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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전라 도보후기☞/☆ 고창 질마재길

[고창 질마재길] 미당이 거닐던 야트막 백리 길…고창 질마재길

by 맥가이버 Macgyver 2012. 2. 23.

미당이 거닐던 야트막 백리 길…고창 질마재길

 

2010년 08월 06일 (금) 22:48:41 송덕만 기자 dm1782@naver.com 

 

 

 ▲ 질마재 고갯마루에 세워진 장승과 이정표

 

 

(고창=뉴스웨이 호남취재본부 송덕만 기자)전북 고창 땅에는 없는 게 없다. 사계절 아름다운 명산과 생명력 넘치는 갯벌이 있고, 참게와 민물장어가 서식하는 강과 운치 그윽한 호수도 있다.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선사시대 고인돌 유적지가 있는가 하면, 조선시대 읍성도 옛 모습 그대로 남아 있다.

 

자연은 절경을 이루고, 문화는 깊은 내력을 자랑하는 고장이 바로 고창이다. 그런 고창 땅의 진면목을 제대로 알려면 1백 리(40킬로미터)에 이르는 질마재길을 두 발로 직접 걸어보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다.

인천강의 맑은 물도 잠시 쉬어 가는 병바위나루터.뒤쪽에 병바위가 우뚝하다. 고창 땅은 산은 낮고 들은 넓다. 예나 지금이나 농업생산력이 높아서 사람 살기에는 그만이다. 그래서인지 청동기시대에 이미 막강한 권력과 경제력을 갖춘 지배자가 출현했다.

 

오늘날 고창 전역에 산재한 고인돌은 그 지배자들이 남긴 자취다. 고창은 세계적인 고인돌 밀집지역이다. 인접한 고창읍 매산리, 죽림리, 도산리 등과 아산면 상갑리 일대에만 무려 4백47기나 몰려 있다. 길가나 논밭 옆, 산비탈 솔숲에 나뒹구는 바위덩이들은 십중팔구 고인돌이다. 지상석곽식, 남방식, 북방식 등 우리나라 고인돌 양식을 모두 보여주는 이 고인돌군은 2000년 강화도와 전남 화순의 고인돌군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질마재길은 고창 고인돌의 역사와 유물을 보여주는 고창고인돌박물관에서 시작된다. 박물관을 뒤로하고 조금만 걸으면 수백 개의 크고 작은 고인돌이 나뒹구는 산기슭에 당도한다. 집채만한 것도 있고, 묘 앞에 놓인 상석처럼 아담한 것도 눈에 띈다. 선사시대의 공동묘지 사이로 질마재길은 구불구불 이어진다.

 

이윽고 매산재를 넘고 오베이골 생태습지를 지나니 운곡서원이 지척이다. 파란 함석지붕이 올려진 운곡서원에서는 깊은 연륜이 전혀 느껴지질 않는다. 운곡서원에서 장살비재 초입까지는 운곡저수지를 끼고 가는 호반길이다. 하지만 길과 호수 사이에 장벽 같은 철조망이 설치돼 있는 데다 무성한 나뭇가지가 시야를 가로막아 운치는 덜하다.

 

장살비재부터는 질마재길의 2코스가 시작된다. 완만한 내리막 구간인 고갯길을 내려서면 금세 원평마을이다. 여기서부터 질마재길은 인천(仁川)강의 물길을 따라간다. 물 맑은 인천강은 노랑부리백로, 붉은배새매, 말똥가리, 새홀리기, 검은머리물떼새, 황새, 검은목두루미 같은 멸종위기 야생동물이 서식하는 생태계의 보고다. 자연풍광도 수려하다.

 

특히 아산면 반암리 선운초등학교에서 약 7백 미터 거리의 병바위 주변 풍광은 선경(仙境)인 듯 아름답다. 거꾸로 세워진 호리병처럼 보이기도 하고, 결연한 표정의 사내 얼굴 같기도 한 병바위의 독특한 형상도 인상적이다.

 

병바위에서 2코스의 종점인 연기교까지 4.4킬로미터에 이르는 구간은 기나긴 강둑길이다. 길은 단조롭기 그지없다. 일부 구간을 제외하고는 숲 그늘도 없어서 따가운 햇살을 피하기 어렵다. 그런데도 지루하지 않다. 물빛이 살아 있는 강에서는 물고기들이 연신 튀어오르고, 길가의 숲에서는 복병처럼 몸을 숨긴 새끼 고라니가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물끄러미 쳐다보기도 한다.

 

질마재길의 3코스는 시점과 종점이 일치하는 순환형 코스다. 애초에는 미당시문학관을 지나고 용산교를 건너서 갯벌체험마을인 하전마을로 향하는 코스였다. 하지만 차량 통행이 빈번한 왕복 2차로의 아스팔트도로 구간이 많아서 걷기 여행자의 안전을 위해 순환형 코스로 개선했다.

 

3코스의 시점이자 종점인 연기교에서 2.6킬로미터 거리의 꽃무릇쉼터까지는 산림경영모델숲을 가로지르는 산길도 있고, 분청사기 도요지와 연기저수지를 거쳐가는 임도도 있다. 유유자적하며 걷기에는 임도길이 더 낫지만, 꽃무릇(석산)이 만발하는 9월 중순쯤에는 일부러라도 산림경영모델숲의 꽃무릇 군락지를 찾아볼 만하다.

 

꽃무릇쉼터에서는 소요산(4백44미터) 정상이 한눈에 들어온다. 전설에 따르면 아득한 옛날 소요산 자락에는 무려 8만 개의 암자가 있었다고 한다. 지금은 정상 바로 아래의 바위틈에 위태롭게 들어선 소요사(063-564-1227)뿐이다. 백제 위덕왕 때 창건됐다는 천년고찰인데도 규모는 소박하다. 소요사 입구에서 질마재 고갯마루까지의 거리는 1킬로미터다.

 

질마는 말안장을 뜻하는 ‘길마’의 사투리다. 야트막한 질마재도 말안장을 닮았다고 한다. 고갯길답지 않게 사람을 긴장시키지도 않고, 숨 가쁘게 하지도 않는다. 구렁이 담 넘듯 편안하게 넘나드는 고갯길이다. 자동차도로가 생기기 전까지 미당 서정주 시인의 고향인 부안면 선운리 진마마을 사람들이 읍내 장터에 가려면 이 고개를 넘어야 했다. 오늘날 인적 뚝 끊긴 고갯마루에는 근래 세워진 이정표와 멀뚱한 얼굴의 장승들만 서 있다.

 

미당시문학관에서 시인의 손때 묻은 유품도 감상

 

콧노래 흥얼거리며 질마재를 내려서면 어느덧 미당시문학관에 당도한다. 폐교된 선운분교를 리모델링한 문학관에는 미당의 영욕을 보여주는 각종 자료와 육필 원고, 사진과 상장, 서적, 일상용품 등 시인의 손때 묻은 유품들이 전시돼 있다. 문학관 근처에는 미당이 태어난 옛집이 말끔하게 복원돼 있다. 그리고 문학관과 마주보는 안현마을의 산등성이에는 미당의 묘소가 자리 잡고 있다.

 

안현마을은 본래 이름보다도 ‘돋음볕마을’로 더 유명하다. 마을 전체가 아름다운 벽화로 장식돼 있다. 미당의 대표작품인 ‘국화 옆에서’를 소재로 ‘누님’의 얼굴과 노란 국화, 형형색색의 꽃과 나비를 벽돌담과 슬레이트 지붕에 그려놓았다. 벽화 속 인물은 모두 이 마을 주민들이어서 소박하고도 정감이 넘친다.

 

진마마을에서 연기교로 되돌아가는 길은 산솔모텔 뒤편으로 나 있다. 흔적만 남은 옛길을 약간 다듬어서 약 3킬로미터 길이의 멋진 산길로 탈바꿈시켰다.

 

연기교를 건너서면 질마재길의 마지막 구간인 4코스가 시작된다. ‘보은길’ 또는 ‘소금길’로 명명된 4코스는 선운사 골짜기를 가로질러 도솔암, 용문굴, 소리재, 참당암을 지나고 선운산 능선을 넘어서 심원면 하전마을 바닷가로 내려선다.

선운사 도솔암 인근의 아름다운 꽃무릇길. 9월 중순쯤의 풍경이다.

 

선운사는 백제 위덕왕 24년(577년) 검단선사가 창건했다. 당시 선운산의 진흥굴과 용문굴, 서해 칠산바다에는 산적과 해적이 들끓었다고 한다. 검단선사는 그들을 교화해 도적질을 그만두는 대신에 소금 굽는 법, 즉 화염(火鹽) 제조법을 가르쳐 생계를 꾸려가게 했다. 양민이 되어 소금을 구우며 생계를 꾸리던 그들은 해마다 봄과 가을 두 차례씩 ‘보은염’이라는 이름의 소금을 선운사에 보내곤 했다. 그런 전통은 광복이 되기 전까지도 계속됐다고 한다.

 

선운사를 품은 선운산(3백55미터)은 일명 ‘도솔산’으로도 불린다. 숲이 울창하고 기암괴석이 많아서 옛날부터 ‘호남의 내금강’이라 불릴 만큼 풍광이 빼어난 산이다. 게다가 TV 드라마 <대장금>의 촬영지인 용문굴을 비롯해 진흥굴, 도솔암, 낙조대, 천마봉, 장사송(천연기념물 제354호), 도솔암마애불(보물 제1200호) 등의 절경과 볼거리가 많다.

 

또한 선운사와 용문굴 사이의 등산로와 계곡 주변에는 꽃무릇 군락이 드넓게 펼쳐져 있어 초가을이 되면 핏빛보다 더 붉고 선연한 꽃무릇 꽃길이 만들어진다.

 

소금 굽는 벌막 복원… 화염 만드는 법 재현 행사

 

선운산 능선에 올라서면 서해 바다가 손에 잡힐 듯 가까이 보인다. 참당암에서 1.5킬로미터 떨어진 산 아래의 첫 마을인 심원면 연천마을에서 화산마을, 사등마을을 거쳐 하전마을로 이어지는 4.4킬로미터의 질마재길은 포장도로 구간이다.

막바지에 이른 길에서 딱딱하고 삭막한 포장도로를 걷는 일은 적잖이 고생스럽다. 검단소금전시관 앞의 갯벌은 백제시대에 소금을 채취했던 곳이다.

 

현재 전시관 건물 옆에는 소금 굽는 벌막도 복원돼 있어서 화염 만드는 법을 재현하는 행사가 열리기도 한다. 검단소금전시관과 이웃한 하전마을은 바다보다 더 넓은 갯벌을 품었다. 드넓은 갯벌을 누비며 조개 잡는 아이들의 해맑은 웃음소리가 끊이질 않는다. 건강한 갯벌에서의 짧은 체험이 아이들의 몸과 마음을 더욱 단단하게 만든다.

 

/송덕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