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스님의 입적으로'불교의 화장(火葬)' 다비(茶毘)에 대해 알아보니... 불교 상장례의 유래 불교의 대표적 상장례, 특히 장례방식은 화장(火葬)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는 우리나라에는 본디 없던 풍습으로서 불교의 유입과 더불어 시행되었다. 불교적 화장은 보통 다비(茶毘)라고 하는데, 이는 팔리어 jhāpeti의 음역이며, 다르게는 야순(耶旬), 차유(遮遺) 등으로도 번역되었다. 물론 이 말은 시신을 불태우는 것을 의미하므로, 분신(燒身), 분소(焚燒) 등으로 의역되었다. 이 다비 외에도 불교적 상례를 가리키는 말로 시다림(尸陀林), 서다림(逝陀林)이라는 용어가 있다. 이는 범어 śītavana의 음역인데, 의미는 한림(寒林)이라는 뜻이다. 이 시따바나는 인도 마갈다국 북쪽에 있는 숲의 이름이었는데, 본디는 시신을 내다버리는 묘지였고, 후에는 죄인들의 처소였다고 한다. 이 당시 숲에 시신을 버리는 것은 일종의 야장(野葬)이나 임장(林葬)으로 보이나 이후 인도 사회에서는 화장이나 갠지스강에 시신을 버리는 수장(水葬)이 보편화되었다. 한편 이 시따바나는 죽은 사람의 혼이 쉬는 곳이므로 마음의 안정을 얻을 수 있다고 하여 힌두행자들의 명상 및 수양의 장소로도 널리 활용되기도 했다. 시다림은 한국에서는 다비식을 가리키기도 하고, 재가신도가 죽었을 때 법주스님이 설법하고 염불해주는 것을 가리키기도 하는 등 그 뜻이 변했으며, 현재는 시다림이라고 하면 보통 재가신도의 장례를 법주스님이 집전하는 것으로 통용되고 있다. 이는 아마도 일반 민중의 장례 시 승려의 개입 근거를 이에 해당하는 인도의 야장(野葬)이나 임장(林葬) 풍습에서 찾았던 데서 기인한다고 본다. 불교의 발생지인 인도에서 화장법이 널리 행해졌던 것은 아열대지역이라는 환경적 여건이 크게 작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즉 사람이 죽고 나서 시신이 바로 부패할 수밖에 없는 기후환경적 요인으로 인하여 화장이 보편적 장법으로 발달했을 것이라는 견해이다. 이러한 기후환경적 여건에서 발달한 화장법은 불교적 생사관이나 심신관의 발달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 짐작되며, 불교의 경전 속에 죽음에 관한 문제나, 신의 처리에 관한 절차문제에 대한 자료를 몇 가지 언급하면 다음과 같다. 《입세아비담론(立世阿毘曇論)》에는 고대 인도 장법(葬法)에 소장(燒葬), 수장(水葬), 매장(埋葬), 기장(棄葬) 등의 장례법이 언급되어 있고, 《정반왕반열반경(淨飯王般涅槃經)》에는 붓다의 부친 정반왕을 화장하였다고 한다. 사분율을 기본으로 계율의 행사를 설명한 《사분율행사초(四分律行事鈔)》에는 장례법의 절차와 함께 붓다와 전륜성왕도 화장을 했음이 언급되어 있고, 7세기 후반 의정(義淨)의 《근본설일체유부비나야잡사(根本說一切有部毘奈耶雜事)》와 《남해기귀내법전(南海奇歸內法傳)》에는 당시 인도 불교계에 화장이 유행하였다는 사실과 함께 화장 때 무상경(無常經)을 독송하는 등 다비의식의 기원이 보인다. 또한 근본불교경전인 《長阿含經》에는 불멸(佛滅) 이후의 장법(葬法)을 설한 내용이 있으며 그 외 경전 여러 곳에서 찾을 수 있다. 장례 때 무상경을 독송해주던 단순한 인도불교의 화장법이 지금과 같은 다비의례로 발전하게 된 것은 다음의 두 가지로 나누어 유추해 볼 수 있다. 첫째 중국에 불교가 전래되면서 기존의 중국 장제의례(葬祭儀禮)와 유교의 영향을 받아 의례로 정착되었다는 것이다. 둘째 선종에서 망승(亡僧)의 장례 때 불법(佛法)의 진리를 체득케 하는 방편으로 수용ㆍ발전하게 되었으며 정토교, 밀교 등과 융합되면서 그 외형을 갖추어 다비의례가 완성되었다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스님들과 더불어, 특히 신라나 고려조에 걸쳐 수많은 왕들이 불교적 화장법으로 장례를 치룬 여러 기록으로 볼 때 한국에 불교가 유입되면서 화장법도 바로 수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화장법이 승려와 왕, 귀족 외에 일반 서민층까지 행해졌다는 기록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이것은 화장이 일반 서민이 행하기에는 많은 비용이 들고 절차가 번거롭기 때문이었을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일반 서민의 경우 쉽고 편리한 전통적인 매장으로 장례를 치렀던 것으로 보이며, 단지 불교적 신앙이 일반화되었기 때문에 장례 시에 스님의 설법이나 염불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전통적인 장례와 함께 설법이나 염불이 결합한 이러한 장례풍습은 신라 이래로 지속되면서 조선 시대에 이르기까지 서민 사이에 깊이 뿌리를 내린 것으로 보인다. 오늘날 불가(佛家)에서 전통 불교식 장례를 치르는 경우는 스님이 입적(入寂)했을 경우가 대부분이다. 일반 불자들의 경우 유교식 관례에 따라 수습·입관하고 매장하거나 화장하며, 연고가 있는 사찰 스님들을 통해 왕생극락을 빌며 염불독경을 하고, 원하는 경우 49재를 모시는 정도이다.
불교 상장례의 구조 인도에서 유행한 화장법은 불교에 수용된 葬法으로 불교의 東漸과 더불어 중국을 거쳐 유학과 정토교, 밀교 등과의 융합을 통해 현재 한국 불교의 다비의례로 자리 잡았다. 경전상의 붓다의 장례법과 《석문의범(釋門儀範)》의 다비작법을 염습(殮襲), 입감(入龕), 기감(起龕), 화장(火葬), 입탑(入塔) 등으로 나누어 비교하면 다음과 같다.
1) 팔리본 《대반열반경》 염습 : ①유해를 자른 천으로 감싼다. ②다시 자르지 않은 천으로 감싼다.(이를 5백번 반복) 입감 : ③철로 만든 관에 안치. ④철관으로 뚜껑을 씌움. 기감ㆍ화장 : ⑤온갖 종류의 향나무를 쌓아서 안치 후, 다비. 입탑 : ⑥탑 건립.
2) 《유행경》 염습 : ①향탕으로 몸을 씻음. ②새 겁패육천으로 몸을 두루 500겹을 감는다. 입감 : ③몸을 금관에 넣음. ④마유(참깨기름)를 넣는다. ⑤금관을 들어 두 번째 큰 철관에 넣음. 기감ㆍ화장 : ⑥전단 향나무 곽으로 외곽을 쌈. ⑦온갖 향을 쌓아 옷으로 그 위를 두텁게 덮고 다비. 입탑 : ⑧사리를 거두어 탑묘를 세움. ⑨비단번을 걸어 나라의 길가는 사람들이 다 법왕의 탑을 보고 바른 교화를 사모하게 많은 이익을 얻게 함.
3) 《불반니원경》 염습 : ①비단으로 몸을 쌈. ②겁파육으로 열 번 매어 그 위를 쌈. 입감 : ③임시로 관속에 넣되 윤택한 향의 기름으로 겁파육위에 뿌림. ④좋은 향을 모두 그 위에 놓음. 기감ㆍ화장 : ⑤판목재 땔감과 녹나무 땔감, 전단나무 땔감으로 관을 덮고 땔감을 위 아래로 넣은 뒤, 화장. 입탑 : ⑥사리 수습. ⑦사거리에 탑을 세우고 찰간을 세움. ⑧쟁반을 두고, ⑨비단번기를 건다. (10)악기와 꽃, 향과 등불로 공양.
4) 《반니원경》 염습 : ①새 겁파비단을 사용하여 몸을 쌈. ②모직천으로 오백번을 쌈. 입감 : ③몸을 금관에 넣고 마유를 붐. ④금관을 다시 큰 철관 속에 안치. 기감ㆍ화장 : ⑤ 향나무를 쌓아 놓고 다비. 입탑 : ⑥사리를 거두어 사거리에 탑을 세우고 사당을 지어 철간대로 표시하고 비단번을 달며 꽃과 향을 올리고 예배.
5) 《대반열반경》 염습 : ①새롭고 깨끗한 무명천과 가는 모직물을 사용, 몸을 천 번 싼다. 입감 : ②금관속에 넣음. ③은관을 만들어 금관을 담음. ④동관을 만들어 은관은 넣음. ⑤철관을 만들어 동관을 넣음. ⑥ 온갖 미묘한 향 기름을 붓고, 향과 꽃을 바르고 뿌리며 온갖 풍류를 지어서 노래하고 찬송. ⑦덮개를 덮고 큰 보배 수레를 만들어 장엄. 기감ㆍ화장 : ⑧화장 장소를 청소. ⑨좋은 전단향과 모든 유명한 향을 모아 땔감을 만듬. (10)비단과 모직을 깔고 큰 보배 휘장을 침. (11)향을 사르고 꽃을 흩뿌리고 춤과 음악으로 공양. (12) 향나무 땔감을 일곱 번 돔. (13)관을 향나무 땔감 위에 놓고 향유(향기름)를 뿌림. (14)불을 아래로부터 붙임. 입탑 : (15)사리를 거두어 금병에 안치. (16)탑을 세움 (17) 표찰로 장엄하고 비단과 번기와 일산을 달아, 사람들이 공양케 함.
6) 《설일체유부비나야잡사》 염습 : ①오백근의 모직과 솜으로 몸을 쌈. ② 오백의 妙衣로 장식. 입감 : ③철관 속에 향유를 채움. ④시신을 관안에 안치. 화장 : ⑤향나무로 관을 태움. ⑥향과 우유로 불을 끔. 입탑 : ⑦유골을 수습하여 금병에 안치. ⑧사거리에 큰 탑을 세움. ⑨당번 일산과 모든 향과 꽃으로 공경 ,공양하고 존중 찬탄. 7) 《석문의범(釋門儀範)》 염습 : ① 삭발(削髮) ② 목욕(沐浴) ③ 세수(洗手) ④ 세족(洗足) ⑤ 착군(着裙) ⑥ 착의(着衣) ⑦ 착관(着冠) ⑧ 정좌(正坐) ⑨시식(施食) 입감 : ⑩ 입감(入龕, 入棺) ⑪ 종사영반(宗師靈飯, 成服祭) 기감 : ⑫ 영결식(永訣式) ⑬ 기감 ⑭반혼착어(返魂着語) ⑮ 영가게(靈駕偈) 십이불(十二佛) 회향게(回向偈) 하직게(下直偈) 노제(路祭) 화장 : 거화(擧火) (21) 봉송의식(奉送儀式) (22) 창의(唱衣) 입탑 : (23) 기골(起骨) (24) 습골(拾骨) (25) 쇄골(碎骨) (26) 산골(散骨)
우선 차이가 있다면 붓다의 장례법이 고대 인도의 이상적 통치자 전륜성왕(Cakkavattin)의 장례법과 같은바 현재의 다비의식에 사용되는 장의용품과는 다르게 금, 은 등을 사용하는 등 소재의 격식부터가 다르다는 점이다. 또한 붓다는 이미 깨달았기 때문에 장례절차에 있어 《석문의범》의 것과 같이 깨달음을 촉구하는 절차는 보이지 않는다. 이것은 붓다의 장례법은 붓다의 장례를 치른 후 그 사리를 탑에 안치하여 공양하는 공덕과 종교적 의미로서 예경의 의미에 있는 반면, 《석문의범》의 것은 깨닫지 못한 중생의 다비의식 절차에 중점을 두고 서술된 것이라는 점에서 비롯된 것이다. 위의 분류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붓다 당시의 장례법이나 《석문의범》으로 대표되는 현재의 다비의식의 절차에 있어 염습, 입감, 발인, 화장, 입탑의 커다란 틀은 변함이 없으며, 오히려 시대와 문화를 거듭하면서 한층 세밀해졌음을 알 수 있다.
임종염불 임종은 죽음에 임박하였을 때부터 숨을 거둔 뒤, 운명한 것이 확인될 때까지를 말하며, 임종자는 임종을 맞는 당사자이며, 운명했더라도 소생의 여지가 있는 사람을 말한다. 임종행의(臨終行義)란, 죽음을 맞이할 때 임종자로 하여금 인생 최후의 때를 맞이하도록 하는 방법 및 병구완을 하는 사람의 이상적인 방법으로서의 일정한 마음의 준비 및 작법을 의미한다. 임종행의에 대한 기록은 《사분율행사초(四分律行事鈔)》에 따르면 “사원의 서북쪽 해가 지는 방향으로 무상당(無常堂)을 건립하여 환자를 모셔야 한다”고 한 것을 시작으로 “평소에 사용하던 물건들은 멀리하여 애착을 끊게 하여야 한다. 그 건물 안에는 개금을 한 불상을 서쪽으로 향하도록 안치하는데 오른손은 들고 왼손은 중간에 내려 있으면서 오색실로 된 번(幡)을 잡게 한다. 이 번은 땅에 끌리게 하고 환자는 불상 뒤에 눕게 한 후 왼손으로 이 번을 잡게 하여 극락세계에 태어나도록 발원하게 한다. 주위에는 향과 꽃으로 장식하고 항상 환자를 돌봐야 한다”고 하였다고 한 것이나, 《선원청규(禪苑淸規)》에서 총림에 연수당(延壽堂)을 건립하여 간병실을 마련하도록 한 기록을 통해 알 수 있으며, 그 외의 많은 것들은 ‘장식불교(葬式佛敎)’로 불려지는 일본불교의 자료에서 찾을 수 있다.
시다림 죽은 이를 위해 장례 전에 행하는 의식이다. 원래 인도의 시타림(śīta-vana, 寒林)에서 연유한 말로 추운 숲, 시체를 버리는 곳이란 뜻이다. 왕사성 옆에 있던 곳으로 죽은 시신을 이 숲에 버리면 독수리 떼들이 날아와 먹어치우는 조장(鳥葬)에서 유래한 말이다. 그후 뜻이 바뀌어 우리나라에서는 망자를 위하여 설법하는 것을 시다림이라고 하고 이를 시다림법문이라고 한다. 신라시대 이후로 관습화되어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성행하였고 오늘날에도 불자들의 가정에서 관습으로 행해지고 있다. 《석문의범》에 보면 사람이 죽으면 영단과 오방번을 설치한 뒤 오방례(五方禮)를 올린다. 그리고 무상게를 일러주고 입관하기 전에 삭발․목욕의식을 행해 준다. 경은 보통 《금강경》, 《반야심경》 등을 독경하고 아미타불이나 지장보살을 염송한다. 오방례란 동,서,남,북,중앙에 있는 화장세계 노사나불과 동방 만월세계 약사불과 서방 극락세계 아미타불과 남방 환희세계 보승불, 북방 무우세계 부동존불게 예배드리고 영가를 부탁하는 것이다. 불교는 다른 종교와 달리 극락세계가 일정한 장소 한 곳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시방세계 어느 곳이나 부처님 없는 곳이 없으나 특히 오방세계의 관념 속에 사는 사람들에게 오방 부처님을 안내해 주고 어느 곳으로 가든지 걱정하지 말고 그곳의 부처님께 귀의하도록 일러주는 것이다. 무상게는 무상의 원리를 깨닫도록 법문을 일러주는 것이다. 삭발․목욕편에 이어 세수,세족으로 유체를 청결히 하고 속옷과 겉옷을 입혀 주는 착군(着裙)과 착의, 복건을 쓰는 착관(着冠)을 행하고 정좌시식이 있다. 모든 의식을 집행할 때에는 거기에 알맞은 법문이 있게 되는데, 정좌편에서는 ‘영가시여! 신령스러운 빛이 홀로 드러나 근진(根塵)을 벗고 또렷하게 나타나 있으니 문자와 언어에 구애될 것이 없다. 참다운 성품은 물듦이 없이 본래부터 원만하니 단지 망념만을 여의면 곧 부처님의 경지이다.’라는 법문이 있고 안좌게를 한 후 입관하게 된다. 영결식을 한 뒤 화장장이나 매장장에 이르는 의식을 함으로써 시다림을 마친다.
영결식 죽은 사람을 전송하는 의식으로 발인식(發靷式)이라고도 한다. 임시로 단을 만들고 제물을 정돈한 뒤 영안실에 모셨던 영구를 모시고 나와 제단 앞에 모신다. 법주가 12불을 외우면서 극락세계 아미타불과 좌우보처 관음․세지 대성인로왕보살들께 예불하고 제문을 낭독한다. “유세차 모년 모월 모일 재자(齋者) 누구누구는 삼가 다과의 전을 올려 모당 대화상을 청하오니 이 자리에 내려오셔서 저희들의 정성을 받으소서. 몸은 부평초와 같아 소리를 질리도 들을 수 없게 되었으니 효도와 신찬(神贊)의 정성도 효험이 나타나지 않게 되었습니다.” 제주가 잔을 올리면 법주가 착어를 한 후 ‘보방광명향장엄 종종묘향집위장 보산시방제국토 공양일체대덕존 (普放光明香莊嚴 種種妙香集爲帳 普散十方諸國土 供養一切大德尊)’ 등을 하며 다장엄(茶莊嚴), 미장엄(米莊嚴)을 통하여 영가와 고혼들께 올리고 ‘법력난사의 대비무장애 입립변시방 보시주법계 금이소수복 보첨어귀취 식이면극고 사신생락처(法力難思議 大悲無障礙 粒粒遍十方 普施周法界 今以所修福 普沾於鬼趣 食已免極苦 捨身生樂處)’ 법문을 일러준다. 대중이 다같이 《반야심경》을 독송한 뒤 추도문을 낭독하고 동참자들이 순서대로 소향한다. 소향은 먼저 상제부터 하여 가까운 일가친척 친지 순으로 하고 꼭 올려야 할 분이 있으면 잔을 올리기도 한다. 그런데 요즘의 장례식은 개식, 삼귀의례, 약력 보고, 소향, 헌다, 독경, 추도의 노래, 발원문 낭독, 사홍서원의 순서로 하기도 한다. 발인재가 끝나면 인로왕번을 든 사람이 앞장서고 명정, 사진, 법주, 상제, 일가친척, 조문객의 순으로 따라간다.
다 비
1) 다비란 불교 장례의식 가운데 특히 화장(火葬)의식을 이르는 말이다. 범어 자파티(jhāpita)로서 사비, 사유, 사비다 등으로 음역하고 분소(焚燒), 연소(燃燒)로 번역하니 곧 시체를 화장하는 일이다. 이 의식은 죽음이 영원히 없어지고 마는 것이 아니라 살아서 지은 업력(業力)에 따라서 변화하는 것이라는 불교의 교설과, 선업(善業)을 닦아야 극락왕생할 수 있다는 불교의 생사관에 입각한 장례절차라는 데 큰 뜻이 있다. 불교에서 관신부정(觀身不淨)이라고 하여 우리가 가진 이 몸뚱이가 본래 깨끗하지 못한 것임을 관(觀)하는 수행법이 있다. 아무리 수려한 외모를 지녔더라도 이 몸은 피와 고름과 오물로 가득 차 있으며, 결국에는 썩고 말 부정한 것임을 생각하면서 마음을 닦는 수행법의 하나이다. 옛 스님들은 “이 몸은 돌아다니는 변소요, 구정물통이다”라고까지 하였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모든 번뇌와 어리석음은 나에 대한 애착으로 인해 생겨나는 것이므로 이 몸의 무상함을 일깨우기 위한 하나의 수행방편에 불과하다. 결국 몸뿐만 아니라 시시각각 변하여 실체가 없는 세상만물의 무상함에 대한 궁극적인 깨우침을 담고 있는 것이다. 불교에서 육신을 부정한 것으로 본다면 죽었기 때문이 아니라 살아있을 때도 부정한 것이 되어야 하는데, 오히려 불교에서는 “우리의 몸은 감로수를 담고 있는 감로병과 같다”고 하여 육체의 소중함을 강조하고 있으며, “허깨비같은 빈 몸이 곧 법신(幻化空身卽法身)”임을 일깨우고 있다. 화장을 하는 것 역시 이와 맥을 같이하는 것으로, 불교의 기본사상인 윤회설과 직접적으로 관련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불교에서는 깨달음을 통해 윤회를 벗어나지 않는 한 무수한 삶과 죽음으로 되풀이된다는 윤회설을 믿는다. 현실의 삶은 거대한 윤회 속의 한 시점으로서, 이 세상을 떠나는 것은 주인인 자신(영혼)이 ‘이승에서 입었던 헌옷(죽은 육체)을 벗고 새 옷으로 갈아입는 것과 같은 것’으로 본다. 새 옷을 입기 위해서는 헌옷을 벗어야 하듯이, 새로운 몸을 받아 내생의 삶을 충실하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전생의 몸을 버려야 한다. 이처럼 헌옷과 같은 육신을 불에 태움으로써 이승에 대한 애착과 미련을 끊고, 새 옷의 주인이 되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 화장의 의미이다. 화장은 몸을 불에 태워 뼈를 남기기 위한 것이 아니라 육신 자체를 불태우는 데 초점이 맞춰있다. 불교에서 부처님․고승의 사리를 중시하는 것과 뼈를 중시하는 일반적인 개념을 동일시하는 것은 곤란하다. 먼저 사리는 뼈가 아니라 “참된 수행의 결과로 생겨나는 구슬 모양의 유골”을 일컫는 것으로, 와는 분명히 다른 것이다. 그리고 부처님은 물론이거니와, 고승의 화장의식인 다비(茶毘)를 한 후에 반드시 사리가 아니더라도) 그 뼈를 부도 등에 봉안하는 것은 숭배할 존재가 남긴 가장 기본적인 유물이기 때문이다. 이는 부처님이 열반한 후에 정신적 유산인 불경(佛經)을 비롯하여 치(佛齒)손톱〔佛瓜〕머리카락〔佛髮〕옷,바루〔鉢〕지팡이 등을 법사리(法舍利)라 칭하면서 배대상으로 삼은 것에서도 잘 알 수 있다. 승려사회 역시 선사(先師)를 추앙하는 제자,문도(門徒)들이 스님의 유골을 후세에 길이 남기고자 정성을 쏟았던 것은 당연한 일이다. 시신을 불에 태운 뒤 뼈를 가루 내어 강과 산 등에 흩뿌리는 산골(散骨)은 화장의 원형적 모습으로서, 살과 뼈의 구분은 무의미한 것이었다. 역사적으로 승려는 물론 일반신도들 역시 화장을 한 뒤 뼈를 추려 다시 2차장으로서 매장하는 사례를 광범위하게 살펴볼 수 있는데, 이는 우리 고래의 사자의례 및 조상숭배와 융합된 것으로 보아야 한다. 결론적으로 불교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육신을 불에 태움으로써 이승에 대한 집착과 미련을 모두 끊고 새 몸으로 태어나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며, 그 이후의 매장,산골 등은 모두 그 나라의 문화에 적합하게 수용된 것일 뿐이다.
2) 다비의식의 절차 불교의 다비의식은 일반적으로 ① 수계발원(授戒發願) ② 염습(殮襲) ③ 성복(成服) ④) 영결(永訣) ⑤ 발인재(發靷齋) ⑥ 화장(火葬)의 순서로 이루어져 있다. 현재 상용되고 있는 의식집으로는 안진호 스님의 《석문의범》이 있으나 《석문의범》에는 실제 구체적으로 필요한 절차나 내용들이 다 기술되어 있지는 않고 다비식에 고유한 내용들만 담겨 있기 때문에 일반인들이 보아서는 실제의 다비식 절차를 쉽게 알 수가 없다. 이외에도 조선 시대에 꽤 많은 다비식이나 시다림법에 대한 의식집이 있으나, 여러 전통적인 의식집을 두루 참고하면서도 구체적인 절차를 상세히 적은 월운 스님의 《삼화행도집(三化行道集)》 등이 보다 활용하기에 좋아 보인다. 더구나 《삼화행도집》은 의식의 한글화, 현대화라는 월운 스님의 평소 주장대로 대부분 절차가 한글로 상세히 담겨 있어 현대의 스님이나 신도들이 참고하기에 적합하므로 《삼화행도집》과 《석문의범》 등을 참조하여 다비식의 절차를 살펴보았다. 다만 한 가지 주지할 것은 의식집들은 모두가 승속(僧俗)의 다비식을 구분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는 점이다. 스님이 입적하면 먼저 주지에게 알리고, 주지는 세 번 종을 쳐 대중에게 알린다. 누워서 입적했을 경우에는 오른쪽 옆구리를 땅에 붙여 모로 눕히고, 머리는 북쪽으로, 얼굴은 남쪽으로 향하게 한다. 앉아서 입적했을 때에는 얼굴을 남쪽으로 향하게 하여 안치한다. 이어 휘장을 설치하고 그 앞에 명정과 사진, 위패를 둔다. 재래식으로는 각각 중앙과 동남서북에 계시는 비로자나불, 약사유리광여래, 아미타불, 보승여래, 부동존여래께 망인의 인도를 청하는 오방번(五方幡)과 無常戒를 일러준다.
① 신원적(新圓寂) 내빈 차례로 헌향배례하고 문상한다 → 송주(誦呪), 거불(擧佛) 후에 청혼(請魂) → 재가자의 경우 삼귀계(三歸戒)와 오계(五戒)를 줌 → 독경, 정근, 발원 후 회향 임종자에 삼귀의계와 재가오계를 설함으로써 지난날의 업장을 참회하고 왕생극락을 위하여 발원하게 하는 의식이다. ② 염습(殮襲) 삭발(削髮) → 목욕(법주가 병풍 앞에서 법요를 진행하고 바라지는 병풍 안에서 시신을 향탕수로 닦음, 이후 같음) → 세수(洗手) → 세족(洗足) → 착군(着裙, 속옷을 입힘) → 착의(着衣, 겉옷을 입힘) → 착관(着冠, 관을 씌움) → 정좌(正坐, 재가자는 正臥라 함) → 시식진반(施食進飯) → 입감(入龕, 재가자는 入棺이라 함) → 제사 이 절차는 온갖 세속의 번뇌를 닦아내어 영가가 혼탁한 마음을 맑게 하고 미혹함으로부터 벗어나도록 한다는 의미가 담겨있다.
③ 성복(成服) 재가자들의 경우 반혼(返魂) → 청혼(請魂) → 진반(進飯, 진지를 드림) → 송경(誦經) 입관 후 상복을 준비하여 입고 영전에 제상을 마련하여 상주들에게 분향, 헌작케 한 다음 거행하는 의식으로 보통 성복 이전의 상주는 누구에게 절하거나 조객에게 음식을 권하지 않는 것이 예의이다. ④ 영결 반혼착어(返魂着語) → (입패와 교의를 들어 법주의 오른편에, 명정은 법주의 왼편에 서게 한 후) → 기감(起龕, 운구를 고함) → 오방배례(五方拜禮, 오방의 부처님께 인사드림) → 산화락(山花落) → 영결식 → 독경 → 발인(發靷) → 노제(路祭) 영가가 거주하던 집을 떠나 유택으로 가는 발인의식을 말한다. ⑤ 화장 다비장에 도착할 때까지 법주가 독경하며 왕생 축원 → 다비장에서 100보 거리에서 미타단(彌陀壇)과 산신단(山神壇)을 만들고 미타불공과 산신제(미타불공할 동안 화장 준비함) → 거화(擧火) → 방화(下火, 1,5,9월엔 서쪽, 2,6,10월엔 북쪽, 3,7,11월엔 동쪽, 4,8,12월엔 남쪽에서 불을 지른다. → 창의(唱衣, 입적자가 쓰던 물건을 대중에게 나누어줌) → 봉송(奉送) → 다 탈 때까지 대승경전 독송 → 뼈를 일으켜 수습한 다음 부순다(起骨, 拾骨, 碎骨) → 산골(散骨, 동남서북과 중앙의 순서로 골호에 담긴 뼈를 흩으며 본디 땅으로 되돌아가라는 還歸本土眞言을 한다)
선종의 장례 인도에서의 불교장법은 7세기 화장장에서 무상경(無常經)을 읽어주는 단순한 절차에 지나지 않았으며 그것을 수용한 중국불교의 장법 역시 초기에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것이 점차 장제의례(葬祭儀禮)를 중시하는 중국 사회 그리고 그 종교적 표현으로서 유교의 영향을 받아 의례의 모양을 갖추어 갔다고 보는 견해가 일반적이다. 그러나 불교에서 유교의 장제의 영향을 가장 크게 받은 것은 선종(禪宗)이다. 현재까지 알려진 선종 장법(葬法) 중 가장 오래된 형태는 1103년에 결집된 《선원청규》에 보이고 있는데 존숙(尊宿, 학덕을 겸비한 선사나 고승)의 장법과 망승(亡僧, 깨달음을 얻지 못하고 수행 도중에 열반한 승려)의 장법 둘로 나뉘어 있으며, 재가자를 위한 장법은 기록되어 있지 않다. 따라서 재가의 장법은 초기에는 망승의 장법을 따랐을 것이라 유추할 수 있다. 《선원청규》의 내용으로 미루어 볼 때 12세기 초 선종의 장법에는 유교의례와 정토교와 밀교의 영향이 접목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존숙장법의 초기 형태는 존숙과 그 제자들을 조문하는 것에 중점을 둔 것으로 보이고, 또한 망승의 장법은 수행을 마치지 못하고 운명한 것으로 볼 때 불법의 진리를 체득하는 것에 중점을 둔 것으로 보인다. 수도 중심의 선종 장법에 있어 선승 자체가 만족하지 않고 정토적인 것 또는 밀교적인 것을 취해서 《선원청규》의 장법이 만들어졌다. 따라서 존숙장법에 있어서는 아미타불을 십념하고 또 염불전(念佛錢)을 뿌려두고 망승의 장법에 있어서는 염불 행사가 많아져 염송 회향에 있어서도 정토왕생이라고 하는 문구가 빈번하게 반복되는 것으로 보인다. 선종의 장법은 12세기에 대부분 완성되어 현재까지 그 형식을 답습하고 있다. 선종의 장법이 완성된 12세기는 중국의 장법의 역사에도 그 전성기였다.
여러나라의 불교식 상장례 1) 싱가포르 ‘종이집 천도’ 싱가포르의 장례의식 가운데 특이한 것은 화려한 종이집으로 영혼을 천도하는 것이다. 장례의식은 모두 사찰에서 행해진다. 사람이 죽으면 먼저 화장하여 뼈는 가루로 만들어 납골당에 안치한다. 싱가포르인들은 법당 한 쪽에 무척 아름답고 화려하고 큰 종이집을 만들어 놓는다. 그들은 죽은 이가 그 화려한 집에서 영원히 살기를 기원하는 영혼천도 의례를 거행한다. 종이집의 규모는 들이는 비용에 따라서 다르다. 화려한 경우는 네온사인도 장식한다. 심지어는 진짜 시계까지 꼭대기에 장식하기도 한다. 절에서 49재를 올릴 때면 대웅보전의 왼쪽 옆에는 엄청나게 화려한 종이집이 벽면을 향해 놓인다. 종이집 앞에는 ‘이 옷 상자를 건네 받은 망자시여! 한 신위라도 가시는 길에 거둬 쓰시도록 삼가올립니다(此衣箱交付亡者 一位正魂冥途收用謹封).’라는 글귀를 써 놓는다. 그리고 망자의 이름과 돌아간 날짜가 함께 쓰여진 옷상자가 몇 십 개 놓인다. 그 속에는 종이로 만든 정교한 옷들이 가득 담겨 있다. 또 한쪽에는 검은 비닐주머니가 쓰레기 더미처럼 커다란 덩이로 몇십개 놓인다. 거기에는 모두 종이돈이 들어 있는데 그것은 직접 액수를 지불하고 사는 것이다. 이 돈은 귀신들이 가면서 쓸 노자이다. 종이돈은 귀신들과의 교류를 상징한다. 노자가 없으면 귀신은 떠나지 않는다. 가족들은 승려들의 독경에 따라 죽은 이 앞에서 절하거나 읍(揖)을 한다. 또는 독경을 경청하기도 한다. 49재 마지막 날에는 그 집과 옷상자와 돈 보따리를 한꺼번에 불태운다. 이러한 풍습은 여러 나라에 있다. 우리나라만 해도 사람이 죽으면 그 사람이 살아생전에 입던 옷을 모두 불태운다. 그래야만 죽은 자와 산 자가 정화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 불은 바로 죽은 자와 산 자의 만남을 끊는 경계선이다. 싱가포르인들은 이 불꽃이 크면 클수록 영혼은 화려한 신선세계에 머무르게 된다고 믿는다. 하여 죽은 자도 산 자도 모두 행복한 삶을 이어갈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2) 티베트 ‘천장(天葬)’ 천장은 조장(鳥葬)이나 견장(犬葬), 그리고 풍장(風葬)을 포괄해서 말한다. 조장은 보통 독수리나 까마귀 등 천조(天鳥)에게 시신을 넘겨주는 것이다. 그러나 조장다운 조장은 비용이 많이 들어 극소수 부자들만 하고 있을 뿐이다. 절대 다수인 서민들의 장례는 보통 시신을 새에게 적당히 나눠준다. 새는 눈동자나 살점을 주로 파먹는다. 새가 먹고 남은 뼈에 붙은 살점이나 굳은 살점들은 모두 개의 차지이다. 이것이 바로 견장이다. 시신의 부드러운 부분이 새의 몫이라면 그 나머지 뼈 등은 개의 몫이다. 티베트인들은 자신의 살과 뼈를 먹은 개가 죽으면 사람으로 환생한다고 굳게 믿고 있다. 이 때문에 티베트인들은 개에게도 인격을 부여할 정도로 극진한 대접을 하고 있다. 장례는 그밖에도 토장(土葬, 매장), 화장, 수장(水葬), 영장(靈葬, 塔葬) 등의 장례법도 같이 실시되고 있다. 영장은 국왕인 달라이 라마나 왕승인 림포체의 시신을 미이라로 만들어 탑에 모시는 왕의 장례법이다. 화장은 일반인들은 엄두를 못 낸다. 큰 부자나 고승들의 전유물일 뿐이다. 옛날 숲이 울창했던 시절엔 티베트인 모두가 화장을 했다. 그러나 지금은 흙탑을 쌓아 전신주를 만들 만큼 나무가 귀하다. 수장은 어린아이나 거지가 죽으면 물고기 밥이 되게 한다. 물에 잠긴 시체는 부패하여 이내 물고기들의 뱃속으로 들어간다. 토장은 30cm만 파도 바위층이 드러나 곤란하다. 암벽지대인 티베트에서 매장은 거의 불가능하다. 따라서 이 토장법은 전염병 환자나 범죄자의 전용 장례법으로나 사용할 뿐 일반인들은 누구나 기피한다. 뿐만 아니라 이 장례법은 땅을 오염시키고 온갖 벌레의 온상이 되기 때문에 기피되고 있다. 티베트인들은 기왕 먹이가 될 바엔 베푸는 마음으로 새나 동물의 먹이가 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조장이나 견장이라는 독특한 장례법이 생겨났다. 시신을 독수리나 개의 먹이가 되게 한다는 것을 사체에 대한 불경으로 보는 나라에서는 끔찍한 일이다. 그러나 티베트인들은 주검에 별로 집착하지 않는다. 주검이란 혼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단순한 물체이며 부패해 가는 부정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같은 세계관은 불교의 윤회설과 접목되어 불교의식의 하나로 자리잡아 지금에 이르고 있다.
3) 몽골 ‘토장’ 재래식 몽골 토장은 개방식과 폐쇄식의 두 가지가 있었다. 개방식이란 죽은 이를 땅 위에 그대로 놓은 채 머리 위에 장대를 세워두는 것이다. 장대 끝에는 불꽃과 함께 해와 달을 상징하는 토템(Totem)을 장식한다. 이 때 장대 끝의 불꽃은 죽은 이의 자손이 끊이지 않고 번성하기를 기원하는 것이다. 샤먼(Shaman)의 죽음일 경우에는 시체를 화장한 뒤에 그 재를 나무에 박아 넣기도 했다. 폐쇄식이란 토장을 말한다. 지금은 문화와 인지의 발달로 토장만이 행해진다. 절차는 다음과 같다. 몽골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일정 기간 아무도 시체에 손을 댈 수가 없다. 죽은 이를 그대로 둔 채 겔(Ger : 몽골식 천막집) 안의 모든 물건을 밖으로 꺼낸다. 시체는 특별한 주단을 깔고 그 위에 사자 형상으로 눕혀 놓는다. 오른쪽 엄지손가락으로 코를 막고, 그 손 위에 머리를 놓는다. 왼손은 몸에 평행하게 뻗게 한다. 죽은 이가 여자면 겔의 동쪽에 모시고 죽은 이가 남자면 겔의 서쪽에 모신다. 그리고 꼬박 이틀 동안을 겔 청장문을 닫고 기도한다. 이틀 뒤에는 죽은 이의 영혼이 하늘나라에 갈 수 있도록 겔 천장문을 활짝 열어 놓는다. 이 수일간 겔 안에는 촛불이 켜져 있으며, 시체는 ‘하닥’으로 얼굴만 가려 놓는다. 장례일은 물론 시체에 먼저 손을 댈 수 있는 사람의 자격까지도 상세히 적은 책자가 따로 있다. 모두 이 책에 근거해서 장례식을 치른다. 장례날은 죽은 해와 날짜와 시간 등을 고려하여 택한다. 장례식 하루 전에 시체를 흰 천으로 싼 다음 향과 함께 흰 주머니에 넣는다. 시체는 달구지나 낙타에 실려 백마를 탄 사람의 안내로 매장지까지 간다. 이때 몇몇 사람들이 시체와 함께 매장할 물건과 음식을 담은 쟁반, 차 등을 가지고 시체의 뒤를 따른다. 매장지에서는 땅에 차와 하닥, 돈 등을 놓고 사슴뿔로 선을 그은 다음 그 안에 시체를 묻는다. 이때 죽은 이가 대지(大地)를 존경했다는 뜻으로 머리 밑에 흰 돌과 값진 물건을 함께 묻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몽골의 특색인 독특한 독경을 하면서 곡식의 이삭을 뿌린다. 이 의식은 죽은 이의 자손이 곡식의 이삭처럼 번성하기를 기원하는 뜻이 담겨 있다. 장례를 마친 후에는 돌아오는 도중에 절대로 뒤를 돌아보지 않는다. 매장지에 갈 때와는 다른 길로 되돌아온다. 집에 도착해서는 두 곳에 모닥불을 피운다. 모닥불 사이를 지나가면서 부정한 몸을 깨끗이 해달라고 기원한다. 장례 후에는 죽은 이를 추모하는 검소한 기도회가 열린다. 장례 후 21일째 되는 날에는 죽은 이가 숭배하던 신(神)의 상을 그리고 불교식 49재를 지낸다. 요즘에는 장례 후 불로 정화하던 것을 손 씻는 것으로 대신한다. 49재 때에는 무덤 앞에 쌀을 담은 접시를 놓고 술을 무덤가에 뿌리는 것으로 그 격식을 대신하기도 한다.
4) 중국,대만 ‘화장’ 중국에서 화장은 불교와 더불어 전래되어 후한 이후 일반화 되었다. 중국에서는 화장을 화화(火化)라고 불렀다. 후한 명제 때에 중국에 불교가 공식 전달된 이래 불교의 화장법은 중국 전래의 노장이나 유교의 장례법과 충돌을 일으켰다. 본래 중국에서는 부모가 낳아준 육신을 태울 수 없었다. 육신은 모두 부모로부터 받은 것이므로 훼상하지 않는 것이 효도의 제일로 여겨졌다. 죽은 조상의 시체는 매장을 통해서 땅속에 묻어야만 그 후손이 음덕을 입는다고 여겼다. 특히 중원지구에 살았던 한대(漢代) 이전의 한민족에게 이 화장은 가장 치욕스런 것이었으며 가장 극심한 형벌의 하나였다. 전국시대에 연나라가 제나라를 공격할 때 제나라 사람들의 무덤을 파서 시체를 불태웠다. 이에 제나라 사람들은 그것을 보고 모두 슬피 울며 전쟁에 나가 싸웠는데 노하기가 백열 배나 되었다고 《사기》 <전단열전>은 전한다. 그만큼 한대 이전에 있어 화장은 가장 치욕스런 형벌이었다. 그러나 한대 이후 위진남북조와 수당대에 불교문화가 중국문명의 심장부로 들어가서 문명의 기선을 잡자 당대 불교인들에게 있어 화장은 보편적인 장례법이 되었다. 불교 승려들은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죽은 뒤에는 반드시 화장(다비)하였다. 그 이후 화장법은 민간에도 널리 보급되기에 이르렀으며 심지어는 왕실에서도 이 장례법이 실행되었다. 송대 이후에는 화장법이 하나의 풍속으로 정착했다. 앞 시대에 상대적으로 우세했던 불교가 송대를 거치면서 신유학인 성리학에 밀리게 된다. 중앙에서 영향력을 잃어가던 불교가 점점 민간신앙과 습합되면서 새로운 형태의 불교 모습을 띠고 전개된다. 이때에 화장법은 서민들에게까지 일반화됐다. 그러나 명․청대에는 조정에서 이 화장법을 금지하였다. 국가에서 공식적으로 화장을 금지하게 되자 이 장례법은 점차 쇠락해 갔다. 다만 고대소설의 소도구로나 동원될 뿐 화장은 점점 민간에서도 거부되는 의례가 되었다. 자연히 매장의 풍속이 우세하게 되었다. 민국기에 들어와서 불교신자가 늘어나자 화장법은 다시 활기를 띠고 새로 거행되고 있다.
5) 일본 ‘장식불교’ 일본의 경우 죽으면 대부분 사찰에 가서 장례를 치르는 것이 일반화 됐다. 사람이 태어나면 신사에 가서 참배하고, 결혼은 교회나 호텔에서 하고, 죽으면 반드시 절에 가서 장례를 치르고 시신을 절로 모시고 가서 장례 절차를 밟는다. 사찰이 죽은 자가 영원히 안주할 수 있는 처소로 제공될 수 있다는 사실은 일본 불교가 사회적으로 성공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원동력이었다. 예전 일본의 경우 장례와 분묘는 상층부 사람들에 국한된 것이었으며, 서민층은 죽은 뒤 산 등에서 풍장(風葬)하였다고 한다. 현재 일본 각지에서 보이는 석탑묘(石塔墓)가 일반에게 보급된 것은 에도시대(江戶時代 : 1603~1867) 중기에 확립된 ‘사청제도(寺請制度)’에 의한 것으로, 이 제도는 일반서민들이 사원에 단가(檀家), 즉 신도로 등록하도록 의무화해 사적(寺籍)이 곧 호적(戶籍)과 같은 효력을 갖도록 한 것이다. 이 때문에 일본의 모든 민중은 불교로 귀의하게 됐다. 이때부터 일본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사원에서 장례를 하고 묘를 설치하게 되었다. 일본 불교를 ‘장식불교(葬式佛敎)’라고 이름한 것이나, 절을 하까[墓 : はか]라고 부르는 것은 민중이 사원을 평생 지친 몸을 최후에 기탁하는 처소로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장식불사(葬式佛事)’를 거부하면 일본불교가 존재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승려와 사원이 쓸모없는 시대의 유물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있을 정도로 ‘사청제도’는 온 국민의 머리에 각인되어 있다. 장례절차는 임종(臨終) → 유족과의 협의 → 유체 안치(遺體 安置)→ 장의업자와 협의 → 납관(納棺)→ 사망 통지(死亡 通知) → 신식(神式)이나 불교식(佛敎式), 무종교식(無宗敎式) 등으로 장의ㆍ고별식 이후 화장(火葬)․환골(還骨)하게 된다. 일본의 장의식(葬儀式)과 고별식(告別式)은 본래 각각의 의식이었으나 현재는 함께 행하며, 장의식은 사자(死者)를 이승에서 저승에서 보내는 의식, 고별식은 생자(生者)가 사자(死者)에게 이별을 고하는 의식을 말한다. 일반적인 불교식의 식순은 다음과 같다. ① 일동 착석(一同 着席) ② 승려 입장(僧侶 入場) ③ 개식사(開式辭) ④ 독경(讀經) ⑤ 식문(式文) ⑥ 조사(弔辭, 弔電) ⑦ 소향(燒香) ⑨ 승려 퇴장(僧侶 退場) ⑩ 폐식 선언(閉式 宣言) 등이다. 불교 상장례의 의미 불교상장례가 갖는 의의는 임종자(臨終者)에게 비하라(Vihara) 활동의 마지막을 임종염불로 장엄하고 이어 불교식 상장의례 모두를 거쳐 극락왕생 내지 열반하도록 하며 유가족을 비롯 조문객 등 생자(生者)에게 종교의례를 행함에 따른 위로와 더불어 불자로의 신심과 자긍심을 고취하며, 이교도일 경우 불교식 상장의례를 접한 사람 모두를 포교할 수 있는 계기를 갖는다는데 있다.
1) 임종자 죽음을 통해 일반적 현실과 순간적으로 단절된 임종자 또는 사자(死者)는 죽음을 전후한 시기에 상장례를 거침으로서 인간적 존엄성을 유지하게 된다. 이것은 유교에서는 상장례를 통해 생시의 효(孝)를 잇는 절차로서의 의의를 갖는다.
어느 종교의 어떠한 상장례 절차라도 사자의 안락(安樂)을 기원하지만, 죽음이 사자를 생자와 영속적으로 단절시키지는 못한다. 죽음으로 그 관계가 단절된다기보다는 변형되는 것으로 볼 수 있는데, 상장례부터 제례에 이르기까지를 고찰해보면 사자는 생자에게 장례나 제례 등을 통해 의존성을 유지하고, 생자는 사자에게 그것들을 통해 그 의무를 다하는 관계를 지속하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상장례를 통해 임종자는 죽음의 질을 높이는 계기를 얻게 된다고 할 수 있는데 임종자는 죽음을 전후한 시기에 상장례를 거침으로서 인간적 존엄성을 유지하게 되는 것이다. 불교에서의 상장의례는 임종자로 하여금 끊임없이 정진하여 번뇌를 끊고 깨달음을 촉구하는 수행과 법문의 연속인 의미를 지닌다. 죽음은 현재 살고 있는 세상에서 인연이 다 되면 몸을 떠나 중유(中有)의 세계로 이전하게 되는데, 이때 죽은 이의 업에 따라 식(識)의 모습이 다르다. 임종하게 되면 살아온 날들이 낱낱이 그림자처럼 나타나고 이것이 본성을 더욱 미혹시키게 된다고 한다. 이때 업의 힘이 내생(來生)을 결정하게 되는데 힘이 큰 업일수록 바로 드러나게 되고, 악업을 많이 지은 이의 경우에는 악종자(惡種子)의 힘이 커서 이 종자의 기운이 드러나면 삼악도에 떨어지게 된다. 또한 선업을 많이 지은 이는 선종자(善種子)가 천상이나 인간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도록 도와주게 된다고 한다. 깨달음을 얻지 못한 대부분의 경우 죽음에 돌입하기 직전에 정신이 혼돈되고 어두운 생각과 오랫동안 지은 업력으로 인해 자신과 지인에 대한 애착심을 야기하게 되지만, 그와 동시에 육체를 벗어난 식(識)은 이해력이 뛰어나다. 무명의 업이 발동하면 원하던 극락이나 천상세계에 가지 못하고 삼악도에 떨어지게 되는데, 이때는 어느 때보다도 염불을 하고 경을 읽어주는 등 일체가 무상한 법문을 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임종을 맞은 이에게 염불과 독경은 현세에 있는 사람들이 영혼에게 선업을 간접적으로 계발해 주는 것이다. 불교의 상장례는 임종자에 있어 증상연(增上緣)으로의 커다란 의의를 갖게 되어, 불교식 상장의례 모두를 거치게 된 임종자를 극락 왕생 내지 열반하게 한다.
2) 유가족 상장례가 임종자에게는 ‘죽음의 질’을 향상시켜주는 반면에 생자에게는 죽음을 맞이하는 의례를 통해 현세에서 일어나는 일들 모두가 부질없는 것이라는 것을 자각시키며, 또 이를 통해 망자를 떠나보내는 슬픔을 경감시키는 효과를 가져다준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상장례를 치루는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상장례의 사회적 기능에서 비롯된다. 뒤르껭(E. Durkheim, 1961)에 의하면 종교적 의례란 각 사회에서 그 구성원을 사회에 결속시킴으로서 질서와 체계를 기능적으로 유지해 나가는 데 필요한 행위규범을 표현하는 도덕적 집합표상으로 본다. 또 스미스(R. Smith, 1889)는 의례를 행함으로서 집단의식을 표현하고 강화한다고 하는데 이것은 의례에 참가하는 구성원들 사이에서 동질감을 형성하고 공동의 가치관과 윤리관을 확인함과 동시에 외부에 대하여 자기집단의 정체성을 밝히는 기능을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죽음의 의례는 단순히 망자의 명복을 빌거나 또 그런 일련의 형식을 통해 기복을 바라는 행위에 그치지 않는다. 의례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도덕적 감수성을 건드림으로서 공동체내에서 ‘올바른 행위’는 무엇이며 반사회적 행위는 무엇인가에 대한 규범을 재확인하게 되고 사회를 도덕적으로 통합하는 문화적 집합체의 역할을 한다. 불교에서는 임종자가 중유(中有)에 머무르는 동안 그 영혼을 더 좋은 곳, 또는 극락으로 보내기 위해 생자(生者)가 의례를 행한다. 이는 단순히 임종자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의례를 통해 선근공덕(善根功德)을 쌓고, 그 공덕으로 생자, 자신들도 사후에 좋은 곳으로 가기를 기원하는 종교적 수련과 수행의 한 방편이라는 의의를 갖는다. 아울러 생자(生者)에게는 종교의례를 행함에 따른 위로와 더불어 불자(佛者)로서의 신심과 자긍심을 고취하게 되며, 이교도(異敎徒)일 경우 불교식 상장의례를 접한 사람 모두를 포교할 수 있는 계기를 가질 수 있다.
내세관에 대한 불교의 인식 불교에서 내세에 대한 관념을 보이는 중요한 개념은 부처님이 언급한 '십사무기(十四無記)'라 할 수 있다. 즉 "세계가 영원한가, 무상한가, 영원하며 무사한가, 영원하지도 무상하지도 않은가, 끝이 있는가, 끝이 없는가, 끝이 있는 것도 없는 것도 아닌가,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는가, 존재하지 않는가,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도 않는가, 존재하는 것도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닌가, 개아(jiva)와 신체는 동일한가, 다른 것인가"라고 하는 문제에 대해 부처님은 어떠한 대답도 하지 않았다고 하는 것이 ‘십사무기’다. 이 ‘십사무기’ 속에는 사후(死後)에 여래, 즉 ‘사후에 부처님은 존재하는가’ 라고 하는 물음이 나타나고 있다. 이 ‘십사무기’에 거론된 문제는 수행하는 데 있어 도움이 되지 않는 까닭에 구태여 대답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지만, 부처님은 사후의 문제 등을 논의하는 것에 신중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윤회설을 인정하는 불교에서는 부처님과 같이 해탈을 획득하지 않는 이상 존재하는 것들은 지옥, 아귀, 축생, 수라, 인간, 천인 (地獄, 餓鬼, 畜生, 阿修羅, 人間, 天人)의 육도(六道)를 윤회한다고 하고 있다. 유정(有情)은 이 육도 중의 어느 곳에 태어나고, 또 죽는 것을 반복하고 있다. 이 육도 중의 어느 곳에 태어나는가는 자신이 행한 업에 의해 결정되고, 또 유정은 선업락과(善業樂果), 악업고과(惡業苦果)의 인과법칙에 따라 업에 의한 윤회를 계속하는 것이다. 이 업은 번뇌에 의해 생기고, 번뇌는 무명에 근거한다. 따라서 번뇌는 우리의 업을 구성해 사후의 세계를 결정짓는 근본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각자의 업에 따라 전생에서 후생(後生)으로 이르는 과정은 생유, 본유, 사유, 중유 (生有, 本有, 死有, 中有), 즉 네 종류의 존재 형태가 반복되어 일어나는 것이라고 하고 있다. 즉 생유(生有)는 모체에서 생을 얻는 순간이고, 본유(本有)는 그 이후 사유(死有)까지의 일생, 사유(死有)는 임종의 순간, 중유(中有)는 사유(死有)로부터 다음의 생유(生有)까지의 상태를 말한다. 따라서 불교의 내세관은 이 중유에 의해 설명되어진다고 할 수 있다. 이 중유(中有)의 기간에 대해서는 각기 이론이 있지만, 다음과 같이 설명되어지기도 한다. "이 중유(中有)에 있어 만약 생유(生有)을 얻지 못하면 짧게는 7일간 머물게 된다. 생유(生有)을 얻는 것이 결정되지 않고 혹시 7일로서 아직 생유(生有)을 얻지 못하면, 죽어 다시 태어나 짧게 7일간 머문다. 이와 같이 전전하여 아직 생연(生緣)을 얻지 못하고 내지 칠칠일 머물게 된다. 이로부터 이후는 반드시 생연을 얻는다." 이러한 중유의 칠칠일, 즉 49일은 불교에서 거행하는 49재의 유래가 된 것으로 이 기간 중 사자의 영혼은 새로운 生의 연(緣)을 만난다고 한다. 즉 인간의 몸은 죽음의 순간 이미 새로운 생을 준비하는 것이다. 이렇게 새로운 생을 받는 것도 우리가 행한 업의 과보에 의한 것이므로 생존해 있는 동안 더 이상 윤회의 세계에 들지 않도록 번뇌를 끊는 것이 급선무인 것이다. 이와 같이 중유에서 새로운 생을 받는다고 하는 설은 정토교의 가르침처럼 아미타 부처를 염하는 사람은 누구나 사후 극락에 왕생한다는 설로 변모한다. 즉 극락에 왕생하여 더 이상 윤회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불교의 내세관은 윤회설과 밀접한 관련이 있으며 이 윤회로부터의 해탈이 궁극의 지향점이 되고 있음은 두말할 나위 없다.
영혼에 대한 인식 불교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영혼은 내세로 가는 주체가 된다고 한다. 이때의 영혼은 학파마다 다르긴 하지만 보통 중유(中有), 아뢰야식이라 부른다. 중유는 《대비바사론(大毘婆沙論)》에 나타나는 네 가지의 과정, 즉 생유(生有), 본유(本有), 사유(死有), 중유(中有)라고 하는 사유(四有) 중 하나이다. 생유는 인간이 모태에서 태어나는 찰나, 본유는 태어나서 지상에 나와 사망하기 직전까지의 일생, 사유는 죽는 순간, 중유는 죽은 후부터 내생의 몸을 다시 받을 때까지 이승과 저승의 중간에 있는 기간을 말한다. 그러므로 중유란 우리가 직접 볼 수도 경험할 수도 없는 중간생명의 기간, 즉 영혼에 해당한다. 이와 같이 인간은 사후 얼마의 중유 기간을 거치면 내생에 태어나게 되는데 이때 영혼에는 전생에 지은 모든 업력(業力)의 종자(種子)가 들어 있어서 그 업의 힘〔業力〕에 의해서 내생으로 옮겨 간다. 그 후 이런 학설보다 더 적극적이고 구체적인 인과사상이 나타났는데, 이는 대승 논전에서 비롯되는 아뢰야식을 중심으로 한 윤회와 인과설이다. 아뢰야식이 성립되기 전까지는 많은 과도기적 이론들이 있었고 중유설도 그 연원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다. 대승불교에서 말하는 아뢰야식에 대해 보면, 유식학에서는 우리의 심식(心識)을 안(眼), 이(耳), 비(鼻), 설(舌), 신(身), 의(意), 말나(末那), 아뢰야(阿賴倻, 아뢰야) 등의 팔식(八識)으로 정하여 인간이 행하는 모든 것, 즉 보고(眼), 듣고(耳), 냄새 맡고(鼻), 맛을 보며(舌), 촉감을 느끼고(身), 내적으로 사유하고 결의하며(意), 사리 판단하는(末那) 마음의 내용을 자세히 설명하였다. 이중 앞 여섯 계층의 의식은 표층의식이고, 뒤의 두 계층은 심층의식에 해당되는데, 아뢰야식은 가장 심층부에 있는 의식으로 제 8식 또는 장식(藏識, 저장한다는 의미)이라 불린다. 동시에 이들 여덟 가지 식을 통하여 알게 모르게 하게 되는 모든 마음의 행위와 육체적인 행동은 인(因) 또는 종자(種子)로서, 업력이 그중 가장 근본이 되는 제 팔식인 아뢰야식에 보존되었다가 죽어서 내세의 몸을 받을 때 다시 결과로 나타난다. 이러한 영혼은 죽음과 깊은 관계가 있다. 왜냐하면 불교에서 말하는 죽음은 과거의 업력이 종식되어 아뢰야식이 육신을 떠나게 되는 때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졸도하였거나 사고로 의식불명이 되었을 때, 그리고 이미 제6 의식의 작용은 완전히 단절되어 사람을 몰라보는 데도 아직 생명이 유지되는 것은 제8 아뢰야식이 최후까지 남아있다는 증거이다. 육체가 점차 굳어지고 차가와져 모든 기능이 마비되었다고 죽은 것은 아니다. 마지막으로 그 차가와지는 냉촉의 기운이 마음에 이르렀을 때 영혼인 아뢰야식이 육체로부터 떠나게 된다고 한다.
죽음에 대한 인식 인간의 피할 수 없는 운명 중의 하나가 죽음이지만 우리는 죽음에 대해 직접 경험해보지 못했다. 때문에 ‘죽음’이라는 현상에 대해 설명한 모든 것들은 다른 이를 통한 간접적인 것이며 직접적인 것은 하나도 없다. 붓다가 확연하게 깨달은 진리[法]는 다름 아니라 삼라만유란 인연생기적 현상이라고 본 것이다. 상대적인 인간개념과 경험의 현상으로서의 삶과 죽음이라는 현상도 삼라만유 중의 한 가지 현상일 터이니 두말할 것도 없이 그 삶과 죽음 역시 인연생기적 현상일 뿐 그것 자체로서의 실체나 실재로서의 불변적 속성이 없는 것이라고 불교는 보았다. 생(生)과 사(死)가 같다고 하며, 언제나 생사(生死)라고 함께 표현하는데, 이것은 불교의 죽음관을 설명하는데 있어 중요한 열쇠이다. 삶과 죽음은 분리된 것이 아니라 삶이 곧 죽음이기 때문이라는 것인데, 다시 말해서 산다는 것은 곧 죽고 있다는 뜻이며, 죽음을 향해서 가고 있다는 뜻도 된다. 삶의 편에서 보면 살고 있다고 말하지만 죽음의 편에서 보면 아직 죽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늙음과 병듦도 마찬가지이다. 산다는 것은 늙는다는 것이요 늙는다는 것은 병든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삶은 사는 것이 아니라 죽는 것이다. 따라서 죽음을 벗어나려면 삶도 벗어나야 한다. 생이 있는 한 사는 필연적인 것으로 그 어떤 경우도 사를 부정하거나 거부할 수는 없다. 따라서 이 같은 생로병사는 인간고(人間苦)의 근본으로 인간의 살려는 의지를 단절하고 죽음을 가져오게 된다. 인간 존재란 무상하고 실체가 없는 다섯 가지 요소가 인연에 의해 임시적으로 결합되어 있는 존재인 것으로 경전에서 죽음의 정의와 시기에 관계되는 내용을 찾아보면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잡아함경(雜阿含經)》에 “어떤 것을 죽음이라 하는가, 저러한 중생들이 저러한 종류로 몰라 하여 옮겨가되 몸이 무너지고 수(壽)가 다하면 더운 기운[火]이 떠나고 목숨이 멸하여 음(陰)을 버리는 때에 이르는 것을 죽음이라 한다.” “죽음의 고통을 말하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죽음이란 무엇인가. 이른바 저 중생의 무리들이 목숨을 마치는 것은 정하는 바가 없어서 흩어져 멸하고 목숨이 다하면, 부서져 명근이 닫긴다. 이것을 죽음이라고 한다.” “수명과 체온과 의식은 몸을 버릴 때 함께 버려진다. 그 몸은 무덤 사이에 버려져 나무나 목숨이 분리된 것을 죽음이라 한다.” 《증일아함경(增一阿含經)》에 “어떤 것을 죽음이라 하는가. 저러한 중생들이 윤회하여 받은 몸에 온기가 없고 덧없이 변하여 오온이 나누어져 오음의 몸을 버리고 목숨과 기관이 끊어지고 파괴되는 것을 죽음이라 한다.” 《중아함경(中阿含經)》에 “세 가지 법이 있어 산 몸이 죽은 후에는 몸은 무덤 사이에 버려져 마치 나무처럼 무정해진다. 어떤 것이 세 가지인가. 첫째, 수(壽, 들숨과 날숨, 즉 호흡)이고 둘째, 난(暖, 체온)이며 셋째, 식(識 , 의식)이다… 죽음이란 수명이 다 소멸하고 따뜻함이 이미 사라지며 모든 기관이 무너지는 것이다.” 《승만경(勝鬘經)》에는 “죽음이란 모든 근(根)이 무너지는 것이요, 생이란 새로 모든 근이 일어나는 것이다.” 라고 나타나 있다. ‘모든 근이 무너진다’ 라는 것은 ‘모든 감각기관의 기능이 멈춘다’ 는 의미로, 죽음이란 수(壽)와 난(煖)과 식(識)이 몸을 떠난 것을 말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상의 경전의 내용에서 수(壽)란 영혼이나 개아(個我)와 같은 실체적인 어떤 것이 아니라 《대방등대집경(大方等大集經)》에서 “수명이란 들숨과 날숨이다” 라고 말하고 있는 것처럼, 들숨과 날숨 즉, 호흡을 의미하는 것이고, 화, 난, 온은 모두 체온을 의미하며, 식은 정신 현상으로서의 의식을 의미한다. 이러한 견지에서 불교에서의 죽음이란 “오온이 화합해서 이루어진 가아(假我)가 인연이 다해서 호흡이 정지되고 체온이 상실되고 그리고 의식이 없게 된 상태” 라고 정의될 수 있을 것이며, 부언하자면 불교에서의 죽음은 기관의 통합기능이 회복 불가능한 상실에 처했을 때를 뜻한다. 중생이 생사에 유전(流轉)하는 과정으로 신(身), 구(口), 의(意)를 통한 선악의 인(因)에 따른 과(果)로 사유(四有)라 하여 생유(生有), 본유(本有), 사유(死有), 중유(中有)로 4분하여 중생이 무명(無明)의 세계에 윤회하는 한 기간의 상태를 뜻하는데 여기서 유(有)는 중생의 생존을 의미한다. 生有는 각각의 세계에 생을 받는 결생의 찰나, 本有는 생을 받은 뒤 임종 직전까지 생유와 사유의 중간을 말하며, 사유(四有)는 최후에 임종하는 찰나, 중유(中有)는 죽은 뒤 다음 생을 받을 때까지- 사유와 생유의 중간으로 죽은 영(靈)이 다음 생에 태어나기 전 중음(中陰)의 상태인 칠칠일(49일)동안을 말한다. 불교에서는 이러한 죽음을 큰 사건으로 보지 않고 죽음이 존재의 파괴인 동시에 끝이라고 하는 인식이 잘못된 것임을 지적함으로써 인식에 대한 근본적인 변혁을 시도하려 한다. 깨달음의 입장에서 본다면 생과 사는 둘이 아니다. 이는 단지 인연에 따라 모이고 흩어지는 현상이고 무상일 뿐이다. 인간의 육체는 일정한 기간을 존재하는 물체에 불과하고, 진실한 생명은 불생불멸하며 윤회의 인과 속에서도 영원하다. 불교의 죽음은 존재의 파멸이나 종말이라는 의미로는 결코 인식될 수 없으며 단지 존재의 변화일 뿐인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죽음이라는 현상은 한 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깨닫지 못하는 한 윤회의 틀 안에서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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