붙잡아 둘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 도종환
사랑한다고 말한 그 사람도 없고 사랑도 없다.
사랑이 어떻게 사라지고 만 것인지 골똘히 생각하는 시간에도 사랑하는 사람은 점점 멀어져 가고 사랑도 빛을 잃어 간다.
시간 속에 영원히 살아 있는 것은 없으며 낡고 때 묻고 시들지 않는 것은 없다.
세월의 달력 한 장을 찢으며 벌써 내가 이런 나이가 되다니, 하고 혼자 중얼거리는 날이 있다.
얼핏 스치는 감출 수 없는 주름 하나를 바라보며 거울에서 눈을 돌리는 때가 있다.
살면서 가장 잡을 수 없는 것 가운데 하나가 나 자신이었다.
붙잡아 두지 못해 속절없이 바라보고 있어야 했던 것, 흘러가고 변해 가는 것을
그저 망연히 바라보고 있어야 했던 것이 바로 나 자신이었음을 늦게 깨닫는 날이 있다.
시간도 사랑도 나뭇잎 하나도 어제의 것은 없다. 모든 것은 늘 흐르고 쉼 없이 변하고 항상 떠나간다.
이 초겨울 아침도, 첫눈도, 그대 사랑도 붙잡아 둘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글 / 도 종 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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