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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적탐방후기☞/♣ 현충원·사육신묘

[20110104]국립서울현충원 內 충열대와 충혼당, 대통령 묘소 3곳 참배

by 맥가이버 Macgyver 2011. 1. 4.
 

30118

 

2010년 02월 22일 월요일
국립서울현충원(충열대→충혼당→박정희대통령 묘소→김대중대통령 묘소→이승만대통령 묘소)에 다녀오다.
 
 '동작역→국립현충원 정문→충성분수대→호국종→충열대→충혼당→수충교→이승만대통령 내외분 묘소
→창빈안씨 신도비와 부 묘소→김대중대통령 묘소→박정희대통령 내외분 묘소→국립현충원 정문→동작역
 
오늘은 국립서울현충원(동작동국립묘지) 內에 있는 충열대와 충혼당, 그리고 3분의 대통령 묘소를 찾아본다.
 
☞ 자세한 이야기는 맥가이버의 블로그 사진후기로 대신한다.

 

 

 

☞ '국립서울현충원(충열대→충혼당→이승만대통령 묘소→김대중대통령 묘소→박정희대통령 묘소) 참배 이야기'를 시작하며...

 

▼ 국립현충원 정문

 

 

 

▼ 충성분수대

 

 

▼ 현충문과 현충탑

 

 

 

 

▼ 기념관터

 

 

 

 

 

 

▼ 호국종

 

 

 

 

 

▼ 까치가...

 

 

▼ 충열대 입구

 

 

 

 

 

 

 

▼ 충열대

 

 

 

 

 

 

▼ 충혼당

 

 

 

 

 

 

 

 

▼ 이승만대통령 내외분 묘소 입구

 

 

 

 

 

 

 

 

 

 

 

 

▼ 창빈안씨 신도비, 부 묘소 입구

 

 

창빈안씨묘역(昌嬪安氏墓域).

 

지정번호 시도유형문화재 제54호

(1983년 11월 11일 지정)

소재지 서울특별시 동작구 동작동 44-7

국립서울현충원 내

제작시기 조선 1683년(숙종 9년)

소유자 전주이씨 덕흥대원군파 종중

 

창빈안씨묘역(昌嬪安氏墓域)은 조선 제11대 임금 중종(1488∼1544)의 후궁으로

선조(1552∼1608)의 할머니가 되는 창빈 안씨(昌嬪安氏, 1499∼1549)의 신도비와 묘소이다.

 

창빈안씨의 세계는 안산(安山)에서 나왔는데, 아버지 안탄대(安坦大)는 중종반정(中宗反正) 이후 원종공신(原從功臣)에 책록되어

적순부위(迪順副尉)가 되고 나중에 우의정에 증직되었고, 어머니 황씨(黃氏)는 정경부인에 증직되었다.

 

1499년(연산군 5년) 7월 9일 출생으로 아홉 살 때인 1507년(중종 2) 궁녀로 들어가

성종의 계비(繼妃)인 정현대비(貞顯大妃)의 각별한 후의로 1518년(중종 13년) 왕의 총애를 받았고,

22세에 상궁(尙宮), 31세에 숙원(淑媛)이 되었으며, 마침내 42세에 숙용(淑容)에까지 올랐다.

 

중종과의 사이에서 2남 1녀를 두었는데 맏아들은 영양군(永陽君)이고,

둘째는 나중에 덕흥대원군(德興大院君)이며, 외동딸은 정신옹주(靜愼翁主)이다.

 

1544년 중종이 사망하자 전례에 따라 인수궁(仁壽宮)으로 물러나 거처하기를 청하였으나

문정왕후(文定王后, 1501∼1565)의 특명으로 궁에 머물렀다.

그러던 중 1549년(명종 4년) 우연히 친정에 나갔다가 10월 13일 51세의 나이로 갑자기 사망했다.

 

1568년 덕흥부원군의 셋째아들 하성군(河城君)이 조선 제14대 임금으로 즉위하자

1577년(선조 10년)에 창빈(昌嬪)으로 추봉되었고 특명으로 덕흥대원군의 사당(덕흥궁)에 향사되었다.

 

숙종은 창빈 안씨가 서거한 지 130여 년이 지나도록 묘도(墓道)에 비석이 없음을 걱정하여 1683년(숙종 9) 12월 비를 건립하였다.

신도비는 묘소의 서쪽 비탈10여 m쯤 떨어진 곳에 세워져 있다.

비의 형식은 후궁의 묘에서 찾아보기 드문 예로서 정사각형을 기본으로 했다.

대좌(臺座)·비신(碑身)·개석(蓋石)으로 구성되는데, 정사각형의 2단 대좌는 장중한 느낌을 준다.

비신도 사각기둥 모양이며, 개석 또한 4각 지붕 모양으로 꼭대기에 연꽃봉우리를 크게 표현한 것이 특징이다.

비문은 예조판서 신정(申晸, 1628∼1687)이 지었고, 글씨는 판돈녕부사 이정영(李正英, 1616∼1686)이 썼으며

머리전서[頭篆]는 오위도총부 도총관 동평군(東平君) 이항(李杭)이 썼다.

 

묘소는 원래 1550년 3월 8일 경기도 양주(楊州) 서쪽의 장흥리(長興里)에 장례 지냈으나,

다음해 자리가 좋지 않다고 하여 지금의 자리인 과천(果川) 동작리(銅雀里) 언덕으로 이장했다.

그때부터 '동작릉(銅雀陵)'이라 불리웠다고 한다.

묘소에는 담장이 둘려져 있고 묘 앞에는 묘갈ㆍ석등ㆍ석인상 2기가 세워져 있다.

 

- 출처 : 위키백과 -

 

 

 

 

 

 

 

창빈 안씨 묘역 [昌嬪 安氏 墓域]

 

 

 

 

 

 

서울특별시 동작구 동작동 국립현충원에 있는 조선시대 신도비와 묘.

 

 

지정종목 시도유형문화재

지정번호 서울유형문화재 제54호

지정연도 1983년 11월 11일

소재지 서울특별시 동작구 동작동 국립묘지

시대 조선

종류 묘

크기 높이 약 3m

 

 

 

 

1983년에 서울시유형문화재 제54호로 지정되었다.

조선 제11대 중종의 후궁(後宮)이며 선조의 할머니인 창빈안씨의 신도비와 묘가 있는 곳이다.

신도비는 1683년(숙종 9)에 세워졌으며 전체 높이가 3m 정도이고 비신(碑身)은 사각으로 특색이 있다.

 

창빈은 1499년(연산군 5)에 안탄대(安坦大)의 딸로 시흥(始興)에서 태어났으며

어려서부터 재질과 용모가 뛰어나 1507년(중종 2)에 궁녀로 들어갔다.

행동이 정숙하고 단정하여 중종의 모후인 정현대비(貞顯大妃)의 후의로 31세에 숙원(淑媛),

이어서 숙용(淑容)에 올랐으며 자비로운 성품으로 덕망이 높았다.

중종과의 사이에 영양군(永陽君)과 덕흥대원군(德興大阮君), 정신옹주(靜愼翁主)를 두었다.

 

1549년(명종 4)에 죽었는데 처음에는 양주(楊州) 장흥(長興)에 예장하였으나 이듬해 3월 지금의 자리로 이장하였다.

덕흥대원군의 셋째아들인 하성군(河城君)이 선조로 왕위에 오르자 1577년(선조 10)에

창빈으로 추존되고 천묘한 곳의 지명에 따라 동작릉(銅雀陵)이라 불렀으며 숙종 때 신도비가 세워졌다.

 

비문(碑文)은 숙종 때 예조판서(禮曹判書)와 한성부판윤(漢城府判尹)을 지낸 신정(申晸 : 1628~1687)이 지었으며

글씨는 돈령부지사(敦寧府知事)를 지내고 기로소에 들어간 이정영(李正英 : 1616~1686)이 썼다.

 

[출처] 네이버 백과사전

 

 

 

 

 

 

 

 

 

▼ 김대중대통령 묘소 입구

 

 

 

 

 

 

 

▼ 잠시 후에 이희호여사께서 오실거라고 해서 준비된 의자...

 

 

 

 

 

▼ 박정희대통령내외분 묘소

 

 

 

 

 

 

 

 

 

 

 

▼ 박정희대통령 영구차 보존관

 

 

 

 

 

 

 

▼ 현충문 앞에는...

 

 

 

▼ 국립현충원 정문을 나서며...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