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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등산사진후기☞/♤ 수락산·불암산

[20100620]우중산행 - 수락산 계곡과 폭포를 찾아가는 유람산행 - 1부

by 맥가이버 Macgyver 2010. 6.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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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년 06월 27(일)  
우중산행 - 수락산 계곡과 폭포를 찾아가는 유람산행
   

 

누군가가 '누우면 죽고, 걸으면 산다(臥死步生)'고 했다.

맥가이버는 '산 따라 강 따라 길 따라' 걷는 것을 죽고사는 차원이 아닌 즐기는 차원에서 걷는다.

즉, 좋은 길을 걷다가 새로운 환경이나 상황, 사람을 만나면서 알게 되고, 느끼고, 감동 받고, 깨닫는 것을 즐긴다.

  
 '우중산행 - 수락산 계곡과 폭포를 찾아가는 유람산행' 이야기 

 

  '우중산행 - 수락산 계곡과 폭포를 찾아가는 유람산행' 코스 
 
당고개역→수락산 동막골유원지 입구→덕릉고개→덕릉교장→덕흥대원군묘(덕릉)→흥국사 입구→흥국사 일주문→흥국사→통일대불
→갈림길→무명계곡→청학1교→수락산유원지 입구→옥류폭포→은류폭포→수락폭포 하단→돌계단→수락폭포 상단(금류동천 각자)
→내원암→칠성각→까페 계단→수락산장→깔딱고개→사진촬영소→西수락폭포→석림사→수락산 초소→노강서원→궤산정→장암역 

 

 

오늘 산행은 지난 2006년 7월 27일(목)에 아래 사진처럼 장대비를 맞으며 수락산((흥국사/내원암/석림사)을 다녀오면서
 그날 함께 하지 못했던 님들의 아쉬움을 달래고자 마침 전날부터 장마비가 내린다는 일기예보가 있어 D-day로 잡은 날이다.

 

 

 

 

 

 

 

 

 

 

 

 

 

 

 

 

 
우중산행으로 수락산 계곡과 폭포를 찾아가는 유람산행을 공지하였는데 예보대로 비는 내렸지만 예상보다 적은 양이 내려
수락산의 계곡이나 폭포의 물은 기대치에 훨씬 못미치는 양이라서 실망스러웠지만 즐겁게 그리고 안전하게 산행을 마쳤다.

 
'모든 만남은 걷고 있을 때 이루어진다'라는 말이 있는데,
길을 걷다보면 새로운 풍광을 보게 되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게 되고, 새로운 경험을 하고, 새로운 것을 알게 된다
 
'우중산행 - 수락산 계곡과 폭포를 찾아가는 유람산행'
자세한 이야기는 맥가이버의 블로그 사진후기로 대신한다.

  

맥가이버가 '때론 함께, 때론 홀로' 산행이나 여행, 도보를 하면서 후기를 주로 사진으로 작성함은

인간의 만남이 또한 유한함을 알기에 어떤 연유로 비록 언젠가 헤어지더라도 추억 속에서 함께 하고자 함이고,

또 하나 이유가 있다면 걸으면서 보고 느낀 것을 글로 다 표현치 못하는 무능함에 있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를 더 든다면 누군가가 같은 길을 걷고자 할 때 작은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입니다.

 

 

'우중산행 - 수락산 계곡과 폭포를 찾아가는 유람산행' - 1부를 시작하며...

 

▼ 09시 07분 - 당고개역에서부터 걸어서 덕릉고개를 넘어 흥국사 입구까지 가기로 하고...

 

▼ 09시 14분 - 상계3ㆍ4동 공동복합청사 앞을 지나...

 

▼ 09시 21분 - 수락산 동막골유원지 입구를 지나...

 

▼ 09시 22분 - 외곽순환도로 수락산터널과 불암산터널 연결 교각 아래를 지나...

 

 

 

▼ 거미줄에 옥구슬~

 

  

 

 

덕릉고개와 덕흥대원군묘


서울의 상계동과 경기도 남양주군 별내면을 경계하는 수락산과 불암산의 가운데 산령에는

아버지를 향한 효성이 가득 담긴 전설 같은 이야기가 전해오는 고개가 있다.

 

지금은 송추에서 중부고속도로를 있는 수락산과 불암산 터널이 관통하는 고가도로 밑으로

2차선 자동차 길이 아스팔트로 포장되어 단숨에 오르내리는 길로 변했으나,

이 길은 조선의 제14대 왕인 선조임금의 아버지 덕흥 대원군의 묘소에 이르는 길인데,

후세 사람들이 그의 묘소를 덕릉이라 불러, 이 길을 모두들 '덕릉 고개'라 후세 사람들이 부르게 되었다.

지금은 고개 마루에 예비군 훈련장이 있고 담을 끼고 돌아 별내면 쪽으로 산마루에서 한 10분 쯤 내려가면

좌측으로 오솔길이 있는데 그곳에 덕흥대원군의 묘와 그의 부인 정씨 묘가 문 무인석의 호의를 받으며

남쪽을 향해 양지 바른 곳에 안장되어 있다. 이 묘가 경기도 기념물 제 55호이다.


선조 임금은 덕흥대원군의 셋째 아들 하성군으로, 명종 임금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올랐다.

본래 왕위는 명종 임금과 인후왕후 사이에 태어난 순회세자가 계승해야 되나 열 세살에 숨을 거두어 그가 왕위에 오르니 선조이다.
덕흥대원군은 중종 임금의 일곱 번째 아들로 태어나 생전에 임금에 오르지 못하고

그의 셋째 아들이 선조로 즉위하면서 덕흥대원군이 되었다.

러나 아들이 왕위에 오르는 것을 보지 못하고 1559년 (명종14년) 5월에 서른 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

경기도 남양주군 별내면에 예장되었다.


그의 묘소가 덕릉으로 불리게 된 데에는 아들 선조 임금의 효성이 넘치는 애틋한 뜻이 숨어 있어 효

성이 메말라 가는 오늘날의 세태에서 볼때 다시금 옷깃을 여미게 한다.

선조는 어려서부터 성품이 자상하고 효성이 지극하였다.

그리하여 왕위에 오르면서부터 아버지 덕흥군의 묘를 능의 수준으로 높이고 싶었으나 신하들은 끝내 불가하다는 대답 뿐이었다.


그리하여 선조 임금은 할수 없이 이를 단념하고 대신 한가지 방법을 생각해 냈다.
믿을 만한 내시를 동문밖에 있는 가게로 내보내어,

별내면에서 나무와 숯을 실은 수레를 끌고 오는 장사꾼에게 어디를 지나서 이곳까지 왔느냐 물어서

그가 "덕흥대원군의 묘를 지나서 왔다"고 하면 장사를 못하게 돌려보내고,

만일 "덕흥 대원군의 능을 지나서 왔다"고 하면 가게 안으로 불러들여

술과 밥을 후하게 대접하고 나무와 숯을 후한 값으로 쳐 모두 사들였다.


이 소문은 한 사람 두 사람 입소문으로 삽시간에 불길처럼 퍼졌갔다.

그리하여 사방에서 나무와 숯을 끌고 온 장사꾼들이 모두 덕흥 대원군의 능을 지나왔다고 떠들어 대니

자연히 덕흥대원군의 묘소는 정식으로 능이라 반포한 것보다 효과가 커서 후세 사람들은 저절로 덕능이라 부르게 된 것이다.


왕위를 계승하지 못한 아버지의 묘소를 능이라 부르지 못해 한을 품고 기어이 능으로 불리도록 애를 쓴

선조 임금의 효성과 지혜가 지금도 고개를 굽이굽이 도는 길에서 느껴져 덕능고개가 더욱 정겹다.

 

시간을 내 고갯길을 천천히 걸으며 길옆의 개망초와 산딸기의 맛을 음미하고,

묘역에 도열하고 있는 쪽동백 그늘의 참맛을 느껴봄도 좋을 듯 하다.

 

찾아오시는 길
교통안내 : 지하철 4호선 당고개역 1번 출구->33번 마을버스->흥국사 입구 하차

 

- 산림청 '산림문화자산'에서 가져옴 -

 

▼ 09시 30분 - 덕릉고개 생태이동통로

 

▼ 09시 31분 - 덕릉고개 위 덕릉교장 버스정류장

 

 

 

 

 

▼ 09시 42분 - 덕흥대원군묘 입구

 

 

 

 

▼ 09시 44분 - 덕흥대원군묘역

 

덕흥대원군묘 [德興大院君墓] 

경기도 남양주시 별내면 덕송리에 있는 덕흥대원군의 묘.
 
지정번호  경기기념물 제55호 
지정연도  1980년 6월 2일 
소장  전주이씨 종중 
소재지  경기 남양주시 별내면 덕송리 산5-13  
시대  조선시대(1559) 
분류  묘 

 

1980년 6월 2일 경기도기념물 제55호로 지정되었다.

선조의 생부(生父)인 덕흥대원군 이초의 묘이다.

묘역에는 아담한 규모의 봉분 2기가 나란히 있는데

봉분에는 길쭉한 장대석으로 가느다란 띠 모양의 호석이 둘러져 있어서 매우 소박한 느낌을 준다.

 

받침돌이 없이 평평한 판석으로 된 상석(床石), 향로석은 두 개의 봉분 가운데에 놓았는데

신도비(神道碑)로 추정되는 비석이 상석 왼쪽에 올라 앉아 있는 것이 특이하다.

상석 앞쪽에는 명등석(明燈石)을 세우고 그 뒤쪽으로 좌우가 한쌍인 망주석(望柱石)과 문인석(文人石)을 각각 배치했다.

이곳에서 조금 내려가면 덕흥대원군의 아들인 하원군의 묘가 있다.

 

덕흥대원군은 중종(中宗)의 제7남으로 창빈(昌嬪) 안씨(安氏)의 소생인데 1530년(중종 25)에 태어나 1559년(명종 14)에 별세하였다.

1567년 명종(明宗)이 후사가 없이 승하하자 그의 3남인 하성군(河城君) 이균(李均)이 즉위하였는데 선조이다.

이에 따라 1569년(선조 2)에 대원군(大院君)에 추존되었다.

이 때부터 왕이 아닌 왕의 아버지를 대원군이라고 하는 제도가 시작되었다.

그 후로 정원대원군(인조의 생부), 전계대원군(철종의 생부), 흥선대원군(고종의 생부)이 있었다.
 

- ⓒ 두산백과사전 EnCyber & EnCyber.com에서 - 

 

▼ 덕흥대원군묘 안내판이 흉물스럽게...

 

▼ 덕흥대원군묘 안내문에는...

 

덕흥대원군(德興大院君) 


【성 명】 덕흥대원군(德興大院君)/리초(李岹)
【생몰년】1530(중종 25)∼1559(명종 14)
【본 관】 전주(全州) 리(李)
【자 · 호】 경앙(景仰)
【시 대】 조선 중기
【성 격】 대원군


덕흥대원군은 중종대왕의 서7왕자로 경인(庚寅) 1530년(중종 25) 음력 3월 5일

창빈안씨(昌嬪安氏)에게서 탄생, 휘는 초(岹)요 자는 경앙(景仰)이다.

덕흥대원군은 3남 2녀을 두었으니 장남은 하원군(河原君) 정(鋥)이고 차남은 하릉군(河陵君) 인(鏻)이다.

하릉군은 숙부 금원군(錦原君)에 출계하였고, 3남은 하성군(河城君) 균(鈞)으로

명종대왕에 이어 입승대통(入承大統)하니 곧 14대왕 선조대왕이시다.

1女 명순(明順) 壻 慶州人 안황(安滉), 妾2女 혜옥(惠玉) 壻 固城人 남충원(南忠元)이시다.

일찍이 9세에 덕흥군(德興君)으로 책봉되고 1570년(선조 3)에 덕흥대원군으로 책봉되었다.

천성이 영명다재하여 학문과 덕을 쌓아 남다른 예지와 경륜을 펼쳐 명종 때에 이룩한 공이 컸으며

세째 아들인 선조대왕이 명종대왕의 대를 이어 왕통을 계승한 사실(史實)로 미루어 보더라도

덕행과 기지가 뛰어났음이 가히 짐작이 된다.

 

대원군의 배위 하동부대부인(河東府大夫人) 정씨(鄭氏)는 1522년(중종 17) 음력 9월 4일 태어났으며,

영의정 문성부원군(文成府院君) 정인지(鄭麟趾)의 증손녀이며

영의정 효간공(孝簡公) 정세호(鄭世虎)의 딸로 기품이 고고영명하고 현모양처로 그 덕망이 널리 알려졌다.

하성군을 선조대왕으로 임금의 자리에 오르게 한 것도 모친의 역량이 컸다.

 

자녀로는 3남 1녀를 두었으니 1子 하원군(河原君) 정(鋥), 2子 하릉군(河陵君) 인(鏻), 하릉군은 숙부 금원군(錦原君)에 출계하였고,

3子 하성군(河城君) 균(鈞)으로 명종대왕에 이어 입승대통(入承大統)하니 곧 14대왕 선조대왕이시다.

1女 명순(明順) 壻 慶州人 안황(安滉) 이시다.

배위 양녀(良女) 순단(順單)은 자녀로는 1녀를 두었으니 妾2女 혜옥(惠玉) 壻 固城人 남충원(南忠元)이시다.

대원군은 기미(己未) 1559년(명종 14) 음력 5월 9일 향년 30세로 별세하여 경기도 남양주시 별내면 덕송리에 예장하였다.

그로부터 별칭 덕릉(德陵)이라 일컬어 왔으며 경기도 지방문화재 55호(1980.6.3)로 지정되었다.

그리고 묘의 수호를 위하여 묘막이 형성되고 지금도 묘하(墓下)의 촌락은 그대로 남아 있고

서울특별시 상계동으로부터 대원군묘로 진입하는 수락산령은 덕릉고개라 불리고 있다.

 

대원군의 배위 하동부대부인 정씨는 1567년(명종 22) 음력 5월 18일 46세로 별세하니

그 해 음력 8월 9일 대원군 곁 이실(異室)에 예장하였다.

후일 선조대왕의 특명으로 한성(漢城)에 도정궁(都正宮 : 현 서울특별시 종로구 사직동)을 세워

생친(生親) 대원군 양위와 조모 창빈안씨(中宗嬪), 백형 하원군(顯祿大夫)과 배위를 모시게 하여

각각 기신일(忌辰日)에 제향을 받들어 오던중 대원군 종손의 형편의 변동에 따라

1950년 불천지위(不遷之位) 6위를 지금의 덕릉재실(德陵齋室)로 이전, 영년봉묘(永年奉廟)케 하니,

매년 기신일이면 후손들의 발길이 그치지 않는다.

 

대원군의 묘역 하단에 계장으로 위치한 쌍분묘는 장남 하원군 양위분의 묘이며,

이 부락에 있는 덕흥사(德興祠)는 대원군 양위분과 어머니 창빈안씨

그리고 장남 하원군(宣祖朝의 扈從功臣) 내외분의 위패를 모신 묘각(廟閣)이며

국내(局內) 흥국사(興國寺)는 이분들의 명복을 빌던 사찰이다.

 

창빈안씨 묘소는 서울특별시 동작구 동작동 국립묘지 내 중앙에 자리하고 있으며 서울특별시 지방문화재 54호로 지정되어 있다.

현 국립묘지는 창반안씨 묘역이었는 바 국가에서 국립묘지로 지정, 현재에 이르고 있다.
 
- 신종우의 인명사전에서 가져옴 -

 

 

▼ 덕흥대원군의 장남 하성군의 묘

 

 

▼ 덕흥대원군 신도비

 

 

▼ 덕흥대원군 묘

 

 

▼ 덕흥대원군 묘비

 

 

  

 

 

 

 

 

▼ 09시 56분 - 흥국사 입구  

 

 

 

 

▼ 능소화

 

▼ 09시 58분 - 접시꽃과 덕능마을회관

 

 

 

 

 

 

 

▼ 10시 03분 - 흥국사 일주문

 

 

 

 

 

▼ 10시 06분 - 흥국사 주차장

 

흥국사 [興國寺] 

경기도 남양주시 별내면(別內面) 수락산(水落山)에 있는 사찰.
 
종파  대한불교조계종 
창건시기  599(신라 진평왕 21) 
창건자  원광 
소재지  경기 남양주시 별내면 수락산 
 

대한불교 조계종 소속. 599년(신라 진평왕 21)에 원광(圓光)이 창건하고 수락사(水落寺)라 하였다.

 

1568년(선조 1) 나라에서 덕흥대군(德興大君)의 원당(願堂)을 짓고 흥덕사(興德寺)로 바꿨다가,

1626년(인조 4)에 중건하면서 현재의 이름으로 고쳤다.

 

1818년(순조 18) 요사채 대부분이 소실되었는데,

4년 후 왕명에 따라 기허(騎虛)가 대웅전과 법당 등을 중건했다.

 

1878년(고종 15)에는 다시 소실된 것을 용암(庸庵)이 중건하였는데,

이곳에 덕흥대군의 묘소가 있으므로 흔히 ‘덕절’이라고 부른다.

 

경내에는 현재 정면 3칸, 측면 3칸인 팔작지붕의 대웅전과

영산전(靈山殿)·만월보전(滿月寶殿)·독성전(獨聖殿)·시왕전(十王殿)·산신전 등이 있다.
 

- ⓒ 두산백과사전 EnCyber & EnCyber.com,에서 - 

 

▼ 흥국사 대방

 

 

 

▼ 흥국사 연혁

 

 

▼ 흥국사 영산전

 

 

 

▼ 흥국사 대웅보전

 

 

 

 

▼ 흥국사 독성전

 

 

▼ 흥국사 지킴이

 

▼ 흥국사 만월보전

 

 

 

 

 

 

▼ 흥국사 대웅전 추녀마루에는 여느 사찰에는 없는 잡상이 있다.

 

▼ 흥국사가 왕실사찰이라서...

 

▼ 흥국사 시왕전

 

 

  

 

▼ 10시 15분 - 흥국사 영산전 앞을 지나 통일약사대불 방향으로...

 

 

▼ 10시 17분 - 통일약사대불

 

 

 

 

 

▼ 10시 19분 - 4년전보다 나무가 더 굵어졌겠지...나중엔?

 

 

 

 

▼ 10시 24분 - 불암산과 수락산을 연계산행할 때 지나다녔던 철문

 

 

 

 

 

 

 

 

▼ 10시 37분 - 삼거리(수락산 능선과 무명계곡 갈림길)에서...

 

▼ 무명계곡으로 내려서며..

 

☞ 여기서 '우중산행 - 수락산 계곡과 폭포를 찾아가는 유람산행' - 1부를 마치고...

 

 

 

 2010년 06월 27(일)  
'우중산행 - 수락산 계곡과 폭포를 찾아가는 유람산행'

   

-▥☞ 1부[당고개역→동막골입구→덕릉고개(덕릉교장)→덕흥대원군묘→흥국사 입구→흥국사→통일대불→갈림길]는 여기를 클릭.☜▥-

  

-▥☞ 2부[갈림길→무명계곡→청학1교→옥류폭포→수락폭포(금류폭포)→금류동천→내원암→칠성각→까페 계단]는 여기를 클릭.☜▥-

 

-▥☞ 3부[까페 계단→수락산장→깔딱고개 정상→사진촬영소→西수락폭포→석림사→노강서원→궤산정→장암역]는 여기를 클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