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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과 깨달음☞/♡ 좋은 시 모음

능소화 연가 - 이해인 / 능소화의 슬픈 전설 - '구중궁궐의 꽃'

by 맥가이버 Macgyver 2012. 7.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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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소화 연가 / 이해인

 
이렇게 바람 많이 부는 날은
당신이 보고 싶어
내 마음이 흔들립니다


옆에 있는 나무들에게
실례가 되는 줄 알면서도
나도 모르게
가지를 뻗은 그리움이
자꾸자꾸 올라갑니다


나를 다스릴 힘도
당신이 주실 줄 믿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내게 주는
찬미의 말보다
침묵 속에도 불타는
당신의 그 눈길 하나가
나에겐 기도입니다


전 생애를 건 사랑입니다

 

 


- 이해인 수녀의 '꽃은 흩어지고 그리움은 모이고' 中에서

 

 

 

능소화의 슬픈 전설 1 - '구중궁궐의 꽃'

 

 

이 꽃을 구중궁궐의 꽃이라 칭하는데 이야기를 풀어 보겠습니다.

옛날 옛날 복숭아 빛 같은 뺨에 자태가 고운

'소화'라는 어여쁜 궁녀가 있었다.

 

임금의 눈에 띄어 하룻밤 사이에 빈의 자리에 앉아

궁궐의 어느 곳에 처소가 마련되었으나

 

어찌된 일인지 임금은 그 이후로 빈의 처소에

한 번도 찾아오지를 않았다.

 

빈이 여우같은 심성을 가졌더라면

온갖 방법을 다하여 임금을 불러들였건만

아마 그녀는 그렇지 못했나 보다.

 

빈의 자리에 오른 여인네가 어디 한 둘이었겠는가.

 

그들의 시샘과 음모로 그녀는 밀리고 밀려

궁궐의 가장 깊은 곳에서 기거 하게 된 빈은

그런 음모를 모르는 채 마냥 임금이 찾아오기만을 기다렸다.

 

혹시나 임금이 자기 처소에 가까이 왔는데 돌아가지는 않았는가 싶어

담장을 서성이며 기다리고, 발자국 소리라도 나지 않을까,

그림자라도 비치지 않을까,

 

담장 너머를 쳐다보며...

안타까운 기다림의 세월이 흘러가고 있었다.

 

어느 여름날 기다림에 지친 이 불행한 여인은

상사병 내지는 영양실조로 세상을 뜨게 되었다.

 

권세를 누렸던 빈이었다면 초상도 거창했겠지만

잊혀진 구중궁궐의 한 여인은 초상조차도 치르지 않은 채

 

'담장가에 묻혀 내일이라도 오실 임금님을 기다리겠노라라는 유언을

그녀의 시녀들은 그대로 시행했다.

 

더운 여름이 시작되고 온갖 새들이 꽃을 찾아 모여드는 때

빈의 처소 담장에는 조금이라도 더 멀리 밖을 보려고 높게,

발자국 소리를 들으려고 꽃잎을 넓게 벌린 꽃이 피었으니

그것이 능소화이다.

 

덩굴로 크는 아름다운 꽃이랍니다.

 

아무튼 능소화는 세월이 흐를수록 더 많이 담장을 휘어 감고

밖으로 얼굴을 내미는데...

그 꽃잎의 모습이 정말 귀를 활짝 열어 놓은 듯하다.

 

한이 많은 탓일까, 아니면 한 명의 지아비 외에는

만지지 못하게 하려는 의도였을까?

 

꽃의 모습에 반해 꽃을 따 가지고 놀다 꽃의 독소가 눈에 들어가면

실명을 한다니 조심하셔야 합니다.

 

장미는 그 가시가 있어 더욱 아름답듯이

능소화는 독이 있어 더 만지고 싶은 아름다움이 있답니다.

 

 

 

 

 

능소화의 슬픈 전설 2 - '절벽 위에 핀 능소화 '

 

 

 

옛날 옛적에 수호랑이 한 마리와 반인간 반호랑이인 암호랑이가 살았습니다.


암호랑이는 진정한 호랑이가 되는 것을 꿈으로 키우며 지내 왔습니다.


진정한 호랑이가 되기 위해서는 인간의 몸으로 태어나
호랑이와 합방을 하여야만 했습니다.


암호랑이는 산골마을 이진사댁에 태어나 연지라는 여자아이로 자라났고
수호랑이는 창주라는 9살 먹은 남자아이로 변신을 해
김서방네 머슴으로 들어가 살게 되었습니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서로를 그리워하며 바라보면서
한 마을에서 살았습니다.

창주라는 머슴이 들어온 후 김서방네 집엔 살림이 일고,
경사가 겹쳐 김서방네 식구들은 창주를 가족같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세월이 흘러 혼인의 나이에 접어들자

김서방은 창주가 욕심이 나서 창주가 연지아가씨를 사모하는 것을 눈치채고

그를 잡아둘 생각으로 둘의 혼사를 서둘렀습니다.


창주와 연지는 회심의 미소 속에 혼인을 하고
드디어 꿈에 그리던 합방을 치르게 되었습니다.
창주는 주위 모든 사람들에게 절대로 방을 엿보지 말기를 신신당부 했습니다.


밤이 되었습니다.
오랜 그리움에 오히려 머쓱하여 앉은 창주
부끄러움에 연지의 가녀린 어깨 떨림
운명의 시간은 촛불의 일렁임을 타고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마침내 마주친 눈길
그들의 그리움은 불꽃처럼 타오르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어디에나 하지 말라는 것 꼭 하는 장난꾸러기 아이들이 있습니다.
동네 아이들이 몰래 담을 넘어 들어와 창호지를 뚫어 안을 들여다 본 것입니다.


커다란 수호랑이가 연지아가씨 몸에 엉겨 붙어있는
끔찍한 광경을 보고 놀란 아이들은 소리를 지르며 사람들을 불렀습니다.


합방의 꿈은 깨어지고 결국 수호랑이는
잡혀 끌려가 죽임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그날부터 연지 아가씨는 뒷산 절벽 위
창주가 호랑이로 살았던 굴을 향해 기어오르기 시작했습니다.


그곳에 오르면 창주가 있을 것 같아 그를 만나겠다는 갈망으로
호랑이의 울부짖음을 환청으로 들으면서
무릎이 깨지고 손톱이 빠지고 피가 맺히다 못해 줄줄 흘리면서
오르고 오르다가 끝내 지쳐 다 오르지 못하고
절벽아래로 떨어져 죽고 말았습니다.


그녀의 한이 씨로 맺혀 싹이 트고 덩굴을 뻗더니
절벽을 타고 기어오르는 능소화를 피웠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