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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맞이 수도권 전철산행|중앙선 가이드 양평 백운봉 르포] ‘양평 마터호른’ 올라 두물머리를 바라보다

by 맥가이버 Macgyver 2012. 4. 23.
[봄맞이 수도권 전철산행|중앙선 가이드 양평 백운봉 르포] ‘양평 마터호른’ 올라 두물머리를 바라보다
  • 글·송철웅 월간산 기획위원
  • 사진·허재성 기자 
용문산자연휴양림 기점 정상 왕복

분명히 뭔가 잘못됐다. 용문산자연휴양림에서 백운봉(941m)을 겨냥하고 오르는 등산로가 어찌된 셈인지 걸으면 걸을수록 점점 희미해져만 가고 있었던 것이다. 휴양림 산장 뒤쪽 초입에서는 뻥 뚫려 있던 길이 비좁아지는가 싶더니 급기야 잡목을 헤치지 않으면 전진이 불가능한 지경에 이르렀다.

경기도 양평의 백운봉은 서울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데다 전철까지 연결되는 수도권 근교산행지로 워낙 뻔한 곳이다. 게다가 피라미드처럼 뾰족한 봉우리 모양이 너무도 특징적이어서 정상에 이르는 길을 잃는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나 바로 그 뻔한 곳이라는 생각이 함정. 너무 쉽게 생각한 나머지 지도를 확인하지 않고 정상 방향으로 나있는 산길로 무조건 들어선 것이 동티가 됐다. 잡목을 피하기 위해 너덜지대를 택해 고도를 높여가다 안 되겠다 싶어 뒤늦게 태블릿PC로 위성지도를 확인해 보니 백운봉으로 올라붙는 정상적인 등산로는 500m쯤 동쪽 골짜기로 통과하고 있는데 우리는 엉뚱하게도 골짜기 왼쪽 능선 바로 밑에서 헤매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 백운봉 남릉의 풍경. 뒤로 내려다보이는 마을이 용문산의 남쪽 골짜기 물이 모이는 연수리이다.
“이런, 젠장….”

낭패도 이런 낭패가 없다. 다시 휴양림으로 하산해 정상적인 등산로로 오르자니 한 시간 가까이 오른 것이 아깝고, 계속 가자니 길을 막아서는 잡목과 능선의 가파른 바위절벽이 부담스럽다. 그러나 백운봉 산행에 동참한 인터넷 등산 동아리 오더세(오은선과 더불어 사는 세상) 멤버 이동근, 홍재옥, 송현자씨는 오히려 재미있어 한다.

“일부러 개척 산행도 하는데 뭐 어때요? 평범한 길보다 훨씬 스릴 있고 흥미로운데요?”

소녀처럼 호기심과 모험심으로 똘똘 뭉친 여성 산꾼들의 씩씩함에 힘입어 정상적인 등산로 방향으로 크게 트래버스하기로 하고 일단 암릉을 돌파하는데, 바위벽 넘는 것이 아닌 게 아니라 리지등반처럼 스릴 있다. 남자인 이동근씨와 필자는 등산로가 있는 계곡으로 안전하게 내려갈 길을 찾는 데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데 바위를 기어오르는 재미에 푹 빠진 두 여인은 자꾸만 암릉을 따라 올라가려 한다.

▲ 백운봉에서 용문산 정상으로 이어지는 능선길은 백운봉을 동쪽으로 우회해서 나 있다. 연수리에서 출발하면 형제우물을 거쳐 이곳에 도달하게 된다.
능선은 깃대가 설치되어 있는 암봉을 지나 백운봉 못미처 안부에 있는 헬기장으로 이어지기는 하지만 바위가 워낙 험해 로프도 없는 상황에서 위험을 감수하며 암릉 코스를 고집하는 것은 결코 현명한 일이 아니었다.

계속 암릉으로 가고 싶어하는 두 여인을 만류해 앞세우고 비교적 덜 가파른 사면을 찾아 너덜을 타고 골짜기로 한참을 내려간 끝에 드디어 등산로를 만났다. 2시간 가까이 사람의 흔적이라곤 없는 곳을 헤매다 널찍하고 평탄한 길을 만나자 발걸음이 빨라진다.

용문산도 가린 채 위풍당당

수도권 산의 3월은 등산하기에 다소 애매한 시기이다. 응달엔 아직 잔설이 쌓여 있고 음지의 계곡에는 얼음이 채 풀리지 않았는데 양지바른 곳은 겨우내 얼었던 땅이 녹으며 진흙탕이 되어 있기 일쑤. 그러나 백운봉 오르는 길은 다행히 바위가 많아 신발에 진흙을 묻힐 염려가 덜하다.

백년약수터에서 다리쉼을 하며 샘물을 한 바가지 떠서 들이키자 맑은 물의 냉기 속에서도 약동하는 봄기운이 느껴진다. 휴양림관리소에서 백년약수까지 거리는 1.5km로
이곳에서 가파른 나무계단을 오르면 100m도 채 못 가 안부에 올라서게 된다.

▲ 백운봉 개념도
연수리에서 학골을 통해 올라오는 길과 합류지점이기도 한 안부에 도달하자 왼쪽으로 우리가 2시간 가까이 헤맸던 암릉이 전모를 드러냈다. 안전을 고려해 후퇴한 지점에서 약 300m 거리에 빨간 깃발이 꽂혀 있는 작은 봉우리가 있고 그 봉우리에서 헬기장이 있는 안부까지 부드러운 곡선의 능선이 연결되어 있으나 역시 사람이 지나다닌 흔적은 찾을 수 없다.

예정에 없이 길을 잘못 들어 헤맨 곳이긴 하지만 기회가 되면 로프를 준비해 암릉코스를 개척해 볼 수도 있겠다. 다만 그 암릉의 서쪽이 군인들이 포사격을 하는 사격장이라는 점이 맘에 걸린다. 이 날도 가끔씩 포 사격의 굉음이 들려왔고 암릉에서 등산로로 탈출하며 녹슨 포탄을 발견하기도 했다.

안부에 서면 드디어 백운봉이 위용을 드러낸다. 백운봉의 모양은 너무도 전형적이어서 오히려 독특하다. 마치 유치원생이 그린 것처럼 뾰족한 이등변삼각형으로 옥천 읍내 쪽에서 바라보면 그 모습이 흡사 마터호른을 닮아있다.
 
용문산자연휴양림 기점 정상 왕복
▲ 인터넷 등산 동호회 <오은선과 더불어 사는 세상>의 송현자, 이동근씨가 백운봉 정상 직전의 나무계단을 오르고 있다.
이 산군의 맹주 용문산을 가린 채 위풍당당하게 버티어 선 봉우리 위로 두터운 봄볕이 내려쬔다. 워낙 심플하게 솟은 산인지라 그 꼭대기까지 이르는 1.2km의 능선길도 한눈에 다 보인다. 안부 우측의 펑퍼짐한 봉우리에는 헬기장이 있는데 백운봉 가는 길은 헬기장의 왼쪽으로 난 오솔길이다.

철계단, 나무계단을 통해 바위로 이뤄진 정상에 오르자 그동안 백운봉에 가려져 있던 4km 거리의 용문산 정상(1,157m)이 흰 눈을 뒤집어쓴 채 손에 잡힐 듯 가깝게 보인다. 서쪽으로는 옥천, 서종이 내려다보이고 지평면 방향의 동쪽으로는 멀리 강원도 원주가 가물가물하다.

툭 트인 남쪽으로 남한강 물줄기

용문산을 뒤로 놓고 좌우가 모두 산악지대인데 반해 남쪽은 툭 트여 눈이 시원하다. 굴곡 없이 쭉 뻗은 남한강 강줄기가 하늘빛을 반사하고 그 너머로 여주, 이천이 펼쳐져 있다.

봄기운이 완연하던 저지대와는 달리 해발 900m급 정상부는 멀리 두물머리 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차갑다. 그러나 몇 걸음 옮겨 정상석 아래의 움푹 패인 곳으로 내려서자 지형이 천연의 바람벽 구실을 해주는 덕분에 거짓말처럼 바람을 느낄 수 없다.

늦은 점심을 먹기에는 안성맞춤이어서 각자 준비해 온 점심을 꺼냈다. 비스킷 몇 조각과 빵을 준비해 온 필자와는 달리 홍재옥씨의 배낭에서 나온 것은 놀랍게도 족발 도시락이다. 인천에서 오느라 아침 일찍 서둘러야 했을 텐데 언제 이토록 정성스럽게 준비했을까 싶게 부드러운 족발 외에도 새우젓, 된장, 마늘, 청양고추까지 완벽한 상차림을 보자 모두 탄성을 지른다. 발아래 아늑하게 자리 잡은 연수리마을을 굽어보며 양지바른 바위에 편안히 등을 기대고 앉아 온몸으로 봄볕을 느끼며 족발을 음미하자니 세상에 부러운 것이 없어진다.

▲ 1 길을 잃는 등 우여곡절 끝에 오른 백운봉 정상. 화면 왼쪽으로 용문산 정상이 보인다. / 2 계곡을 따라 용문산 자연휴양림 방향으로 하산 중이다. 길을 잃는 바람에 오를 때는 보지 못했던 곳이다.

하산은 일몰 시간을 감안해 용문산자연휴양림으로 원점회귀하는 것으로 결정났다. 오전에 뜬금없이 암릉으로 올라붙어 길을 잃은 탓에 2시간 넘게 시간을 낭비한 것도 있고 무엇보다도 우리가 대체 어디서 길을 놓친 것인지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헬기장 부근에서 사나사 쪽에서 올라온 이 지역 거주 등산객을 만나 오전에 길을 잃고 헤맨 얘기를 들려주자 가끔 있는 일이라며 껄껄 웃는다. 잘못 들었다는 길의 초입이 휴양림 뒤로 워낙 뚜렷하기 때문에 멋모르고 들어서는 사람들이 가끔 있다는 얘기다.

“그래도 그렇지, 길이 아닌 듯하면 당장 후퇴를 해야지, 계속 올라가면 어떡해요. 너덜지대를 통과해서 능선의 암벽지대로 올라붙는 길이 꽤 험한데 사고 안 난 게 다행이네요.”

그러고 보니 우리가 길이 영 아니다 싶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올라간 것은 끊어질 듯 희미하게 사람의 발자국이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다 8부능선 쯤에서 결국 그 희미한 흔적마저 사라졌을 때의 난감함이란…. 그 발자국의 주인도 우리처럼 잘못 들어와 헤맸을까.

휴양림 입구까지 내려와서야 정상적인 등산로가 우리가 출발했던 곳보다 약간 아래에 있는 휴양림관리사무소 앞으로 지난다는 사실을 알고는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허탈한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산행길잡이

용문산자연휴양림 기점 코스가 전철역 최단거리

용문산 정상과 남서릉으로 연결된 백운봉은 자연휴양림관리소에서 오르는 길 외에 동쪽 연수리에서 수도골 백운암을 경유해 형제우물을 통해 오르는 코스와 서쪽의 사나사에서 오르는 코스, 총 3개의 루트가 있다. 3개 코스 중 전철역과 가장 가까운 곳이 용문산자연휴양림코스로서, 산행 들머리인 휴양림관리소에서 양평역까지 약 4km이다. 양평읍내를 통과하는 4km가 결코 짧은 거리는 아니지만 전철 연계 산행이 인기를 끌면서 일부러 택시나 버스를 타지 않고 양평역까지 걷는 사람들도 제법 된다.

버스의 경우 산행 들머리까지 운행하지 않는 데다 배차간격도 약 1시간으로 드문 편이어서  동반자가 있는 경우 택시를 타는 것이 오히려 시간과 경비 면에서 경제적이다.

문의 양평 용문콜택시 031-773-4608.

사나사 쪽으로 오르려면 오빈역, 연수리 쪽으로 오르려면 용문역을 이용한다.

서울 용산역에서 용문 방면으로 가는 기차 첫차는 평일 05:32, 주말/공휴일 05:52이며, 용산행 막차는 평일 23:46, 주말 23:21.

양평역이 있는 양평읍내 시장에서는 3일과 8일에 5일장이 선다. 취재팀이 백운봉을 오른 3월 13일, 양평장에는 왁자지껄 신명나는 각설이 타령과 함께 각종 꽃과 채소의 씨앗을 파는 종묘 노점이 문전성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