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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등산사진후기☞/♤ 강원도의 산&길

[20120211]『인제 자작나무숲길 걷기』'수산리 자작나무 숲' & '원대리 자작나무 숲' - 4부

by 맥가이버 Macgyver 2012. 2.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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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년 02월 11일(토)  

『인제 자작나무숲길 걷기』- '인제 수산리 자작나무 숲' & '인제 원대리 자작나무 숲'을 다녀오다.

    

 

누군가가 '누우면 죽고, 걸으면 산다(臥死步生)'고 했다.

맥가이버는 '산 따라 강 따라 길 따라' 걷는 것을 죽고사는 차원이 아닌 즐기는 차원에서 걷는다.

즉, 좋은 길을 걷다가 새로운 환경이나 상황, 사람을 만나면서 알게 되고, 느끼고, 감동 받고, 깨닫는 것을 즐긴다.

 

 

  맥가이버의인제 자작나무숲길 걷기』- '인제 수산리 자작나무 숲' & '인제 원대리 자작나무 숲' 코스

 

1부. 수산리 자작나무를 찾아서...

 인제자연학교캠핑장→수산리 별장삼거리

→한반도모양 자작나무 전망대→임도갈림길

→별장삼거리→인제자연학교 캠핑장

 인제 고사리 '노루목산장'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2부. 원대리 자작나무를 찾아서..,

→원대리 '꿈익는 마을' 장승

→원대리 산림감시초소

→원대리 '속삭이는 자작나무숲'

→원대리 산림감시초소

→원대리 '꿈익는 마을' 장승

 

 

 맥가이버의인제 자작나무숲길 걷기』- '인제 수산리 자작나무 임도' & '인제 원대리 자작나무 숲' 이야기 

 

[오태진의 길 위에서]

강원도 인제 자작나무 숲, 순백 裸身으로 비탈에 서다

 

오태진 수석논설위원

입력 : 2011.11.17 23:03

 

나무 중에서 가장 수줍고 귀부인다운 나무

산등성이가 흰 물감으로 그어댄 펜화 같아 자작나무 숲에서 고향 떠올린
시인 백석처럼 사위가 고요한 숲속에서 純白 알몸의 소리없는 합창을 듣는다

 

늦가을 숲은 황량하다.

잎 다 떨어뜨린 나무들은 우중충한 잿빛이다.

그 휑한 비탈을 정령(精靈)처럼 밝히는 나무가 있다.

가을 다 보내고 이맘때가 돼야 비로소 하얗게 빛나는 나무가 있다.

'나목(裸木)'이라는 표현이 가장 잘 어울리는 나무.

겨울로 갈수록 수피(樹皮)가 하얗다 못해 은빛을 발하는 나무.

누군가 "나무 중에 가장 수줍고 귀부인다운"이라고 노래했던 나무.

추위 속에서 더욱 맑아지는 인고(忍苦)와 침묵의 나무, 자작나무다.

며칠 전
강원도 인제군 남면 수산리 매봉 자락을 찾았다.

44번 국도에서 양구 가는 46번 국도로 잠깐 벗어나 '수산리' 표지판 보고 한참을 들어가는 막다른 산중(山中)이다.

10월 하순 다녀온 지 보름 만에 다시 이 산골짝에 든 건 순전히 자작나무 숲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북국(北國)에서 온 겨울나무들이 깊어가는 계절과 함께 어떤 모습으로 바뀌어가는지 보고 싶었다.

높이 800m 되는 매봉의 어깨쯤을 임도(林道)가 꼬불꼬불 휘감고 간다.

그 길 따라 10㎞ 한 바퀴를 천천히 차로 돌았다.

눈 닿는 곳마다 자작나무다.

보름 전 매달고 있던 노랑 잎들이 주변 단풍과 어우러져 알록달록 몸뻬바지 같던 풍경은 그새 무채색이 됐다.

잎을 모두 벗은 자작나무들은 잘 발라낸 생선 뼈처럼 새하얀 줄기를 드러냈다.

산등성이가 온통 흰 물감으로 그어댄 펜화(畵) 같다.

아니 자작나무들은 날카로운 펜 그 자체로 무수히 꽂혀 있다.

자작나무는 한반도에선 개마고원쯤에나 자라는 추운 나라 수종(樹種)이다.

언젠가 백두산 가는 길, 눈밭에서조차 환하게 빛나던 그 숲도 자작나무였다.

북방 사람들은 자작나무로 집을 짓고 불을 땠다.

죽은 이를 자작나무 껍질로 감싸 떠나 보냈다.

자작나무는 겉은 희지만 속은 기름을 잔뜩 머금어 검다.

기름기 때문에 '자작자작' 소리 내며 잘 탄다고 해서 자작나무다.

한자 이름은 '흴 백(白)' 자를 써서 백화(白樺), 백단(白�b)이다.

"산골집은 대들보도 기둥도 문살도 자작나무다

밤이면 캥캥 여우가 우는 산(山)도 자작나무다

그 맛있는 메밀국수를 삶는 장작도 자작나무다

그리고 감로(甘露) 같이 단샘이 솟는 박우물도 자작나무다

 산 너머는 평안도 땅도 뵈인다는 이 산골은 온통 자작나무다"

(백석 '백화').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burbuck@chosun.com

함경도 함흥에서 교편을 잡았던 스물일곱 살 시인 백석은 그곳 北關 땅 어느 산속 여인숙에 묵었다가 자작나무 숲을 봤다.

그러면서 산 너머 저 먼 고향, 평북 정주를 그렸다.

북구(北歐) 사람들이 외국에서 자작나무를 보면 고향을 생각하듯.

그보다 훨씬 남쪽 땅인 인제 매봉 600ha에

자작나무 90만 그루가 서 있는 건 한 제지회사가 1986년 펄프용으로 심은 덕분이다.

그 엄청난 규모는 임도가 가장 높은 곳을 지나는 길가 자그마한 전망대에 서 보면 안다.

눈앞에 웅대한 자작나무 숲이 펼쳐진다. 쏟

아질 듯 맞은편 산 사면을 가득 메운 하얀 나무들이 한반도 모양을 이루고 있다.

추운 날 알몸으로 선 수산리 자작나무 숲이 처연한 독백이라면,

인제읍 원대리 자작나무 숲은 따스한 위안이다.

수산리 숲이 멀리서 경외심으로 바라보는 사진가들의 숲이라면,

원대리 숲은 안에 들어가 거닐며 냄새 맡고 소리 듣고 어루만지는 오감(五感)의 숲이다.

설악산 가는 44번 국도에서 인제 종합장묘센터 쪽으로 벗어나 10㎞쯤 가면 '어서오세요 원대리'라는 표지석을 만난다.

거기서 100m쯤 더 간 오른쪽에 인제 국유림관리소가 만든 '산림 레포츠의 숲'이 있다.

임도를 100m쯤 들어선 갈림길에서 오른쪽 '원정도로'로 길을 잡는다.

비포장 길을 3㎞쯤 올라가 "길을 잘못 들었나" 싶을 즈음 그제야 '속삭이는 자작나무 숲'이라고 쓰인 장승이 서 있다.

그 아래 비탈 6㏊에 자작나무 숲이 거짓말처럼 펼쳐진다.

1993년 심은 3만6000그루 국유림이다.

10m도 넘게 키가 훤칠한 자작나무가 빽빽하게 들어찬 숲 속으로 오솔길이 나 있다.

카펫처럼 푹신하게 깔린 낙엽을 밟으며 걷는다.

주말인데도 숲은 인적이 드물다. 눈

이 시리도록 하얀 줄기들이 얇은 종잇장처럼 허물을 벗고 있다.

사위가 고요한 정적 속에서 자작나무들의 소리 없는 합창을 듣는다.

그 신령스러운 기운을 한껏 들이마신다.

겨울로 갈수록 숲은 더욱 스산하고 어두워질 것이다.

 그 속에 자작나무들만이 순백 알몸으로 서서 새봄 새잎 나올 때까지 잠든 겨울 생명들을 지킬 것이다.

한겨울 자작나무 숲을 보고 싶다.

눈 그친 뒤 시퍼런 하늘을 이고 하얀 눈을 밟으며 자작나무들의 안부를 묻고 싶다.

그 길을 차가 아니라 발로 오르고 싶다.

 

 

출처-

 

 

지난 해에 위와 같은 보도를 통해 강원도 인제의 자작나무숲길에 대한 정보를 알게 되고...

좋은 날에 좋은 님들과 가보고자 맘먹고 있다가 오늘에서야 '인제 자작나무 숲길'을 걷는다.

 

선답자들의 글에서 보면 단풍이 든 수산리와 원대리 자작나무숲은 아름다웠다.

그에 못지않게 흰눈이 쌓인 자작나무숲도 또한 아름다울 것이라 여겨 겨울나들이로 '인제 자작나무숲길 걷기'를 나선다. 

 

이전에 다녀온 글들을 보면 대개는 수산리와 원대리 두 곳 중에 한 곳만을 다녀온 후기들이 보인다.

이왕에 나선 길이니 수산리와 원대리 두 곳을 다 불러보는 것이 좋을 듯하여 

먼저 '수산리 자작나무숲'을 둘러보고, 인제 내린천가에 있는 '노루목산장'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원대리 자작나무숲'을 둘러보았다.

 

인제 자작나무숲길 걷기』- '인제 수산리 자작나무 숲' & '인제 원대리 자작나무 숲'을 다녀오다.

자세한 이야기는 맥가이버의 블로그 사진후기로 대신한다.

 

    

'모든 만남은 걷고 있을 때 이루어진다'라는 말이 있는데, 길을 걷다보면
새로운 풍광을 보게 되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게 되고,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되고, 새로운 것을 알게 된다.
  
  
맥가이버가 '때론 함께, 때론 홀로' 산행이나 여행, 도보를 하면서 후기를 주로 사진으로 작성함은
인간의 만남이 유한함을 알기에 어떤 연유로 비록 언젠가 헤어지더라도 추억 속에서 함께 하고자 함이고,
또 하나 이유가 있다면 걸으면서 보고 느낀 것을 글로 다 표현치 못하는 무능함에 있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를 더 든다면 누군가가 같은 길을 걷고자 할 때 작은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입니다.
  
 

  

『인제 자작나무숲길 걷기』- '인제 수산리 자작나무 숲' & '인제 원대리 자작나무 숲'을 다녀오다. - 4부를 시작하며...

 

 

▼ 15시 18분 - 인제 원대리 고개마루 '꿈익는 마을 장승' 옆 주차장에 도착하여...

 

 

▼ 15시 19분 - 고개를 내려서서...

 

▼ 15시 19분 - 산상의 들국화향기 펜션 아이오라 입간판을 지나면...

 

▼ 15시 20분 - 원대산림 감시초소에서 인제 자작나무숲 탐방 입산신고를 하고...

 

 

▼ 안내견 두마리가 입산부터 하산까지 안내한다.

 

▼ 15시 25분 - 원대리 자작나무숲을 찾아 출발...

 

 

 

▼ 15시 28분 - 원정도로 갈림길에서...

 

▼ 15시 28분 - 원정도로 방향으로...

 

 

 

 

 

 

 

 

 

 

 

 

 

 

 

 

 

 

 

 

 

 

자작나무 숲으로 가서 / 고은

 

광혜원 이월마을에서 칠현산 기슭에 이르기 전에

그만 나는 영문 모를 드넓은 자작나무 분지로 접어들었다

누군가가 가라고 내 등을 떠밀었는지 나는 뒤돌아보았다

아무도 없다 다만 눈발에 익숙한 먼산에 대해서

아무런 상관도 없게 자작나무숲의 벗은 몸들이

이 세상을 정작하게 한다 그렇구나 겨울나무들만이 타락을 모른다

 

슬픔에는 거짓이 없다 어찌 삶으로 울지 않은 사람이 있겠느냐

오래오래 우리나라 여자야말로 울음이었다 스스로 달래어 온 울음이었다

자작나무는 저희들끼리건만 찾아든 나까지 하나가 된다

누구나 다 여기 오지 못해도 여기에 온 것이나 다름없이

자작나무는 오지 못한 사람 하나하나와도 함께인 양 아름답다

 

나는 나무와 나뭇가지와 깊은 하늘 속의 우듬지의 떨림을 보며

나 자신에게도 세상에도 우쭐해서 나뭇짐 지게 무겁게 지고 싶었다

아니 이런 추운 곳의 적막으로 태어나는 눈엽이나

삼거리 술집의 삶은 고기처럼 순하고 싶었다

너무나 교조적인 삶이었으므로 미풍에 대해서도 사나웠으므로

 

얼마 만이냐 이런 곳이야말로 우리에게 십여 년 만에 강렬한 곳이다

강렬한 이 경건성! 이것은 나 한 사람에게가 아니라

온 세상을 향해 말하는 것을 내 벅찬 가슴은 벌써 알고 있다

사람들도 자기가 모든 낱낱 중의 하나임을 깨달을 때가 온다

 

나는 어린 시절에 이미 늙어버렸다 여기 와서 나는 또 태어나야 한다

그래서 이제 나는 자작나무의 천부적인 겨울과 함께

깨물어 먹고 싶은 어여쁨에 들떠 누구네의 어린 외동딸로 자라난다

 

나는 광혜원으로 내려가는 길을 등지고 삭풍의 칠현산 험한 길로 서슴없이 지향한다

 

 

 

 

▼ 15시 46분 - 4km지점을 지나...

 

 

 

 

 

 

 

 

 

 

 

 

 

 

▼ 16시 01분 - 내리막길이 있지만 직진...

 

▼ 16시 02분 - 3km지점을 통과...

 

 

 

 

 

 

▼ 16시 15분 -

 

 

 

▼ 16시 16분 - 이곳에서 원정도로(임도) 따라가는 것을 멈추고...

 

 

▼ 16시 16분 - 속삭이는 자작나무(숲)으로 들어서기 위해 후미를 기다리고...

 

 

 

 

 

▼ 16시 31분 - 원대리 국민의숲-자작나무숲으로 내려서고...

 

 

 

너가 나를 자작나무라 부를 때 / 김왕노

 

너가 나를 자작나무라 부르고 떠난 후
난 자작나무가 되었다
누군가를 그 무엇이라 불러준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때로는 위험한가를 알지만
자작나무니 풀꽃으로 부르기 위해
제 영혼의 입술을 가다듬고
셀 수 없이 익혔을 아름다운 발성법
누구나 애절하게 한 사람을 그 무엇이라 부르고 싶거나 부르지만
한 사람은 부르는 소리 전혀 들리지 않는 곳으로 흘러가거나
세상 건너편에 서 있다
우리가 서로를 그 무엇이라 불러준다면
우리는 기꺼이 그 무엇이 되어 어둑한 골목에
환한 외등이나 꽃으로 밤새 타오르며 기다리자
새벽이 오는 발소리를 그렇게 기다리자
네가 나를 자작나무라 불러주었듯
너를 별이라 불러주었을 때 캄캄한 자작나무숲 위로
네가 별로 떠올라 휘날리면 나만의 별이라 고집하지 않겠다

너가 나를 자작나무라 부를 때 난 자작나무가 되었다

 

 

자작나무 사원 / 최정란

 

누가 이 말들의 고삐를 땅 속 깊이 묶어 놓았나

딛고 선 검은 땅에 견고하게 뿌리내린 긴 다리로

정신의 지평선 어디나 한달음에 닿는 흰 말들

초록갈기 휘날리는 거침없는 질주를 본다

  

우점종, 활엽의 지붕 아래

한 자리에 모여 서서 천 년쯤 내닿는 무구한 풍경은

가지와 줄기와 몸통의 희디 흰 나날들이어서

숲길을 걸어 바이칼로 가는 동안

천마도를 숨기고 있는

수막의 내피를 슬쩍 뒤집어 보여주기도 하는 흰 얼굴은

시간을 뛰어 넘는 영웅을

기다란 흔적이 역력하다

긴 여정 끝에 마침내 도착하였으나

추신까지 읽어도 행간이 해독되지 않는 편지,

살아있는 목간에는

세로로 길게 자작의 서명이 뚜렷하여,

귀족의 품격이라는 말이 어울리겠지만

 

말들은 바람의 목구멍 깊이 울고

늘어선 열주의 흰 기둥들 정연한 질서를 거느려

한 그루마다 한 채의 사원을 몸에 지닌

엄결한 사제라고 부르고 싶어지는

스스로 성소이며 경전인 나무들

  

한 전생이 저 나무의 한 잎이었을 터

길을 빼곡히 메운 흰 옷 입은 시민들 틈에 서서

백의종군하는 순신의 차림으로

먼 귀양길의 약용을 향해 손을 흔든다

  

말 울음소리 품은 알이 긴 잠에서 깨어나는

한 평 황무지, 마음의 시베리아, 마침내

얼음과 모래를 걷어내고 자작의 묘목을 심어야 할 때

 

 

 

 

▼ 인디언 오두막?

 

백화(白樺) - 백석

 

산골 집은 대들보도 기둥도 문살도 자작나무다.

밤이면 캥캥 여우가 우는 산(山)도 자작나무다.

그 맛있는 메밀국수를 삶는 장작도 자작나무다.

그리고 감로(甘露)같이 단 샘이 솟는 박우물도 자작나무다.

산 너머는 평안도 땅도 보인다는 이 산골은 온통 자작나무다.

 

 

 

▼ 자작나무 오두막안에서...

 

 

▼ 자작나무 그네와 의자에서...

 

 

 

 

자작나무 여자 / 최창균

 

그의 슬픔이 걷는다

슬픔이 아주 긴 종아리의 그,

먼 계곡에서 물 길어올리는지

저물녘 자작나무숲

더욱더 하얘진 종아리 걸어가고 걸어온다

그가 인 물동이 찔끔,

저 엎질러지는 생각이 자욱 종아리 적신다

웃자라는 생각을 다 걷지 못하는

종아리의 슬픔이 너무나 눈부실 때

그도 검은 땅 털썩 주저앉고 싶었을 게다

생의 횃대에 아주 오르고 싶었을 게다

참았던 숲살이 벗어나기 위해

또는 흰 새가 나는 달빛의 길을 걸어는 보려

하얀 침묵의 껍질 한 꺼풀씩 벗기는,

그도 누군가에게 기대어보듯 종아리 올려놓은 밤

거기 외려 잠들지 못하는 어둠

그의 종아리께 환하게 먹기름으로 탄다

그래, 그래

백년 자작나무숲에 살자

백년 자작나무숲에 살자

종아리가 슬픈 여자,

그 흰 종아리의 슬픔이 다시 길게 걷는다

 

 

나의 자작나무 [강신애]

 

당신은 언제부터 자작나무 숲에 살았나요

제가 부를 때 당신 대답은

자작나무 숲을 돌아나오는 피리소리였나요

당신은 저를 보지도 듣지도 못합니다

당신 살결은 은잔처럼 눈부시고

맨발은 흰뱀처럼 보드라워

그 아래 양귀비꽃들도 아득히 눈감고 머리 숙입니다

저녁이면 자작나무 이파리는, 연기가 뿌옇게 올라오는 숲에

긴 머리칼을 기대고 手淫합니다

긴장이 빠져나간 이파리는 순결해지고

당신은 촘촘한 흰 피륙으로 꿈을 덮습니다

자작나무를 잠재우고 자작나무 숲을 들어올리는 당신은

자작나무의 정령,

제게 보여주신 수천 길 폭포의 현란한 추락과

비상하는 새떼의 날갯짓은 연민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사랑을 탁발하며 저는 살았습니다

그러나 제 속에는 아직 터지지 않은 씨방이 있어

당신 숲 가까이 씨앗을 날려보냅니다

과거 따윈 갖고 싶지 않은 당신 몰래

내가 낳아 기른 자작나무 한 그루

나는 이제 나의 자작나무에 기대어 삽니다

 

 

 

자작나무야 / 이경림

 

너 지금 사랑하고 있구나 쪽쪽 살 빠지는 소리 들으며

진땀나게 그리워하고 있구나 이 엄동에 청청하게 고통

거느리고 지지푸르게 신음하고 있구나 가지에 새 한마리

앉아도 소스라치는구나 그래 그 마음 만져지는구나

이파리만 날카로워지는 날들 잔바람에도 하늘이 흔들리는 날들

자꾸 껍질만 키우며 거머죽죽 검버섯 만드는 날들

그래 아픈 몸에도 꺼칠하게 열매 달리고 그 열매 당차게

가지 끝에 붙어 있구나 아아 하늘은 자꾸 네 모가지를 당기고

출출출 물소리 뿌리를 흔드는데 안절부절 그 사이에서

팔다리만 휘젓는 자작나무야, 너 많이 아프구나

 

 

자작나무 숲길 / 강윤후

 

새치 같아 아니 흑판에
백묵으로 마구 그은 선들 같아
어느 땐 뼈다귀들처럼 보이기도 해
자작나무 숲 그것 때문에
겨울 산이 더 검은지 몰라
오래 흩어졌던 길들이 빽빽이 모여
숲을 이룬 걸까 길이 다 닳아빠지면
뼈다귀만 남는 걸까 중얼중얼
염불 소리 들려
기도 소리 같기도 하고
그렇게 뼈다귀마저 다 갈아 마시면
어디로 가게 되지 반쯤 무너진 봉분이 문득
발걸음을 멈추게 해
한 입 베어먹은 사과처럼 보이는 그 앞에서
가로막는 것의 외로움을 생각하는 중이야
햇살이 발등에서 차곡차곡
눈을 감고 있어

 

 

 

자작나무 숲에서 나를 찾는다 / 서정윤

 

떠남이 시작되었다
화단을 벗어나 자작나무 숲으로 가서
나는 한 그루 나무가 되었다
이제 자작나무 숲에서 나를 찾아야 한다
흰 두루마기를 걸치고
나무와 함께 서 있을
어느새 나 아닌 남이 되어 있을
자작나무가 되어 있을...

땅위에 배를 대고 꾸물거리는
애벌레가 된다
스스로의 삶에 묶여
다른 삶조차 제대로 보지 못하고
탈태의 두려움에 떨고 있다

나는 다른 많은 나무와 같은 모습
어느 나무를 가리켜도 나인 것이고
그건 다시 나가 아닌 것이다

나가 존재하지 않을 때
자작나무 숲도 사라질 것이다

삶은 너의 주머니 속에도 없고
나의 입술에도 없고, 아득히
보일 듯 말 듯 멀리 있지만
항상 가까이 느끼는 허기증이 되어
스스로를 마모시킨다
물처럼 스며든다.

 

 

 

자작나무를 찾아서 / 안도현

 

따뜻한 남쪽에서 살아온 나는 잘 모른다
자작나무가 어떻게 생겼는지를
대저 시인이라는 자가 그까짓 것도 모르다니 하면서
친구는 나를 호되게 후려치며 놀리기도 했지만
그래서 숲길을 가다가 어느 짓궂은 친구가 멀쑥한 백양 나무를 가리키며
이게 자작나무야, 해도 나는 금방 속고 말테지만


그 높고 추운 곳에서 떼지어 산다는
자작나무가 끝없이 마음에 사무치는 날은
눈 내리는 닥터 지바고 상영관이 없을까를 생각하다가
어떤 날은 도서관에서 식물도감을 뒤적여도 보았고
또 어떤 날은 백석과 예쎄닌과 숄로호프를 다시 펼쳐보았지만
자작나무가 책 속에 있으리라 여긴 것부터 잘못이었다


그래서 식솔도 생계도 조직도 헌법도 잊고
자작나무를 찾아서 훌쩍 떠나고 싶다 말했을 때
대기업의 사원 내 친구 하얀 와이셔츠는
나의 사상이 의심 된다고, 저 혼자 뒤돌아 서서
속으로 이제부터 절교다, 하고 선언했을지도 모른다


그때마다 나는 이렇게 말해 주고 싶었다
연애시절을 아프게 통과해 본 사람이 삶의 바닥을 조금
알게 되는 것처럼
자작나무에 대한 그리움도 그런 거라고
내가 자작나무를 그리워하는 것은 자작나무가 하얗기 때문이고
자작나무가 하얀 것은 자작나무숲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때 묻지 않은 심성을 가졌기 때문이라고


친구여, 따뜻한 남쪽에서 제대로 사는 삶이란
뭐니뭐니해도 자작나무를 찾아가는 일
자작나무 숲에 너와 내가 한 그루 자작나무로 서서
더 큰 자작나무숲을 이루는 일이다
그러면 먼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 우리를 보고 깜짝 놀라겠지
어라, 자작나무들이 꼭 흰 옷 입은 사람 같네, 하면서

 

 

자작나무 / 김백겸

 

숲 속 자작나무 한 그루가 서 있었다

  

흰 눈이 내리고 햇빛이 찬란하게 비친 동지가 지난 어느 날

자작나무는 성스러운 세계목이 되었다

구름 위의 하늘과 대지의 지하를 오르내리는 샤먼의 경배에 의해

온 우주의 소리와 빛을 보고 듣는 천수관음이 되었다

 

숲 속에 자작나무는 전에는 그냥 평범한 나무였다

 

봄이 오면 새 잎을 피우고

가을이 오면 흰 가지로써 바람에 온 몸을 내 맡기는

뿌리에 온 몸의 생명을 내려보내 부활의 시간을 기다리는

목숨의 명령에 복종하는 노예였다

 

숲 속에 자작나무는 어느 날 불멸의 환상을 품게 되었다

  

보이지 않는 세계의 질서를 믿기 시작했고

흰 몸과 푸른 잎들은 신의 마음으로 타고 있는 불길임을 자각했다

흰 몸과 푸른 잎들이 불사조처럼 날아가

빛과 하나가 되는 존재임을 믿기 시작했다

  

숲 속에 자작나무는 그 때부터 마음에 빛을 내기 시작했고

신의 모습을 본 모세처럼

숲의 운명을 나무들에게 빛의 침묵으로 말하기 시작했다

 

 

 

 

 

 

 

 

 

 

 

 

 

 

 

 

 

 

 

 

☞ 여기서『인제 자작나무숲길 걷기』- '인제 수산리 자작나무 숲' & '인제 원대리 자작나무 숲'을 다녀오다. - 4부를 마치고...

 

 

 

  

 2012년 02월 11일(토)  

『인제 자작나무숲길 걷기』- '인제 수산리 자작나무 숲' & '인제 원대리 자작나무 숲'을 다녀오다.

  

-▥☞ 1부[수산리 자작나무 숲을 찾아서 1] 여기를 클릭.☜▥-

 

-▥☞ 2부[수산리 자작나무 숲을 찾아서 2]는 여기를 클릭.☜▥-

 

-▥☞ 3부[내린천 노루목산장에서 점심식사 및 생일파티]는 여기를 클릭.☜▥-

 

-▥☞ 4부[원대리 자작나무 숲을 찾아서 1]는 여기를 클릭.☜▥-

 

-▥☞ 5부[원대리 자작나무 숲을 찾아서 2]는 여기를 클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