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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전라 도보후기☞/☆ 부안(변산)마실길

변산반도 석양따라 걷는 마실길, 부안 죽막마을

by 맥가이버 Macgyver 2010. 7. 6.

변산반도 석양따라 걷는 마실길, 부안 죽막마을

 

서해의 관능미를 온 몸에 흡수하는 ‘마실길’을 따라 걷는다.

바다와 마을을 끊어질 듯 끊어질 듯 이어주는 길 위에서 소박한 바닷가마을 ‘죽막마을’에 들렀다.

마실길은 물때에 따라 길이 다르다.

밀물 때에는 바닷길이 사라지기 때문에 내륙 쪽으로 난 길을 걸어야한다.

/이윤정기자


여행에도 트렌드가 있다. 2010년 기대주는 ‘길’이다.

2007년 제주 올레길을 시작으로 지리산 둘레길, 강원도 산소길, 관동별곡 800리 등이 우리 땅의 보드라운 속살을 드러냈다.

2009년 10월에는 서해의 진주 ‘변산반도’를 따라 걷는 17.5km의 길이 열렸다.

이름은 ‘마을에 나간다’는 뜻의 ‘마실길’. 친숙한 이름처럼 길은 바다와 마을을 끊어질 듯 자연스럽게 이어간다.

평소 눈으로만 읽히던 시각 정보는 길과 발바닥의 접촉을 통해 5감으로 확장돼 온몸에 스며든다.

마실길을 걷는 동안 금빛 서해와 소박한 바닷가마을은 피와 살이 돼 몸의 일부가 됐다.

그리고 그 길 위에서 만난 ‘죽막마을’은 순박하고 소담한 모습 그대로 마음 속 깊이 새겨졌다.

 

 바다와 대화하고, 갯벌과 벗하며 마실 가는 길

수성당

적벽강 여울골 바다 위로 솟아오른 20m 정도의 절벽위에 당집이 세워져있다.

칠산바다를 수호하는 ‘개양할미’ 신을 모신 해신당이다.

전설에 따르면 수성당의 개양할미는 딸 8명을 위도, 영광, 고창 등 칠산바다 요소요소에 배치하고 이곳에 초가집을 지어 살았다고 한다.

예부터 죽막마을 주민은 물론 격포리 사람들까지 수성당에서 제를 지내왔다.

1992년에는 수성당 인근 죽막동 일대에서 5~6세기 것으로 추정되는 유물이 발굴됐다.

부안군청 제공


마실길의 시작점은 전북 부안군에 위치한 새만금전시관이다.

변산해수욕장 인근 송포마을까지 이어지는 5.3km의 길이 1코스다.

시작점부터 길은 두 갈래로 나뉜다.

썰물일 때는 고운 모래에 바다 물결이 어른거리는 바닷길을, 밀물일 때는 크고 작은 야생식물이 숨 쉬는 숲길을 걷는다.

저 멀리 새만금방조제가 보이지만 마실길에서는 인공적인 냄새를 맡을 수 없다.

오히려 달의 손짓에 거대하게 몸을 부풀렸다 야위었다를 하루에 두 번씩 반복하는 서해의 관능미가 여실히 드러난다.

1코스 종착점 송포마을에 도착하면 횟집촌이 형성돼있다.

방파제가 생기기 전까지 많은 고깃배가 드나들던 마을은 사람이 모여드는 번화가였다.
2코스는 송포마을에서 고사포해수욕장까지의 5.7km 구간이다. 이 길도 물때를 맞춰 바닷길 또는 사망마을길로 걸으면 된다.

모래사장을 따라 걷기에 지칠 무렵 고사포해수욕장에서 만나는 소나무 숲은 푸르름 만큼이나 신선한 감동이 있다.

마실길에서 만난 조진호(50, 대전)씨는 “저는 개인적으로 고사포해수욕장을 지나는 길이 가장 아름다웠어요.

물때를 잘못 맞춰서 질펀한 갯벌을 걷기도 했지만, 차타고 보던 풍경보다 마실길에서 보는 바다가 훨씬 아름답네요”라고 말했다.

마실길은 만만한 길이 아니다.

총길이 17.5km에 모래사장, 갯벌, 바위, 숲, 언덕 등 다양한 길로 구성돼있다.

부안군청 제공


3코스는 변산반도의 백미라 할 수 있다.

성천포구에서 격포해수욕장까지 6.5km의 길 위에는 하섬전망대, 적벽강, 수성당, 격포해수욕장, 채석강 등 볼거리가 매우 많다.

하섬은 ‘모세의 기적’처럼 음력 1일과 15일을 전후해 육지에서 바다로 2km의 바닷길을 연다.

사자를 닮은 붉은색 암반 적벽강, 책이 층층이 쌓인 모양의 채석강, 그리고 바다에 나가기 전 제를 올렸다는 수성당까지 마실길의 하이라이트가 3코스에 포진해있다.

새만금전시관/ 마실길은 새만금전시관 뒷길에서 시작된다. 출발하기 전 새만금전시관에 들러 새만금개발사업에 대한 정보를 훑고 가는 것도 좋을 것이다. 서해인근에 가까워질수록 공사현장은 늘어나고 인공미는 짙어져간다. 어떤 사업을 하는지, 얼마나 친환경적인 개발을 하는지 꼼꼼하게 살펴봐야 한다. 지속적인 관심은 우리 땅을 보존하기 위한 첫걸음이다. /이윤정기자


바닷가 대나무숲이 보이면 거기가 죽막마을의 시작

죽막마을은 3코스가 끝나갈 무렵, 변산반도의 서쪽 돌출 부분에서 만나게 된다. 적벽강을 지나 격포해수욕장을 만나기 전까지 드문드문 집이 들어선 곳이 죽막마을이다.

길을 걷다 만나는 언덕배기에 대나무가 무리를 지어 살랑살랑 춤을 추고 있다면 ‘죽막동’이 시작됐다고 생각하면 된다.

그래서 마을이름이 죽막, 우리말로는 ‘대막골’이다.

숲길이 시작되는 지점에서/ 숲길이 시작되는 지점에 서서 바다를 바라보았다. 너울지는 바다는 육지로 넘쳐오를 듯이 거센 함성을 뿜어낸다. 함께 실려 오는 바닷바람에 갈대는 현란한 춤으로 응답한다. 파도 소리와 갈대 춤이 합쳐져 ‘찰~싹, 스으윽’의 색다른 음색이 탄생한다. 걷지 않았다면 절대 들을 수 없는 음악이다.

/이윤정기자


죽막동은 5개 부락이 모여 형성된 마을이다.

 살기미, 뉴어머리, 방주간, 원중막, 작은당 등 옛지명으로 그 흔적을 찾을 수 있다.

박정이(65)이장은 “마을에 도로가 나면서 살기미 부락은 없어졌지. 지금은 4개 부락 50여 가구가 살아요”라고 설명한다.

죽막동 주민들은 주로 바다에 나가 생업을 이어나갔다.

하지만 젊은 세대가 떠나가고 나이든 세대만 남겨지자 자연스레 바다에 나가는 사람이 줄어들었다.

주민 공순이(71)씨는 “10년 전만해도 마을에 어부가 많었지. 여름이면 피서객들도 마을로 민박하러 많이 찾아왔어. 지금이야 펜션이고 모텔이고 시설 좋은 데 많으니까 이리루는 안와”라고 설명한다.

죽막동 절경을 이루는 바닷가에는 2008년 대명리조트가 들어섰다.

변산해변/ 마실길 1코스의 종착점은 변산해수욕장 인근 송포마을이다. 겨울 변산해수욕장은 여름과 달리 고즈넉하고 조용한 느낌이다. 서해는 색 때문에 ‘황해’라고 불리는데 오히려 필자에게는 ‘금빛’으로 보였다. 햇살이 따스하게 바다를 어루만지고, 바다는 금빛 미소로 하늘에 응답한다. /부안군청 제공


‘개양할매’가 서해를 굽어보며 지키는 마을

고사포해수욕장/ 고사포해수욕장은 마실길 2코스의 백미다. 모래사장을 따라 걷기에 지칠 무렵 고사포해수욕장에서 만나는 소나무 숲은 푸르름 만큼이나 신선한 감동이 있다. 마실길에서 만난 조진호(50, 대전)씨는 “저는 개인적으로 고사포해수욕장을 지나는 길이 가장 아름다웠어요”라고 말했다. /부안군청 제공


마실길 3코스는 죽막동의 중심부를 훑는다. 그 중 꼭 들러봐야 할 곳이 ‘수성당’이다.

적벽강 여울골 바다 위로 솟아오른 20m 정도의 절벽위에 당집이 세워져있다. 칠산바다를 수호하는 ‘개양할미’ 신을 모신 해신당이다.

전설에 따르면 수성당의 개양할미는 딸 8명을 위도, 영광, 고창 등 칠산바다 요소요소에 배치하고 이곳에 초가집을 지어 살았다고 한다.

죽막마을 토박이 정동호(73)씨는 “저 바다 멀리 보이는 섬에 개양할미 막내딸을 모시는 신당이 있어요. 우리마을 뿐 아니라 격포리 전체가 아주 오래전부터 이곳에서 제를 지내왔지요”라고 말한다.

1992년 전주박물관에서는 이 일대를 조사해 5세기 중반에서 6세기 전반의 것으로 추정되는 유물을 발굴해냈다.

다양한 토기 및 동물 모양의 토제품은 중국, 일본, 가야, 백제 등 다양한 국가의 것으로 밝혀져서 수성당과 죽막동의 깊은 역사를 짐작케 했다. 현재의 당집은 1996년 새로 건립한 것이다.

하섬/ 마실길 3코스를 걷기 시작하면 하섬전망대가 나온다. 하섬은 위에서 내려다보면 새우모양을 닮았다하여 붙은 이름이다. 음력 1, 15일 물이 빠지면 하섬까지 2km의 바닷길이 열린다. 수심9m의 바다가 물러가고 촉촉한 길이 몸을 드러낸다. 그러나 물이 빠지는 속도만큼 빨리 차오르기 때문에 물때에 주의해야 한다. 실제로 물때를 잘 계산하지 못해 2009년 3명의 목숨이 희생됐다. /부안군청 제공


수성당을 내려와 마을과 바다로 이어지는 마실길을 다시 걸으면 옛 지명을 따라 만든 ‘작은당 사구식물관찰지’ ‘죽막동 해안생태관찰지’등의 작은 공원들이 나온다.

죽막마을에서는 ‘마실길’ 탐방객이 늘자 마을 구석구석에 꽃을 심고 길을 정비하고 있다.

박정이이장은 “격포리 마을 중에 우리 마을이 제일 발전이 안 됐죠. 마을에서 공동으로 바지락양식도 하는데 와서 드셔보세요”라고 말한다.

식당, 슈퍼 하나 없을 정도로 작은 마을이지만 주민 인심만큼은 순하고 서글서글하다.

마실길의 종착점 격포항에 도착하자 해거름이 시작된다. 아침에 시작한 마실길은 날이 저뭇해서야 끝이 난다.

하늘을 붉게 물들이며 황금빛 바다를 만들던 해는 이내 너울지는 바다 속으로 숨어들어간다.

한반도의 서쪽 바다는 해를 안은 채 깊고 진한 풍경을 마무리한다.

경향닷컴 이윤정기자 yyj@khan.co.kr>
2010-03-03

죽막마을 마실길/ 마실길이 끊어졌나 싶을 즈음 저렇게 표지판이 나타난다. 바다와 마을을 아슬아슬하게 이어주면서 길은 그렇게 변산반도를 훑는다. 죽막마을을 지나는 마실길은 잘 정비돼있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지만 행여나 길을 잃을 방문객을 위해 화살표를 칠해놓았다. /이윤정기자


(가는길)
부안터미널에서 변산, 격포방향 버스를 타면 된다. 주황색버스를 타야 새만금전시관에서 내릴 수 있다.

자가용을 타고 올 경우, 부안IC에서 30번 국도를 타고 새만금전시관 이정표를 따라 오면 된다.

전시관 뒤쪽으로 난 길을 걸어오면 ‘마실길 시작점’ 표지판이 보인다.

자동차는 새만금전시관 앞에 주차해두고 걸으면 된다.

걷기가 끝나는 격포에 다다르면 버스를 타고 다시 전시관으로 돌아올 수 있다.

죽막마을은 마실길 3코스에서 적벽강이 나오면 시작된다.

채석강/ 마실길 3코스는 볼거리가 넘쳐난다. 적벽강, 수성당, 격포해수욕장을 지나 채석강에 다다르면 감흥은 최고조에 달한다. 마치 수만권의 책을 쌓아올린 듯한 와층의 채석강은 당나라 이태백이 즐겨찾았던 채석강과 비슷해 붙여진 이름이다. /부안군청 제공


* 마실길 1코스 (5.3km, 1시간 소요)
새만금전시관->부안곤충해양생태원->합구마을포구->백제성모텔 앞 해변->대항마을->대항리패총->변산해수욕장

* 마실길 2코스 (5.7km, 1시간 30분 소요)
변산해수욕장->송포포구->사망마을해변->고사포해변->고사포해수욕장

* 마실길 3코스 (6.5km, 2시간 30분 소요)
고사포해수욕장->성천포구->유통마을->하섬전망대->격포자연관찰로->적벽강->수성당->죽막마을->격포해수욕장->채석강->격포항

(추가정보)
마실길을 걸을 때 가장 유념해야 할 것은 물때를 잘 맞춰야 한다는 것이다.

썰물 때는 해안이 길게 드러나 길이 생기지만, 밀물에는 바닷물이 해안 가까이로 들어와 길이 없어지거나 걸을 수 없을 정도로 질척해진다.

또 하섬까지는 바닷길이 열렸다가 금세 물이 차오르기 때문에 물때를 정확하게 알고 건너야 한다.

실제 2009년에는 3명의 연구원이 하섬 바닷길에서 밀물에 휩쓸려 목숨을 잃었다.

반드시 국립공원관리공단 홈페이지(http://byeonsan.knps.or.kr)에서 물때를 확인한 후 여행 계획을 세워야한다. 

 

 

부안 변산 ‘마실 길’ 걷기



부안 변산 ‘마실 길’ 걷기
새만금전시관∼격포해수욕장

《채석강에는 시간이 층층으로 쌓여있다. 몇 길 높이로 쌓아놓은 헌책()같은 바위 틈새에서 옛이야기를 찾아 읽으며 바다는 흐느끼다 낄낄거린다. 그 소리가 바다 위에 물거품으로 하얗게 깔린다. 바닷가 모래알들은 그 책장에서 떨어져 나온 글자들이다. 바람은 그들을 짜 맞추느라고 부산하게 뛰어다닌다. 하루 두 번씩 생각난 듯 다시 와서 그 책장에 숨겨놓았던 지난날들을 들추던 바닷물이 뒤를 돌아보지 않고 주춤주춤 수평선에게 끌려간다. 넘어가는 해는 황금빛 긴 꼬리로 바다 바닥을 번쩍번쩍 쓸고 있다. <김정희의 ‘격포에서’ 부분>》

전북 부안 변산은 바다와 들판 사이에 있다. 누에처럼 낮고 길게 엎드려 있다. 양쪽 옆구리가 모두 열고 닫힌다. 전동차 자동문 같다. 때론 왼쪽 문이 스르르 열리고, 때론 오른쪽 문이 덜커덩 열린다. 바깥쪽이 바다이고(외변산), 안쪽이 들(내변산)이다. 한쪽에선 파도가 어미 젖을 빠는 강아지들처럼 구물구물 달려들고, 그 반대편에선 곡식들이 우우우 자란다.

해안 절벽 바위는 잘게 썬 무채다. 시루떡이 켜켜이 겹쳐 있다. 수만 권의 책들이 가지런히 정돈돼 있다. 바다는 떡을 먹으러, 혹은 책을 읽으러 우르르 몰려왔다가, 스르르 물러간다. 바닷물은 칙칙하다. 멸치 젓국물 같다. 쪽빛이나 푸른 물은 ‘아득한 기억의 저편’에 있다. 더 이상 하늘을 담지 못한다. 개펄은 쪼글쪼글하다. 늙은 어머니 젖가슴이다. ‘폐경기 맞은 여인처럼(최광임 시인)’ 붉은 노을을 바라보고 있다.


게나 바지락들은 뻘 속에서 꼼지락거린다. 석기시대 사람들은 그곳의 조개들을 잡아먹고 살았다(대항리 패총). 소금밭을 일궜다. 거무튀튀한 밭에서 하얀 소금을 얻었다. 소금은 개펄이 육탈되어 남긴 사리다.

변산 안쪽 들판엔 기름진 논밭과 내소사 개암사가 있다. 절은 화장기 하나 없이 곱게 늙었다. 무명옷 차림의 농부들처럼 수수하다. 내소사 대웅전 단청은 무채색이다. 연꽃 창살무늬도 맨얼굴이다. 청동기시대 사람들은 그 곳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았다. 받침돌이 있는 남방식 고인돌 밑에선 돌칼 돌화살이 나왔다. 도대체 그 엄청난 바위(길이 6.4m 너비 5.12m 두께 0.69m)는 어디서 가져왔을까.

변산은 높지 않다. 기껏해야 해발 300∼500m대에서 머문다. 하지만 그 품에 바다와 들을 모두 품는다. 이 세상 온갖 어린 것들을 감싸 안는다. 바다와 들의 경계에서 꽃을 피운다. 산자락 밑에 생명을 키운다. 변산은 미륵보살이다.

전북 부안 변산 해안 따라 마실 길이 열렸다. 부안군과 사단법인 ‘우리 땅 걷기모임’(이사장 신정일)은 21일 변산 ‘마실 길(약 100km 예상)’중 제1코스 개통에 맞춰 걷기축제를 갖는다. 길은 새만금전시관에서 격포해수욕장까지 이르는 18km. 해안백사장 길과 호젓한 숲길이 수시로 번갈아 나타난다. 모래바닥은 말랑말랑하다. 나뭇잎 숲길은 푹신하다. 모래밭은 맨발로 걷고, 참나무 숲길은 콧노래를 부르며 걷는다. 마치 지리산 둘레길과 제주 올레길을 반반씩 섞어놓은 것 같다. 올레길보다 그늘숲이 많고, 둘레길에 없는 파도소리가 들린다. 짭조름한 바다냄새와 ‘쎄에∼’한 나뭇잎 냄새가 버무려져 콧속이 구수하다. 오르막이나 내리막도 심하지 않다.

길은 부안쪽 새만금방조제가 있는 곳에서부터 시작된다. 그곳에서 물막이 댐을 따라 33km를 거슬러 올라가면, 끝 지점에 군산이 있다. 새만금방조제는 올 12월에 전면 개방된다. 그때는 군산쪽 물막이 댐 33km를 거쳐 변산 마실 길까지 쭉 이어 걸을 수 있다. 바다를 지운 물막이 댐에서, 또 다른 길이 열리는 것이다.

모래사장이나 바닷가를 걷는 길은 약 25%. 나머지는 젊은 군경이 오가던 해안초소 길이다. 그곳을 지키던 군경들은 2007년 노무현 정부 시절 모두 철수하고 지금은 잡초만 무성하다. 아직도 초소와 초소를 연결하는 삐삐선이 곳곳에 남아 있다. 벙커와 초소엔 거미줄이 어지럽다. 얼룩무늬 시멘트벽도 군데군데 무너져 내렸다. 해안을 따라 이어진 철조망은 녹슨 채로 그대로 있다.

초소 길은 바다가 잘 보이는 곳을 따라 이어졌다. 경치가 빼어난 곳엔 어김없이 초소나 벙커가 나타난다. 변산해수욕장-고사포해수욕장 해안초소 숲길은 발밑에 파도소리가 간지럽게 밟힌다. 인동초가 덩굴손으로 나무를 타고 올라가 하얀 꽃을 피웠다. 소나무 참나무 숲이 무성하다. 한낮에도 그늘을 이뤄 제법 어둑하다. 산뽕나무의 까만 오디가 새콤달콤하다. 농가 재배 오디보다 작지만 맛은 강하다.

해안가 뾰족 바위 위에 묘 하나가 누워 있다. 도대체 저 바위 위엔 어떻게 올라가 산소를 썼을까. 망자는 말동무 하나 없이 얼마나 외로울까.

길섶엔 명아주 바랭이 미국산자리공 개망초가 지천이다. 보랏빛 엉겅퀴 꽃도 피었다. 피가 날 때 엉겅퀴 꽃을 짓이겨 바르면 금세 피가 ‘엉기면서’ 그친다. 그래서 이름도 엉겅퀴다. 푸른 꿀풀 꽃잎을 따서 혀끝에 대니 달콤하다. 벌들이 잉잉거리며 화를 낸다.

김보국 박사(41·전북발전연구원)는 “해안초소 길에 남아 있는 군 시설은 앞으로 국방부와 협의를 해야 하겠지만, 철거하기보다는 리모델링을 통해서 얼마든지 관광자원으로 활용할 수 있다고 본다. 길손들의 휴식처로 쓸 수 있고, 안내소나 전망대로도 안성맞춤이다. 커피나 음료를 공급하는 간이 휴게소 역할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고사포해수욕장을 지나면 해안사구가 나온다. 해안사구는 말 그대로 모래언덕. 바닷바람을 막아주고, 그 밑엔 지하수를 담아둔다. 사구의 붉은 해당화 꽃이 거의 지고 있다. 붉은 입술 같다. 그 대신 연분홍 갯메꽃이 하나 둘 피고 있다. 순비기나무 갯완두 수송나물 갯쇠보리도 보인다. 한 달에 한 번 그믐날엔 고사포해수욕장∼하섬의 바닷길이 갈라진다.

적벽강 해안절벽은 수사자를 닮았다. 언뜻 보면 수사자가 엎드려 있는 것 같다. 붉은 벽돌을 차곡차곡 쌓아 만든 수사자. 또 한 절벽은 수사자가 고개를 들고, 먼 곳을 한가롭게 바라보고 있는 모습이다. 어떻게 보면 ’세상에서 가장 큰, 붉은 혓바닥을 가진 짐승(박미라 시인)’ 같기도 하다.

마실 길은 적벽강 아래 모래밭을 지나 격포까지 1.5km가 이어진다. 적벽강은 중국의 소동파(1036∼1101)가 노닐던 적벽강의 모습과 닮았다고 해서 붙은 이름. 그 다음 닿는 곳이 1코스 끝 지점인 채석강이다. 채석강 역시 중국의 시선 이백(701∼762)이 강물 속의 달을 따려다가 빠져죽은 채석강과 닮은 곳. 바위가 뒤란 땔감처럼 켜켜로 쌓여 있다. 책으로 말하면 미국국회도서관 장서보다 많다.

‘또 한 페이지 철썩, 거대한 수평선 넘어오는/책 찍어내는 소리가 여전히 광활하다, 바다책/바다책, 바다책,/ 공부를 하지 않아도 되는 이 작은 각다귀들’ <문인수의 ‘바다책, 채석강’ 부분>

서해 바다는 짠하다. 젓갈 냄새 가득하다. 그 해안 길은 쪼글쪼글한 할머니의 뱃살이다. 늙은 아버지의 밭이랑 이맛살이다. 개펄은 주름지고 석탄 반죽처럼 질펀하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서편제 가락이다. 바다는 아득하다. 바람은 축축하다.

서해 노을은 먹먹하다. 바다는 짐승처럼 운다. 붉은 노을을 치마폭에 싸안고 소리죽여 흐느낀다. 바위에 지악스럽게 달라붙은 따개비들도 밤에는 손을 놓고 엉엉 운다.

변산은 바다를 안는다. 자꾸만 머리를 부비며 달려드는 바다를 쓰다듬는다. 들판의 곡식들은 바다소리를 듣고 자란다. 그 흐느낌을 들으며 익는다. 결코 쓰러지지 않는다. 채석강의 책 읽는 소리를 듣고 깨우친다. 적벽강 수사자의 기개를 배운다.





▼변산 우반동, 허균-유형원 발자취 서린 곳▼

허균(1569∼1618)은 20여 년 관직생활 동안 유배 3번, 파직 6번을 당했다. 사명당 등 당시 스님들과 허물없이 지내는가 하면, 서자 출신들의 뒷바라지를 거리낌 없이 해줬다. 남녀 관계도 자유분방했다. 그는 부안을 좋아했다. 1601년 7월 부안 기생 매창(1573∼1610)을 처음 만난 게 결정적이었다. 1608년 가을 공주목사에서 파직된 뒤에도 곧 바로 변산 우반동에 내려와 매창을 만났다. 그리고 그곳에서 혁명을 꿈꿨다. 소설 ‘홍길동전’의 이상향 율도국 모델은 바로 변산 앞바다에 있는 섬 ‘위도’였다. 그는 매창에게 편지를 보내 ‘변산으로 돌아가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해 미안하다고도 했다.

허균이 죽은 35년 후인 1653년, 서울에 있던 반계 유형원(1622∼1673)이 우반동에 내려왔다. 그의 나이 서른하나. 그는 그곳에서 책 1만 권을 쌓아놓고, 죽을 때까지 오로지 글만 썼다. 실학사상의 금자탑 반계수록은 그렇게 태어났다.

1780년 연암 박지원(1737∼1805)은 소설 양반전에서 반계 유형원을 언급한다. 주인공 허생에게 누군가 ‘왜 벼슬을 하지 않느냐’고 묻자 허생은 대답한다. “군량을 조달할 만한 역량을 지닌 반계 유형원이라는 이도 산야에 들어가 초연하게 사는데…”

우반동(현 우동마을)은 변산 동남쪽의 유천도요지(고려자기 터) 인근이다. 산으로 빙 둘러싸였고 가운데가 들판이다. 앞은 곰소만 바다이다.

변산 마실 길은 우반동을 지난다. 전나무 숲길의 내소사, 백제부흥운동의 근거지 개암사와 울금산성도 거친다. 꽝꽝 소리 내며 타는 꽝꽝나무 군락지와 미선나무, 후박나무군락지, 고인돌군도 지난다. 부안군은 마실 길 100km 전 코스를 연내에 마무리할 예정이다.

|트래킹 정보|

# 교통
▲승용차=서해안고속도로→부안 나들목이나 줄포 나들목→30번 국도→부안→새만금전시관, 호남고속도로→장성 분기점→고창 분기점→줄포 나들목→30번 국도→부안→새만금전시관

▲고속버스=서울강남터미널 부안행

# 먹을거리

▲백합죽=계화회관(063-584-3075)▲한식=당산마루(063-581-1626),옛맛촌가든(063-583-9941) ▲꽃게장백반=수풍회관(063-583-9966), 칠산꽃게장(063-581-3470) ▲바지락죽=원조바지락죽 (063-583-9763), 풍차백합바지락큰집(063-583-3883) ▲젓갈백반=곰소궁(063-584-1588)
 
동아일보 2009-06-19
김화성 전문기자 mar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