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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등산사진후기☞/♤ 북한산·도봉산·사패산

[20111002]북한산 가을맞이 산행(형제봉통제소에서 북한산성탐방지원센터까지) - 4부

by 맥가이버 Macgyver 2011. 10.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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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년 10월 02일(일)  
북한산 가을맞이 산행(형제봉통제소에서 북한산성탐방지원센터까지)을 다녀오다.
   

 

누군가가 '누우면 죽고, 걸으면 산다(臥死步生)'고 했다.

맥가이버는 '산 따라 강 따라 길 따라' 걷는 것을 죽고사는 차원이 아닌 즐기는 차원에서 걷는다.

즉, 좋은 길을 걷다가 새로운 환경이나 상황, 사람을 만나면서 알게 되고, 느끼고, 감동 받고, 깨닫는 것을 즐긴다.

 

 

 

  '북한산 가을맞이 산행(형제봉통제소에서 북한산성탐방지원센터까지)' 코스

 

불광역→평창동삼성아파트→형제봉통제소→구복암→거북바위 전망대→형제봉(제)→형제봉(형)→일선사 입구→대성문→대남문→청수동암문→715.7봉→나한봉→나월봉→나월봉 협곡→부왕동암문→부왕사지 입구→청하동문(일붕기도처)→최송설당→북한산성계곡→사각정→노적교

운하교 →중성문(중성시구문)→국녕사 입구→새마을교→계곡탐방로→수구산장(수문지)→북한산성탐방지원센터→북한산성입구→연신내역 

 

 북한산 가을맞이 산행(형제봉통제소에서 북한산성탐방지원센터까지)' 이야기   

 

오늘은 지난 해 12월말에 가입한 '일요북한산' 카페(카페지기 노란배낭)의 일요산행에 함께 한다.

'일요북한산' 카페의 태동(2008년 2월)부터 알고 있었으나 가입은 지난 해 12월말에 하게 되었고, 그간 오프라인 활동이 없었는데...

 

오늘은 '일요북한산' 님들과 함께 북한산에 올라 가을맞이 산행을 한다.

 

 '북한산 가을맞이 산행(형제봉통제소에서 북한산성탐방지원센터까지)을 다녀오다'

자세한 이야기는 맥가이버의 블로그 사진후기로 대신한다.
 

    

'모든 만남은 걷고 있을 때 이루어진다'라는 말이 있는데, 길을 걷다보면
새로운 풍광을 보게 되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게 되고,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되고, 새로운 것을 알게 된다.
  
  
맥가이버가 '때론 함께, 때론 홀로' 산행이나 여행, 도보를 하면서 후기를 주로 사진으로 작성함은
인간의 만남이 유한함을 알기에 어떤 연유로 비록 언젠가 헤어지더라도 추억 속에서 함께 하고자 함이고,
또 하나 이유가 있다면 걸으면서 보고 느낀 것을 글로 다 표현치 못하는 무능함에 있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를 더 든다면 누군가가 같은 길을 걷고자 할 때 작은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입니다.
  
 
 
'북한산 가을맞이 산행(형제봉통제소에서 북한산성탐방지원센터까지)을 다녀오다' - 4부를 시작하며...

 

▼ 14시 29분 - 나월봉 협곡을 오르고...

 

 

 

 

 

▼ 백화사에서 의상능선을 타고 오르다가 715.7봉에서 합류하신 씨름선수님

 

 

▼ 노란배낭님

 

 

 

 

 

 

 

 

 

 

 

 

 

▼ 부왕동암문

 

▼ 14시 47분 - 부왕동암문

 

▼ 부왕동암문에서 인증샷을 찍기로...

 

 

 

 

▼ 씨름선수님, 땡벌님, 왕벌님, 노란배낭님, 가을하늘님, 베프님, 한계령님, 그리고 보이지 않는 일출님

 

▼ 14시 50분 - 부왕동암문에서 인증샷을 찍고...

 

▼ 부황사지로 내려서고...

 

 

▼ 14시 53분 - 기암

 

 

▼ 14시 56분 - 고양이바위?

 

 

 

 

▼ 생강나무잎은 모양이 제각각이다.

 

 

▼ 15시 03분 - 부황사지 입구

 

▼ 하♡트바위가...

 

부황사 [ 扶皇寺 ]

이칭 : 부왕사(扶旺寺), 부황사(浮皇寺)
유형 : 유적
시대 : 조선
성격 : 절, 사찰
건립시기/연도 : 1717년
소재지 : 경기도 고양시 신도읍 북한리

 

경기도 고양시 신도읍 북한리 북한산(北漢山)에 있었던 절.

민족 항일기 31본산시대에는 봉은사(奉恩寺)의 말사였다.

1717년(숙종 43)에 심운(尋雲)이 창건하였다.

 

숙종은 북한산성을 수비하기 위해서 산성 안에 12개의 절을 새로 지어

승군(僧軍)으로 하여금 산성을 지키게 하였는데, 부황사도 그 중 하나이다.

 

창건 당시에는 부왕사(扶旺寺)라 하였으나

그 뒤 음이 비슷한 부황사(浮皇寺)·부황사(扶皇寺) 등으로 불리게 되었으며,

언제 지금의 이름이 되었는지는 자세하지 않다.

 

창건 이후 갑오경장 이전까지는 호국 사찰로 명맥을 이어왔으며,

1939년 9월에 당시의 주지 원법(元法)과 화주(化主) 상덕(尙德)이 영산전(靈山殿)과 별당(別堂)을 신축하였다.

 

1942년에는 이주옥(李柱玉)이 절 동쪽 기슭에 도원(道院) 6칸을 신축하였으나

6·25 때 모두 파괴되어 현재 거의 폐허가 되어 있다.

 

참고문헌 :『한국사찰전서(韓國寺刹全書)』(권상로, 동국대학교출판부, 1979)

 

 

 

▼ 15시 06분 - 일붕기도처

 

서경보 [ 徐京保 ]

1914∼1996.

승려· 불교학자. 법호는 일붕(一鵬).

일붕선교종(一鵬禪敎宗)의 종정을 지냈다.

제주도 서귀포 출생. 어린 시절에는 한학을 공부하였다.

 

할아버지의 권유로 16세 때 결혼하였으나 불교 공부에 전념하다가

19세가 되던 해인 1932년 남제주군 산방굴사(山房窟寺) 혜월(慧月) 문하로 출가하였다.

출가 때 받은 법명은 회암(悔巖)이다.

 

약 1년간 제주에서 수행하던 그는 1933년 화엄사의 진응(震應)강백을 찾아가 수학하였다.

1935년 진응이 완주 위봉사(威鳳寺) 강원으로 자리를 옮기자

그도 따라갔으며 그 곳에서 사미과·사집과를 수료하였다.

 

이때 위봉사의 주지로 있던 춘담(春潭)은 그를 법제자로 삼았으며 ‘일붕’이라는 법호를 지어 주었다.

재정 형편상 위봉사 강원이 문을 닫게 되자 춘담의 권유로

서울 개운사(開運寺) 박한영(朴漢永) 문하로 들어 왔다.

그로부터 3년 반에 걸쳐 사교과·대교과의 가르침을 받았다.

 

박한영의 천거로 월정사 강원의 강사로 재직하던 그는 1944년 일본 유학 길에 올랐다.

당시 월정사에 출강하던 김태흡(金泰洽)의 적극적 권유로 마련된 일이었는데,

이로부터 1946년까지 경도(京都) 임제종 임제전문학교(臨濟專門學校)에서 수학하였다.

 

귀국 이후 종로구 창신동의 안양암 포교법사로 있으면서 동국대학교 불교학과에 입학하여 1950년 졸업하였다.

동국대학교를 졸업하면서 곧바로 원광대학교·전북대학교에서 강의를 하였다.

 

1953년 해인대학(지금의 경남대학교) 교수를 거쳐

1956년부터 1962년까지 동아대학교 철학과 주임교수로 재직하였다.

1962년 동국대학교 교수로 부임하여 1969년에는 동교 불교대학장에 취임하였다.

 

대학 강단에서 후학 양성에 전념하던 그는 한편으로 활발한 국내외 포교 활동을 전개하였다.

1962년 한국불교청년회 총재로 추대되었고 같은 해 불국사 주지로 취임하였다.

미얀마·독일·스리랑카·영국·미국 등지의 대학에서는 교환교수로 활동하였다.

 

아울러 1958년 태국 방콕에서 개최된 제5차 세계불교도우의회(WFB)에는 한국 대표로 참가하기도 하였다.

동국대학교 불교대학장을 마친 이후 1970년과 1980년대에는 해외포교에 전념하였다.

 

입적 이전까지 그가 방문한 국가는 무려 157개국에 달하며,

1969년 미국 템플(Temple) 대학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취득한 이후

26개 분야 126개의 국내외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특히 미국 지역에 사찰을 건립하는 등의 활발한 포교활동은

양국 간 문화교류 증진에 크게 기여하였다는 평가를 받았으며,

그와 같은 공로를 인정받아 1982년 미국 대통령 레이건으로부터 감사패를 받기도 하였다.

 

한때 조계종 원로의원을 지내기도 했던 그는

1988년 대한불교 일붕선교종을 창종(創宗)하면서 조계종단을 떠났다.

이후 일붕선교종의 종정을 지냈으며,

1992년에는 그가 계속 추진해 오던 세계불교 법왕청 설립 총회가 개최되자 초대 법왕(法王)에 추대되었다.

 

스리랑카 콜롬보에서 정회원 16개국 대표가 참가했던 제1차 총회에 이어

1994년 개최된 제2회 대회에서는 부처님 오신날을 세계 평화의 날로 제정하기도 하였다.

 

또한 세계 전역을 다니면서 평화를 주창했던 공로를 인정받아

1955년에는 세계평화교육자협회(IAEWP)에 의해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된 바 있다.

 

입적하기 직전까지도 중국·미국 등지의 포교 활동을 전개했던 그는

서울특별시 신영동 소재 법왕청에서 세속 나이 83세, 법랍 64세로 입적하였다.

 

그는 126개의 박사학위, 1,042권의 저서, 757개의 통일기원비 건립, 50여만 점의 선필(禪筆),

최대 석굴법당 건립 등 5개 분야에서 기네스북에 오르기도 하였다.

 

서경보(徐京保)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 '일붕기도처' 각자 옆에는 '청하동문' 각자가...

 

▼ 청하동문 - 푸른 노을이 흐르는 계곡

 

 

▼ 15시 09분 - 최송설당 각자

 

최송설당 [ 崔松雪堂 ]


호 : 송설당(松雪堂)
출생-사망 : 1855(철종 6) ~ 1939
출생지 : 경상북도 금릉
본관 : 화순(和順)
직업 : 문인, 육영사업가
가족 : 아버지 최창환(崔昌煥), 어머니 경주정씨(慶洲鄭氏)

 

1855(철종 6)∼1939. 육영사업가. 본관은 화순(和順). 본명은 미상이며 송설당(松雪堂)은 호이다.

경상북도 김천 출생. 아버지는 창환(昌煥)이며, 어머니는 경주정씨(慶州鄭氏)이다.

 

외가쪽이 홍경래(洪景來)의 난에 연루되어 증조부와 조부가 억울하게 죽은 것을 알고,

어려서부터 가문의 명예회복을 위하여 누명을 벗게 할 것을 맹세하였다.

 

1886년(고종 23) 아버지가 죽고 이어 남편과도 사별하자, 39세 때 불교에 귀의하여 정진하였다.

그뒤 서울에 올라와 권문세가의 부인들과 교제하던 중 입궐하게 되어 영친왕의 보모가 되었으며,

귀비(貴妃)에 봉하여지고 고종으로부터 송설당이라는 호를 하사받았다.

 

이후부터는 어려운 사람들을 구제하는 한편 금릉학원(金陵學園)에 기부금을 내는 등 사회사업에 힘을 기울였다.

1930년 2월 25일 동아일보와 조선일보 등 전국 일간지에

학교설립을 위해 전재산을 희사할 취지를 밝힌 성명서를 발표하고,

1931년 2월 5일 전재산 30만2100만원을 희사하여 재단법인 송설학원(松雪學園)을 설립,

김천고등보통학교를 개교하여 오늘날의 김천중고등학교로 발전되었다.

 

건학이념은 "길이 사학을 경영하여 민족정신을 함양하라(永爲私學 涵養民族精神)"이다.

 

시문에 능하여 200여수의 한시와 60여수의 국문시가를 남기고 있으며,

저서로는 ≪최송설당문집≫ 3권(1922년)이 있다.

 

무덤은 김천중고등학교 뒷산의 송정(松亭) 옆에 있으며,

1935년 11월 30일 교정에 송설당의 동상을 세워 설립자의 뜻을 기리고 있고,

1963년 8월 15일 대통령 문화 포상이 추서되었다.

 

최송설당(1855-1939)

 

참고문헌 : 「松雪五十年史」(김천중고등학교, 1981) ㆍ「松雪六十年史」(김천중고등학교, 1981)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 15시 13분 - 북한산성계곡을 건너...

 

▼ 15시 14분 -

 

▼ 북한산성계곡길을 따라 하산...

 

 

 

 

 

 

▼ 단풍이 빨갛게 물들었네요.

 

 

 

 

▼ 15시 21분 - 붙임바위를 지나...

 

 ▼ 사각정을 지나...

 

▼ 15시 23분 - 노적교를 건너...

 

 

▼ 15시 25분 - 운하교

 

 

▼ 15시 26분 - 중성문

 

 

▼ 중성 시구문

 

 

▼ 중성 수문이 있던 곳...

 

 

 

 

▼ 15시 03분 - 이 데크는 왜 설치했을까?

 

▼ 15시 33분 - 국녕사입구를 지나...

 

 

 

 

▼ 15시 39분 - 새마을교를 건너...

 

▼ 15시 41분 - 잠시 휴식하며...

 

 

▼ 15시 43분 - 계곡탐방로로 하산...

 

▼ 원효봉

 

 

 

 

 

 

 

 

 

▼ 15시 55분 - 산성탐방지원센터까지는 700m

 

 

▼ 15시 59분 - 舊수구산장

 

▼ 북한산성의 수문이 있던 곳...

 

 

 

 

▼ 북한동 마을의 존치물인가?

 

▼ 16시 04분 - 북한산성탐방지원센터 상가를 지나...

 

▼ 16시 23분 - 뒤풀이를 하고...

 

 

 

▼ 18시 21분 - 연신내역 맥주집에서 2차

 

 

▼ 19시 28분 - 베스킨라빈스에서 3차.

 

 

☞ 이것으로 '북한산 가을맞이 산행(형제봉통제소에서 북한산성탐방지원센터까지)을 다녀오다'를 마친다.

 

 

 

 2011년 10월 02일(일)  
북한산 가을맞이 산행(형제봉통제소에서 북한산성탐방지원센터까지)을 다녀오다.
 

-▥☞ 1부[불광역→평창동삼성아파트→형제봉입구→구복암→거북바위전망대→형제봉(제)] 여기를 클릭.☜▥-

 

-▥☞ 2부[형제봉(제)→형제봉(형)→평창통제소 갈림길→일선사 입구→대성문→대남문]는 여기를 클릭.☜▥-

 

-▥☞ 3부[대남문→청수동암문→715.7봉(상원봉)→나한봉 우회로→나월봉→나월봉 협곡]는 여기를 클릭.☜▥-

 

-▥☞ 4부[나월봉 협곡→부왕동암문→노적교→중성문→북한산성탐방지원센터→연신내역]는 여기를 클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