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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도보여행 후기☞/☆ 서울곳곳을 찾아서

[20101226]발도행의 송년도보 및 '서울의 걷기 좋은 숲길' 출판기념회- 3부

by 맥가이버 Macgyver 2010. 12.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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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년 12월 26일(일)  
발도행의 송년도보 및 '서울의 걷기 좋은 숲길' 출판기념회에 다녀오다.
   

 

누군가가 '누우면 죽고, 걸으면 산다(臥死步生)'고 했다.

맥가이버는 '산 따라 강 따라 길 따라' 걷는 것을 죽고사는 차원이 아닌 즐기는 차원에서 걷는다.

즉, 좋은 길을 걷다가 새로운 환경이나 상황, 사람을 만나면서 알게 되고, 느끼고, 감동 받고, 깨닫는 것을 즐긴다.

 

 맥가이버의 '발도행의 송년도보 및 서울의 걷기 좋은 숲길 출판기념회' 이야기 
 

 '발도행의 송년도보 및 '서울의 걷기 좋은 숲길' 출판기념회' 코스

 

홍제역→홍은4거리→풍림아파트→백안정→실락어린이공원→휴게정자→장군바위(조망명소)→헬기장→탕춘대성 암문

→옥천암(보도각 백불)→홍지문(오간대수문)→세검정→불암(佛岩)→현통사→백사실(月巖ㆍ白石洞天)→응선사

→산모퉁이→창의문(자하문)→시인의 언덕→인왕스카이웨이→황학정(등과정터)→단군성전→사직공원→경복궁역 

   

오늘은 도보카페 '발견이의 도보여행'의 정기도보 겸 송년도보를 한단다.

홍제역에서 장군바위, 탕춘대성과 백사실 계곡, 그리고 인왕산길을 거쳐 사직공원에서 마치는 일정으로...

그리고 정기도보 겸 송년도보가 끝나면 인근 식당에서 '발견이의 도보여행' 카페의 송년회와

카페지기 발견이(윤문기)님의 '서울의 걷기 좋은 숲길' 출판기념회가 있다고 한다.

 

발견이님은 2년 전에 출판한 책 ‘길따라 발길따라 서울편 ’으로 인해 저자와 전화통화를 하면서 알게 되었고,

‘발견이의 도보여행’ 카페에는 초기에 가입(가입인사란 12번째)을 하였지만 사정상 함께 걷지 못하였었는데...

지난 여름(7월 27일)에 안내산악회를 따라 홍천 백우산 산행과 용소계곡 트레킹을 하다가

'발견이의 도보여행' 님들과 용소계곡을 트레킹 하던 발견이님과 뜻밖의 만남을 하고...

지난 가을(10월 10일)에 남한산성 길에서 발도행과 첫걸음을 하였으니 오늘이 두 번째 걸음이다.

 

홍제역에서 만난 발도행 회원들은 홍은4거리를 거쳐 풍림아파트 옆 실락어린이공원을 지나 북한산공원 산길로 들어서고...

  장군바위를 거쳐 헬기장에 올라 북한산을 조망하고, 탕춘대성 암문을 지나 탕춘대성 성곽을 따라 옥천암(보도각백불)으로 내려서고...

  홍지문(오간대수문)을 지나 세검정과 불암(佛岩) 각자바위를 거쳐 신영교 앞 편의점 골목으로 접어들어 백사실 계곡방향으로 향하고...

  일붕 서경보 선사가 한때 머물렀다는 현통사를 지나 이항복의 별장? 유적지와 월암(月巖), 백석동천(白石洞天)의 각자바위를 둘러보고...

  카페 산모퉁이를 지나 창의문(자하문)을 거쳐 '시인의 언덕'에 오르고, 인왕스카이웨이를 따라서 등과정터를 지나 단군성전까지 간 후...

  사직공원으로 내려서서 사직단 정문 부근 '만남의 쉼터'에서 정리운동을 하고, 이후 경복궁역까지 걸어거서 송년도보 일정을 모두 마친다.

  이후 발도행 카페지기 발견이님의 '서울의 걷기 좋은 숲길' 출판기념회 및 발도행의 송년회가 '돈돈돈'에서 성황리에 진행되었다.

   '모든 만남은 걷고 있을 때 이루어진다'라는 말이 있는데,
길을 걷다보면 새로운 풍광을 보게 되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게 되고, 새로운 경험을 하고, 새로운 것을 알게 된다.
 
'발도행의 송년도보 및 '서울의 걷기 좋은 숲길' 출판기념회'
자세한 이야기는 맥가이버의 블로그 사진후기로 대신한다.
   
맥가이버가 '때론 함께, 때론 홀로' 산행이나 여행, 도보를 하면서 후기를 주로 사진으로 작성함은
인간의 만남이 유한함을 알기에 어떤 연유로 비록 언젠가 헤어지더라도 추억 속에서 함께 하고자 함이고,
또 하나 이유가 있다면 걸으면서 보고 느낀 것을 글로 다 표현치 못하는 무능함에 있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를 더 든다면 누군가가 같은 길을 걷고자 할 때 작은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입니다.
  
 
 '발도행의 송년도보 및 '서울의 걷기 좋은 숲길' 출판기념회' - 2부를 시작하며...

 

▼ 14시 13분 - 세검정과 차일암

 

 

세검정터 [洗劒亭] 
서울특별시 종로구 신영동(新營洞)에 있는 6각 정자.
 
지정종목  시도기념물 
지정번호  서울기념물 제4호 
지정연도  1976년 11월 11일 
소재지  서울특별시 종로구 신영동 168-6  
시대  조선 
종류  정자  
    
1976년 11월 11일 서울특별시기념물 제4호로 지정되었다.

예로부터 널리 알려진 정자로 이것을 중심으로 한 일대(부암동·홍지동·신영동·평창동)를 통틀어 가리키는 대명사로도 쓰인다.

 

일찍이 연산군이 수각(水閣)과 탕춘대(蕩春臺) 등을 짓고 놀았다고도 하는데,

숙종 때에 북한산성·탕춘대성을 쌓고 부근을 서울의 북방 관문으로 삼으면서

주둔 군인들의 위락장소로 변하였으며, 시인·묵객 등이 즐겨 찾는 명소가 되었다.

 

1623년 인조반정(仁祖反正) 때 거사 동지인 이귀(李貴)·김류(金瑬) 등이

광해군 폐위 문제를 의논하고 칼을 씻은 자리라고 해서 ‘세검정’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북악산(北岳山)·남장대(南將臺)·비봉(碑峯) 등에 둘러싸이고 사천(沙川)이 계곡을 흐르는 풍치지구(風致地區)이다.

인조반정 때까지만 해도 사람이 살지 않는 곳이었으나

그후 간장 담그는 기술자와 창호지 만드는 기술자를 상주케 하여

‘메주가마골’이라는 별칭도 생겨났으며 장판지를 만들던 조지서(造紙署) 터는 아직도 남아 있다.

 

한말에는 이곳에 신식 군영(軍營)을 설치하였고, 또한 광목을 바래던 표백서(漂白署)도 있었다.

8·15광복 전부터 앵두·능금·자두 등의 산지였으나 근년에는 택지가 조성되어

많은 주택이 들어섰고 평창동∼정릉(貞陵)을 연결하는 북악터널이 있다.

 

[출처] 네이버 백과사전

 

 

세검정 터(洗劍亭 터)

 

지 정 번 호 : 서울특별시 기념물 제4호

지정연월일 : 1976년 11월 11일

시 대 : 조선 연산군 6년∼11년(1500∼1505)경 창건으로 추정, 영조 23년(1747), 1977년 5월 복원

규 모/양 식 : 건평 5.22평, 정면 3칸 측면 2칸, 단층 겹처마 팔작지붕

재 료 : 석조 기단, 목조

소 유 자 : 국유

소 재 지 : 서울특별시 종로구 신영동 168-6

 

세검정은 창의문(彰義門) 밖 탕춘대(蕩春臺) 옆에 있던 정자였다.

이 지역은 도성의 서북쪽 밖 삼각산과 백악 주변의 경관이 아름다운 곳이며,

도성과 북한산성의 중간 지대로서 도성의 북방 인후(咽喉)가 되는 요충지이기도 하다.

 

이 정자는 연산군 6년∼11년(1500∼1505)경 유흥을 위한 수각(水閣)으로 세웠다고도 하고,

일설에는 숙종 때 북한산성을 수축하고 수비하기 위하여 병영을 설치하였는데 이 곳에 있는 군인들의 쉼터로 세운 것이라고도 한다.

 

광해군 15년(1623) 이귀(李貴), 김류 등이 광해군의 폐위를 의논하고 이곳 사천(沙川, 모래내ㆍ홍제천) 맑은 물에서 칼을 씻었으므로

 '세검정'이라 이름하였다 하는데, 원래 세검(洗劍)이란 칼을 씻어서 칼집에 넣고 태평성대를 맞이하게 되었다는 뜻으로

'세검정'은 인조반정을 의거로 평가하여 이를 찬미하는 상징을 가졌다.

 

영조 23년(1747)에는 총융청을 이곳에 옮겨 경기 북부와 서울의 방비를 엄히 하는 한편, 북한산성의 수비까지 담당하게 하던 곳이다.

총융청을 이곳으로 옮기면서 군사들이 쉬는 자리로 정자를 지은 것이 바로 세검정인데,

당시 총융청 감관으로 있던 김상채(金尙彩)가 지은 《창암집(蒼巖集)》에는, 육각정자로서 영조 23년(1747)에 지어졌다고 적혀 있다.

그런데,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된 겸재 정선의 <洗劍亭圖>에는 누 아래로 기둥이 높직하게 서있는 누각 형식의 건물로

도로쪽을 향하는 면에는 낮으막한 담을 돌렸고, 입구에는 일각문을 두었으며,

 정자의 측면으로는 편문을 두어 개울로 내려갈 수 있도록 그려져 있으나 현재 이 시설물은 없다.

 

세검정은 1941년 부근에 있던 종이공장의 화재로 소실되어 주초석 하나만 남아 있던 것을 1977년 5월에 복원하였다.

복원은 정선의 <세검정도>를 참고하였다고 한다.

복원 당시 도시계획선에 저촉되어 원위치에서 홍제천 상류로 약 40m 이전 복원키로 하였으나

원위치에서 주초 자리가 드러나게 되어 도시계획선을 변경하고 원위치에 복원하게 되었다.

 

복원된 정자는 서남향을 하였는데, 자연암반을 기단으로 삼아 가운데 칸이 넓고 양 협칸이 좁은

정면 3칸, 측면 1칸에, 개천쪽 서남쪽으로 가운데 칸 1칸을 내밀어 '丁'자형 평면을 이루고 있다.

 

암반 위에 높이가 다른 10개의 4각 장초석을 세우고 그 위에 원기둥을 세우고

바닥에는 우물마루를 깔았으며, 둘레에는 '亞'자 난간을 돌렸다.

 건물 북쪽 협칸에는 밖으로 계단을 설치하여 도로에서 오르내리도록 하였다.

 

옛날에는 개천쪽으로 돌출된 1칸 난간에 기대어 바라보는 경관은 절경을 이루었으리라고 짐작된다.

기둥 사이에는 문을 설치하지 않고 개방되었으며, 기둥머리는 익공계의 간결한 수법으로 결구하였으며

겹처마, 팔작지붕 건물로 단청을 하지 않았다.

 

이 부근에는 주택이 들어서고 정자 옆으로 도로가 나 있어 옛날의 운치있던 분위기는 많이 없어졌다.

조선시대에는 《왕조실록》이 완성된 뒤에는 이 곳 세검정에서 세초(洗草, 史草를 물에 씻어 흐려 버리는 일)하였으며,

장마철 물이 불어나면 해마다 도성 사람들이 이곳에 와서 물구경을 하였다고 한다.

 

이 정자는 자연과 조화를 이루도록 계획하여 배치한 점, 안정감을 느끼도록 간잡이를 하여 평면 구성을 한 점,

알맞은 부재의 크기를 사용하여 건물의 비례와 리듬을 살린 점에서 한국 건축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한다.

 

- 출처 : 서울문화재 홈에서 -

 

 

 

 

▼ 14시 16분 -

 

 

 

 

▼ 14시 21분 - 일붕선원 입구에 놓인 불암(부처바위) / 일붕조사문

 

일붕 서경보 [一鵬 徐京保, 1914.10.10~1996.6.25]  

한국의 승려이자 불교학자이다.

1932년 출가하였으며, 1950년 동국대학교 불교학과를 졸업하였다.

이후 동아대학교·동국대학교 등에서 교수를 역임하였다.

해외포교에 주력하였으며, 1988년에는 대한불교 일붕선교종을 설립하여 종정에 오르고,

1992년에는 세계불교법왕청을 설립하고 초대 법왕이 되었다.

법명은 일붕(一鵬)이다. 제주도 서귀포에서 출생하였다.

1932년 출가하여 구례 화엄사(華嚴寺), 완주 위봉사(威鳳寺), 서울 개운사(開運寺) 등에서 공부하였다.

1944년 일본에 가서 교토[京都]의 임제종 임제전문학교(臨濟專門學校)에서 수학하였다.

귀국 후 다시 동국대학교 불교학과에 입학하여 1950년 졸업하였다.

1953년 해인대학(지금의 경남대학교)을 비롯하여 동아대학교·동국대학교 등에서 교수를 역임하였다.

이후 해외포교에 주력하는 한편, 제4공화국의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

제5공화국의 국가보위입법회의 입법의원으로 참가하였다.

1988년에는 조계종에서 갈라져 나와 대한불교 일붕선교종(一鵬禪敎宗)을 새로 설립하고 종정(宗正)에 올랐으며,

1992년에는 세계불교법왕청을 설립하고 초대 법왕이 되었다.

 

저서에 《불교성전(佛敎聖典)》《불교사상교양전집》 등이 있다. 국민훈장 동백장을 수여받았다.

[출처] 네이버 백과사전

 

 

[불암(佛岩)] 
   일붕 서경보 스님의 일붕선원 입구에는 불암(佛岩)이라 씌여진 표석이 있다. 
   표석 이면에 쓰기를 “향간(鄕間) 전설(傳說)에 이 돌은 부처바위라고 전해 왔다.

오랫동안 땅속에 매몰돼 왔다 이제 동민 유지들이 다시 일으켜 세웠다.
 

 

 ▼ 14시 22분 - 신영교 앞 훼미리마트 골목으로...

 

▼ 14시 25분 - 백사실계곡 방향 표시

 

 

▼ 인왕산

 

 

▼ 14시 27분 - 현통사

 

▼ 삼각산 현통사 - '현통사는 일붕선교종단 소속의 절이다'  

 

 

삼각산 현통사 일주문 좌우 주련에는...

 

入此門來 莫存知解(입차문래 막존지해) 無解空器 大道成滿(무해공기 대도성만)

'이 문에 들어오거든 알음알이를 피우지 말라. 알음알이 없는 빈 그릇이 큰 도를 이루리라.'라고 쓰여 있는데...

 

 이는 사찰의 일주문이나 해탈문 기둥에서 볼 수 있는 경책의 글귀로,

'각자가 본래심의 깨달음 문으로 들어가고자 한다면, 세상에서의 알음알이나 사량 분별심이 없도록 하라!' 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런데 어느 절에는  

 

入此門來(입차문래) 莫存知解(막존지해) - '來' 를 '內' 로 표기한 곳도 있고...

 

도차문래(到此門來) 막존지해(莫存知解) - '入' 를 '到' 로 표기한 곳도 있고...

 

 

▼ 일붕애국시

 

▼ 대웅보전, 칠성각, 제월당...

 

▼ '제월당'의 月자가 누워있다.

 

 

 

 

 

▼ 14시 29분 - 백사실계곡으로...

  

 

 

 

 

 

 

 

 

 

 

 

 

 

  

 

 

 

▼ 건너편 바위에는...

 

▼ 월암(月巖)이라고 음각된 바위가...

 

▼ 월암 - 누구의 호일까? 아니면 달을 바라보는 망월대인가?

 

▼ 사직터널 부근(홍난파 가옥) 월암동에 살았던 월암 남종현과 관련이 있을까?

 

 

▼ 14시 43분 - 출발...

 

 

 

 

 

 

 

▼ 백석동천

 

 

 

 

 

 

 

 

▼ 14시 49분 - 응선사

 

 

▼ 인왕산을 조망하고...

 

 

 

 

 

 

 

 

 

 

▼ 14시 55분 - 카페 산모퉁이

 

 

 

 

▼ 북악산 성곽

 

 

 

 

 

 

 

▼ 15시 05분 - 창의문

 

 

 

 

 

  

 

 

 

☞ 여기서 '발도행의 송년도보 및 '서울의 걷기 좋은 숲길' 출판기념회' - 3부를 마치고...

  

 

 

 2010년 12월 26일(일)  
발도행의 송년도보 및 '서울의 걷기 좋은 숲길' 출판기념회에 다녀오다.

 

-▥☞ 1부[홍제역→홍은4거리→풍림아파트→백안정→실락어린이공원→장군바위→헬기장]를 보시려면 여기를 누르세요.☜▥-


-▥☞ 2부[헬기장→탕춘대성 암문→옥천암(보도각 백불)→홍지문(오간대수문)→세검정]를 보시려면 여기를 누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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