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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과 깨달음☞/♡ 좋은 시 모음

부드러운 칼 / 정호승

by 맥가이버 Macgyver 2013. 7. 22.

 

 

 

 

 

 









부드러운 칼 / 정호승

 

 

 칼을 버리러 강가에 간다
어제는 칼을 갈기 위해 강가로 갔으나
오늘은  칼을 버리기 위해 강가로 간다
강물은 아직 깊고 푸르다
여기 저기 상처난 알몸을 도려낸 채
홍수에 떠밀려온 나뭇가지들 옆에 앉아
평생 가슴속에 숨겨 두었던 칼을 꺼낸다
햇살에 칼이 웃는다
눈부신 햇살에 칼이 자꾸 부드러워진다
물새 한 마리
잠시 칼날 위에 앉았다가 떠나가고
나는 푸른 이끼가 낀 나뭇가지를 던지듯
강물에 칼을 던진다
다시는 헤엄쳐 되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갈대숲 너무 멀리 칼을 던진다
강물이 깊숙이 칼을 껴안고 웃는다
칼도 이제 증오가 아니고 미소라고
분노가 아니라 웃음이라고
강가에 풀을 뜯던 소 한마리가 따라 웃는다
배고픈 물고기들이 우르르 칼끝으로 몰려 들어
툭툭 입을 대고 건드리다가
마침내 부드러운 칼을  배불리 먹고
뜨겁게 산란을 하기 시작했다

 

 

- 정호승作『내 인생에 용기가 되어준 한마디』중에서 -