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기 말이지’ ‘그거 말이야’ ‘내가 말이야’로 천천히 시작해서
오락가락하다가 끝나도 좋은 대화가 거기에는 있다.
구름에게 들려주고 바람에게 흘려보내도 좋을 이야기가 거기에는 있다.
지난여름 나는 아내와 함께 얼마나 많은 길을 걸었던가.
얼마나 많은 길을 걸으며 봉숭아꽃이며 분꽃을 보고 꽈리나무 밑동을 살피며
꽈리열매 주머니가 커지는 것을 훔쳐보았던가.
또 얼마나 많은 실없는 이야기를 나누며 낄낄거렸던가.
길이라 해서 대단한 길이 아니다.
그냥 마을 안길이요 골목길이요, 조금 욕심 부린다면 수원지공원길이다.
예전 상수원지로 쓰던 저수지를 시청에서 공원으로 새롭게 가꾸어 주어
그 주변의 길을 걷는 것이 지극히 안락하고 좋았다.
그 길에서면 늘 만나는 이웃 사람들마저 새롭고 반가웠고
그저 그런 아이나 새댁도 예쁘게만 보였다.
삶이 고단하다면 한번 걸어보라
실상 길을 걷는다는 것,
길을 걸을 수 있다는 것이 하나의 축복이요,
인류만이 가진 특권이다.
살아 있는 자의 행운이다.
오늘도 병상에 누워 있는 사람에게 물어보라.
당신의 소원이 무엇인가.
그는 더도 말고 환의를 벗고 평상복을 입고 구두를 신고
마음껏 거리를 걷는 것이라고 말할 것이다.
그 거리가 오래 살아서 정든 거리, 낯익은 거리라면 더욱 좋을 것이다.
활보.
역시 내 마음껏 걷는 걸음을 말한다.
숨을 크게 들이쉬고 내쉬며 보폭을 크게 하여 걸으면
세상이 더욱 넓어지고 마음조차 너그러워질 것이다.
행여 사는 일이 찌뿌듯한 사람이 있다면 부디 이 활보란 것을 한번 해보시기 바란다.
그 장소가 어디면 어떤가.
마을의 공터라도 좋고 실내공간의 한구석이라도 좋을 것이다.
우리가 걸을 때 그곳은 즐겨 길이 되어줄 것이다.
나는 가끔 특별한 일이 생기면 내 방식대로 길을 떠난다.
마음에 상처를 입거나 심한 갈등이 있거나 결단을 내릴 때의 일이다.
수세미같이 구겨진 생각들을 정리하기 위해서다.
이런 때 나는 부서진 마음을 고치러 간다고 말을 한다.
아닌 게 아니라 서너 시간 땀이라도 흘리며 산길을 걷다가 돌아오면
구겨진 생각이 가지런해지고 부서진 마음이 제자리로 돌아간 듯한 느낌을 받는다.
아들아이는 아직 젊어서 길이라면 어디까지나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
새로운 길만을 길이라고 고집한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여러 차례 가본 길도 충분히 새롭고 좋은 길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발견보다는 정겨움에 길의 의미가 있다고 믿는 것이다.
길에는 만남이 있다.
그것도 생명을 가진 자들의 만남이다.
그러므로 당연히 호흡이 있고 리듬이 있다.
길은 노래와 같다. 시와 같다.
여러 번 읽어도 좋은 시, 여러 번 불러도 즐거움을 주는 노래 말이다.
길은 미지다. 그리움이다.
우리 앞에 무한히 멀리 이어져 열린 길이 있다는 것보다 더 희망찬 일은 없다.
길이야말로 아직도 끝나지 않은 사랑이며 열정이다.
다시 한 번 인생 그 자체이다.
길과 함께하는 한 우리의 인생은 결코 고행이 아니고 여행임을 알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