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대문알프스종주(안산ㆍ백련산ㆍ북한산ㆍ인왕산 연계산행)' 코스
독립문역→독립문→독립공원→舊서대문형무소→이진아도서관→우수조망명소→안산 정상(무악동봉수대지)→안천약수터
→메타세콰이어숲→홍제천(물레방아)→홍연교→서대문 문예회관→홍연초교→백련산 은평정→매바위→녹번역→JR아파트
→장군바위→헬기장→탕춘대성 암문→옥천암(보도각 백불)→옥천소공원→홍지문과 오간대수문→탕춘대성(인왕산 성곽)
→기차바위능선→인왕산 정상(삿갓바위)→범바위 초소→인왕천약수터→인왕산길→단군성전→사직공원→사직단→경복궁역
누군가가 '누우면 죽고, 걸으면 산다(臥死步生)'고 했다.
맥가이버는 '산 따라 강 따라 길 따라' 걷는 것을 죽고사는 차원이 아닌 즐기는 차원에서 걷는다.
즉, 좋은 길을 걷다가 새로운 환경이나 상황, 사람을 만나면서 알게 되고, 느끼고, 감동 받고, 깨닫는 것을 즐긴다.
맥가이버가 '때론 함께, 때론 홀로' 산행이나 여행, 도보를 하면서 후기를 주로 사진으로 작성함은
인간의 만남이 유한함을 알기에 어떤 연유로 비록 언젠가 헤어지더라도 추억 속에서 함께 하고자 함이고,
또 하나 이유가 있다면 걸으면서 보고 느낀 것을 글로 다 표현치 못하는 무능함에 있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를 더 든다면 누군가가 같은 길을 걷고자 할 때 작은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입니다.
☞ '서대문알프스종주(안산ㆍ백련산ㆍ북한산ㆍ인왕산 연계산행)' - 4부를 시작하며...
▼ 17시 05분 - 홍지문
홍지문 및 탕춘대성 弘智門 및 蕩春臺城
지정번호 :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33호
지정연월일 : 1976년 6월 23일
시 대 : 조선시대
규모·양식 : 일원
소 유 자 : 국유
소 재 지 : 서울특별시 종로구 홍지동 산 4
홍지문과 탕춘대성은 서울 도성과 북한산성을 연결하기 위하여 쌓은 것이다.
홍지문은 한성(漢城)의 북쪽에 있는 문이므로 한북문(漢北門)이라고도 하였으나, 숙
종이 친필로 '弘智門'이라는 편액을 하사하여 달면서부터 이것이 공식적인 명칭이 되었다.
홍지문은 숙종 41년(1715)에 건축되어 1921년까지 탕춘대성문으로 그 역할을 다하였으나
1921년 홍수로 붕괴되어 50여년간 방치되어 왔다.
이에 서울특별시에서 1977년 탕춘대성과 함께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복원하였다.
현판은 고 박정희 대통령이 쓴 것이다.
화강암으로 중앙부에 월단(月團, 아치)이 꾸며지고, 그 위에 단층 문루가 세워져 있다.
석축 윗 부분 둘레는 여장(女牆)이 있고, 문루는 평면이 40㎡로 우진각 지붕이다.
홍지문 북쪽으로 홍제천(모래내, 사천)을 가로질러 홍지문과 같이 설치하였던 오간대수문(五間大水門)도
1921년에 홍수로 유실되었으나 1977년 홍지문 복원 때
길이 26. 72m, 폭 6.8m, 높이 5.23m, 수구 폭 3.76m, 수구 높이 2.78m의 5간의 홍예교(虹霓橋)로 복원하였다.
탕춘대성은 인왕산 동북쪽에서 시작하여 북쪽의 능선을 따라 내려가다가
사천을 지나 북한산 서남쪽의 비봉 아래까지 연결하여 축성한 산성이다.
이 산성의 명칭을 탕춘대성이라고 한 것은
현재 세검정이 있는 동쪽 약 100여m 되는 산봉우리에 탕춘대(蕩春臺)가 있었던 것에서 연유한 것이며,
한성의 서쪽에 있다고 하여 서성(西城)이라고 하였다.
왜란과 호란 속에서 서울이 함락되며 갖은 고초를 겪은 조선왕조는 전쟁이 끝난 후
국방은 물론 유사시에는 수도를 방위하기 위한 온갖 노력을 경주하였다.
효종(1649∼1659 재위), 현종(1659∼1674 재위)을 거쳐 숙종 때에 이르러서는 수도방위에 더욱 치중하였다.
숙종은 재위 30년(1704) 3월부터 도성 수축공사를 시작하였고 이 공사는 6년 후인 숙종 36년(1710)까지 계속되었다.
도성 수축공사를 끝낸 숙종은 왕 37년(1711)에는 북한산성을 축성하였고 다시 탕춘대성을 축조하게 되었다.
이 탕춘대성을 축조하자는 논의는 이미 숙종 28년(1702)에 신완(申琬)이 제의하였다.
그후 탕춘대성은 숙종 44년(1718) 윤8월 26일부터 축성하기 시작하여 10월 6일까지 40일간 성 전체의 약 반을 축성하고
일단 중지하였다가 다음해 2월부터 다시 축성하여 약 40일 후에 완성하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또한 탕춘대성 전체의 길이는 약 4km였음도 알 수 있다.
성내에 연무장(鍊武場)으로 탕춘대 터(오늘날 세검정초등학교)에 연융대(鍊戎臺)를 설치하는 한편,
비상시를 대비하여 선혜청(宣惠廳) 창고와 군량창고인 상·하 평창(平倉)을 설치하였다.
그 후 탕춘대성의 축성과 함께 그 성안을 총융청(摠戎廳) 기지로 삼고, 군영도 배치하였다.
탕춘대성은 축성을 담당했던 관아나 또는 축성역, 축성 방법, 축성 경비 등에 관해서는 일체의 기록을 찾아볼 수 없으므로
자세한 내용을 알 수 없으나 다른 성의 축조와 마찬가지로 군문(軍門)에서 담당하였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현존하는 탕춘대성은 도성이나 북한산성과 같이 주 성벽과 여장(女墻)을 쌓았으며
동쪽에서 서쪽을 향해 적을 공격할 수 있도록 일정한 간격으로 성구(城口)를 뚫어 놓았다.
임진왜란 및 병자호란 이후 수도 방위를 위하여 1719년에 완성한 성곽 서울 도성과 북한산성을 연결하기 위해 쌓은 것이다.
1715년(숙종 41)에 서울의 도성과 북한산성의 방어시설을 보완하기 위해
홍지문(弘智門), 오간수문(五間水門), 탕춘대성(蕩春臺城)을 건립하였다.
홍지문은 서울의 북서쪽 방어를 위한 탕춘대성의 출입문으로 한북문(漢北門)이라고도하며
홍지문에 연결된 탕춘대성은 서쪽에 있어서 서성(西城)이라고도 한다.
원래 탕춘대성이 있는 세검정 일대는 삼국시대부터 한산주(漢山州)로서 군사상 중요한지역이었다.
탕춘대성은 인왕산 정상의 서울 성곽에서부터 홍지문을 거쳐 수리봉까지 이어진 4km 정도이다.
-서울문화재홈페이지-
▼ 오간대수문
▼ 17시 07분 - 탕춘대성의 인왕산 구간이 시작되는 지점...
▼ 탕춘대성의 인왕산 성곽
▼ 민달팽이는 집이 없어도 불행하다고 생각하지 않겠지...
▼ 상명대 너머로 비봉능선이...
▼ 내부순환도로
▼ 북악산
▼ 17시 53분 - 전망바위
▼ 기차바위와 인왕산 정상
▼ 18시 00분 - 기차바위 능선
▼ 18시 07분 - 철계단을 올라서고...
▼ 18시 11분 - 인왕산 정상으로..
▼ 18시 17분 - 인왕산 정상
▼ 18시 22분 - 이제 하산...
▼ 범바위구간은 아직도 보수공사중...
▼ 18시 31분 - 인왕천약수터 방향으로...
▼ 18시 38분 - 인왕천약수터
▼ 18시 47분 - 인왕산길로 내려서서...
▼ 인왕산길을 따라...
▼ 18시 51분 - 삼거리
▼ 19시 01분 - 단군성전
▼ 사직공원으로...
▼ 19시 04분 - 사직공원
▼ 19시 06분 - 사직단
▼ 19시 11분 - 사직단에서 '서대문알프스종주(안산ㆍ백련산ㆍ북한산ㆍ인왕산 연계산행)'를 마무리하는 단체사진을 찍고...
▼ 이곳에서 뒤풀이를 하고...
▼ 광화문 교보빌딩에 걸린 글귀 - 네가 누군지 안다 -
☞ 이것으로 '서대문알프스종주(안산ㆍ백련산ㆍ북한산ㆍ인왕산 연계산행)'를 마친다.
-▥☞ 1부[독립문역→독립문→舊서대문형무소→이진아도서관→우수조망명소→무악동봉수대지→안천약수터]는 여기를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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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부[홍지문→기차바위능선→인왕산(삿갓바위)→인왕천약수터→단군성전→사직공원→사직단→경복궁역]]는 여기를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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