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기의 즐거움 20선]<14>우리는 걷는다
◇우리는 걷는다/윤병용 지음/효형출판
《“그 긴 고난의 순례를 통해 어리다고만 생각했던 대원들이 힘든 상황을 극복하며 당당하고 늠름하게 성장해 가는 것이 더없이 자랑스러웠습니다. 나약함은 간데없고 자신감에 넘쳐 활기차게 생활하는 모습에서 제가 바라던 청소년 상을 볼 수 있었습니다. 공동체 생활을 하며 어려움이 닥쳐도 도전하며 전진하는 모습에서 이들의 잠재력을 보았습니다.”》
중학생 제자 10명과 국토횡단 도전
이 책의 저자는 중학교 과학교사다. 그는 학생들을 데리고 1995년부터 10년 동안 4300km가 넘는 국토순례를 다녀왔다. 저자는 그중에서 2004년 여름 10명의 아이와 함께 강원 고성군 화진포에서 경기 파주시 임진각까지 350km에 걸친 10박 11일의 여정을 이 책에 담았다.
출발 전 주위에서는 아이들을 보며 혀를 끌끌 찼다. “저 몸으로 힘든 길을 어떻게….” 참가한 아이들의 절반이 과체중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운동장을 서른 바퀴씩 돌고 산을 오르는 사전 훈련을 통해 아이들은 조금씩 달라졌다. 저자는 여정을 성공리에 마칠 자신이 있었다.
8월 5일 드디어 출발. 화진포의 아름다운 풍경을 뒤로 하고 오전 4시 반에 고난의 행군을 시작했다. 하지만 출발한 지 3시간, 10여 km만을 걸었을 뿐인데 아이들은 “어깨가 아프다” “배가 고프다”는 말을 쏟아냈다. 사전 훈련을 열심히 했지만 실전은 달랐다. 계곡에서 물놀이로 아이들을 달랬다.
이튿날 강원 고성군과 인제군 사이의 진부령을 넘고 나서야 아이들은 자신감을 갖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어렵지 않네요.” “임진각까지 끄떡없겠어요.”
긴 도보 순례 여정에서 가장 큰 걱정은 아픈 사람이 생기는 일이다. 출발 3일째가 되던 날 장대비가 내리는 와중에 다리를 절룩거리는 대원이 생겼다. 그렇다고 행군을 멈출 수는 없었다. 저자는 이런 상황에 대한 자신의 마음가짐을 이렇게 적었다.
“낙오자를 예방하려면 지도자의 상황 판단이 중요하다…낙오하면 고생한 보람도 없이 참가하지 않은 것보다 못한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에 기상 상태, 이동거리, 건강 상태 등을 세심하게 관찰해야 한다.”
350km의 길을 걸으며 학생들은 많은 걸 접했다. 강원 화천군 파로호 새벽 공기의 싸한 향기, 경기 연천군 재인폭포에 얽힌 전설, 음료수와 옥수수를 건네주는 따뜻한 시골 인심과 분단된 국토의 아픔을 온몸으로 느꼈다.
여정이 막바지에 이르자 아이들은 변했다. 겉으로는 살이 빠지고 근육이 단단해졌다. 힘든 여정을 이겨내며 마음도 굳건해졌다. 대원 가운데 한 아이는 선생님들이 모두 싫어하는 문제아였다. 그 아이가 순례를 자원했을 때 저자도 ‘단합을 깨지 않을까’하는 생각에 승낙을 망설였다. 그러나 아이는 저자의 따뜻한 배려 속에 달라졌다. 순례 중 무거운 물건을 자기 배낭에 담고, 힘들어하는 아이들의 짐까지 대신 들어주는 등 솔선수범했다.
저자가 나중에 고교 3학년이 된 그 아이를 만났을 때 그는 더는 문제아가 아니었다. 저자가 “공부 열심히 하고 있느냐”고 묻자 그는 “계속 올라가고 있다”고 자신 있게 대답했다.
드디어 여정의 마지막 날인 8월 15일, 한 명의 낙오자도 없이 대원들은 임진각에 도착했다. 저자는 학생들에게 말했다. “장하다. 너희는 해냈다…무한한 가능성이 있는 너희에게 도전하고 실천할 때 희망이 현실이 된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싶었다.”
이 책은 국토순례의 교본으로 손색이 없다. 긴 여행에 필요한 준비물, 체력 소모를 최대한 줄이며 효율적으로 걷는 법, 안전하고 시설 좋은 야영지 등 다양한 정보가 들어 있어 국토순례를 계획하는 이들에게 유용하다.
민병선 기자 bluedo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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