 창고 속에
넣어 버리고,
유순한 남풍을 불러다 밤새도록
어린 수선(水仙)들의 쳐든 머리를 쓰다듬어 주자!
개구리의 숨통도 지금쯤은 어느 땅 밑에서 불룩거릴 게다.
추억도 절반, 희망도 절반이어
사월은 언제나 어설프지만,
먼 북녘에까지 해동(解凍)의 기적이 울리이면
또다시 우리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
이 달은 어딘가 미신(迷信)의 달 …….
꽃 / 이육사
동방은 하늘도 다 끝나고
비 한방울 내리잖는 그때에도
오히려 꽃은 빨갛게 피지 않는가
내 목숨을 꾸며 쉬임 없는 날이여.
북쪽 툰드라에도 찬 새벽은
눈속 깊이 꽃 맹아리가 옴작거려
제비떼 까맣게 날아오길 기다리나니
마침내 저버리지 못할 약속(約束)이여
한 바다 복판 용솟음치는 곳
바람결 따라 타오르는 꽃 성(城)에는
나비처럼 취(醉)하는 회상(回想)의 무리들아
오늘 내 여기서 너를 불러 보노라.
- <육사시집>(1946) -
▼ 경희궁으로 오르는 계단
▼ 경희궁
경희궁 [慶熙宮, 경덕궁]
서울특별시 종로구 신문로에 있는 조선시대의 궁궐.
사적 제271호. 현재 서울에 남아 있는 5대궁 중 서쪽에 자리하여 서궐로도 불렀다.
정원군(定遠君:元宗)의 집 근처인 색문동(塞門洞)에 왕기가 서려 있다는
부사(府使) 신경희(申景禧)의 말에 따라 이곳의 왕기를 제압하기 위해
1617년(광해군 9)에 수백 호의 여염집을 강제로 이주시키고
경덕궁(慶德宮)을 짓기 시작하여 3년 뒤인 1620년 완공했다.
인조반정(1623)으로 등극한 인조는 이곳에서 정사를 보았으며,
그뒤 효종부터 철종에 이르는 10여 명의 임금이 살았다.
현종과 숙종은 이곳에서 평생을 보냈기 때문에 이 기간 동안에 화재와 수리가 특히 많았다.
숙종은 이 궁의 정전(政殿)인 회상전(會祥殿)에서 태어나 융복전(隆福殿)에서 죽었다.
경종은 숭정문(崇政門)에서 즉위함으로써 경덕궁에서 최초로 즉위식을 올렸다.
영조는 1760년(영조 36) 인조의 아버지 원종(元宗)의 시호인 '경덕'(敬德)과 음이 같다는 이유로
'경덕궁'을 '경희궁'으로 바꾸었다.
영조는 이곳에서 즉위를 했으나 몇 달만 이곳에서 지냈으므로 거의 빈 궁궐로 있었다.
1810년(순조 10) 순조가 이곳으로 옮겨 지냈는데,
1829년(순조 29)에 많은 건물이 불타 2년 뒤에 중건했고, 1834년 회상전에서 죽었다.
헌종도 이곳에서 즉위했으나 여섯 달만 머물렀으며 그뒤 다시 빈 궁궐이 되었다.
1860년(철종 11) 수리를 하고 철종이 일곱 달만 머물고 창덕궁으로 옮김으로써 조선왕조가 끝날 때까지 빈 궁궐이었다.
1889년(고종 26) 숭정문이 불탔으나 1902년(광무 6)에 수리했다.
정조 때 만들어진 〈경희궁지 慶熙宮志〉에 경희궁의 규모와 건물의 배치가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궁성의 둘레는 총길이 1,100보(步)로 6,600자였으며 사방에 5개의 문을 두었다.
동쪽에 정문인 흥화문(興化門)과 왼쪽에 흥원문(興元門), 남문 개양문(開陽門),
서문 숭의문(崇義門), 북문 무덕문(武德門)이다.
정전인 숭정전은 신하들의 조하를 받던 곳으로 궁성의 서쪽에 위치했으며, 주위는 회랑으로 둘러져 있었다.
뒤쪽에는 업무를 보던 자정전(資政殿)이 있었는데 이곳도 행각으로 둘러졌다.
숭정전의 동쪽에는 정침(正寢)인 융복전이, 바로 서쪽에는 왕후의 침전인 회상전이 있었다.
회상전의 담은 5개의 문으로 둘러졌었고, 주위에 많은 건물들이 있었다.
또 융복전 동쪽에는 임금의 어머니인 대비가 생활하던 곳인 장락전(長樂殿)이 있었다.
이들 침전 뒤쪽에는 많은 정자들이 있는 후원이 자리했다.
1908년(융희 2)부터 일제에 의해 궁궐의 서쪽에 일본인 중학교를 세우기 위한 정지작업이 시작되면서
조선왕조의 5대 궁 중 가장 많은 피해를 입었다.
1925년 전매국관사(專賣局官舍)로 궁궐의 동쪽이 분할되었고,
1926년부터 주요건물의 이전으로 말미암아 원래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졌다.
숭정전은 1926년 조계사(曹溪寺)에 매각되어 현재 동국대학교 구내에 있다.
1928년 흥정당(興政堂)은 광운사(光雲寺)로 이건했고, 황학정(黃鶴亭)은 사직단(社稷壇) 뒤로,
흥화문은 1932년 박문사(博文寺)의 산문(山門)으로 이축함으로써 결국 빈터만 남게 되어 서울고등학교가 들어서게 되었다.
1974년 학교를 다른 곳으로 옮기고 1988년부터 복원작업을 시작했다.
2002년 현재 자정전과 숭정전, 숭정문 등을 복원하는 1차 복원공사를 마치고 시민들에게 공개되었다.
朴彦坤 글
시간관계상 경희궁 안으로는 들어가지 못하고 흥화문으로 진행한다.
경희궁 내부는 맥가이버가 지난 '2008년 10월 18일(토)에 서궐西闕 경희궁慶熙宮(경덕궁慶德宮)을 다녀온 적이 있기에...
'경희궁' 바로가기 클릭 ☞ http://blog.daum.net/macgyver/15980978
▼ 서울시립미술관 앞쪽에...
▼ 서울시립미술관 앞을 지나...
▼ 흥화문으로...
▼ 이곳에 서울중ㆍ고등학교가 있었음을 알리는 표석
▼ 흥화문
흥화문 興化門
지정번호 :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19호
지정연월일 : 1974년 1월 15일
시 대 : 조선 광해군 10년(1618), 1932년 이건, 1988년 재이건
규모·양식 : 건평 약 88㎡, 정면 3칸 측면 2칸, 단층 다포계 우진각지붕
재 료 : 석조 기단, 목조
소 유 자 : 국유
소 재 지 : 서울특별시 종로구 신문로 1가
흥화문은 조선시대 광해군 10년(1618)에 세운 경덕궁(慶德宮) 정문이었다.
1910년 일제(日帝)가 경성중학교를 세우기 위해 경희궁의 전각들을 헐고,
몇몇 건물들을 매각하고 이건하면서 흥화문도 1915년 남쪽 담장으로 옮겨졌다가
1932년 장충동 박문사(博文寺)로 옮겨져 정문으로 사용되었다.
박문사는 안중근 의사(安重根義士)에 의해 포살된 이또히로부미(伊藤博文)를 위해
일제가 지은 사당이었으나 1945년 광복과 더불어 폐사되었다.
그 후 영빈관이 들어서고 신라호텔이 서면서 호텔 정문으로 사용되다가 1988년 경희궁지 지금의 위치로 옮겨졌다.
경희궁의 정문이었던 흥화문은 원래 궁궐의 동남쪽 모퉁이,
지금의 구세군회관 빌딩 자리에 동향하여 서 있다가 1915년 도로공사로 남쪽으로 이전되었으나,
현재 복원된 흥화문은 원래의 위치와 향(向)이 다르게 남향으로 되었다.
흥화문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다포계 겹처마 우진각지붕이다.
흥화문은 건립 당시에는 다른 궁궐의 정문과 같이 중층으로 세울 것을 고려하기도 하였으나
인경궁(仁慶宮)의 정문이 층문(層門)이어서 단층으로 하였다고 한다.
그 이유는 경덕궁이 피우처(避寓處)였기 때문이다.
흥화문의 초석과 기둥은 원형이며, 가운데 기둥 열 3칸에는 문짝을 달았다.
문틀 위에는 홍살을 달았고, 공포는 외2출목, 내3출목으로 구성되었다.
기둥 위에는 창방과 평방을 두었고, 그 놓여진 주심포의 살미첨차는 양봉으로 되어 장식적이지만,
기둥 사이 주간포의 살미는 짧게 끊어 자른 교두형이어서 대조를 이룬다.
첨차 외단 1, 2제공은 앙서, 3제공은 수서를 하였다.
가구는 고주 위에 2개의 보가 전후에 꽂혔고,
종량이 고주 상부에 놓였으며, 종량 위로 파련대공이 종도리를 받고 있다.
천장은 가운데 칸은 연등천장, 좌우 협간은 우물천정으로 되어 있다.
지붕마루에는 취두·용두·잡상 등이 장식되어 있다.
원래 경희궁에는 동문인 흥화문 외에 흥화문 왼쪽에 흥원문(興元門),
오른쪽에 개양문(開陽門), 서쪽에 숭의문(崇義門), 북쪽에 무덕문(武德門)이 있었다.
-서울문화재홈페이지-
▼ 경교장(돈의문터) 방향으로 가는 길에 음식점 골목길로...
▼ 돈의문(서대문)이 있던 곳에는...
▼ 강북삼성병원 내에 있는 경교장
▼ 경교장 안내문
서울 경교장(京橋莊)
지정번호 : 사적 제465호
지정연월일 : 2005년 6월 13일
시 대 : 1936년 착공, 1939년 준공
규모·양식 : 지상 2층 지하 1층, 연면적 874.05㎡(264.4평) 고전풍
재 료 : 철근콘크리트조
설 계 자 : 김세연(金世演)
시 공 자 : 대림조(大林組) 경성지점(京城支店)
소 유 자 : (주)삼성생명
소 재 지 : 서울특별시 종로구 평동 108-1
이 건물은 광복을 맞아 1945년 11월 23일 국내에 돌아온
김구(金九) 주석 등 대한민국임시정부 요인들이 집무실 겸 숙소로 사용한 곳이다.
환국(還國) 이후 임시정부의 첫 국무회의가 이곳에서 열렸고,
신탁통치 반대운동·남북 정치지도자 회담도 이곳을 무대로 추진되었다.
원래 이 건물은 금광업자 최창학(崔昌學)이 1938년 자신의 개인저택으로 세웠으나
광복 후 일제시대 때의 친일행위를 속죄한다는 뜻에서 김구 선생 숙소로 제공했다 한다.
경교장을 무대로 신탁통치 반대운동과 남북협상 등을 주도하던 김구 선생은
1949년 6월 26일 이 건물 2층에서 안두희의 흉탄에 맞아 서거하였다.
설계는 김세연(金世演)이 맡았는데 1930년대의 건축양식이 잘 나타나 있다.
건물은 정면 중앙 출입구를 중심으로 활 모양의 아치형 창이 좌우로 대칭 배치되어 있어
전체적으로 단아한 인상을 준다.
당초 2001.4.6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었으나
우리나라 근현대사에서의 동 건물의 중요성 등이 재평가되면서 2005. 6. 13 국가 지정문화재(사적)로 지정되었다.
현재 동 건물 2층 서쪽에 위치하고 있는 김구 선생의 옛 집무실이 원형대로 복원되어 <김구 기념실>로 운영되고 있다.
-서울문화재홈페이지-
▼ 서울특별시교육청 앞을 지나...
▼ 월암근린공원/홍난파 가옥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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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측 끝에 舊기상청 건물(현재는 기상청 송월동 별관)이 보이네...
▼ 봉선화 노래비
▼ 고향의 봄 노래비
▼ 진달래꽃
▼ 월암근린공원 표석 앞에서 본 홍난파 가옥
홍파동 홍난파 가옥
등록번호 : 제90호(2004년 9월 4일 등록)
소유자 : 종로구청
설계자 : 미상
건립연도 : 1930년
면적 : 연면적 121.45㎡
위치 : 서울특별시 종로구 홍파동 2-16
현 용도 : 주택
구조 : 벽돌조
19세기 말, 개항기로부터 일제강점기에 걸쳐 서울에는 개신교 선교사들이 집단으로 거주하는 지역이 몇 군데 생겨났던 적이 있다.
정동, 연건동, 서대문 밖 충정로가 대표적인 곳이었는데, 현재의 홍파동에도 선교사의 주택이 여러 채 건립되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특히, 근처 송월동에 독일 영사관이 있었던 관계로 독일 계통 선교사의 주택단지가 세워졌던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
건물은 지상 1층, 지하 1층의 규모로 붉은 벽돌조이다.
가파른 경사지를 이용하여 남쪽에 현관과 거실, 침실을 두고 북서쪽에 지하층을 두었다.
서쪽의 길에서 대문을 통하여 마당 안으로 올라오면 계단을 따라 현관에 다다르게 된다.
현관문은 정교하게 디자인 되어 있으나 다른 서양사람들의 주택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현관주변시설이 따로 없다.
지붕은 다른 지역의 선교사 주택보다는 경사면이 더 가파르다.
아마 북 유럽의 주택문화가 반영된 것은 아닐까 추측해 본다.
이 집의 실내는 1930년대 서양인 주택의 특징이 잘 나타나 있다.
우선, 거실의 벽난로로서, 벽난로는 붉은 벽돌로 치장 쌓기를 하였다.
거실바닥은 보통 벽돌만한 크기의 나무토막을 사용하여 쐐기문양을 내어서 마감하였다.
최근에 생활하였던 소유주가 방들을 터서 사용함으로써 원래의 평면 모습은 사라졌지만
바닥에 그 자국들이 남아 있어 원형을 추측할 수는 있다.
서구문물이 들어오는 과정에서 같이 유입된 서양종교의 선교사 주택들이 최근에 많이 사라지고있다.
일본인의 영향을 받지 않고 한국에 세워진 순수한 서양인의 주거문화를 확인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가 될 수 있는데 아쉬운 일이라 아니할 수 없다.
이 건물은 경사가 심한 대지를 이용하여 적절하게 건축물을 세워서
공간을 알뜰하게 사용한 실용적인 사례를 확인할 수 있는 자료이다.
대문을 들어서서 바로 연결할 수 있는 지원시설 - 부엌, 창고, 보일러실 - 부분과
반듯하게 만들어진 계단을 통하여 정원을 거쳐, 현관으로 유도되는 중요 동선의 배려, 넓은 지하실의 활용,
그것을 위한 적극적인 유리창의 확보등, 건축계획학적인 면에서 참고할 사항이 많이 남아 있다.
게다가 일제강점기동안의 행적에 여러 가지 문제를 지니고 있는 것이 사실이기는 하지만,
한국 근대음악의 역사에서 중요한 업적을 남긴 홍난파의 일생동안 중요한 작품이 이곳에서 거주하였을 때 만들어진 것이라 하니
이 장소와 공간이 지니고있는 의미 또한 한국근대사에서 아주 큰 것이라 하겠다.
한국근대사와 건축학적 가치에 따라 홍난파 가옥은 2004년 9월 4일 등록문화재 90호로 등록·관리되고 있다.
- 문화재청 -
▼ 홍난파 상
▼ 사직터널 위에 놓인 교남경로당을 지나 커다란 은행나무가 있는 곳이 권율장군집터...
▼ 권율장군집터 앞에 있는 주변 주택과 조금 다르게 오래된 벽돌로 된 이 건물은?
▼ 이 집은 힌두어로 이상향을 뜻하는 ‘딜쿠샤’로 3·1운동을 전 세계에 알린 세계적 통신사인 UPI 특파원 알버트 테일러가 살던 집으로 현재 문화재 지정이 추진되고 있다고 한다.
▼ 권율장군집터에 있는 은행나무
▼ 은행나무 아래 표석에 '임진왜란에 행주대첩을 거둔 도원수 권율 장군의 집터’라고...
▼ 수령 420년(지금은 450년 쯤)이라는데 이천 영원사에 있는 수령 800년된 은행나무보다도 크네...
▼ 권율장군집터를 지나면 서울성곽과 양의문교회가 보인다.
▼ 옥경이슈퍼 앞에서...
▼ 다시 시작되는 서울성곽은 인왕산정상을 거쳐 창의문으로 이어진다.
▼ 오늘은 성곽을 따라 가지않고 종로문화체육센터 앞을 지나간다.
▼ 이곳으로는 초행길이지만 길 끝에서는 인왕스카이웨이랑 만나질 듯...
▼ 인왕스카이웨이 시작점인 단군성전 앞으로 나오네...
▼ 잠시 단군성전으로...
▼ 단군성전에서 인왕스카이웨이를 따라...
▼ 우측길로 가면 황학정으로 들어섰다가 인왕스카이웨이로 나올 수 있다.
▼ 좌측길로...
▼ 황학정에는...
황학정 黃鶴亭
지정번호 :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25호
지정연월일 : 1974년 1월 15일
시 대 : 조선 광무 2년(1898) 창건, 1922년 이건
규모·양식 : 건평 19.5평, 정면 4칸, 측면 2칸, 단층 겹처마 팔작지붕
재 료 : 석조 기단, 목조
소 유 자 : 사유
소 재 지 : 서울특별시 종로구 사직동 산 1-1
황학정은 원래 광무 2년(1898) 고종의 어명으로
경희궁(慶熙宮) 회상전(會祥殿) 북쪽 담장 가까이 세웠던 궁술 연습을 위한 사정(射亭)이었다.
1922년 일제가 경성중학교를 짓기 위해 경희궁을 헐면서 경희궁내 건물들이 일반에게 불하될 때
이를 받아 사직공원 북쪽인 등과정(登科亭) 옛터인 현 위치에 이건하였다.
황학정이 있는 사직동의 등과정 자리는 한말까지 궁술 연습장으로 유명했던 곳이다.
등과정은 경복궁 서편 인왕산 기슭 옥동(玉洞)에 있던 등용정(登龍亭)·삼청동의 운용정(雲龍亭)·
사직동의 대송정(大松亭, 太極亭)·누상동의 풍소정(風嘯亭, 白虎亭)과 함께
인왕산 아래 서촌(西村) 오사정(五射亭)이라고 불렸다.
오사정을 비롯한 서울에 있던 이름 있는 활터는 일제 때에 전통 무술을 금지하면서 점점 사라졌다.
황학정의 활터는 전국에서 유명하였으며 광복 후에 계속 사용되었으나
6·25전쟁으로 건물도 파손되고 활쏘기도 중단되었다가 다시 중수되어 활터로 사용되고 있다.
과녁은 전방 약 145m 지점에 있으며, 1977년 일부 보수공사를 하였다.
황학정은 인왕산 동쪽 기슭 언덕 위에 동남향을 하고 자리잡았다.
정면에서 보아 4칸 중에서 동쪽 1칸은 서쪽의 3칸보다 한 단 높게 누마루를 꾸몄고, 동쪽 끝 초석은 장초석으로 처리되었다.
건물 정면 서쪽에서 2번 째 칸 되는 추녀 밑에 '황학정' 현판이 걸려 있다.
북쪽 끝 1칸 양통은 온돌이며 나머지는 모두 우물마루를 깔았다.
주간 거리는 건물 정면의 서쪽에서 오른쪽으로 2,763mm, 3,051mm, 2,820mm, 2,793mm 이며,
측면은 정면에서 뒤로 2,787mm, 2,820mm 이다.
초석의 높이는 290mm, 장초석의 높이는 970mm이고, 대들보까지 기둥의 높이는 2,670mm 이다.
건물은 외벌 장대석 기단 위에 사각기둥을 세우고, 정면과 동쪽 측면 기둥에는 칠언 절구의 주련(柱聯)을 걸었다.
정면 외부 기둥 사이에는 사분합문을 달았으며, 내부는 우물마루와 연등천장으로 되었다.
건물은 판대공으로 종도리를 받친 무고주(無高柱) 5량가이며, 굴도리를 사용하였다.
정자로서는 비교적 규모가 큰 건물이나 간결하고 소박하게 구조로 조영되었다.
건물 서남쪽 뒤로는 샘이 있고 그 뒤 바위에 황학정 팔경을 노래한 시를 음각하였으며,
건물 오른쪽인 동북쪽으로는 사모지붕의 한옥 한천각(閒天閣)이 있고,
그 서쪽 뒤로는 철근 콘크리트로 지은 사우회관(射友會館)이 있다.
-서울문화재홈페이지-
▼ 추녀마루 끝으로 과녁이 보이네...
▼ 등과정터
▼ 인왕산이 보이고...
▼ 삼거리 - 이전에 인왕산을 오르내릴 때는 좌측길을 이용했었는데...
▼ 오늘은 우측 인왕스카이웨이(인왕산길)를 계속 따라가기로...
▼ 길 위에서의 만남 - 인왕산토박이 어르신 덕에 인왕산에 대해 좀 더 알게된다.
▼ 이 바위는 호랑이가 얼굴을 옆으로 돌려서 울부짖는 모습이라고...현재는 소나무들이 커서 윤곽이 뚜렷하지 못하나 예전에는 그렇게 보였다고...
▼ 좌측 전깃줄 위로 보이는 바위와 인왕산 정상, 그리고 서울성곽과 탕춘대성곽의 갈림길 위에 서있는 초소가 있는 봉우리가 봉황의 모습이라고...
▼ 봉황의 머리부분을 당겨보니 부리로 보이는 부분에 소나무가 자라고 있네...
▼ 봉황의 머리와 몸통, 그리고 꼬리에 대해 긴 설명을 들었고...치마바위에 대해서도...
▼ 인왕산 정상 아래의 병풍바위에는 글자들이 새겨졌었는데 뭉개버린 흔적처럼...
▼ 인왕스카이웨이에서 도심으로 전망이 터진 곳에서...
▼ 청와대와 경복궁, 남산이...
▼ 좌측 철망문이 열려진 곳이 인왕산의 서울성곽으로 가는 북쪽 진출입로...
▼ 오늘은 창의문(자하문) 방향으로...
▼ 청운공원과 북악산이 보이네...
▼ 청운공원 사각정
☞ 여기서 도보여행-'경희궁→홍난파 가옥→창의문→백사실→세검정→석파랑→탕춘대성→불광역으로 봄나들이 - 1부'를 마치고...
2009년 4월 01일(수)
도보여행-'경희궁→홍난파가옥→창의문→백사실→세검정→석파정→탕춘대성→불광역으로 봄나들이' 中
-▥☞ 1부[서울역사박물관→경교장→홍난파 가옥→단군성전→인왕스카이웨이→청운공원]를 보시려면 여기를 누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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