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기의 즐거움 20선]<15>섬을 걷다
《“대륙이 하나의 섬인 것처럼 아무리 작은 섬도 섬은 그 자체로 하나의 대륙이다… 나는 머지않은 시간에 이 나라 대부분의 섬들이 사라질 것을 예감한다. 이미 많은 섬들이 육지와 연결되었다. 다리가 놓이면 섬은 더 이상 섬이 아니다… 끝내는 소멸해버릴 섬들, 섬의 풍경들. 그 마지막 모습을 포획하기 위해 다시 섬으로 간다.”》
바다냄새 물씬 ‘진짜 섬’ 100곳 탐방
한국에는 4440여 개의 섬이 있다. 이 중 유인도는 500여 개. 시인인 저자는 10년 동안 ‘사람 사는 모든 섬’을 걷는다는 계획을 세운 뒤 3년 동안 100여 개의 섬을 걸었다. 이 책은 그가 거제 통영 완도 신안 군산 제주 강화 여수 대천의 섬들을 찾아다닌 기록이다. 섬을 걷는 정취와 바다 냄새, 정겨운 사람들의 이야기가 함께 녹아 있다.
경남 거제시의 지심도는 장승포항에서 5km 떨어져 있다. 멀지 않은 거리지만 뱃길이 끊기면 섬은 고립된다. 섬의 유일한 운송수단은 짐수레를 매단 오토바이다. 고작 열다섯 채의 집이 있는데 대부분 민박으로 생계를 꾸린다.
시인이 묵은 민박집 주인은 10여 년 전 우연히 여행을 왔다가 빈집을 사서 고치고 일부는 새로 지어 이곳에서 살게 됐다고 한다. 외지에서 들어온 사람들은 대부분 이런 경로를 거쳤다. 동백꽃이 만개할 무렵이면 하루에 1000명의 관광객이 몰려오지만 그 외는 한적한 편. 차가 없으니 걷기도 좋다. 동백 숲으로 난 흙길을 걷는다. 해안절벽에 가까워질수록 파도 소리가 거세진다.
전남 완도의 여서도는 육지에서 멀리 떨어진 낙도다. 이곳에서는 돌집들과 높고 거대한 돌담들을 볼 수 있다. “이 섬은 돌과 바람의 나라다. 오래된 삶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섬은 마치 사라진 잉카나 이스터 섬의 유적처럼 경이롭다”고 저자는 말한다.
가파른 비탈에 서 있는 집들 중 반은 돌집. 돌담에 둘러싸인 마을은 거대한 성곽도시 같아 보인다. 돌담길을 따라 걸으면서 저자는 대부분 폐가가 된 쓸쓸하고 적막한 풍경 속에서 사색에 잠기거나 등대로 만나는 길목에서 고래의 형상을 빼닮은 바위를 보며 반가워하기도 한다.
제주도 주변에도 가파도, 마라도, 추자도 등 가볼 만한 섬이 많다. 가파도는 섬 전체가 수면과 평행으로 보일 정도로 낮으며 산이나 언덕이 없다. 저자는 “언뜻 보면 물에 잠길 듯이 위태롭지만 사람살이 내력은 신석기시대까지 이어진다”고 소개한다. 제주도 일대 180여 기의 고인돌 중 135기가 가파도에 있다. 이곳은 포구에서부터 성게 향이 가득하다. 해녀들이 성게를 쪼갠 뒤 작은 숟가락으로 성게알을 긁어내는 장면을 만날 수 있다. 섬에는 두 개의 큰길이 있지만 저자는 여기서 자동차는 전혀 위협적인 존재가 못된다고 했다. 속도가 붙기도 전에 길이 끝나기 때문이다. 포구 선착장 부근의 패총 흔적을 보면서 상념에 잠기기도 한다.
“시간은 사람이 먹고 남긴 쓸모없는 조개껍데기들, 쓰레기마저 귀중한 유물로 만드는 신비한 능력을 지녔다… 아무리 하찮게 여겨지는 삶도 시간의 주재하에서는 하찮은 것이 아니다. 삶의 어느 사소한 것 하나도 돌이켜보면 소중하지 않은 것이란 없다.”
정신없이 살면서 잊혀져 가는 것들의 소중함을 돌이켜보는 것이 섬을 여행하고 걷는 즐거움일 것이다. 여행지에 대한 정보 소개보다는 그곳을 둘러본 저자의 사색과 감상 위주로 구성돼 있다. 섬 여행을 떠나기 전에 참고해도 좋을 것 같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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